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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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한국은 적인가(韓国は『敵』なのか)’.1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9년. 일본에서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한 일본 지식인 78명이 ‘한국은 적인가(韓国は『敵』なのか)’라는 이름의 성명을 내고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2019.7.25). 그리고 성명을 낸 지 한달여 만에 약 1만 명(8.15기준 8,404명, 8.31 기준 9,463명)의 일본인들이 서명에 동참하며 한일 간의 화해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 이후 정부 간 갈등이 심화되고, 한국에서 ‘No Japan’, ‘No Abe’를 외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관광 보이콧이 일어나는 등 일본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에 일본에서 일었던 작은 화해의 움직임이었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도 한국을 적대시하고, 양국을 대립과 반목에 이르게 하는 일본 정부의 대항조치에 반성을 촉구하고, 한일 갈등이 심화되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다만, 일본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극히 소수이고,2 대다수는 한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지지한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국 또한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의견이 더 많다는 의미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반일시위와 불매운동은 한국의 강경 여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3

그리고 2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일관계는 강제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 단기간 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의 원칙과 입장, 그리고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정부의 입지는 좁아지고, 한일관계는 정치화되며, 관계 개선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1998년 불과 20여 년 전 우호와 친선의 의미를 다지며 새로운 한일관계를 약속했던 양 정상의 선언, 즉,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4, 그리고 코로나19로 정체되기는 하였지만, 양국 교류 천만시대를5 맞이할 만큼 발전한 양국관계가 무색하게 갈등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K-POP과 드라마, 음식 등 한국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냉정한 일본. 그리고 일본음식과 일본여행을 즐기면서도 일본과의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한국.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죄는 이미 충분히 했다는 일본.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일본의 사죄에도 진정성이 없다는 한국. 이처럼 좁혀지지 않는 양국의 인식과 입장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양국의 인식 차이는 일시적인 것인가 혹은 고착된 것인가. 긴 시간 동안 양국 여론은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고,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우호와 협력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본 연구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혹은 한일공동으로 시행된 여론조사 중 비교적 장기간 동일한 조건으로 시행된 여론조사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상호인식을 분석하여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여 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한국갤럽> 여론조사(1991-2019), <통일연구원>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의 ‘통일의식조사(2007-현재)’,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 <내각부>의 ‘외교에 관한 조사(1978-현재)’를 중심으로,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시행한 <한국일보-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의 ‘한일공동여론조사(1995-현재)’6, <동아시아연구원(EAI, East Asia Institute)-言論NPO>의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2013-현재)’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한일 갈등에 대한 양국 시민인식 조사(2020)’ 등의 자료 등을 활용하였다.

주지하듯이, 일부의 여론조사가 국민여론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한다고 하더라도 한 조사의 대상이 되는 표본 수는 1,000~2,000명 수준이며, 문항의 설계, 조사 목적 및 시점, 방법 등 다양한 변수들이 응답자의 답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에 대한 분석은 정확히는 해당 조사에 대한 데이터가 나타내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더욱이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양국의 인식과 여론의 변화를 파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여론조사의 한계와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그리고 지표만으로는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고려할 때, 서로에 대한 인식을 한마디로 규명하는 것 또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론조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전반적인 경향, 분위기, 인식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도 이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론조사가 국민 모두의 인식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국민 대다수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일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과 위치, 한일관계에 대한 평가를 살펴봄으로써 양국 인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목차

 
1. 들어가며

2. 한국의 인식: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2.1 (인식①) 한국의 대일 인식: ‘긍정’보다 높은 ‘부정’ 인식
   2.2 (인식②) 주변국과의 비교: 호감도와 거리감
   2.3 (정치·사회) 한국의 눈에 비친 ‘군국주의’ 국가, ‘경계’ 혹은 ‘경쟁’ 상대로서의 일본
   2.4 (경제) 한국에게 여전히 중요한 일본
   2.5 (문화) 한국 사회의 일본문화에 대한 낮은 관심: 한일 문화 교류의 비대칭성
   2.6 요약 및 분석: 반감(反感)에도 중요한 일본,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양가성(兩價性)
 
3. 일본의 인식: 한국은 일본에게 무엇인가
   3.1 (인식①) 일본의 대한국 인식: 부정 → 긍정 → 부정
   3.2 (인식②) 주변국과의 비교: 친근감, 관계 평가, 중요성
   3.3 (정치·사회) 일본의 눈에 비친 ‘민족주의’ 국가 한국
   3.4 (경제) 중요성이 낮아지는 한국
   3.5 (문화) 일본 사회에 스며든 한국문화: 한국 ‘콘텐츠’에 대한 높은 호감도
   3.6 요약 및 분석: 반복되는 관계의 부침(浮沈) 속 한국에 대한 중요성 인식 저하

4. 한일관계: 갈등과 협력의 이중구도
   4.1 갈등 구도: 과거사 문제의 해결 –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4.2 협력 구도: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 – 북한 문제와 중국 문제
   4.3 향후 전망

5. 나오며: 정책적 고려사항

부록 1. 주요 여론조사 개요
부록 2.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정상 연표(1965-2021.12)
부록 3. 한일관계 주요 정치·외교 사안(2017.05-2021.12)

 

본 보고서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韓国は敵じゃない. https://peace3appeal.jimdofree.com/; [연합뉴스] “‘한국이 적인가’ 외친 日 시민들…서명운동 참가자 9천명 넘어” https://www.yna.co.kr/view/AKR20190827088000073 (검색일: 2021.5.20).
  • 2. 일본에는 세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리버럴의 시각으로,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를 극복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자는 견해이다. 두 번째는, 아사히신문과 같은 중도 리버럴의 시각으로, 한일이 서로 양보해 역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북한 및 중국에 대비하기 위해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민당을 지지하는 보수 주류의 견해로 역사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양보가 불가능하며, 한일관계가 중요하나 지나치게 목맬 필요가 없고, 사태 악화만을 막자는 것이다. 이 중 첫 번째 시선에 동의할 수 있는 일본인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 길윤형. 2021. 「신냉전 한일전」. 생각의 힘. pp.353-356.
  • 3. 한국리서치가 2019년 8월과 2020년에 8월에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참여하고 있다’가 2019년 83%, 2020년 72%로 나타났다. – [한국리서치] “[기획] 일본 제품 불매운동 1년, 현재상황과 앞으로의 전개 방향은?” (2020.8.12) https://hrcopinion.co.kr/archives/16215 (검색일: 2021.5.10).
  • 4.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전문)” (1998.10.12)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746505.
  • 5.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한일 관광교류 천만 명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을 내딛다” (2016.12.7)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6171959.
  • 6. 「동아일보-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실시해 온 공동여론조사는 1984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비교가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일보-요미우리신문」 자료를 주된 자료로 삼았다. 「동아일보-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가장 최근 실시된 공동조사는 2015년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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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