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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규모의 치밀한 기습공격을 벌였다. 1973년 10월 6일 팔레스타인 아랍 형제를 위해 합세한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지 50년 만의 일이다.

하마스의 도발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강경 무장조직 하마스 간의 주도권 다툼,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이란 간 3각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라는 위협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친미국가인 이스라엘과 중동 평화를 명분으로 ‘빅 딜’을 시도하자, 역내 데탕트가 이뤄질 경우 존립 근거를 상실할 것을 우려한 하마스가 명운을 건 ‘승인투쟁’을 벌인 것이다.

◇하마스는 누구

1987년에 설립된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에 뿌리를 둔다. 하마스의 구성원은 가자지구의 토착 세력으로 급진 이슬람주의 슬로건 아래 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현재 서안의 지배권은 파타흐가, 가자의 실질적 통제권은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다.

1964년 결성된 PLO는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를 떠돌며 독립국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듬해 PLO가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협정에서 ‘평화와 영토의 맞교환’을 통한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음에도 이스라엘의 강경 우파는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시위를 과잉 진압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에 함께 맞서는 대신, 파타흐와 하마스로 분열해 각자 세력 기반을 다지는 데 연연했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파타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둘의 다툼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파타흐의 우두머리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새로운 총리를 독단적으로 임명했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무력 장악했다. 이후 양분된 지도부가 정쟁에 돌입하면서 팔레스타인 수반 선거와 총선은 무기한 연기되고 의회는 공석으로 남았다.

파타흐는 해외 원조금의 배분을 둘러싼 부패 네트워크로 악명 높고 반정부 언론과 시민단체를 억압한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 세력을 서슴없이 감금하고 고문한다. ‘프리덤하우스’ 지수에 따르면 서안지역은 23, 가자지구는 11로 모두 저점을 맴돈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76, 한국은 83이다.

◇무한갈등의 뿌리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만행을 응징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성향의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대(對)팔레스타인 입장이 강경해졌고 팔레스타인 주민의 사상자가 크게 늘었다.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과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계 거주권자의 인권 상황 역시 열악해졌다.

하지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도발한 결정적인 원인은 최근 미국의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있다. 사우디는 재정 위기와 국내 젊은 세대의 빠른 인식 변화 등에 직면해 왕실의 정권 수호 전략으로서 파격적 개혁을 시행 중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역내 정세 안정, 특히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사우디에 최대 걸림돌은 앙숙인 이란이라는 존재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의 최대 맞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기를 바탕으로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후티 반군 등 프락시 조직을 적극 후원하며 역내 헤게모니를 확보해가는 중이다.

이에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맺는 조건으로 미국의 철통 같은 방위 조약과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유화책을 요구했다. 이란 핵 도발과 친이란 프락시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는 동시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이자 수니파 대표국으로서 팔레스타인 대의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의 원인은 사우디-이스라엘-이란이라는 삼각관계 속에 내장된 갈등의 고리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끝나지 않는 분쟁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스라엘·미국을 압박하며 내세운 조건은 평화협정 준수였다. 그럼 하마스는 왜 이 시점에 맹렬한 기세로 대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했을까. 그건 사우디-이스라엘 간 데탕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자신의 최대 라이벌 파타흐가 팔레스타인 통치의 대표성과 정당성, 나아가 경제 이익까지 독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이스라엘의 빅 딜이 속도를 낸 것이 하마스를 자극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중동에 데탕트 바람이 불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하마스는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의 어떠한 협상도 전면 거부하는 하마스는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자신의 선제공격이 불러올 이스라엘의 가공할 반격을 잘 알지만, 세계의 이목을 끌어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지난해 파타흐가 15년 만에 열린 팔레스타인 총선을 독단적으로 연기했을 때도 그랬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선거 시행을 압박했음에도 승리할 자신이 없던 파타흐는 약속을 어겼다. 파타흐를 향한 비난 여론이 형성되자 하마스는 바로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감행해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의 정당성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천명하려 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안보 포퓰리즘과 불안한 리더십, 팔레스타인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의 권위주의화, 파타흐와 하마스의 부패와 대립을 지켜보는 팔레스타인 주민과 이웃 아랍 국가들, 이스라엘 내 진보 세력, 미국 민주당 정부는 점차 지쳐갔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희생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자유롭고 안전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꿈꾸는 이들의 민생은 철저히 방치됐다.

 

* 본 글은 10월 1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