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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의 숙적이다.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와 충돌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약 30년간의 중동전쟁이 종료된 후 표면상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1993년 오슬로협정으로 팔레스타인 갈등은 해결의 단초를 찾는 듯했으나 헤즈볼라·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갈등은여전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동에 개입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특히 수니파 국가들과 관계는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반면 중동 주도권을 쥐려는 이란은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 실패 국가에 적극 개입하면서 수니파 국가들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을 견제해 왔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후티 반군과 하마스 등 테러 집단을 지원하면서 다차원의 하이브리드 전쟁을 펼쳤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벌어졌다.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추진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존재가 바로 하마스와 이란이다.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이하 현지시각) 사상 최대 공격을 감행했는데, 거대한 공격을 실행하는 배후에 이란이 있었다는 관측이다. 이스라엘은 10월 26일을 기점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침공에 나섰으나 무려 반년이나 공격을 지속했음에도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정권은 더욱 자극적인 선택이 필요했다. 전쟁 배후에 있는 이란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4월 1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다. 이스라엘군은 F-35 스텔스 전투기 편대에서 미사일 6발을 발사하여 이란 혁명수비대의 특수부대인 쿠드스군 지도부를 무력화했다. 공습으로 쿠드스군 사령관 모하메드 레자 자헤디를 포함하여 혁명수비대 8명이 사망했으며, 자헤디 이외에도 지휘관급 6명이 더 사망했다. 공습은 분명 성공이었지만,일국의 영토에 해당하는 외교공관을 공격한 행위에 미국조차 고개를 저었다.

이에 이란은 보복을 맹세했다. 더 이상 대리전으로 뒤에만 숨어 있을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전면전으로 갈 수도 없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자국의 보복 의도를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확전을 제한했지만, 공격만큼은 치열했다. 4월 14일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350여 발의 각종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자폭 드론을 발진했다. 목표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이란은 무려 1100㎞가 넘는 거리의 표적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란은 이 공격을 ‘진실의 약속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피해는 미미했다. 이란 영사관 공습의 주역인 F-35가 배치된 이스라엘 남부 네바팀 공군기지가 일부 경미한 손상을 입었고, 헤르몬산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보센터도 공격받았다. 부상자는 오직 베두인 소녀 1명이 중상을 입었을 뿐, 7~8명 수준이었다. 이스라엘에 도달한 미사일은 불과 수십 발로,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대부분의 미사일과 드론이 이스라엘 영공 밖에서 격추됐으며 발사된 미사일 99.9%가 요격됐다고 발표했다.

 
연합 다중 미사일 방어 체계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이라크와 요르단, 사우디 등 주변국의 영공을 통과해야만 했다. 또 이란 영향권에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 점령지와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지에서도 일부 발사가 이뤄졌다. 따라서 이스라엘보다는 그 주변국이 미사일과 드론 요격에 얼마나 참여해 주느냐에 방어의 성패가 달렸다. 미국은 이러한 연합 미사일 방어의 리더십을 자처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중동 각국에 패트리엇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포대를 배치하며 중동(특히 친미 수니 국가들)의 안전을 약속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를 대부분 철회한 바 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이 또다시 혼란에 빠지자, 미국은 신속히 미사일 방어 포대를 요르단에 전개하고 이지스 구축함을 포함한 해군 전력을 증강한 바 있다. 이들이 이스라엘 방어를 위한 핵심 자산이 됐다.

이외에도 영국, 프랑스, 요르단, 사우디 등이 요격에 참가했다. 카타르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위치한 미국 통합항공작전본부(CAOC)가 전체 작전을 통제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미국의 자산으로 최소한 80여 대의 드론과 6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지스 구축함 2척과 함재기들이 요격 임무를 담당했으며, 특히 SM-3 미사일이 실전에서 최초로 발사돼 요격에 성공했다. 이라크 에르빌에 배치된 미국의 패트리엇 포대도 요격에 성공했다.

영국은 사이프러스섬의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서 타이푼 전투기를 파견하여 드론을 격추했고, 프랑스도 홍해 지역에 미리 전개했던 방공함으로 드론 격추를 도왔다. 요르단은 이란으로부터 이스라엘 방어에 협조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으나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가 기능하도록 영공을 열어줬다. 뿐만 아니라 요르단은 자국 전투기를 띄워 약 20% 정도의 자폭 드론을 요격했다. 사우디도 자국 영공을 침범한 ‘비행체’들을 자동으로 요격했다고 밝혔다.

 
정치 메시지 전달에 머문 이스라엘·이란 공방전 
 
국내에는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이 99% 요격에 성공했다는 오보가 퍼졌지만, 애초에 미사일 방어가 불가능한 아이언돔의 활약은 미미했다. 결국 이스라엘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이 주도한 연합 다층 미사일 방어가 이스라엘 방어의 핵심이었다.

자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가 성공리에 끝나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추가적인 군사 행동을 자제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의 강경 대응 여론과 낮은 지지율로 인하여 보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군사력 대부분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투입한 가운데 이란과 전면전으로 전선을 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중점을 둔 제한적 타격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란 중부의 이스파한 지역을 공격했다. 이스파한은 이란의 핵 시설이 집중돼 있는 지역으로, 이란은 이스라엘이 핵 시설을 공격할 경우 전쟁을 불사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 공격 대상은 핵 시설이 아니었다. 이란 혁명 전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F-14 전투기가 배치된 셰카리 공군기지가 공습으로 파괴됐고, 이외에도 러시아가 구축해 줬던 이란군 방공망도 이스라엘에 의해 격파됐다. 또한 시리아도 공격 대상이 됐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매우 제한된 것으로 민간인 피해를 극소화하면서도 이란에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이란 반응이 중요한데,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아이들 장난감 수준”이었다고 격하하고 추가 공격 시 보복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즉 이란도 확전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렇듯 정치적 메시지 전달로 이스라엘· 이란 공방전이 종료됐다.

 
북한 도발에 대응할 타격점 구상해야
 
양측의 공방은 북한과 끊임없는 대치 중인 우리에게 커다란 함의를 제공한다. 우선은 미사일 방어다. 만약 이스라엘이 홀로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하려고 했다면, 피해는 상당했을 것이다. 미국의 주도와 주변국 협조로 이뤄진 연합 다층 방어 체계가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이는 그간 국산 체계만을 강조한 3축 체계 속의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에 커다란 교훈을 준다.

현재 우리의 KAMD는 패트리엇 PAC-3와 천궁2 개량형으로 독자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요격 고도 또한 40㎞ 이하로 제한된다. KAMD와는 무관하게 미국이 전진 배치한 사드만이 40~150㎞ 고도에서 요격이 가능하여, 유일한 다층 미사일 방어 자산으로 가동 중이다. 최근 우리 정부는 SM-3 도입을 결정하며 다층 방어를 추구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 주도의 연합 미사일 방어와 연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으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제한적이고 정치적인 표적의 타격이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등 각종 도발로 북한의 정치 체제가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우리는 미국의 만류뿐만 아니라 보복 기회 상실로 충분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명 피해를 피하는 정치적 표적 타격으로 상대방의 억제가 이뤄질 수 있음을 이스라엘과 이란의 공방전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우리의 자산과 인명에 대한 공격을 가할 경우, 확전을 억제하면서도 적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표적 개발과 작전 양상 구상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이코노미조선 540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방송을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