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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워싱턴을 방문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간 7번째인 이번 만남은 2월 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어 비핵화 외교가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열렸다. 북핵문제 해법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회담의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결과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미흡했다고 평가된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한국 정부는 영변 핵폐기에 국한된 북한의 입장이나 ‘先WMD 및 미사일 폐기, 後제재 해제’라는 미국의 ‘빅딜’(Big Deal) 모두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고,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북한의 단계적인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서 일정부분 제재를 완화하는 절충안으로, 먼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입장변화를 모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북한의 양보를 유도한다는 복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른 합의를 해야 한다면서 빅딜 원칙을 고수했다. 김정은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일방적인 요구를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가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고 촉구했다. 한국이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살펴보고 향후 북핵문제의 전개방향을 전망하고자 한다.

 

1. 정상회담 평가

정부는 정상회담 일주일 전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워싱턴에 보내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김현종 차장은 미국측 파트너인 쿠퍼맨 美 NSC 부보좌관의 대화가 아주 잘 되었다면서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전망했다. 한미간 이견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최종 목적지나 로드맵에 대해서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결과는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에 부합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 만나기에 앞서 펜스 부통령, 폼페오 국무장관,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을 별도로 만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이들을 별도로 만나야 할 정도로 사전조율이 잘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할 이들을 별도로 만나기보다 트럼프와의 회동시간을 더 늘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양국 정상의 공동기자회견도 없이 회담이 마무리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문제의 역사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의 핵보유 의사가 사실상 확인된 가운데 앞으로 북핵폐기에 성공하던 실패하던 지난 30년 한미 양국을 괴롭혀 온 북핵문제에 대해 양국의 장기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더 많은 시간, 더 치열하게 토의하고 숙의했어야 했다. 최소한 공동발표문이라도 나왔어야 했지만 양측이 각자의 입장을 별도로 내놓은 것도 아쉽다.

 

2. 해소되지 않은 근본문제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한미가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다르다는 근본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인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로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한다는 문제를 간과했다. 판문점선언 이후의 협상에서 북한의 행태는 북한식 비핵화의 실체를 잘 보여주었고, 급기야 금년 1월 9일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국회 남북경협특위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우리의 비핵화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비핵화 정의를 둘러싼 혼선이 파장을 몰고 오자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상태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로드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미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누차 밝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상태, 그 비핵화의 목표에 대해 완벽하게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종적인 상태’나 ‘비핵화의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것이 대단히 아쉽다. 그동안 비핵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혼란을 감안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최종상태’에 대해 한미가 구체적으로 합의하고 그 내용의 일부라도 공개했어야 했다.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제시했다는 비핵화의 내용을 한미가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문제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그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정상회담 며칠 전에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더 강력한 제재와 협박 만으로 북한이 갑자기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환상”이라며 미국의 빅딜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굿 이너프 딜’로 상징되는 한국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부 고위당국자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간의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북핵해법을 둘러싼 한미간의 차이는 접근방식의 이견이라기보다는 최종목적지를 얼마나 중시하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정의, 즉 비핵화 프로세스의 최종목적지이자 출구를 명확히 제시했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혔던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미국처럼 비핵화 프로세스의 출구를 명확히 설정했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는 핵포기라고 발언한 것 외에 정부가 비핵화 열차의 종착역에 대해서 미국처럼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알린 적이 없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 국민이 2/3에 달하는 애매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김정은을 만난 두 정상이 북한의 핵포기 의지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 문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소되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의 핵포기 의지를 믿는다고 했지만 하노이 정상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을 보유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런 판단을 둘러싼 문제들이 명확하게 정리되었는지도 불확실하다.

 

3. 북핵문제 전망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입장변화를 전제로 트럼프와 만날 용의를 표명하면서 금년 말을 시한으로 제시했다. 내년 초 대선레이스가 시작되는 미국의 정치일정과 새해 시정방침을 밝혀야 하는 북한의 일정을 고려해서 트럼프 1기 행정부와의 협상 시한을 금년 말로 잡은 것 같다.

김정은이 협상기한으로 삼은 올해 핵실험 등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도발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까지 트럼프의 입장변화 가능성을 지켜보다가 대선으로 북핵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내년 적절한 시점에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다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긴장을 조성하고 협상국면을 주도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도발이다. 북한이 제재의 고통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만, 현 상황이 북한에게 최악은 아니다. 물론 미국이 북핵을 인정하고 제재도 해제하는 최선의 상황보다는 못하지만 추가 경제제재는 물론 군사적 수단도 동원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추가 도발이 없는 것에 만족하면서 현재 수준의 제재를 유지해서 빅딜을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지 않는 한 미국이 압박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없으므로 금년 말까지 북핵문제는 교착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폼페오 국무장관이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재해제와 관련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고 발언한 것은 미국이 북한을 유인하기 위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폼페오가 상원청문회 전날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나 논의한 대북 영양지원이 하나의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재해제에 목이 말라 회담에 집착하지는 않겠다는 김정은이 미국이 약간의 여지를 둔다고 빅딜을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문제는 2020년 초부터 한반도에서 전개될 상황이다. 김정은이 인내심이 다했다며 새로운 도발을 위협하거나 실제로 감행할 경우 트럼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도발한다고 빅딜을 철회하고 북한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을 비난하고 한국의 잘못을 탓하며 더 강하게 북한을 옥죄는 강수를 둘 것이 확실하다. 2018년 초 한창 논의되었던 군사공격 옵션도 다시 부상할 것이다. 불량국가 북한의 위협에 강력하게 맞서 미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이 대선에서 표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본 글은 「자유마당」 5월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