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나본 미국의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 (지소미아)의 미래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종료할 것인지 아니면 연장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종료될 경우 한·미 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을 우려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지지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같은 이야기였다. 그만큼 변화하는 환경에서 군사정보 유통이 중요하고, 지소미아가 미국의 역내 전략에 갖는 커다란 의미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시각은 정반대인 것 같다. 여전히 지소미아와 한·미 관계는 별개라고 주장하며, 일본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우리가 먼저 종료 결정을 철회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모든 미국 고위급 관료들이 지소미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신중한 선택을 촉구하는데 그 말은 안 들리는 것인지,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지소미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정부 내 소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주무 부처를 무시하는 것인지, 일본의 입장 변화를 유도하는 협상 카드로 정말 믿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 알면서도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지소미아는 그 출발점부터 한·미 간의 문제였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각각의 지역에서 다양한 소다자 협력으로 구성돼 있다.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핵심이고,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지소미아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미국이 한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왜 일본의 행보를 핑계 대며 한·미동맹 문제를 건드리려 하는지, 그것이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대중정책과 연계돼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의 핵 개발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협력이다. 역사문제에 관한 일본의 행보를 고려하면 동맹까지 발전시킬 필요는 없다 해도, 현존하는 북핵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가진 정보자산과 주일미군의 전시지원 역할에 눈감아선 안 된다. 아직 군사위성도 없는 우리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우리의 메시지 전달과정도 나빴다. 지소미아를 종료하려 했다면 미국 측에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야 외교적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날까지도 조건부 연장을 운운하더니 갑작스럽게 종료 결정을 발표했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결정을 이해했다고 말한 청와대 고위관료는 도대체 누구를 이해시킨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곧 마크 애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위해 방한한다. 역시 지소미아 문제를 꺼낼 전망이다. 지금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모른 척 행동하다가는 정부가 원하는 북핵 공조나 방위비 협상의 합리적 해결마저도 실패할 수 있다.
자존심 때문에 못 바꾸겠다면 창의적인 생각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한·미동맹을 위해 지소미아 종료를 스스로 철회하면, 일본도 한·일 안보협력을 위해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우대국) 지정 제외를 그들 스스로 철회하도록 만들면 된다. 물론 일본이 주장하는 강제동원 문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일본 방문에서 언급한 수준에 더하기 빼기를 합쳐서 타협 가능한 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백색국가 문제에 융통성을 보일 것을 미국이 담보한다면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는 외교적으로 유리한 일이 된다. 일본이 입장을 바꾸면 외교적 성과이고, 반대의 경우 미국은 한국이 아닌 일본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는 지혜가 있는 장수라면 반드시 이익과 손실을 아울러 참작해야 한다면서 “이익을 계산하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손실을 계산하면 환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지소미아 종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일본이 아파할 것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자존감뿐이다. 손실은 무엇인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약화다. 누구의 말대로 평양만 좋은 일을 하는 건 알고나 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 본 글은 11월 12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