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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지역’이라는 단위는 이제 한국을 포함한 지역적 단위를 이르는 말로 정착이 된 듯하다. 인태 지역은 해양에 의해 연결되고 해양이 주된 무대가 되는 ‘해정학(海政學)’의 시대를 예고한다. 인태 지역에 있는 국가들도 해양에 초점을 두고 인태 전략을 전개한다. 한국의 대외정책도 이런 추세를 따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늘어난 역량과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기대, 해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태 지역의 전략환경을 종합하면 한국의 인태 지역에 대한 전략은 해양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 해군이 인태 지역 해양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인태 지역 전략에서 해군과 해양경찰이 할 수 있는 단기적, 그리고 중장기적 역할을 제안한다. 한국의 인태 지역 전략 맥락에서 해양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역할을 확대해야 하는 지리적 단위를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부로 설정한다. 한국 해군과 해경은 단기적이고 낮은 수준에서 동남아 국가의 해군 및 해경 능력 배양의 지원, 해양상황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 능력 확대에의 동참, 해양법 집행 능력 강화와 군사 공공외교 확대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더 장기적으로 한국 주도의 합동훈련, 함정 수리 및 지원 시설 확보를 통해 동남아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필요성과 수요의 제기라는 차원에서 한국 인태 지역 전략에서 해군과 해경의 역할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일반 대중의 인식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

 

인태 지역의 해양지향성 – 해정학(海政學)의 시대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 단위는 명확하게 해양을 중심에 놓고 펼쳐진다. 따라서 전략적, 군사적 측면에서 해군의 역할이 다른 어떤 지역 단위보다 중요하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태평양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합성이다. 이런 해양을 연결하는 지역 단위의 이름은 과거 지역 단위의 이름과 차별성을 가진다. 한국을 포함한 지역적 단위는 과거 아시아-태평양, 동아시아 등이었다. 아시아-태평양은 태평양 연안국가와 아시아 국가를 지역적 단위로 한다. 태평양은 해양 단위로 볼 수 있으나 아시아는 대륙의 이름이다. 1997-98년 아시아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부상했던 동아시아(East Asia)라는 개념은 동북아와 동남아를 포함한 개념으로 아시아 대륙을 중심에 놓고 육지를 연결하고 거기에 해양이 부수적으로 따라 붙은 개념이다. 반면 인도-태평양은 두 해양의 연결성을 먼저 고려하고 영토 혹은 육지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대륙은 이 해양에 딸린 개념으로 상정된다.

인태 지역과 전략이란 개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4자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에 포함된 국가들은 자신의 인태 전략에서 해양부문에 대한 특별한 강조를 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펴낸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우리의 태평양 해안으로부터 인도양까지 펼쳐진 [인태] 지역은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곳이고, 세계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지역이며, 세계 7대 군사대국이 위치한 지역이다”라고 해양을 중심으로 인태 지역을 규정하고 있다.2

인태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은 더 직접적으로 해양에 관심을 둔다. 아베 신조(Abe Shinzo) 전 총리는 2007년 인도 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과거 무굴 왕국의 왕자 다라 시코(Dara Shikoh)가 쓴 책 제목을 인용해 “우리는 이제 두 해양의 합류가 현실이 되는 시점에 와 있다”라고 하며 “태평양과 인도양은 자유와 번영의 두 해양이라는 역동적 한 쌍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말로 인도양과 태평양의 연계를 주장했다.3

호주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을 가진 국가다. 사실상 호주의 인태전략서인 2017년 호주대외정책백서(Foreign Policy White Paper 2017)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인도 동쪽 해안으로부터 시작해 태평양을 포괄하며 인도를 포함한 동남아, 북아시아(North Asia)와 미국으로 연결된 지역”으로 정의한다.4 역시 인도양과 태평양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인태 지역을 정의하며 대륙, 육지는 이 해양을 연결하는 점으로 상정된다.

또 다른 쿼드 국가인 인도의 인태 전략은 2018년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의 연설에 나타난다. 여기서 제시된 인태 전략을 규정하는 9개 요소 중 4개, 즉 ‘항행의 자유, 지속가능한 해양자원개발, 해양안전과 안보, 그리고 지역 범위인 아프리카 해안으로부터 북미/중미/남미 해안’ 항목이 해양과 관련된다.5 여기에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개방되고 안정적 국제무역체제, 연결성 증진’까지 포함하면 총 6개 항목이 직간접적으로 해양과 관련된다.

다소 뒤늦게 인도-태평양 전략을 마련한 주요 국가, 지역도 해양중심성을 견지한다. 아세안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은 아세안이 인태 지역을 “아시아-태평양과 인도양 지역”으로 규정하고 “해양영역과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세안이 제시한 네 개의 협력 아젠다에서도 해양협력은 가장 앞서 배치되어 있다.6 구체적으로 아세안은 해양 문제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로부터 항행의 자유, 해상안보 및 안전, 해양을 통한 인신매매, 마약 밀매 문제, 해적, 테러리즘 등 안보 이슈로부터 해양 경제, 기후변화 문제, 그리고 해양 생태계와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는 환경 문제까지 광범위한 이슈를 해양협력에 포함한다.

유럽연합 역시 인태 지역을 “아프리카 동해안으로부터 태평양 도서부”까지 펼쳐지는 지역으로 규정한다. EU는 인태 지역에서 협력의 7개 분야를 명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해양 질서와 해양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해양 거버넌스다. 뿐만 아니라 인태 지역 안보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해군의 활동(naval presence)과 해양 안보 능력 배양을 제시하고 있다.7 독자적 인태 전략을 가장 늦게 발표한 한국 역시 “인태 지역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 해상물류 통로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태 지역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포괄적 안보협력 항목에 해양안보협력, 지역 해양질서, 해양에서 다자훈련, 지역 국가들의 해양능력배양 등 다양한 해양협력을 상정하고 있다.8

인태 지역이란 개념이 등장하면서 육지를 중심으로 했던 생각의 방식이 해양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요 국가의 인태 전략, 인태 지역에 관한 생각 역시 해양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인태 지역에서 행위자는 육지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이 행위자들이 만나고 교류하고 충돌하는 장은 해양이다. 중요한 신안보 협력인 초국가적 문제, 재해재난, 기후변화, 환경은 물론이고 경제 성장에 관한 문제까지 해양을 포괄한다. 인태 지역에서의 지정학은 이러한 점에서 해정학(海政學)에 가깝고, 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도-태평양 해정학(海政學)에서 한국 해군과 해양경찰의 역할

 
왜 해군과 해양경찰인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 상황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해군과 해경이 앞장서야 한다. 한국이 지역의 안보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의 전략적 존재감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다. 지역의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관심의 표명과 입장의 발표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9 물론 한국이 지역 안보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 특정한 국가의 편을 들어 다른 국가를 적대시하는 정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의 행동은, 특히 군이 관련된 행동은 명확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지역에서 한국의 전통 및 비전통 안보 관련 협력, 국방 및 군사 협력은 명확하게 지역의 평화를 위한 행동으로 정의되어야 하고 그에 맞게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실질적 행동을 실천하기 위해 한국이 인태 지역에서 안보와 국방, 군사협력을 강화한다고 할 때 비록 평화를 명분으로 하더라도 전략적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지역 내 첨예한 상황에서 한국 군의 지역적 역할 확장은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이 추구하는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이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의 일환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고, 주변국가들의 경계를 촉발할 수 있다. 한국이 협력하고자 하는 파트너 국가에도 이런 관심은 민감한 사안일 수 있다.

해군과 해경 역시 이런 관심과 오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민감성은 덜할 수 있다. 국가 영토를 방어하는 지상군이 외부로 나가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다. 반면 해군의 성격상 바다를 항행하며 다른 국가에 기항하는 일은 자주 있다. 해경도 다양한 해상 재난, 해상 안전 등 다양한 기후변화, 재난, 인간안보에 관한 함의를 가지는 분야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인태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해군을 동원한 훈련, 협력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다. 지역 비전통 안보 문제에 해군, 해경이 동원되는 경우도 흔하다.10 따라서 한국이 인태 지역에서 전략적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첫 번째 단추로 해군과 해경 차원의 역할, 지역 국가 해군, 해경과 보다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국가의 군사적 필요성, 특히 타국의 해군과 관련된 협력은 당연히 해군이 담당해야 한다. 비전통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도 해양에서 더 큰 규모의 합동훈련이 필요한 경우 해군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군사 공공외교 해군의 영역이다. 반면 해양에서 법 집행과 관련된 사항은 국내에서 이를 담당하는 해경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해상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 마약 밀매 등 초국가적인 범죄 방지 및 단속에 관한 능력 배양, 훈련, 해상오염 방제, 해양 환경 관련 협력도 해경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해경이 없는 국가에서 관련 조직을 새로 만드는 협력도 해경이 해야 할 분야다. 한편 해양감시와 관련된 협력은 해군과 해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분야로 볼 수 있다.

 
어느 지역과 국가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인태 지역에서 해군과 해경의 보다 확대된 역할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활동을 확대해야 하는 지역적 범위를 설정할 필요성이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제한된 자원과 재원을 가지고 인태 지역 전체를 한꺼번에 포괄하는 계획의 수행과 실행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인태 지역에서 한국 해군과 해경의 역할이 아직 크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역, 가장 긴급한 지역에서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활동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이 인태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는 지역 범주 중에서 아세안 지역이 첫 번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세안 지역은 한국과 정치, 안보,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태 지역의 하위 단위 중 하나다. 기존의 밀접한 협력 관계로 인해 한국 해군, 해경이 협력을 전개할 때 정치적 민감성도 덜하다. 무엇보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한국은 위협적이지 않은 협력 대상이다. 전략 경쟁을 하는 미국, 중국 혹은 큰 지역 전략을 가진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아세안에게 숨은 의도(hidden agenda)가 없는 국가로 인식된다.11 나아가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까지 성장한 한국의 경험은 동남아 개발도상국에게는 자신들의 발전 모델로도 인식된다.12 마침 4월 말 발표된 한국의 새로운 동남아 정책인 한-아세안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도 아세안과 포괄적 안보협력의 첫 항목으로 해양협력을 꼽고 있다.13

또한 아직은 한국이 아주 높은 수준의 해군, 해경 차원의 관여를 할 것은 아니고 낮은 단위로부터 단계적으로 활동을 확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낮은 수준의 능력 배양 등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개발도상국을 우선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맞고 아세안은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아세안 10개국 중에서 5개 국가가 해양부 동남아(maritime Southeast Asia)로 분류되며 이들 국가는 해양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더욱이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나 아세안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관점(AOIP)은 모두 해양 이슈를 협력의 핵심으로 분류하고 있다.14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평화롭고 안전하며 안정된 지역을 구상하는데, 그 구체 내용은 초국가적 이슈 협력, 국방협력, 비핵화 협력, 그리고 해양협력을 담고 있다. 특히 초국가적 이슈 협력은 소형무기, 인신매매, 마약 밀매, 테러리즘, 국경, 이민과 난민 이슈를 다루는데 동남아의 특성상 이 이슈들은 대부분 해양 문제와 연관된다.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쉬운 협력
 
한국이 아세안 지역 해양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낮은 수준의 협력과 더 높은 수준의 협력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낮은 수준의 협력은 어렵지 않게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협력으로 동남아 국가의 해군, 해경 능력 배양, 해양상황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 그리고 해양법 집행, 군사 공공외교 등을 꼽아볼 수 있다.

동남아에서 해군 및 해경의 능력 배양 협력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하고 있는 협력이지만 한국의 지역적 책임과 공헌을 감안하면 더욱 확대할 여지가 있다. 한국 해군은 이미 일부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잠수함 승조원 능력 배양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 바 있다.15 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에 노후 물자 공여, 특히 함정 공여를 실행해왔고 이는 동남아 국가의 한국산 함정 구입이라는 방산 수출 실적으로 한국에 되돌아왔다.16 대부분 동남아 국가의 해군은 능력과 장비 측면에서 자국의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해군 능력을 가지고 있다.17 따라서 기본적인 해군 능력과 해군 관련 장비의 운용 능력 향상, 지속적인 물자의 지원, 해군 장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으로도 많은 지원이 가능하다. 동남아 해군과 해경에 대한 능력 배양 프로그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해군, 해경과 동남아 국가의 해군, 해경 사이 상호운용성을 높여 향후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한국의 동남아 지역 해군 작전을 원활하게 하는 기초를 놓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역량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협력 사안으로 MDA 관련 협력을 꼽을 수 있다. MDA는 “해양영역에서 안보, 안전, 경제, 해양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에 관한 인식”으로 정의되며 주로 레이더, 선박, 항공기, 위성 등을 통해 해양영역 즉, 해저 지면으로부터 해수면 아래, 해상, 그 위의 우주까지 포함하는 해상상공, 그리고 해상과 인접한 육지의 상황을 파악하고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18 현재 한-아세안 간 MDA 협력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명시적으로 MDA 협력이라는 이름을 달기보다는 간접적으로 국방능력 배양(노후 함정 인도, 국방과학 기술 협력) 혹은 다자 해양 합동훈련 참여 등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 소재 정보융합센터(Information Fusion Centre)에 해군 장교를 파견하고 있다.

MDA 관련 협력은 인태 지역 해양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분야로 한국도 더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자국의 해양상황인식을 위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역량과 장비의 운영 역량에 관해 한국이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도서부 동남아의 해양상황에 대한 정보는 주로 육지에 기반해 수집되는데, 여기서 얻어진 정보와 한국의 위성을 활용해 수집한 동북아 지역 해양 상황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협력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한국은 우리가 직접 관찰하지 못하는 동남아 해양 상황에 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MDA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동남아 지역 해양 상황에 관한 인식을 높이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위치한 정보융합센터(Information Fusion Centre), 아시아지역 해적퇴치협정(Regional Cooperation Agreement on Combating Piracy and Armed Robbery against Ships in Asia, ReCAAP) 정보공유센터에 한국 해군 연락장교를 더 많이 파견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

세 번째로 다양한 비전통, 초국가적 문제에 관한 법 집행 관련 역량 강화에 있어서는 해군보다 해경이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세안에서 관심이 있는 비전통, 초국가적 문제는 다양하다. 해양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소형무기 밀매, 인신매매, 불법 마약 및 야생동식물 밀매부터 불법어업, 해양 국경을 포함한 국경 관리까지 다양하다. 이런 법 집행 관련 분야에서는 정치, 군사적으로 민감한 해군의 움직임보다는 실제 이 부분을 국내에서도 담당하는 해경이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 해경이 축적된 노하우를 가지고 동남아 개발도상국의 초국가적 문제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고 한국과 동남아 국가 사이의 협력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 사이 다국적 협력을 촉진시키는 공헌이 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해경은 한국 내에서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동남아 지역의 해상오염 방제에 직접 도움을 준 바도 있다.19 구조 구난, 해상오염 방제, 해상재난 등의 분야에서 해경이 동남아 지역 해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크다.

군사 공공외교 역시 해군과 해경이 동남아 방면에 할 수 있는 협력이다. 이미 해군은 해군사관학교 학생의 항해훈련과 순항훈련을 통해 일정한 군사 공공외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주,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지역을 순회 방문하며 기항하는 국가에서 현지 해군과 교류, 한국 교민 초청, 현지 대민지원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20 현재 수행하는 이런 군사 공공외교의 노력을 지속, 확대하는 것도 한국의 지역 국가 및 해양 이슈에 대한 공헌이며 향후 한국이 지역 해양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군사 공공외교 노력을 확대하면서 한국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역 국가 그리고 주변국에 각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장기적 준비를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협력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해군과 해경이 동남아 국가들과 할 수 있는 협력은 한국 주도 합동훈련, 그리고 장기적으로 동남아 지역 해군 기지 접근 확보 등이 있다. 한국 해군과 해병은 현재 미국 주도의 림팩(Rim of the Pacific Exercise, RIMPAC), 코브라 골드(Cobra Gold) 등 연합훈련에서 동남아 국가 군과 만나고 있다. 동남아 지역 해양에서 한국이 역할을 확대하고 동남아 국가들의 능력 배양을 위해 한국 주도의 해군 혹은 해경 합동훈련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한국은 동남아 국가로부터 숨은 의도가 없고 위협적이지 않은 신뢰할 만한 국가로 평가받는다.21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미국처럼 큰 국가도 아니다. 한국 주도의 군 합동훈련은 인태 지역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중견국 간 합동 군사훈련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운 시도이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훈련의 주제도 수색, 구조, 해적 퇴치, 테러리즘 등 비전통 안보로 국한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양 동남아 국가 중 싱가포르는 한국 해군과 합동훈련을 할 만한 해군 역량이 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3국은 필리핀 술루해(Sulu Sea) 주변을 합동 순찰하는 3국협력협정(Trilateral Cooperative Arrangement, TCA)을 가지고 있다.22 한국이 이 3국협력협정에 협력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근 해역에서 합동훈련으로 확대 시키는 방법을 모색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동남아 개발도상국 해군은 보다 향상된 작전 수행 능력을 습득할 수 있어 능력 배양 차원에서도 기여를 할 수 있다. 또 보다 나은 해군력을 가진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한국 해군과 상호운용성 강화라는 성과도 거둘 수 있다. 물론 이는 한국 해군의 입장에서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평화적 의미에서 동남아 지역에 힘을 투사(projection)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합동훈련에서 소개된 한국 함정과 장비는 동남아 국가들의 향후 방산 구매리스트에도 올라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협력들이 축적되고 누적되면 한국의 동남아 해군 기지 혹은 지원시설에 대한 원활한 접근 확보도 가능할 수 있다.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해양에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 해역에 한국 해군 함정 배치와 방문, 해경 배치가 필요하다. 한국 해군력의 동남아, 인태 지역 투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힘의 투사는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의 군사력 투사와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군사적이고 전략적 목적의 해군력 투사가 아닌 지역 국가들의 능력을 배양하고, 군사적 갈등 상황이 아닌 비전통 안보 목적의 협력을 촉진하며, 지역의 평화에 일조하고, 한국에 기대되는 지역적 역할을 하기 위한 해군력의 투사로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지금도 한국 해군, 해경의 함정이 동남아 국가에 기항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절차도 그리 복잡한 편은 아니다.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이며 한국 함정의 기항이 동남아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함정이 좀 더 원활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한국 해양력이 동남아 지역 국가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해 함정의 정비와 수리를 위한 시설, 보급을 위한 시설을 동남아 지역 국가들에 두면 좋을 것이다. 이런 시설들은 한국 함정에 대한 정비와 수리뿐만 아니라 시설을 유치하는 동남아 국가의 함정에 대한 지원도 같이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동남아 국가 해양력 증진에 대한 한국의 지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호혜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인태 지역(특히 아세안 국가)의 주요 해양기지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력국가들 역시 우리의 항만이나 기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지역 국가들의 경계심을 약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전략경쟁과 협력이 모두 해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은 지정학에서 더 좁혀 해정학을 논의해야 하는 지역이 되었다. 해양을 놓고 벌이는 각 국가의 경쟁과 협력 속에 한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 전반적 국력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지역에 대한 공헌과 지역에서 가지는 전략적 무게감은 충분하지 못하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해군과 해경의 확대된 역할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역 내에서 한국이 운신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도 인태 지역 해양 문제, 해양협력에 해군과 해양 경찰의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관건은 한국의 해군과 해경이 이런 더 크고 넓은 범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소프트 파워 즉, 능력, 기술, 노하우 측면에서는 한국 해군과 해경은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 다만 군은 한반도 상황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반도를 넘어선 역할에 대해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제약은 군 스스로 역할을 어디까지 규정하는가라는 심리적 제약과 더불어 물적, 인적 제약도 포함한다. 전자의 경우 해군이나 해경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한반도 방위와 한반도 주변 해역 감시 및 해양주권 보호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지역 해양에서 한국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물적, 인적 자원의 제약을 넘어서야 한다. 더 많은 인원, 더 많은 함정과 예산이 필요하다. 국가 혹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이런 역할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인식이 있다면 예산과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이 인태 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 한국에 기대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한두 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원을 배분해야 향후 그 누적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