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외교 행보는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나쁠 것이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배경이 논란이지만 북·중 밀월 그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응에 따라 한반도에 깔린 불확실성의 안개는 점차 걷혀갈 것이다.
북한의 의도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말하지만 그 행보는 핵 보유를 지향하고 있다.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목표로 한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다시 꺼낸 것도, 신년사에서 핵보유국의 의무 이행을 언급하며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도 마찬가지다. 최근 북·중 간 밀월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이 진행하는 비핵화 협상의 최종상태가 한·미동맹 약화라는 중국의 궁극적 전략 목표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시진핑 중국 주석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와중에도 김정은 위원장을 북경에 불러 성대한 생일상까지 챙겨주었다. ‘외교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공짜 생일상’도 없다.
지난 20여 년간 발전시켜 온 한·중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한·미동맹의 틀에 갇혀 버렸다.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다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북·중 간 밀월이 북한 비핵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경쟁의식이 존재하는 한 희망고문일 뿐이다. 동북아의 현실은 미·중경쟁의 틀 속에서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북·미 대화는 지속될 것이다. 모두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화를 이어가되 철저한 검증은 피하려 한다. 북한이 북·미 고위급 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구체적인 검증 문제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급 회담을 건너뛰고 정상회담을 통한 정치적 타결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만나서 북핵 검증 방식을 참관 수준으로 타결하려 들 것이다.
시료채취가 없는 참관만으로는 북한이 보유한 무기급 핵물질의 총량을 알 수 없다. 미국이 선뜻 동의해줄 리 없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도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화가 깨지면 준비가 부족했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비난받게 된다. 이 사정을 아는 북한은 미국을 유혹할 정치적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 핵 활동 동결과 장거리미사일 포기가 그것이다. 만일 미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북한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미국과 타협할 수 있다.
북한에 얼마만큼의 핵물질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핵시설은 폐기되고, 북한이 주장한 만큼의 핵물질이 폐기되며, 장거리 미사일도 사라질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해제되고 평화체제라는 명분으로 한·미동맹은 약화될 것이다. 하지만 얼마인지 모르는 무기급 핵물질이 탑재된 단거리 핵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채 북측 어딘가 존재할 것이다. 한국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중 간 밀월 구도를 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북한이 원하는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가 만든 방식을 북한이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받을 수 있는 한·미동맹의 미래 모습을 전제로 철저한 검증이 포함된 비핵화 방안을 만들고 북한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중국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한반도의 남측에 머물 것임을 약속하고, 북한에는 철저히 검증된 비핵화가 아니면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이냐 경제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고민하게 할 때 그나마 얼마 안 되는 북한 비핵화의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다.
* 본 글은 1월 10일자 세계일보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