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팔 자유는 허용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
아산정책연구원 방문, 아산서원 학생들과 만남 가져
지난 12월 4일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하버드대학)가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에서 아산서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및 토론을 진행했다. 샌델 교수는 강연을 통해 학생들에게 인문학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강연 스타일에 대해 “윤리적,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개인의 의견에 대한 ‘근거를 묻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보다 깊이 있는 철학적 물음으로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원생들과 나눈 ‘자유 시장에서의 장기(臟器) 매매’에 대한 논의를 법의 본질, 더 나아가 법의 중립 가능성 및 의무와 관련한 정치철학적 성찰에까지 진전시키며 토론의 장(場)을 확대했다. 토론의 말미에 샌델 교수는 다시 한 번 ‘질문’의 중요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역설하며, 이러한 ‘묻는 행위’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숙고할 수 있고 또 도덕적, 시민적 이슈들에 대한 공적 토론을 활성화 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하 마이클 샌델 교수와 원생들 간의 토론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샌델 교수: “아산정책연구원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1년 전 아산서원 학생들과 만난 바 있는데, 나는 이곳에서 교육받고 있는 여러분이 최고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과 여기서 배우는 인문학, 철학, 정치학 이론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죠. 이는 사유에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유의 훈련은 여러분들을 성장하도록, 또 성찰하도록 할 것이며 대학에서 특정한 주제에 관해 열심히 연구한 후 여러분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는 여러분을 보다 넓은 시야를 지닌 효과적인 지도자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멋진 기회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토론은 어떤 것이든 좋으니 여러분이 자유롭게 제시해주는 주제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산서원 원생 #1: “저는 교수님께서 시장 경제(market economy)와 시장 사회(market society)를 구분하시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무리 확고한 비(非)시장적 가치(non-market values)라도, 돈이 작용한다면 그 가치는 왜곡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방식으로 왜곡되는 가치들이 있는 반면, 통화 가치 활용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극대화되는 가치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샌델 교수: “첫 번째와 두 번째 의견에 대한 각각의 예를 제시해 주시겠어요?”
원생 #1: “예컨대 한 교육 관련 비디오에서 교수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금전적인 보상, 즉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그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선은 교육적인 가치를 왜곡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보상을 받은 후 아이들이 교육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고 나아가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샌델 교수: “그러한 교육 방식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실제로 어떤 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보상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게 하기 위해 아이들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방금 학생은 이러한 방식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그다지 옳지 못한 이유로 더 많은 책을 읽게 되긴 하지만, 이후에는 그런 방식을 통해 독서에 재미를 느끼게 되고, 지속적으로 독서를 해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죠?”
원생 #1: “여타의 비(非)시장적 가치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시장에서의 장기 매매’에 대해 토론하신 비디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기 매매’라는 것이 장기 이식의 가치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러나 어떤 이들에겐 이것이 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의 극대화 혹은 자원 배분의 문제로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샌델 교수: “만약 이 문제가 학생에게 달렸다면, 예컨대 학생이 의회에서 관련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학생은 장기 자유 거래를 허용할 건가요? 현재 한국에서 장기 매매는 법으로 금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을 바꾸고자 하나요?”
원생 #1: “네, 바꾸고 싶습니다. 정부는 법을 만듦에 있어 여타의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자국의 법을 통해 특정 가치들을 고양시키려 한다면, 부작용이 따를 것입니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금지되는 것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샌델 교수: “그러니까 학생은, ‘법은 도덕적 가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법에 도덕적 가치를 투영하게 되면, 그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도덕적 심판을 내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군요. 여러분은 ‘시장에서의 장기 매매’를 찬성하는 주장을 들었는데, 이는 더욱 광범위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즉, ‘법이 도덕적 판단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유 시장에서의 장기 거래를 찬성하는 이 강력한 논쟁에 반론을 제기할 학생 없나요?”
원생 #2: “저는 법의 제정에 있어서 도덕적 가치에 관한 판단을 배제한다면 법의 존립 근거가 과연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또한, 장기의 자유 거래가 허용된다면, 실제로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즉, 그들은 그냥 죽어가는 것이죠. 장기 자유 매매를 허용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입니까?”
샌델 교수: “학생은, 예컨대 가난한 사람들은 장기가 필요함에도 그것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는 “만약 장기의 자유 거래로 인해 그에 대한 공급이 증가한다면, 최소한 현재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장기를 더 쉽게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가 될 수 있죠. 학생은 가난과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학생은 어떤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장기를 팔게 될 가능성 역시 우려할 것입니다. 학생의 주장은 우리의 논의를 “이것이 빈곤한 사람들에게 공정한가”하는 문제로 이끌었습니다. 이 논의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학생은 없나요?”
원생 #3: “저 역시 장기의 자유 거래 시장을 허용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법이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언급하셨는데, 저는 법이란 본래 사회의 도덕적인 합의나 그 사회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사회적 관습인 것이죠. 따라서 저는 한 사회의 도덕적 합의로부터 법 간에 거리를 두는 것이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기가 자유 시장에서의 유통이나 경제적 효율성 차원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는 인간의 생명에 관한 문제이므로 재정적인 지위 혹은 시장 경제에 좌우되는 것이어선 안 될 것입니다.”
샌델 교수: “학생은 두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우선, ‘삶과 죽음’에 관련된 문제는 시장의 가치가 아니라 다른 가치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한 가지는, 원칙의 수준에서 법은 도덕 문제에 대해 중립적일 수 없으며 또한 중립적이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생 #1: “법은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법에 특정 가치들이 투영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가령 정부가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이 사회에서 존중되어야 하는 특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정부가 법을 통해 그러한 도덕적 관념들을 증진시키고 국가 내에서 그것을 보편적으로 시행한다면, 그 국가의 개인들은 국가가 중시하는 그 ‘가치’들로 인해 무시되고 방치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샌델 교수: “다시 한 번 ‘효율’의 문제를 환기시키는군요. 혹 학생은 자신의 장기를 기부할지 팔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 개인의 ‘선택할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도덕적 가치’라고 할 수는 없을까요? 만약 학생이 효율성(거래 가능한 장기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과 자유(사람들이 자신의 장기 판매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것)라는 관점에서 장기 판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법은 그러한 가치(효율성과 자유)나 도덕적 판단에 달려있는 것 아닌가요?”
원생 #1: “법이 보호해야 하는 단 한가지는 바로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대신 도덕적 가치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법이 만들어져선 안 됩니다.”
샌델 교수: “흥미로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에는 어떻게 답할 건가요? 가령 학생이 ‘자유’를 가장 높은 도덕 가치로 상정하면서 ‘법은 여타의 다른 가치들보다 개인의 자유라는 도덕적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거든요. “그것이 과연 중립적인 것인가?” 혹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라는 가치가 사람들이 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다른 모든 가치들에 우선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원생 #1: “만약 법이 선택의 자유라는 관념을 증진시킨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자유로 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만약 법이 가장 수호하는 가치가 ‘자유’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유가 존중되지 않는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샌델 교수: “학생의 그러한 생각을 시험해보기 위한 질문을 던져봐도 될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신장’의 자유 거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판매자들이 충분한 돈을 받고, 또한 그 행위가 그들에게 큰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들의 ‘심장’을 판매하는 것까지 법적으로 허용해야 할까요? 사람은 신장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심장 없인 살 수 없는데요. 자, 예컨대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돈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장을 판매할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 걸까요?”
원생 #1: “만약 그것이 개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렇다’고 답하겠습니다.”
샌델 교수: “짧은 시간이었지만 흥미로운 토론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논의는 ‘사고 파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법이 도덕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보다 광범위한 정치철학적 문제에 이르렀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아산서원의 교육 과정을 통해 이러한 정치 철학의 논의들을 읽고, 사유해 나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학생 있나요?”
원생 #4: “교수님께서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그러한 질문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신 건지, 혹 개인적인 답변은 없는 채로 계속해서 질문만을 던지고 계신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샌델 교수: “맞아요, 저는 강의를 할 때나 책을 쓸 때, 수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저는 그 질문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광대한 철학적 원리와 전통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원리와 전통은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질문에 대해 ‘다르게 사유하는 방식’도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그러한 질문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예로 들면) 정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사람들을 윤리학이나 정치철학적 사유에 참여하도록 하는 최상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 의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 했던 것은 아니죠. 즉, 자신의 의견에 대한 도덕적 근거를 성찰할 기회가 혹은 필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정치철학 공부는 ‘질문’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견해를 숙고할 수 있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를 알 수 있으며, 만약 그의 근거가 설득력 있다면 우리의 견해를 바꿀 수도 있겠죠. 저는 그러한 방식이 우리의 관점, 혹은 원칙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목표는 그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한, 그리고 ‘왜’ 그렇게 믿는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또한 광범위한 도덕적, 시민적 문제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산서원에서 수 개월 간 정치, 철학, 이론,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죠. 이는 여러분에게 ‘도전’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때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갑자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는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행운을 빌며,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맘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시: 2014년 12월 4일(목), 오전 8시 40분 – 9시
장소: 아산정책연구원, 1층 갤러리
연사소개
Michael J. Sandel is an American political philosopher and a professor at Harvard University. He is best known for the Harvard course “Justice”, which is available to view online, and for his critique of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in his first book,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 (1982). He was elected a Fellow of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in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