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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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28일, 북한 김정은은 베이징을 전격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ㆍ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진 상태로 진행되었고, 이 사실은 최초 블룸버그 등의 외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였다.1 결국, 김정은 귀환 후인 28일, 중국 관영 중앙(CCTV) 및 『조선중앙방송』이 북ㆍ중 정상회담을 공식 확인했다. 2012년 김정은 시대 출범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북ㆍ중 최고지도자간의 만남은 그 자체가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파급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관측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정은의 방중은 단순히 북ㆍ중 관계의 복원을 넘어 2018년 초 부터 진행된 일련의 남북대화 및 한반도 비핵화 국면을 요동치게 할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ㆍ중 관계 밀착의 손익계산표

북ㆍ중 정상회담 후 양측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3월 25일 특별열차편으로 베이징을 방문하여 27일까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김정은이 먼저 중국 방문을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시진핑이 그를 초청하여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의 방중 경로는 선대(先代)가 택하였던 특별열차 편이었으며, 이는 적지 않은 상징성을 지닌다. 북한-중국 간의 특별열차편 이용은 중국 자체의 운송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적지 않은 베이징의 호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이동 방식은 “순치관계”(脣齒關係)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북ㆍ중 관계, 즉 후원자-수혜자 관계의 궤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기도 하다. 실제로, 김정은의 방중과정에는 부인 리설주를 포함하여 최룡해, 리수용, 리용호, 박광호, 조용원 등 북한 정권의 핵심이 총동원되었다. 특이한 점은 과거 김정일의 방중 때와는 달리 군인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군에 대한 장악을 확실히 유지하고 있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북중관계에서 당 대 당 관계를 중심으로 추진될 북·중관계에 거는 평양의 기대를 그대로 반증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과 시진핑은 ‘혈맹 관계의 복원’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천명하였다고 한다. 시진핑과 김정은은 “대를 이은 친선관계”의 유지(김정은), “피로 맺어진 친선”(시진핑) 등을 강조하면서 향후에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또한,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며 “한ㆍ미의 선의에 따라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2

북ㆍ중 정상회담이 끝나고 김정은이 평양으로 귀환한 후 중국은 시진핑 주석-트럼프 대통령간 통화를 통해서 그 결과를 미국 측과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28일자 SNS를 통해 북ㆍ중 정상회담이 매우 잘 진행되었으고 김정은이 자신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전달받았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최대의 압박과 관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였다.3 동시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의 인민들과 인류를 위해 ‘바른 일’을 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a good chance that Kim Jong Un will do what is right for his people and for humanity)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김정은의 추가적 결단을 압박했다.4

북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베이징과 평양은 모두 나름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낸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김정은을 다시 베이징의 영향력 하에 끌어들인 이득을 얻었으며, 비핵화 국면에서 중국의 지렛대를 다시 강화하는 이득을 얻어내었다. 중국이 김정은의 방중에 대해 고도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의전ㆍ경호 등에 있어 대단한 환대의 인상을 보인 것은 그만큼 북ㆍ중 관계 복원에 대한 결과가 만족스러웠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5 북한과 중국 매체를 통해(특히 중국측 매체) 보도된 정상회담 분위기 역시 김정은이 시진핑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전통적 후견국’ 중국의 이미지를 재확립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구도는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2015년 8월의 ‘목함지뢰’ 사건 당시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한ㆍ미와 북한 모두가 자제할 것을 요청했고, 그 당시 돌아온 북한의 응답은 “그 누구의 그 어떤 ‘자제타령’도 더 이상 정세관리에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다”(8월 22일자 북한 외무성 성명)였다. 2015년 12월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 역시 김정은 우상화에 대한 내용을 둘러싼 북ㆍ중 양측의 이견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북ㆍ중 관계에 있어 중요한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가시적인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핵 강국’으로서 북ㆍ중 관계에 있어서도 대등성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태도를 나타냈었다. 2016년의 7차 당 대회를 전후하여 각국으로부터의 축전을 소개한 북한 매체의 언급에서 중국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게 다루어진 바 있으며, 2017년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 연임을 축하하는 김정은의 메시지 역시 간략한 수준에 그쳤다. 2018년 3월 18일 중국 중앙(CC)TV가 보도한 시진핑의 국가주석 당선 축전에도 전통적 북ㆍ중 관계를 강조하는 표현보다는 의례적인 축하만이 담겨 있었다.6

북ㆍ중 정상회담은 기존 분위기의 대반전을 보여주었다. 베이징은 다시 자신에게 다가온 평양의 이미지를 세계에 부각시킴으로써 시진핑의 외교력과 지도력을 과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적인 대북 영향력이 변함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베이징은 자칫 북핵 해결구도가 남북한과 미국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핵심 행위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부각시켰다. 중국의 입장에서 더 고무적인 것은 단순한 흐름을 빼앗아온 것뿐만 아니라 의제까지도 자신의 것을 강화할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3월 6일, 정의용 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 특사단의 서울 브리핑에서 김정은은 연례적인 수준의 한ㆍ미 연합훈련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한ㆍ미 연합훈련이나 전략자산 시위를 중단하고, 대신 북한 역시 핵/미사일 실험을 잠정 중단하라는 중국의 ‘쌍중단 쌍궤병행’(雙中斷 雙軌竝行)에 대한 반박으로도 비출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다시 뒤집어졌다. 이번 북ㆍ중 정상회담에서 밝힌 북한의 비핵화 조건, 즉 ‘한ㆍ미의 선의’와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는 향후 다양한 해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중국은 이 키워드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동아시아 지역 미국의 영향력 견제에 활용하려는 전략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ㆍ미 동맹과 주한미군 더 나아가 THAAD 문제까지를 다시 제기할 여지를 마련한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ㆍ중 관계 복원을 통해 남북 및 미ㆍ북 정상회담에서 더욱 융통성 있는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미ㆍ북 정상회담의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추가 제재나 대북 군사조치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2017년 중 북한의 ‘괌 포위사격’ 발언이 나온 당시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북한이 주도적으로 미국의 영토를 위협하는 미사일을 발사해 보복을 초래한다면 중국은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실은 바 있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어떤 군사적 조치도 반대한다는 기존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7 즉, 평양으로서는 중국이 제재에 동참한다는 사실 이상으로 미국의 대북 군사조치에 대한 베이징의 묵인이나 소극적 자세를 두려워했을 수 있는 것이다.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전제, 즉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다시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3월 5일~6일간 방북한 한국의 대북특사단에게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임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이를 실천할 의지가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는 사실 ‘비핵화’ 못지않게 ‘핵무장 정당화’의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8 특사단의 방미 이후 이루어진 워싱턴 발표(3월 8일)에서는 이 전제조건이 사라지고 ‘비핵화’만이 강조되었다. 즉, 북한은 남북 및 미ㆍ북 정상회담에서 전제조건보다는 비핵화 약속이 더 부각되는 상황을 우려했을 것이다.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는 북한이 주장하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기존 전제조건의 부활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이 전제조건을 시진핑을 통해 재확인하고 후원받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물론, 평양의 입장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일종의 희생도 고려해야 했다. 어떤 면에서 ‘핵 강국’이나 ‘전략국가’ 북한의 이미지는 선대(先代)와 차별화되는 김정은의 업적으로 강조될 수 있었으며, 전통적 후원국 중국과도 일정한 거리를 둔 북한의 위상은 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다. 김정은은 베이징 방문과 북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이는 결국 북ㆍ중 관계의 복원을 향한 북한의 심정이 절박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서, 중국까지 동참하는 국제적 대북제재가 북한에게는 매우 심각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더 심한 제재에도 동참할 수 있다는 중국의 우회적 압력이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비핵화 여건은 정말 더 개선되었는가?

분명 우리의 입장에서는 북ㆍ중 관계가 복원되었다는 점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국 역시 북한 비핵화를 일관되게 지지해왔으며, 평양이 베이징의 말만 제대로 들어도 비핵화 과정의 신뢰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양제츠(楊潔簾)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3월 29일자 방한을 통해 북ㆍ중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남북 및 미ㆍ북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청와대가 북ㆍ중 정상회담이 한반도 정세안정과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도 중국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9

북ㆍ중 관계의 복원은 한ㆍ중 관계를 통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는 점에서는 분명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비핵화 개념·범위와 접근방식에 대한 한ㆍ중 이해와 인식이 일치될 때 가능하다.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 한국과 중국은 여러 면에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하면서도 한국과 미국 역시 북한의 안보우려(북한의 정당한 안보우려)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고, 이것이 ‘쌍중단’ 해법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수단인 THAAD 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이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했다.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핵 문제가 단순한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미ㆍ중 전략경쟁의 일부로 해석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중국의 이러한 주장이 자신들의 전략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며,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와 비핵화 전제조건 강화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에게도 유리하냐는 것이다. 한ㆍ중간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우리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해주려면, 그리고 중국이 자신들의 의제를 포기하면서도 평양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려면 강력한 대북 레버리지가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강력한 대중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는가, 만약 가지고 있다면 지난 수년간의 THAAD 보복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자문자답 해야 한다.

북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자칫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비핵화 해법과 관련, 자신들의 전제조건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3월 6일의 특사단 서울 브리핑, 3월 8일의 워싱턴 발표 이후 2주간의 시간을 과연 적절하게 활용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울 브리핑과 워싱턴 발표 사이에 비핵화 과정에 대한 상반된 해석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ㆍ북 대화를 ‘중재’하는 입장에서는 상반된 양측의 입장을 동시에 반영하고 인정할 필요도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국의 해석은 무엇인가가 분명해져야 ‘주도’가 가능해진다. 두 가지의 결이 다른 발표 사이에서 정확한 해석을 내려야 평양과 워싱턴 모두 자기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그 해석이 평양 및 워싱턴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정확한 입장이 식별되어야 남북한 간에도 한ㆍ미 간에도 조율이 이루어질 여지가 있다. 결과적으로 특사단 방북 후 ‘비핵화’의 전제조건과 관련된 정확한 해석의 쐐기를 박지 못함으로써 북ㆍ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다시 조건부 비핵화로 회귀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평양의 변화에 대한 ‘희망적 사고’에 집착해 한국 주도론을 낙관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비핵화 국면의 변수로 다시 부각됨으로써 판이 복잡해졌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북한 비핵화의 조건과 속도를 둘러싸고 한ㆍ미간에도 이견이 발생할 소지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한ㆍ미간에도 이견이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동맹 간에도 이슈에 대한 접근법이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동안 비핵화 국면을 함께 끌어온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ㆍ미 공조보다는 미국 일방주의 혹은 미ㆍ중 대타협 위주로 판을 변화시킬 위험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 및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화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ㆍ안보 참모 진용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 내정자나 존 볼튼(John Bolton)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 이들은 모두 그 전임에 비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대한 수용성이 높으며, 한반도의 특성보다는 미국의 전체 세계전략의 틀을 강조하는 인물들이다.

이를 고려할 때, 만약 4월의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 정부의 ‘한반도 운전석론’이 위협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남북 정상회담 준비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우며, 북한도 이에 대해 협조적 태도로 임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보일 때뿐만이 아니라 ‘민족공조’를 통해 ‘한ㆍ미 공조’를 돌파하려 할 때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행태이다. 현재까지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과 관련, 북한은 ‘비핵화’ 의제에 대해 수용도 반박도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보는 데에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고, 북한 역시 나름 고심을 하는 징후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남북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지 못 할 경우, 한국이 지니는  미ㆍ북 관계의 중재자로서의 신뢰성도 약화되며, 미ㆍ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불투명해 질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제재 再강화 요구와 북ㆍ중의 대화 지속 사이에서 한국은 급격히 중심을 상실하는 딜레마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9일(현지시각) 미 오하이오 리치필드에서 열린 행사 연설에서 사실상 타결이 끝난 한ㆍ미 FTA 개정협상 종결을 북한과의 협상 이후로 미룰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10 이를 보도한 미국 언론들 역시 트럼프가 구체적으로 어떤 레버리지를 누구에 대해 구사하려 이런 발언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다만, 워싱턴이 자신들의 비핵화 해법과 서울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4월의 남북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 중요해진 남북 정상회담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점검을 끊임없이 시행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이끌어내어야 할 사항들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첫째,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장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며 이로 인해 핵보유가 정당하다는 논거를 아직 철회하지 않았다. 과연 그들의 ‘대북 적대시 정책’ 실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평화체제의 시기와 방법, 대북 보상조치 등 나머지 해법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한, 전체주의적 특성상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확대 재생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입장에서 ‘적대시 정책’의 철회가 북한의 주기적인 적대의지를 과연 근본적으로 철회시킬 수 있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동시에 대북 제재와 압력은 유효했다는 워싱턴의 해석에 우리가 공감하는 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태도를 확실히 해야 한다.11 만약 제재가 유효하다는 입장이라면 북한의 소극적 비핵화 태도나 약속위반에 대한 그 다음 조치,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반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워싱턴을 설득해서라도 해결 방향, 즉 관여에 중점을 둔 방향으로 선회토록 해야한다. 이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 할수록 평양과 워싱턴 모두로부터 신뢰가 저하되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협상 레버리지는 줄어들게 된다.

둘째, “북한의 태도에 변화는 있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현재 긍정적 신호와 부정적 신호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비핵화 문제에 대한 북한매체의 상대적 침묵이 긍정적이라면 잊지 않고 전통적 의제(주한미군의 부정 등)를 슬그머니 흘리는 것은 부정적인 단면의 전형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협상에 나서는 행위자의 당연한 태도이다. 협상여건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유리할수록 원래 포기하였던 전통적 주장과 의제를 부활시킬 유혹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남북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우호적이고 순조롭게 전개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단순한 수사(修辭)나 행태를 넘어 실질적 정책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는 가를 점검해야 한다.

셋째,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추가적인 약속이나 태도변화가 있는지를 주시해야 하며, 그 변화가 없는 한 기존 제재의 완화나 이완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카드를 사용하는 데에는 조심해야 한다. 이제는 평양이 내부반응을 우려하여 비핵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비핵화 의제 자체에는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으로는 부족하다.12 이와 관련,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과 관련하여 다시 한 번 ‘제재 예외’가 이루어진 점(전세기 이용)이 과연 타당했는지에 대해서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제재를 가하는 측에도 일정한 피해(민간 거래나 네트워크 상실)를 감수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은 이에 충실히 동참해야 하고, 한국은 화해ㆍ협력의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중적 논리는 설득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과, 이는 한국이 제재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점을 확인시켜 한국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도 비핵화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고, 한ㆍ미간의 틈새를 공략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은 비핵화 의미, 범위, 절차와 과정 그리고 이에 상응하여 한국이 취할 조치 등에 대한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넷째, 이제는 평창 ‘플러스 알파’가 유도되어야 할 시기이다. 남북한 간에 화해와 교류ㆍ협력이 재개되었다는 상징성을 넘어선 조치가 가시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치가 있어야 자신들의 비핵화를 관철하려는 워싱턴을 설득시킬 수 있고, 중국을 제재 공동전선에 잔류시킬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최대 이익은 평창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남북대화, 교류 등), 별 다른 추가조치 없이 대북제재 해제등과 같은 국제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상황일 것이다. 반면, 워싱턴은 현재까지의 북한 변화만으로는 만족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시사하였다. 따라서 한국이 생각하는 ‘플러스 알파’는 무엇인지를 평양과 워싱턴에 제시하고 그것을 정상회담에서 요구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 카드와 부가적 카드를 구분해야 한다. 북한은 북ㆍ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다시 자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카드를 미분(微分)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즉, ‘단계적ㆍ동시적 조치’를 빌미로, 미국인 억류자 석방,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남북 교류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면서 실질적 비핵화를 미루려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제시하는 어떠한 카드든  현 단계에서의 핵심은 ‘비핵화’다, 이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남북한 간에는 ‘주도’를, 미ㆍ북 관계에서는 ‘중재’를 병행하는 자세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동기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그 중 핵심적인 하나는 한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의 고착에 있다. 남북한 관계는  ‘민족간 특수관계’인 동시에 사실상 UN 회원국 간의 국가급 양자 관계이기도 하다. 이 관계에서 자신이 열세자의 위치에 놓이는 것을 선호할 행위자는 없으며,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다른 면에서는 다 열세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전략적 능력에서는 핵능력이라는 veto power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려는 것이 북한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 veto power를 해체하거나 포기시키는 데에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북한의 대남 우위를 수용하는 선에서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대안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대안은 적어도 우리 국내적으로는 고려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