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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연습”이라 부르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언 직후 한국 정부는 “정확한 의도 파악이 필요하다”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합훈련 중단은 한국 정부는 물론 미 국방장관과도 사전 상의가 없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발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예측성은 이미 잘 알려졌으나 돌발 행위를 직접 경험한 한국 정부는 당황했다. 일부에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한국이 당사자임에도 북·미 간 협의가 진행되는 바람에 협상 당시 옆방에서 대기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귀동냥으로 상황 파악을 하던 처지가 소환된 것이다. 제네바 합의 결과로 한국은 경수로 건설 비용의 70%를 떠안았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미국과의 확실한 협력 기제가 필요했다.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이행도 고려됐다. 그 결과 11월 20일 한·미워킹그룹이 출범했다. 당시 청와대는 한·미워킹그룹 의제로 한·미 간 외교 공조, 비핵화 노력, 대북 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협력 등 총 4가지를 제시했다.

한·미워킹그룹은 그간 북한 비핵화 로드맵 구축 과정에서 한·미 간 최대치의 협력을 도출했다. 2019년 1월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미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포괄적 비핵화, 단계적 이행’ 방식의 비핵화 로드맵은 워킹그룹에서 숙의를 거친 한·미 합작품으로 알려졌다. 2018년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회담에 미국이 준비해 간 안도 한국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국내 일부에서는 워킹그룹 해체를 주장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달 17일 담화에서 밝힌 ‘상전(미국)이 강박하는 한·미실무그룹’이 남북 관계를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국내 일부에서도 수용하는 모양새이나 이는 사실의 심각한 왜곡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워킹그룹으로 남북협력 사안에 반대한 적은 없었다”고 밝힌다. 워킹그룹에서 최종 제재 면제가 이뤄진 남북협력 사업 12건 중 8건은 북한이 응하지 않아 중단된 것임이 확인된다. 외교부는 워킹그룹을 “제재를 빨리 푸는 방식”이라며 “상당히 유용하게 작동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워킹그룹이 없다면 한국은 제재 면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 재무부, 상무부, 법무부 등을 찾아다녀야 한다. 통상 ‘대북제재강화법’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북 제재는 2016년 2월 발효된 이래 2017년 더욱 강화됐고 2020년에는 ‘오토웜비어법’도 통과됐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도 제재 대상에 포함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 성격이 포함된 강력한 법안이다. 예를 들어 북한 개별관광을 위해 한국 지자체가 관광객에게 보조금을 지불하면 제재 대상인 북한 관광총국이 수령하게 되므로 제재에 저촉된다. 해당 지자체는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의 달러 결제 금융망에서 퇴출당하며 관련자의 미국 방문이 금지된다.

지난 8일 방한한 비건 대표가 “미국은 남북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강변한 것은 워킹그룹 미측 대표로서 비판에 대한 억울함의 호소로 들린다. 이런데도 한국 정부가 나서서 워킹그룹을 해체한다면 한·미 비핵화 공조는 제한되고, 제재받는 한국 기업·단체·개인이 나올 수도 있다. 남북 관계 악화의 근본적 원인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지 워킹그룹 때문이 아니다. 빈대도 없는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없어야 된다.

 

* 본 글은 7월 13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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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박원곤

객원연구위원

박원곤 객원연구위원은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지역학 교수이자 GRACE School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전에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연구위원,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하였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연구로는 "Changes in US-China Relations and Korea’s Strategy: Security Perspective," (2019);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2019);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 - 충돌, 변형, 조정"(2019);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한미동맹 조정 로드맵"(2018); 공저, "트럼프 행정부 안보·국방전략 분석/전망과 한미동맹 발전 방향,"(2017); 공저, "미 신행정부 국방전략 전망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제3차 상쇄전략'의 수용 및 변용 가능성을 중심으로"(2017)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