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가속화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블라디보스톡에 전용열차편으로 11일 도착할 예정이며, 포럼 기간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과거 소련과 북한은 조소상호우호조약으로 맺어진 명백한 동맹관계였지만, 소련 붕괴후 러시아는 북한과 협력을 하되 군사동맹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북한의 가치를 다시금 깨달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하루에 수만 발까지 포탄을 발사하는 소모전으로 전환되자, 러시아의 무기생산능력은 전쟁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미 개전 후 2-3개월 내에 이스칸데르 단거리탄도미사일은 재고가 다 끝났다.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샤헤드-136 자폭드론을 수입하여 운용하다가 이제는 면허생산까지 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구형 탄약이다. 포가 있어도 포탄이 없어 못 쏘는 상황이 되자, 러시아는 구형탄환을 대량으로 보유한 국가를 찾아야만 했다. 북한은 소련시절부터 러시아 무기들을 열심히 카피했고, 전쟁준비를 위해 대량 비축해 둔 유일한 나라다. UN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북한제 탄약을 구매하여 용병인 바그너 그룹에게 전달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전쟁 지휘로 바쁜 틈을 쪼개 2박 3일 일정을 할애하며 북한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김정은과 함께 무기전시회장을 찾아 무기와 군수물자를 ‘쇼핑’한 것이 방문의 진정한 목적이다.
러시아가 필요한 것은 탄약에 그치지 않는다. 대형의 탄도미사일에서 휴대용 견착식 대전차미사일까지 모두 러시아군이 도입하여 운용할 수도 있다. 북한은 KN-23과 KN-24 등 단거리탄도미사일에서 풀업기동을 구현하면서 러시아의 이스칸데르를 훌륭히 카피해냈다. 또한 직경 600㎜짜리 초대형 방사포인 KN-25도 작년말부터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 중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북한산 첨단무기체계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러 군사협력 공식화로 얻어낼 것이 너무도 많다. 우선 북한은 자신들이 만들 수 없었던 첨단 재래식 무기체계를 러시아로부터 사들일 수 있다. 이란의 경우처럼 무기판매의 대가로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 Su-35를 도입할 수도 있다. 군사용으로 성능이 부족한데다가 발사실패를 거듭하는 ‘만리경-1’호 대신 러시아제 정찰위성을 도입할 수도 있다. 위성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우주로켓에 실어 발사까지 패키지로도 가능하다.
신무기 판매 뿐만 아니라 기존 무기의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공군력은 가장 최신형 전투기가 1980년대 말에 도입된 MiG-29이다. 50대 넘게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지만 수리부속이 없어 부품을 돌려막기하면서 운용해왔다. 러시아가 핵심부품만 수출해주어도 북한 공군력은 현저히 향상된다. 러시아판 GPS인 글로나스(GLONASS) 우주항법체계 가운데 군용 체계를 북한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은 더욱 정밀한 타격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의 핵무기 기술과 핵전력 운용경험을 북한이 전수받는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김정은이 수차례 ‘핵무력 완성’ 을 공언했지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정상각도 발사가 검증되지 않아 미국 본토에 닿는 것이 벅차고, 다탄두기술이 없어 미 본토에 다가가도 요격될 것이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여전히 부족하며, 무엇보다도 원자력추진잠수함이 없다. 이렇게 북한이 완성하지 못한 핵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쥐고 있는 것이 러시아다. 러시아는 여전히 4489발의 핵탄두를 실전배치 중인 핵 강국이다. 여태까지 러시아가 핵기술을 외국에 전수해준 바는 없지만, 급변하는 지정학 경쟁시대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북-러간의 협력은 무기거래를 넘어 이제 연합군사훈련에까지 확장되는 모양새다. 쇼이구 장관은 지난 방북 당시 김정은에게 중-러의 연합훈련에 북한도 참여하도록 초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미일 삼각협력에 대응하여 북한을 불러들이려는 포석이다.
우선 가능한 방안은 중-러 간의 해상연합훈련에 북한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중-러 양국은 지난 7월 ‘북방·합동-2023’ 훈련을 실시하면서 전략적 조율을 한 바 있다. 어뢰정이 주축이었던 기존의 북한 해군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압록급·두만급의 신형 초계함을 4척을 도입하면서 1000t급 이상의 수상함 전력을 증강했기에 이제는 가능하다. 공군 훈련에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한 도발시 한반도로 오는 미군의 B-1 폭격기를 우리 공군 F-15K나 KF-16이 호위하듯이, 동해 상공을 지나가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를 북한 전투기가 호위하는 장면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북-중-러 3국 연합훈련의 문제는 중국이 이에 동의하느냐이다. 지난 북한 열병식에 중국은 서열 10위권 내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보내지 않고 리훙충(李鴻忠)을 보냈다. 전쟁 중인 쇼이구 장관을 보낸 러시아에 비해 성의가 없는 조치였고, 북한도 이에 불만이었는지 쇼이구 방북은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중국 소식은 상대적으로 줄였다. 실제 중-러의 전력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연합훈련에 받아들일지 중국의 판단이 주목된다.
북-러 간의 군사협력은 한반도의 안보를 뒤흔드는 일대사건이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제 첨단 무기로 무장하거나 기존 무기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실질적으로 증강시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KN-23·24·25 등의 차세대 주력 단거리탄도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어 실전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우리에 대한 핵과 미사일 공격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가된다. 무기거래의 대가로 받을 대금이나 원유가 그대로 북한 핵개발의 기반이 되는 것도 큰 문제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북-러 군사협력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군사위협이다.
정부는 강력한 외교적 노력에 나서야 한다. 북-러 무기거래와 군사협력은 우리 안보를 침해하는 레드라인이며, 이를 위반하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첨단무기를 지원하고 푸틴의 전쟁범죄 처벌을 지지하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임을 알려야 한다. 이와 함께 북-중-러 삼각협력구도의 형성을 막는 노력도 필요하다. 애초에 3국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며, 특히나 약한 고리인 중국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갖게될 수백 발의 핵폭탄은 중국의 안보위협이며, 오히려 핵없는 북한이야말로 중국이 원하는 안보적 완충지대로서 지속될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중-러 양국에게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핵심국가들로서 역할을 촉구해야 한다. 중-러를 아우르는 적극적 외교가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 본 글은 9월 9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