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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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 이외의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먼로주의(Monroe Doctrine)에서 탈피하여 대외문제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전략 차원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패권 국가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유럽의 소련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시아의 중국이 미국의 경계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세계전략의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동학(動學)은 미국 주도 역내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 이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합종연횡이 핵심이다. 즉,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가장 중대한 의제는 미국의 역내 패권 수호와 여기에 대한 중국의 도전으로서,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현상 유지 국가들(status-quo states)’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현상 타파 국가들(revisionist states)’ 간의 대립이 이 지역 안보 동학의 기본 골격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최근 안보 환경은 기존의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에 더하여 또 다른 변수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북한의 대남 정책 전면 전환 선언과 핵을 포함한 군사력 지속 강화 그리고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이다. 즉,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과 그 의도 그리고 미국 행정부 교체 여부에 따른 미국 대외정책의 대대적인 변화 가능성 등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패권 경쟁 양상과 안보 환경의 변화 추이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가 목표를 명확히 정립한 바탕 위에서, 국가 이익의 위계 설정 및 교환 전략을 수립하고, 대외전략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 지속’, ‘미중 격돌’, ‘미중 협력 복원’ 등 미래 발생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대응 전략을 수립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북한의 대남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자체 방위능력의 강화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현실화를 위한 대안 발전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기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만이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1.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동학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의 서부 해안에서부터 인도의 서해안까지 이르는 매우 광활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태평양과 인도양 전역 그리고 각 대양에 접해 있는 국가들을 구성 요소로 하고 있다.1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호주, 인도 등이 핵심 국가들이며 그 대척점에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포진해 있다. 이밖에,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등의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국가들이 이곳에 포함된다. 엄밀히 말해, ‘인도-태평양 지역’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개념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자신의 세계전략을 관철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그려낸 지정학적 구분이자 개념이다. 20세기를 전후하여 국제문제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은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이 두루 포진해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국 세계전략의 중심을 유라시아 대륙에 두었다. 특히,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에 ‘지역 패권 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유라시아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유라시아 패권 국가는 미국의 세계전략 운영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2

당초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은 서유럽과 동유럽 모두를 포함한 서부권역(west),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권역(south), 러시아와 시베리아 일대를 포괄하는 ‘중간 공간(middle space)’, 그리고 한중일 3국과 동남아시아로 구성된 동부권역(east)3의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서부권역에 높은 비중을 부여해 왔으나, 탈냉전기에 들어와서는 석유, 천연가스, 광물 등 에너지 자원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남부권역에 집중적으로 힘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제경제에서 동아시아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중국이 급격히 부상함에 따라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 무게 중심은 동부권역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은 유라시아 동부권역에서의 개입 근거와 패권 유지 명분을 위해, 이 지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고 재명명하고,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이다”라고 여러 차례 천명하며, 미국이 이 지역의 어엿한 구성 국가임을 역내/외에 각인시키고자 노력하였다.4 미국 트럼프 행정부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서는 인도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아베 일본 총리의 권고를 받아들여, 2017년부터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개칭되었으며, 현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이런 지정학적 재범주화를 수용하고 승계하였다.5

이러한 점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원류이자 핵심은 동아시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아시아는 19세기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가 수백 년째 이어져 온 중국의 안마당이자 영향권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아시아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기존 패권은 크게 약화하여 결국 소멸하고, 동아시아는 20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가량 영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의 각축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혼돈의 안보 지형을 드러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은 미국 우위의 역내 질서로 새롭게 재편되어, 20세기 말까지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국력이 급격히 신장하면서 미국의 역내 패권 질서가 위협을 받게 되자, 미국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범위와 개념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도-태평양 지역’ 등으로 거듭 확장해 가면서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려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접근과 전략은 그 뿌리를 현대 지정학의 원조이자 거장들인 ‘해퍼드 존 매킨더(Halford John Mackinder)’6, ‘앨프리드 세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7, ‘니콜라스 존 스파이크먼(Nicholas John Spykman)’8의 이론과 주장에서 상당 부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이며, 유라시아 대륙을 차지하는 국가는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매킨더의 경고,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 국가(들)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강한 해군력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마한의 주장,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 국가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심장지대(heartland)’ 못지않게 ‘주변지대(rimland)’의 장악이 중요”하다는 스파이크먼의 분석에 영향을 받아,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지역 패권 국가 출현을 막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그 첫 번째 대상은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지대‘에 위치한 소련이었으며, 소련 해체 이후에는 중국이 그다음 대상이 되었다. 미국 주도의 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고 중국의 역내/외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자, 미국은 중국을 또 하나의 패권 도전국으로 간주하면서 대중국 정책의 중점을 ‘관여(engagement)’에서 ‘봉쇄(containment)’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대규모 항공모함 선단 그리고 괌과 오키나와의 미군 공군기지들을 발판으로 서태평양 일대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 경찰’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국의 대양 진출을 직간접적으로 견제해 왔으며, 일본, 한국, 태국, 필리핀, 호주와는 동맹관계를 맺고,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는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패권 도전국 중국의 활동 반경을 포위하고 제약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오늘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동학은 미국 주도 역내 질서와 중국의 부상, 이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합종연횡이 핵심이다.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도 군사적 위협이나 무력 충돌 같은 전통적 안보 문제 외에 기후 변화, 초국경 전염병, 지진, 홍수, 해일 등 대형 재해, 식량⋅자원 위기, 테러, 사이버 공격, 인구⋅사회 위기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이슈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가장 중대한 의제는 미국의 역내 패권 수호와 여기에 대한 중국의 도전으로서,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현상 유지 국가들’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현상 타파 국가들’ 간의 대립과 대결이 이 지역 안보 동학의 기본 골격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거듭하여 미국에 이어 현재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이루어 냈으며, 강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군사 부문에서도 비약적인 증강을 거두었다. 중국은 이제 강성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난징조약(1842년)의 체결과 함께 시작된 ‘치욕의 세기(Century of Humiliation)’를 걷어 내고, 과거 ‘중국천하(中國天下)’의 영광을 재현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여, 21세기를 ‘중국의 세기(Chinese Century)’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중국 양 대국 간의 명실상부한 수평적 관계 수립을 미국에 공식적으로 요구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마침내,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시작하여, 장쩌민의 유소작위(有所作爲), 후진타오의 화평 굴기(和平崛起)와 화평발전(和平發展)을 거쳐,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과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로까지 언행의 보폭을 확대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명분으로 자국의 ‘핵심 이익’ 수호를 내세우고 있다. 즉, 중국은 ‘국가 체제 유지’, ‘주권과 영토 보호’, ‘국가 통일 추구’를 3대 핵심 이익으로 천명하고, 핵심 이익의 수호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시각에서, 국가 체제 유지는 중국 공산당 일당 지배와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보전을 말하는 것으로서, 특히 중국 공산당의 안위 확보와 중국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권 유지는 가장 큰 목표이자 절대 훼손할 수 없는 원칙이고, 주권과 영토 보호는 중국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 타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와 함께, 중국이 자국의 영토와 영해라고 주장하는 육지와 바다에 대한 영구적 소유와 지배가 외부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국가 통일 추구에서는 대만 문제가 핵심으로서 대만의 독립 저지 및 흡수통일은 중국의 핵심 이익이기에,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누구든 간에 중국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핵심 이익의 문제점은 핵심 이익의 선정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이기에 타국의 국가 이익들과 자주 충돌이 된다는 것이다. 센카쿠열도와 서사군도/남사군도의 소유권 분쟁, 남중국해의 항해권 논란, 대만의 장래에 대한 동상이몽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중국은 핵심 이익의 수호와 더불어 ‘전략적 배후 지역의 안정적 유지’, ‘미중 양국 관계 관리’, ‘중국의 대양 해군력 확대’, ‘중국 주도의 대안적 국제기구와 국제질서 형성’ 등을 대외전략의 기조로 삼고 있다. 결국,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 이익과 대외전략 기조의 요체는 과거 중국이 누렸던 지역 패권을 동아시아에서 복원하고 나아가 이를 서태평양 지역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 이익’에 대응하여 ‘국가 이익’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기존 질서 유지와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최대 과제로 삼고, ‘미중 관계 관리 및 중국 견제’, ‘대만해협 안정과 대만 보호’, ‘남중국해 항해 자유권 수호’, ‘북한 비핵화’, ‘역내 동맹 유지와 강화’, ‘자유·공정 무역 질서 구축’ 등을 역내의 주요 국가 이익으로 설정하고 있다. 첫째,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역내 패권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관여’와 더불어 ‘봉쇄’를 對중국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미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중국 견제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둘째, 미국은 전 세계 해운화물의 주요 수송로인 대만해협의 안정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명분으로,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나 대만 공격은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적극 저지한다는 입장이며, 셋째, 미국은 남중국해에서의 항해자유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미국의 국익임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넷째, 미국은 자국 및 동맹국들에 대한 위협 해소와 역내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극력 반대하며, 다섯째, 미국은 역내 패권 유지와 중국 견제를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서 한국, 일본, 호주 등과의 군사동맹을 지속 유지하고 한층 강화할 것이며, 여섯째,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 해소와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해 역내 무역 질서를 기존의 ‘자유 무역’에서 ‘자유·공정 무역’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수호하겠다는 국가 이익은 결국 미국이 역내에 수립한 기존의 질서를 허물어뜨리지 말라는 것이다.9

중국과 미국 간에 벌어지는 도전과 응전의 첨예한 전장에는 다양한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 패권 도전에 동조하는 세력은 러시아와 북한이다. 러시아는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영향력 복원과 확대를 위해 현재의 미국 중심 1극 체제를 여러 강대국이 발언권을 갖는 다극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 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러시아에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의 도전을 응원하고 있다. 북한은 미중 대립과 갈등 속에서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찾고 이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북한은 미중 간 충돌이 격화될수록 북중 동맹은 강화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통로는 더 크게 열린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미중 패권 경쟁의 진행 양상에 따라 한국에 비해 열세에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일거에 반전되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중 경쟁에서 미국의 주요 우군은 한국, 일본, 호주 등이며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하다. 한국, 일본, 호주는 모두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패권 도전 시도는 이들 국가로부터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일본과 호주는 중국이 보이는 역내 공세적 행태에 직면하여 미국과의 對중국 대응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유라시아 동부권역의 교두보로서 한미 동맹의 연속성 차원에서 중국 견제에 동원 및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비록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의 중립적 입장 견지 등 미국과는 다른 독자 외교 노선을 고수하고 있지만, 중국의 서남아시아 확장을 저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고 있다. 중국과 수차례 국경 분쟁을 겪은 인도에게 중국의 팽창은 경계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등과 같은 양자 동맹 외에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4자 안보 대화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태평양안전보장조약 ‘안저스(ANZUS: Australia, New Zealand, United States Security Treaty)’ 등의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와 미국, 호주 그리고 역외의 영국이 참여하는 삼각동맹 ‘오커스(AUKUS: Australia United Kingdom United States)’를 중국 견제에 활용하고 있다.

미중 경쟁과 갈등은 작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2024년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 부양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국내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중국 시진핑 지도부 간에 더 이상의 사태 악화는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최근 안보 환경은 또 다른 변수들을 맞이하고 있다. 바로 북한의 대남 정책 전면 전환 선언과 미사일, 정찰위성, 잠수함 등 무장력 지속 강화 그리고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이다.

 

2. 인도-태평양 지역의 최근 안보 환경 추이

 
1) 북한의 동향
 
북한은 지난 연말을 전후로 하여 대남 정책의 전면적 전환을 선언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은 2023년 12월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제8기 제9차 회의) 발언,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 2024년 2월 8일 북한 국방성 연설 등을 통해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지시하며,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남북통일 불가론 또는 무망론을 주장하고, 전쟁 발발 시에는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고 확언했다. 더불어 북한은 미사일 역량 고도화/다종화, 정찰 능력 제고, 공격수단 다양화 등 군사력의 지속적 확충을 올해의 주요 과업으로 제시하였다. 북한의 이와 같은 동향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 남북통일 불가 주장, 한국에 대한 ‘불변의 주적’ 지목, ‘남조선 무력 평정’ 대비 공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남 정책 전환이 현실화된다면 이것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 온 대남 정책 노선을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뒤엎는 일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정책 전환 선언에 대해서는 두 부류의 상반된 관측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북한이 미국과 세계 정세에 대한 재평가하에 대남 전략을 대결태세로 전면 전환하고, 한국에 대한 무력 정복 전쟁을 실행가능한 선택지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1일 미국 내 북한전문가인 로버트 칼린(Robert L. Carlin)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Siegfried Hecker) 스탠포드대학 교수는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38 NORTH)’에 이와 같은 주장을 담은 글을 기고하였다.10 칼린과 해커는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하다”고 진단하면서, ”우리는 김정은이 그의 할아버지가 1950년에 했던 것처럼 전쟁을 벌이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라고 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북한은 2019년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된 이후 대미 협상 정책을 포기하고 핵과 미사일 능력 확충에 전력을 기울이는 자립과 자강의 길로 다시 돌아섰다. 또한,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힘이 퇴조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재접근으로 대외동맹전략을 다시 설정했다. 더불어, 북한은 세계 정세가 자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해석하에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즉, 북한의 대남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칼린과 해커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에 수십 년간 공을 들였지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에는 무력 사용만이 유일한 옵션으로 남게 되었고, 여기에는 결국 핵무기 사용도 포함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북핵 협상 대표로서 1994년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같은 날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 기고를 통해 “2024년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북한의 최근 대외/대남 전략 변화를 앞의 칼린·해커와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11 갈루치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은 약화하고 중국은 부상하며 러시아는 재등장하고 있다는 정세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충실한 동맹국으로 다시 선회하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즉, 북한은 중국 국가 안보의 완충 지대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기 시작했다. 갈루치는 북한으로 인한 핵 위기나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크게 세 가지 경우로 상정하였다. 첫째, 대만을 둘러싸고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북한이 중국을 응원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미국 전략자산과 미국 동맹국들에 대해 핵 공격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1개의 전장에서 중국과 북한이라는 2개의 핵무장 국가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둘째, 한국을 굴복시키고자 한국을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한국에 씌워주는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는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 ICBM 위협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내심 계산하고 있다. 즉, 북한은, 미국 본토에 핵 공격 위협을 가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를 전개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핵 위협/핵 공격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제2의 한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 셋째, 핵무장 초보국인 북한의 핵 관리 능력 미숙으로 핵탄두가 실수로 발사되거나 정식명령계통을 거치지 않고 멋대로 사용되는 경우다. 어느 경우이든 북한발 핵 위협은 실재하게 된다. 갈루치는 북한의 핵 위협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진정성을 갖고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해야 하며, 북한 비핵화는 미북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향후의 장기적 과제나 최종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정책 전환 선언에 대한 두 번째 분석은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즉,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북한의 대남 정책 전환 선언은 북한의 세계전략 재검토 및 수정에 따른 공세적 전략 변화가 아니라, 현 상황을 타개하고 모면하기 위한 방어기제의 작동이자 방어적 전술 구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임스 루이스(James Lewis)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1월 30일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김정은은 미치지 않았다. 김정은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전쟁 도발은 정권과 자신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와 정권의 전복을 막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에 보이는 위협과 무력시위는 미국의 관심을 끌고 협상 재개를 유도하고 협상 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서방의 어느 관전자들보다도 ‘현실주의자(realist)’이다”라고 김정은의 최근 발언을 평가하고, 북한의 호전적 언사에 대해서는 “북한이 짖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12 미국 국가정보국(DNI) 북한정보담당관을 지낸 마커스 갈로스카스(Markus Garlauskas) 애틀랜틱카운슬 인도태평양 국장도 같은 날 ‘뉴스위크(Newsweek)’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정은의 통일 포기 선언은 한국의 압도적인 대북 우위를 현실적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국지적/제한적 도발 가능성은 상승하였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13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Sue Mi Terry)도 같은 날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칼린과 해커는 김정은이 전쟁을 원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한국과의 대규모 전쟁은 미국의 개입을 반드시 불러오고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기에 김정은은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진단하였다. 하지만 그녀도 “평양의 호전적 행동과 정기적으로 자행하는 저강도 도발이 (상대방의) 보복을 불러오면서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성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14

북한의 대남 정책 전환 선언에 대한 진의 파악은 앞의 상반된 두 부류의 관측과 분석 모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첫째, 북한은 인구는 두 배이고 국민 총생산(GDP)은 50배인 한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가망이 없음을 인식하고 더 이상의 통일 논의는 북한 체제와 정권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 “괴뢰 정권이 10여 차례나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라는 김정은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은 한국이 지향하는 방식의 통일은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압도적 우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과의 통일 논의는 북한 주민들의 동요와 민심 이반 그리고 체제 이탈을 가져올 수 있기에 현시점에서는 이를 중단하고 한국과 북한은 별개의 국가라고 선언해 버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의 남북통일은 북한 무력에 의한 남한 평정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작정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한국을 교전국이자 제1의 적대국으로 재정의하고 ‘동족’ 개념을 폐기함으로써 유사시 핵무기를 포함하여 한국에 대한 무력 사용의 문턱을 크게 낮추고자 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이 비록 경제력에서는 한국에 뒤처지더라도 군사 부문에서는 핵무장력에 힘입어 한국보다 앞서고 있다는 자부심/자존감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핵무기 사용을 들먹임으로써 한미 연합전력의 대북 선제 타격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방어적 책략도 작용했을 것이다. 넷째,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위협하고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한국을 압박하고 향후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겠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북한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보복능력을 잘 알기에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는 한반도 전역을 무력으로 평정한다는 속내와 각오를 표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개입만 없다면 한국과의 군사 대결에서 핵 무력을 활용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미국이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희생하면서까지 서울을 지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 위협이 가능한 ICBM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섯째, 북한은 세계정세의 흐름도 주시하고 있다. 대만 문제로 미국과 중국 간에 갈등이 격화되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고, 이에 더해 유럽과 극동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전선이 또다시 형성된다면, 천재일우의 한반도 무력 통일 기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북한은 갖고 있을 것이다.

 
2)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
 
미국은 금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지금의 판세는 현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재대결로 굳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이 승리해서 백악관에 자신의 2기 행정부를 꾸리게 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만약 트럼프가 이기게 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은 전면 수정될 것이고 이에 따라 세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환경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직 재임 시 ‘국익 최우선’의 원칙을 바탕으로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했던 국제기구들이나 동맹 네트워크에 대해서 ‘미국이 돈만 쓰고 얻는 것은 없다’라며 국익 대비 무용성을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일방적 지원은 없을 것이며 모든 대외사무는 ‘거래적 형태(in a transactional way)’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즉, 상응하는 대가를 서로 주고받는 것을 대외정책 추진의 기본이자 정형으로 삼았다. 그는 NATO 회원국 중 자국 전체 예산의 2% 이상을 국방비로 배정하지 않는 ‘의무불이행국가’는 NATO의 집단방위체제에서 배제해야 하며, 일본과 한국이 주둔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도 전면 철수시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그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말이 통하는 ‘괜찮은 사람(okay guy)’이라고 평가했다.15 트럼프가 2024년 2월 10일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대통령직 재임 시 자신이 행했던 ‘의무불이행 NATO 회원국 때리기’ 추억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것에서 유추하면,16 현재 그가 가진 대외정책 시각은 예전에 비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세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환경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결코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대외정책 방향은 미국 대외정책의 장구한 역사와 흐름에서 나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분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비록 과격한 형태이지만 그는 오늘의 시점에서 그 분파를 대표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 전문가 월터 미드 교수(Walter R. Mead)는 미국의 역대 정치가들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이름을 따서, 건국 이래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을 크게 ‘해밀턴파’, ‘윌슨파’, ‘제퍼슨파’, ‘잭슨파’의 네 가지 분파로 구분하였다.17 해밀턴파는 해외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유지와 더불어 미국과 세계 경제 간의 긴밀한 교류와 결합을 주창해 왔으며, 윌슨파는 전 세계의 평화 구현을 위해 미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가치들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미국의 책무이자 국가 이익이라고 설파해 왔으며, 제퍼슨파는 해외 문제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전쟁의 위험만 초래한다면서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의 해외 전파보다는 국내 민주주의의 강화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논지를 견지해 왔다. 잭슨파는 가장 포퓰리스트적인 분파로서 미국의 최우선 국익은 국가 안보와 미국인들의 경제적 안녕이며 해외 문제 개입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는 노선을 이어 왔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바로 잭슨파의 노선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그동안 추진된 미국의 대외전략 기조는 해외에서 미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개입하는 ‘적극적 개입’, 무분별적 개입은 지양하되 중요 사안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선택적 관여’, 평소에는 관망하다가 중대상황이 발생할 경우 개입하는 ‘역외 균형’, 본토 방위에 치중하고 해외로의 파병이나 무력 투사는 최대한 자제하는 ‘전략적 자제’의 4개 스펙트럼으로 나뉠 수 있는데, 18 트럼프의 대외전략 기조는 전략적 자제와 역외 균형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미국의 단기적 경제이익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해 무대에서 사라지더라도 제2, 제3의 트럼프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유권자 지형이 바뀌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에 열광하는 미국인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달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트럼프라는 ‘캐릭터’는 미국 정가의 일시적 깜짝 출연자가 아니라 항구적 배역을 맡은 정규 등장인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은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류(類)’의 출현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아야 한다.

 

3. 한국의 대응 방향19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패권 경쟁 양상과 안보 환경의 변화 추이를 면밀하게 주시하는 한편, 이를 위한 대응전략을 정교화해야 한다. 국가 목표를 명확히 정립하고 숙지한 바탕 위에서, 국가 이익의 우선순위 설정 및 거래전략을 수립함으로써 대외 여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우리는 국가 목표를 ‘안보’와 ‘번영’ 그리고 ‘통일’의 삼위일체로 정립하고 국가와 사회 모두가 이를 명확히 숙지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든 국가의 국가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안보와 번영 외에 통일을 국가 목표의 하나로 설정하는 것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한국과 북한이 별개의 적대적 집단으로 존재하는 한, 우리의 안보는 보장될 수 없고 지속적인 번영 또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 북한의 ‘남북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적극적인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북한과의 국력 차가 크게 벌어져 있는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한반도 통일의 기반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둘째, 한국은 안보, 번영, 통일의 3대 국가 목표하에 국가 이익 간의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거래전략을 수립하고, 국가 이익 확보를 위한 최상의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즉, 우선순위상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분야의 이익을 내주면서도 사활적 혹은 핵심적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전략, 명분과 실리 간의 최적 조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에 못지않게 외교적 역량의 확보도 필요하다.

셋째, 한국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대외전략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들의 대외정책 동향과 한국이 당면하게 되는 각각의 상황에 맞추어 대외전략을 유연하게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치외교’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대외정책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국가 이익의 요구에 따라서는 기존의 외교 안보 전략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하며, 국제 현안의 대응에서도 각 사안의 성격에 따라 입장과 기조를 달리할 수 있는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20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향후 안보 전망은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미국의 패권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이 지속된다는 전제하에 한미 동맹을 주축으로 하면서 對중국 관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이 지속되는 상황은 현재의 역내 질서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경우로서 한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패권 국가 미국과 적극 협력하는 전략을 견지해야 한다. 對미국 협력전략은 한미 동맹의 유지와 강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한미 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사활적 안보 기제이며, 중국의 동아시아 세력 확장과 한반도 영향력 확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 보험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중 협력관계의 강화라는 對중국 관여전략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중국 시장의 확보와 한국경제의 성장 유지, 북한 압박과 한반도 통일의 국제환경 조성, 중국의 역내 위상 강화에 대한 대비 등을 위해 중국과도 협력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상호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중 양국 모두에 대해 더욱 원활한 협력전략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며 노골적으로 세력 확장과 패권적 행보를 보일 경우, 한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對중국 균형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의 기존 역내 질서 거부와 패권 도전은 중국이 미중 간의 세력 전이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판단하거나, 중국의 핵심 이익들과 미국의 패권 질서는 서로 양립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경우 발생한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할 경우, 한반도는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과 함께 미중 대결이 펼쳐지는 주요 전장이 될 것이며, 중국은 북한과 공조하여 한미 동맹 무력화와 한반도 장악을 기도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對중국 균형전략의 일차적 목표는 패권 도전국 중국의 공세적 세력 확장을 막아내고 중국에 편승한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것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이 (그리고 북한도) 기존의 역내 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장기적 국익에 위협이 되는 국가이기에 미국이라는 대안이 있는 경우 중국의 지역 패권 국가화를 막아내야 한다.

대남 정책의 전면적 전환을 선언한 북한을 다루는 것과 관련, 우리의 당면 과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이며, 최종 목표는 우리 주도 한반도 통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을 상대로, ‘억제(deterrence)’, ‘보장(assurance)’, ‘강압(compellence)’의 전략을 적절히 혼합해 구사해야 한다.21 우선, 자만심의 소산이든 자포자기적 심리에서 나온 것이든 간에 북한의 무력 사용 위협이나 실제 사용을 막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대북 억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국방혁신과 대북 대비 태세 확립 등의 자체 방어역량 강화와 더불어 한미 동맹 강화, 한미 연합훈련 확대,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증가 등을 통해 확실한 대북 억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억제가 효과를 거두어 북한이 변화의 기미를 보이면 ‘대북 보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북한의 올바르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지만, 올바른 행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주겠다는 제의가 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안보도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에 대한 핵협박을 지속할 경우, 국제적 제재 이행체제 강화, 양자 차원의 제재 확대, 한미 협력을 통한 세컨더리 보이콧의 실현 등 ‘대북 강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북한으로부터의 군사 위협이 감소하고 한반도의 정세가 안정을 되찾으면, 우리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 변화 견인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최대의 자산은 우리의 자체 국방력 강화와 미국으로부터의 안보공약 유지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지형과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북한의 대남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자체 국방력의 꾸준한 강화가 필수요건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미국 행정부의 교체 여부에 따른 미국 대외정책의 변경과 해외 동맹의 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최후에 남는 것은 자기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은 자체 미사일 방어 및 공격 시스템 구축, 핵 잠수함 건조 등 해군력 강화, 동북아 전역 타격이 가능한 공군력 확충, 정보·통신·정찰·감시 역량 제고 등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의 현실성 강화를 위한 우리의 대안을 발전시켜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으며, 전 세계 GDP의 60%가 이곳에서 창출되고 있다.
  • 2. John J. Mearsheimer, “The Gathering Storm : China’s Challenge to US Power in Asia”, The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s, Vol.3(2010).
  • 3. Zbigniew Brzezinski, The 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 (Perseus Books Group, 1997), p.34.
  • 4. Ralph A. Cossa, Brad Glosserman, Michael A. McDevitt, Nirav Patel, James Przystup, and Brad Roberts, “The United States and the Asia-Pacific Region: Security Strategy for the Obama Administration”, Pacific Forum CSIS, (February 2009), pp.1-82; 김현욱,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과 신아시아 정책”, 『주요국제문제분석』, 2009-39, 외교안보연구원 (2009), pp.1-15.
  • 5. The White House, 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February 2022).
  • 6. Halford J. Mackinder, Democratic Ideals and Reality: A Study in the Politics of Reconstruction, (Henry Holt and Company, 1919).
  • 7. Alfred T. Mahan, The Interest of America in Sea Power, Present and Future, (Sampson Low, Marston & Company, 1897).
  • 8. Nicholas J. Spykman, America’s Strategy in World Politics: The United States and the Balance of Power, (Harcourt, Brace and Company, 1942).
  • 9. 이에 대해서는 The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Washington, D.C.: The White House, 2022); The White House, 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Washington, D.C.: The White House, 2022) 등을 참조할 것.
  • 10. Robert L. Carlin and Siegfried S. Hecker, “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 38 North, (January 11, 2024).
  • 11. Robert Gallucci, “Is Diplomacy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Possible in 2024?”, THE NATIONAL INTEREST, (January 11, 2024).
  • 12. James A. Lewis, “Is Kim Jong-un Crazy? Why North Korea Won’t Start a War”, THE NATIONAL INTEREST, (January 30, 2024).
  • 13. Markus V. Garlauskas, “The Rising Threat of Kim Jong Un’s North Korea”, Newsweek, (January 30, 2024).
  • 14. Sue Mi Terry, “The Dangers of Overreacting to North Korea’s Provocations : What Kim Jong Un’s Latest Moves Really Mean”, FOREIGN AFFAIRS, (January 30, 2024).
  • 15. 동아일보, “백악관 前비서실장 “트럼프, 재임 때 주한·주일미군 주둔 반대했다””, (2024.2.13).
  • 16. 연합뉴스, “‘러에 나토 공격 권유’ 트럼프에 유럽 강한 반발”, (2024.2.12).
  • 17. Walter Russell Mead, SPECIAL PROVIDENCE: American Foreign Policy and How It Changed the World, (Taylor & Francis Books, 2002).
  • 18. F. G. Hoffman, “Forward Partnership : A Sustainable American Strategy”, Orbis, (Winter 2013).
  • 19. 본 절은 김동성, 『한반도 동맹구조와 한국의 신대외전략』, (한울 아카데미, 2011); 김동성 외,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응』, (경기연구원, 2016); 김동성,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전략”, 이슈&진단 No.317, (경기연구원, 2018) 등을 참조했음.
  • 20. 한국이 구사할 수 있는 대외전략은 ‘균형전략(balancing)’, ‘협력/편승전략(bandwagoning)’, ‘구속전략(binding)’, ‘관여전략(engagement)’, ‘회피전략(buckpassing)’, ‘특화전략(specializing)’, ‘초월전략(transcending)’, ‘가교전략(bridging)’ 등이 있다. 한국이 국가의 생존과 안보를 확고히 하고 그 밖의 국가 목표 및 국가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기 대외전략들을 냉철하게 조합하여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 21. 억제(deterrence)는 상대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 확약(assurance)은 상대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것, 강제(compellence)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끔 만드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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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김동성

김동성 박사는 국제정치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문학사를 받고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 at College Park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기연구원에서 통일동북아연구센터장, 기획조정실장, 북부연구센터장, 균형발전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정치, 미국의 대외정책, 남북관계, 한미관계, 미중관계, 주한미군 등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연구의 최종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주요 저서와 연구물로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응』 (2016), 『한반도 동맹구조와 한국의 신대외전략』 (2011),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 거버넌스 구축 방안』 (2011), 『주한미군과 지역사회 통합에 관한 연구』 (2001) 등이 있으며, 『글로벌연구: 이슈와 쟁점 (원제: Introduction to Global Studies)』 (2023)을 공동으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