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의 ‘미국 우선’ 중국 견제 위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맹·우방에 피해 입혀
자유로운 무역과 민주주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바이든 정부는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정명령’ 등을 도입해 미래 성장 동력인 BBC(Bio, Battery, Semi-conductor Chip)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고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보호주의적 통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보호주의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근간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대중국 강경론이 깔려 있다. 문제는 미국의 보호무역은 단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유용할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미국의 동맹과 우방에 큰 피해를 입혀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건국할 때부터 자유를 신봉하고 유지해왔다. 미국의 독립운동은 1773년 ‘보스턴 차(茶)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는데, 영국 의회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에 찻값의 10%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기는 ‘홍차법’을 제정하자 미국인들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를 주장하였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새뮤얼 애덤스는 동료들과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 선박을 습격하여 차 342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고, 이를 계기로 미국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영국 정부의 일방적인 세금 부과에 반발하여 독립국가가 된 미국이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건국 이념과 부합하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외치며 트럼프 정부와는 다른 대외 정책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현재 바이든 정부의 보호주의 무역 정책은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로 보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흔들 것 같아 걱정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이라는 2개의 축을 중심으로 서방 진영을 결집하고 국제 질서를 주도했고, 냉전에서 승리했다. 미국이 개발도상국들에 대해 미국 시장을 개방했기에 많은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사실은 자유민주주의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바이든 정부가 “규범에 기반한 질서(rules-based order)”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규범을 위반한다면 지도력의 훼손을 불러올 수 있다. 당초 바이든 정부가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을 시도한 것은 중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의 공동 번영을 훼손하고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은 사드 문제, 영토 및 영해 문제, 코로나 발원지 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자국의 입장에 반하는 국가들에 대해 무역 보복을 가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정책에 대한 호응과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추구하는 보호주의 무역 정책은 미국식 일방주의인데, EU와 일본 정부도 공급망 구축의 논의가 진전되는 가운데 IRA가 나온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포퓰리즘의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자유를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자유를 어떻게 지키고 키워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의 보호주의는 동맹의 신뢰에도 반하는 것인데, 통상 문제에서 약화된 신뢰의 문제가 안보 분야에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통상 문제로부터 시작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불신은 미국과 중국의 각축장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특히 심해질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지적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하는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고 이는 바이든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구상을 좌초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확장 억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무역 문제에서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워싱턴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난 5월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반도체·바이오·배터리 분야에서의 민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합의했는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호주의 무역 정책에서는 정상 간 합의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고 트럼프적인 일방주의 색채가 나타난다. 바이든 정부는 보호주의 무역이 한미 간 경제 안보 동맹의 발전은커녕 군사 동맹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자유무역의 원칙이 훼손된 경기장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보장될 수 없다.
* 본 글은 10월 6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