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한미 FTA 비판과 이에 대한 반박
2016년 6월 28일 미국 대선에 출마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있었던 한 연설에서 네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현재 미국 무역정책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네 가지 사례는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중국의 WTO 가입, 한미 FTA 체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추진이다. 특히 트럼프는 한미 FTA로 인해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가 두 배가 되었으며, 약 10만개의 미국 내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한미 FTA 비판이 정치적인 연설 과정에서 나온 언급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2016년 6월 29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사견임을 전제로 한미 FTA가 발효되기 전인 2011년보다 2015년 현재 미국의 대한국 자동차 수출이 3배 이상 늘었다는 예 등을 열거하며 한미 FTA가 반드시 한국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FTA는 왜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는가?
그런데 트럼프만 한미 FTA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 들어서만도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은 주미 한국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의 한미 FTA 이행 미흡을 지적했으며, 주한 미국대사도 한미 FTA 이행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면 왜 한미 FTA는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한미 FTA를 포함하여 트럼프가 미국 무역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들었던 네 가지 사례는 모두 클린턴 부부와 관련이 있다. NAFTA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1994년 1월 1일 발효되었으며, 2001년 12월 11일 WTO에 가입한 중국의 WTO 가입 협상은 주로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전개되었다. 한미 FTA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이던 2012년 3월 15일 발효되었으며, TPP에 대한 협상은 주로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일 때 있었다. 즉,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클린턴 부부와 관계가 있는 미국의 무역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네 가지 사례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둘째, 주한 미국대사를 포함하여 민주당 인사들도 한미 FTA 이행 미흡에 다소간 동의하고 있는 이유는 한미 FTA가 미국이 체결한 여러 FTA 중 NAFTA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FTA이며,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한국 상품수지 적자가 2015년 최고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상품무역 기준으로 미국의 10대 교역국 중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국가는 NAFTA 당사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한미 FTA의 당사국인 한국 3개국 뿐이다. NAFTA와 한미 FTA는 미국이 체결한 대표적인 두 개의 FTA인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미국이 체결한 많은 FTA 중 하나 정도로만 치부될 정도로 영향력이 없는 FTA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 무역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논의의 시작이자 언제든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수지 문제와 관련시켜 보면 NA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1993년 미국은 캐나다에 대하여 약 107억 7천만 달러의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소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2005년에는 약 784억 8천만 달러의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하기도 하였고, 1993년 미국은 멕시코에 대하여 약 16억 6천만 달러의 상품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던 반면, 2015년에는 약 606억 6천만 달러의 상품수지 적자를 냈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 대하여 2000년대 중반 평균적으로 약 130억 달러 정도 수준의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2015년에는 역사상 최고인 약 283억 1천만 달러의 상품수지 적자를 내고야 말았다. 즉, 미국은 NAFTA와 한미 FTA로 인해 실제로 상당한 상품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 부각을 위한 노력?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몇몇 예를 들며 한미 FTA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반론이 한국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6년 6월 3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가 발표한 ‘Economic Impact of Trade Agreements Implemented Under Trade Authorities Procedures’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한미 FTA 성공 사례의 하나로 미국 오리건주의 대한국 블루베리(크랜베리 포함) 수출이 한미 FTA 발효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60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미국 자신도 자국이 이익을 얻고 있는 산업에 관한 한 한미 FTA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미 FTA 발효 이후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갔다거나 미국 블루베리의 대한국 수출이 급격히 늘었다는 등 한미 FTA가 가져온 여러가지 긍정적 사례는 계속 발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주한 미국대사가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한국의 관련 법령이 자동차 좌석 규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수입차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거나 (미국 상원 재무위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 정부가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등 사소하거나 비합리적인 주장을 그치지 않고 있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미국에도 자동차 좌석 규격에 관한 규제가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자동차 좌석 규격 제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각 자동차회사는 일정 수량의 자동차를 관련 한국 법령에 관계없이 한국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어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미국의 근거 없는 몇몇 단편적인 주장에 의해 상쇄될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와 관련하여 미국의 근거 없는 단편적인 주장 하나하나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고 적절한 대답을 하고자 하는 것은 노력에 비해 성과는 별로 없는 지루한 일이다.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본질적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한미 FTA는 미국이 체결한 대표적인 양대 FTA 중 하나이자 한미 FTA 발효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200억 달러 이상의 상품수지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 비판에 대한 의연한 대응
미국 정계 또는 산업계 등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 FTA가 미국이 체결한 대표적인 두 개의 FTA 중 하나인 이상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에 대한 재검토 요구 또는 비판 시 NAFTA와 한미 FTA는 언급될 수밖에 없다. 즉,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은 한국의 한미 FTA 이행 태도나 한미관계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미국의 무역정책에 대한 재검토 요구 또는 비판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이 공화당 인사로부터 들려올 때는 그 비판이 힐러리 클린턴을 향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민주당 인사를 포함한 정계 또는 산업계로부터 나올 때는 그 이면에 미국의 전반적인 무역정책에 대한 불만이 잠재되어 있다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으로 체결되어 이행 중인) 한미 FTA에 대한 비판을 맞이하는 객관적이고도 냉철한 자세인 것이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