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인데, 먹을 것도 많았다.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바라본 필자의 평가다. 특히 확장억제 분야가 그렇다.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 오래전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제기한 확장억제 신뢰성에 대한 물음을 지금 우리 국민이 던지고 있다. 북핵능력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할 정도로 고도화돼도 서울을 위해 미국이 과연 워싱턴의 위험을 감수할지 의구심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토식 핵 공유’를 적용한, 일명 ‘한국형 핵 공유’가 부상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는 소련의 핵 위협에 직면했던 냉전기 유럽보다 더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SCM 성과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공동 성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한이 핵 사용을 시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을 명시한 것이다. 북한이 위력이 낮은 전술핵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압도적인 동맹의 대응을 강조한 것으로, 역대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고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주목한 점은 정보 공유, 협의 절차, 공동 기획, 공동 실행 등 확장억제 전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를 더 확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단계별 협력의 명시는 위기 판단과 대응, 확장억제 수단 결정, 핵 사용 결심 과정에서 우리 발언권을 강화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이것이 바로 ‘나토식 핵 공유’에 버금가는 ‘한국형 핵 공유’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확장억제의 근본적 한계인 일방적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토식 핵 공유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 각 단계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정보 공유’ 명시는 고도의 민감한 핵 관련정보까지 공유하는 수준으로 심화시킬 가능성을 열었다. ‘협의 절차’ 명시는 북핵 위기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핵결심회의를 한다면, 우리 입장을 고려하는 절차가 제도화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공동 기획’을 통해 북핵 사용에 대비한 전략을 한미가 함께 기획해 구체적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한미는 북한 정권의 특성과 북핵 위협 등을 고려해 한반도에 최적화된 맞춤형 억제전략(TDS)을 개정하고 있다. ‘공동 실행’을 명시해 한미 간 연습을 더 진화시킬 예정이다. 한미 고위급이 북핵 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해 군사적 방안을 논의하는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 연례 개최 합의도 공동 실행의 일환이다.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빈도와 강도를 확대해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 또한 공동 실행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한미 간 협의는 확장억제가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동맹’으로서 어떠한 순간에도 작동한다는 믿음을 주고자 하는 동맹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번 SCM을 통해 한미 동맹이 나토와 달리 양자 동맹이라는 강점을 무기로 ‘나토식 핵 공유’보다 더 촘촘히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우리 영토에 전술핵만 없을 뿐이다. 전술핵 재배치의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그 이상의 효과를 구현하려는 우리 국방부의 고심이 느껴진다. 앞으로 북한이 핵 위협을 할 때 한미 동맹이 얼마나 더 한몸처럼 대응할지 기대해본다.
* 본 글은 12월 1일자 헤럴드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