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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전쟁, 북핵, 한·일 갈등… 동북아 미래 지형 바꿀 빅게임이 전개되고 있는데
현 정부 외교는 우리 성공 역사와 반대로… 도전 몰려오는데 경고음 없어

동북아의 미래 지형을 바꿀 빅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 미·북 비핵화 협상, 한·일 갈등 모두가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되는 생존 경쟁의 단면이다. 그 향방에 따라 미래 국제 질서 재편과 새로운 핵보유국 탄생, 그리고 전후 가장 강력한 보통 국가의 등장을 의미한다. 역내 정세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데, 정작 한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의 외교는 대한민국 성공 역사와 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이 공산주의로 인한 정체기를 겪을 때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동맹을 맺으며 안보를 튼튼히 했고 모든 힘을 경제 발전에 쏟아 세계적인 무역 국가로 성장했다. 한반도에 갇혀 있던 작은 나라가 세계로 나가 경제 대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를 잘살게 했던 한·미 동맹과 주변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모습을 요즘은 찾기 어렵다. 그 대신 외교의 중심에 북한이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무조건 북한을 먼저 말하고, 일부 국가와는 대북 제재 완화를 성급히 꺼내다 불협화음을 빚었다.

더 큰 문제는 동시다발적인 도전이 몰려오는데도 정부가 경고음을 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면서 무슨 자신감인지 태연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마냥 신뢰했던 우리 정부의 배려 덕분에 북한은 대화 복귀만으로 주변 환경을 개선했다. 이젠 핵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과 거래하는 방법에 골몰한 모습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개념이나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한 입장을 바꿔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 하고 있다. 중재자를 자처하더니 스스로를 당사자에서 소외시켜버렸다.

한·미 동맹은 위기를 맞고 있다. 당장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전략 자산 전개 중단이 약속될 수 있고, 북한의 카드에 따라선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방위비 분담금은 1년 단위로 합의해서 갈등 요인을 남겨두었다. 안정적인 동맹 관리가 시급한 시기에 돈 아낀다는 명분으로 미래 투자를 거부했다. 생각 있는 정부라면 동맹 강화를 통한 미·북 협상의 잠재적 위험 관리와 국내 경제 안정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방위비 분담금의 몇 배가 넘는, 현 정부 들어 매년 수조원씩 줄어드는 대미 무역 흑자를 더 걱정하고 활로를 찾아야 한다.

아베 정부의 부적절한 행보가 관계 경색의 주원인이지만 미래 지향적 협력마저 포기한다면 일본은 우방이 아닌 적대적 경쟁자로 변한다. 하는 짓이 얄밉다고 세계 3위 경제 대국을 친구가 아닌 적으로 돌리면 그 피해는 우리가 더 크다. 대일 외교의 황금기는 이미 끝났다. 변하고 있는 일본과 어떻게 공존하고 우리의 역사적 자존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한 차원 높은 대안이 필요하다. 대중·대러 외교도 문제다. 정부 출범 3년 차인데 사드 문제 하나 못 풀고 있다. 북·중·러 공조 조짐도 엿보인다. 한·미·일 공조는 약화되는데 말이다.

경제 외교는 심각한 수준이다. 구체적인 사업 타당성 검토 없이 세계 GDP의 0.05%도 안 되는 북한이 우리 경제의 미래라고 꿈꾸고 있을 때 한국이 빠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최근 출범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가입을 미뤄왔던 세계 GDP의 14%를 차지하는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이다. 말로는 신남방정책을 외치지만 대상 지역 핵심 국가들이 참여한 경제 블록에는 정작 뒷짐을 졌다. 한국 경제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되는데 누구도 소리 높여 나서지 않는다.

성급한 평화 분위기 조성도 안보 의식 약화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평화가 경제라고 외치지만 진짜 평화여야 경제가 된다. 북핵은 그대로인데 그나마 우위에 있던 전방 감시 정찰 능력을 포기하고도 신뢰 구축으로 자화자찬하는 건 가짜 평화다. 대화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독재자가 갑자기 평화 애호가로 둔갑할 순 없다. 3·1운동을 김씨 일가가 주도했다는 정권과 공동 행사를 한다고 민족정기가 되살아날 일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변한 만큼 평가해야 한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외부 침략이 아닌 내부 실패로 보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데 한반도라는 작은 공간에서 북한에만 몰입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온도가 위험수위로 올라가는데도 정부가 나 몰라라 한다면 온 국민이 위험해진다. 서서히 가열되는 시험관의 미지근한 물에 넣어진 개구리가 그 따뜻함 속에 죽어가는 상황을 피하려면 이제 누군가 꿈틀대야 한다.

 

* 본 글은 2월 9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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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