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2020년 새해 벽두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사령관이 사망했다. 트럼프(Donald Trump) 미 대통령은 전쟁을 막기 위한 방어였다지만 하메네이(Ali Khamenei) 이란 최고지도자는 가혹한 보복을 선언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는 작전의 정당성 논란, 대미 공격 증가, 이란 패권추구의 반대 약화, 미 동맹·우방국의 불안감 상승으로 즉각 이어
졌다. 실익 없는 작전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결정이 있었다. 탄핵정국 돌파와 대선 전 강한 이미지 부각을 노린 대통령 개인의 국내 정치적 손익계산이 작용했다.

이후 이란이 확전 의사 없는 미군기지 공격으로 보복전 출구전략에 성공하면서 양국 정면충돌의 위기는 봉합됐다. 그러나 이라크, 레바논, 예멘, 가자지구,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는 역내 미군시설과 미 동맹·우방국을 향한 소규모 저강도 보복전에 돌입했다. 이란 프록시 조직을 육성해온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 후 지원 축소를 우려한 충성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핵문제로 전환됐다. 2년 전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에 맞서 올해 1월 이란도 핵합의를 파기했다.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이후 이란 내 반미 보수파의 득세로 강경 대외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권력구도에서도 보혁갈등 대신 혁명수비대 계열의 강경파와 성직자 중심의 원리주의파 간 보수권 내부경쟁이 자리잡았다. 2월 총선에서 군부 강경파가 성직자 그룹에 승리
하면서 대미 급진행보가 예상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내부 숙청작업까지 끝내고 대미 치킨게임의 전열을 갖췄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식의 핵협상을 제안한 상황에서 이란 강경파는 협상력 제고를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같은 미 대선 흔들기용 충격요법으로 맞설 수 있다.

 

1. 트럼프 행정부의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이후 이란 프록시의 공세

 
2020년 1월 3일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 쿠르드군 수장 솔레이마니 사령관 일행이 탄 차량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처에서 드론으로 공격했다. 시리아발 비행기에서 내린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마중 나온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무한디스(Abu Mahdi al-Muhandis) 사령관이 함께 폭사했다. 미 특수부대가 근접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에 공개됐고 이란은 “같은 수위의 직접 보복”을 경고했다. 중동 전운이 고조된 순간이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오른팔이자 전략가였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보수 지배연합은 성직자인 이슬람 법학자 그룹과 이들의 핵심 군조직 혁명수비대로 이루어진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Bashar Assad) 독재정권을 지원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투 현장에서 혁명수비대 쿠드스군과 여러 나라의 친이란 민병대를 포함해 1만명이 넘는 지상군을 진두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를 비롯해 이라크, 레바논, 예멘, 가자지구의 프록시 조직을 전폭 지원했고 역내 시아파 패권추구에 앞장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제거작전을 갑작스럽게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깜짝 단행이었던만큼
1) 작전의 정당성, 2) 미국의 국익, 3) 최근 변화된 역내 정세, 4) 동맹·우방국의 이해관계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았다. 첫째, 이란 혁명수비대는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IS)와 같은 초국가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아니다. 2019년 4월 미국 단독으로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바 있으나 이란은 제한적이나마 선거가 이뤄지는 국가이며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내부경쟁이 작동하는 나라다. 주권국가의 정예부대 사령관을 테러조직의 우두머리 제거하듯이 폭사시킨 일은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위법성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둘째,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이후 중동 내 미군기지와 시설, 미국인을 향한 공격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빈자리는 보수 지배연합 내 또 다른 강성 군인 가니(Esmail Ghaani) 쿠드스군 부사령관으로 채워졌다. 극도로 높아진 긴장수위에 맞춰 새로운 사령관은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가니 사령관은 취임 직후 중동 전역에서 미국인의 시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쿠드스군은 공식성명에서 이스라엘 하이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특정해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역내 프록시 조직도 솔레이마니 리더십 하에서 지난 10여년 간 제공되던 지원의 축소를 우려해 경쟁적으로 보복전을 선포했다. 실제로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미군기지와 미 대사관을 향해 로켓포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셋째,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이라크·이란 시위 유혈진압으로 당시 중동 내 혁명수비대를 향한 비난이 확산되고 있었으나 미국의 제거작전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2019년 10월 시작된 이라크의 반정부 시위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내정개입 반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비슷한 시기 레바논의 시위도 이란 혁명수비대의 명령체계 하에 놓인 자국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비난했다. 11월 유가인상으로 촉발된 이란의 시위 역시 혁명수비대의 프록시 조직 지원과 국고탕진을 맹비난했다. 곧 이라크와 이란 시위는 무력진압됐고 명령의 배후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제거작전으로 학살자는 순교자와 영웅이 됐고 이라크와 이란의 시민사회는 극도로 위축됐다. 또한 이라크 수니파와 쿠르드 세력의 입지가 축소됐고 시아파와 이란 프록시 조직은 미군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넷째, 미국이 뚜렷한 대안 없이 시아파 종주국을 자극해 역내 긴장도를 높이자 미 동맹·우방국의 불안감이 증폭됐다. 이란의 강력한 라이벌인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이후 미국과 이란 모두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적대국의 군 최고 실세가 제거됐지만 이란 프록시 조직의 보복전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 유전시설을 향해 드론 공격을 바로 시작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역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와 박격포를 연달아 발사했다. 최근 이란과 부쩍 밀착해온 미 동맹국 터키는 일촉즉발의 불확실성 앞에 공식입장 없이 침묵했다. 미국의 반복되는 일방주의 행태로 인해 미 동맹·우방국의 불안감은 높아가고 있으며 대미 신뢰도는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이렇듯 솔레이마니 제거작전은 미국과 미 동맹·우방국의 국익 수호 차원에서 전략적 효과가 낮았다. 그럼에도 작전을 강행한 이유는 미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비용편익계산 때문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의 신중 결정 건의에도 불구하고 드론 공습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행되던 탄핵정국을 돌파하고 다가올 대선에서 강하고 단호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스캔들정국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요 6개국과 이란이 어렵게 이룬 핵합의를 파기했다. 당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게이트 의혹은 커져갔고 성추문과 불법 선거자금 스캔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자신의 핵심 지지세력인 백인 복음주의자의 결집이 절실했고 대통령 개인 의지를 밀어붙이기에는 의회 견제가 덜한 대외정책 분야가 적합했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후 5일 만에 단행된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같은 배경이었다.

또 다른 원인으로서 솔레이마니 제거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정보국 내 특정부서가 매몰비용을 지나치게 의식해 작전 강행에 집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10여년 간 미 중앙정보국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와 함께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추적, 제거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부시(George W. Bush)와 오바마(Barack Obama) 전 미 대통령은 재임 당시 대안 부재 등을 이유로 제거작전을 승인하지 않았다. 미 정보국에겐 눈엣가시였을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최근 이라크에서 친이란 민병대 수뇌부와 회동하며 노출빈도를 높이자 담당부서는 기회를 노려왔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이 중앙정보국장 출신이다. 정보국 담당부서가 작전 실시 며칠 전 일어난 이라크 내 미군기지와 미 대사관 공격의 배후로서 이란 프록시 조직을 지목하며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를 강력히 주장했을 수 있다.

 

2. 이란의 2월 총선 이후 혁명수비대 계열 강경파의 득세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 직후 이란 내 반미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보수 지배연합의 정당성도 높아지는 듯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5일 후 이란은 이라크의 미군기지 두 곳에 확전 의사 없는 미사일 공격을 실시했고 국내 청중을 위한 보복전을 일단락 지으려 했다. 작전명은 ‘순교자 솔레이마니’
였다. 고강도 제재로 인한 경제 피폐와 군 지도부의 공백 때문에 결의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이상의 복수는 무리였다.

하지만 5시간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혁명수비대가 테헤란 외곽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 격추하면서다. 사망 탑승객 167명 가운데 145명이 이란인이었고 혁명수비대는 사건 발생 사흘이 지나서야 결정적 증거 앞에 실수를 인정했다. 테헤란의 대학생과 중산층 시민은 거리로 나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당국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가 유혈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는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지난 2년 간 이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자주 일어났다. 보수 지배연합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지방 중소도시의 보수층과 저소득층마저 민생고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경제파탄의 원인으로서 성직자의 부정부패와 혁명
수비대의 프록시 조직 지원을 지목했다. 미국만 비난하는 당국에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련의 시위가 성직자 체제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보수파를 지지하는 저소득층과 개혁 성향 중산층 사이의 입장 차이로 인해 이들 간의 연대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민생고 해결을, 중산층은 정치적 자유 확대를 앞세우고 있는데 두 세력을 동시에 대표할 만한 구심점이나 체제 도전세력이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보수 지배연합은 핵합의를 주도한 개혁파에 미국발 제재의 책임을 추궁해왔고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이후 압박수위를 더욱 높였다. 여세를 몰아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체제 비판여론 역시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전방위로 보내고 있다.

1월 중순 중산층과 젊은 세대 주도의 시위가 진압된 후 2월 말 이란 총선이 실시됐다. 결과는 보수파의 대승, 개혁파의 참패였다. 보수파는 전체 290석 가운데 221석을 얻은 반면 개혁파는 19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38석은 무소속, 5석은 소수 종교에게 돌아갔고 최다득표자가 20% 이상 획득에 실패한 7석은 4월 재선에서 결정된다.

2016년 총선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였다. 4년 전 선거에서는 개혁파가 121석, 보수파가 83석을 얻었다. 무소속은 81석을 차지했고 소수 종교에게는 5석이 돌아갔다. 무엇보다 개혁파가 최대 격전지 테헤란의 전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반대로 보수파가 수도의 30석 모두를 휩쓸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승리 이면에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출범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이란 약점이 있다. 투표 마감을 6시간이나 연장했으나 투표율을 높이는데 실패해 전국 투표율은 43%, 테헤란 투표율은 26%에 그쳤다. 2016년의 전국 투표율 62%, 테헤란 투표율 50%와 큰 차이를 보였다. 도시 중산층과 청년·여성 유권자로 대표되는 개혁파 지지층은 선거 보이콧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보수파가 장악한 헌법수호
위원회의 사전 자격심사에서 개혁 성향의 총선 예비후보자 7000여 명이 대거 탈락하면서다. 탈락된 후보자 가운데는 개혁파 현직 의원의 75%에 해당하는 90명도 포함됐다. 개혁파 지지세력이 투표 거부를 선언하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애국심과 종교의 의무를 강조하며 선거 참여를 독려했다. 보수파의 승리는 이미 확실했기에 이에 대한 정당성이 필요했다. 선거가 끝난 후엔 낮은 투표율의 원인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사실 2016년 총선에서도 개혁파 예비후보자 6000여 명이 사전 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중산층과 청년층 유권자가 2015년 극적으로 체결된 이란 핵협정을 지지하기 위해 투표소로 대거 집결하면서 투표 마감이 5시간 더 연장됐다. 결국 이들의 전폭적 지지로 개혁파가 테헤란을 석권했고 1년 뒤 대선에서도 개혁파 출신 로하니(Hassan Rouhani)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2020년 총선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결이 아닌 보수세력 내 강경 보수파와 원리주의 보수파의 경합이었다. 강경파는 혁명수비대 출신을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부대 위원회’ 연대를, 원리주의파는 성직자 그룹을 필두로 ‘이슬람 혁명 안정 전선’ 연대를 조직했다. 두 보수파의 경쟁에서 혁명수비대 계열 강경 보수파가 교조주의 보수파를 가볍게 이겼다. 특히 혁명수비대 연대의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 대표는 테헤란에서 68%를 득표해 압도적 1위로 당선됐다. 갈리바프 대표는 혁명수비대 공군 사령관 출신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매우 가까웠으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테헤란 시장을 역임했다.

갈리바프 대표는 이번 총선 승리로 차기 의회 의장의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내년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 이후 혁명수비대 내부에서는 사령관 동선 정보 유출의 책임을 묻는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 이로써 혁명수비대는 지도부 공백기에 일어날 수 있는 엘리트 간의 권력암투나 불안한 눈치보기를 차단했고 내부 결속 다지기 단계로의 안정적 이행을 마쳤다.

 

3. 미국과 이란의 대립구도, 핵문제로 전환

 
미국과 이란의 갈등구도는 이제 확전 우려에서 핵문제로 전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발 출구전략형 보복에 대해 무력대응이 아닌 추가 제재 부과를 선언했다. 물론 이란 프록시 조직은 비대칭·비전통 방법을 통한 소규모 저강도 보복전을 이어가고 있다. 역량이 약해서 잃을 것도 적은 쪽의 틈새 전략이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 당일 핵합의 이행 축소 5단계 조처이자 마지막 단계 돌입을 발표했다. 원심분리기 수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5% 농축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란의 핵합의 파기는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직후 발표되면서 더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고 고강도 제재를 실시하자 1년 후 이란은 미국과 유럽의 핵합의 준수 여부에 맞춰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5월 이란은 첫 조치로서 핵합의 이행 축소 1단계 조처에 들어갔고 이후 60일 마다 단계를 높여갔다.

아직까지 이란은 NPT 체제 하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철회하면 핵합의에 복귀하겠다고도 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핵무기 개발이 이슬람에 위배된다는 칙령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핵협정 탈퇴 이후 개혁파 출신의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 외무장관마저 NPT 탈퇴를 여러 차례 경고했다. 유럽에 중재 역할을 압박하는 동시에 이란 내 보수파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여겨진다.

2월 총선에서 승리한 혁명수비대 계열의 강경 보수파는 대미 급진정책을 새롭게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핵합의를 파기하고 자신 만의 새로운 협상을 통해 이란 핵개발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이란 강경파는 트럼프식 제안에 맞서 협상력을 높이고 제재 철회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력한 충격요법을 제시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가동 시기에 맞춰 핵무기 개발능력 제고를 위한 NPT 탈퇴 선언을 한다면 미 대선판을 흔들 변수가 될 만하다. 중동 내 핵확산 움직임을 즉각 부추기면서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 선점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이란 강경파는 자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전면전을 피할 것이라고 계산한다. 미국의 중동 병력 축소가 더디나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숙청작업과 총선 승리로 집안 단속을 마친 혁명수비대 계열 강경파는 미 대선 전까지 추가 제재를 저항경제로 버티면서 대미 치킨게임에 승부수를 걸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개인적 정치이익과 치적에만 집중하는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이란 강경파에게 나쁜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집권 2기를 치적 쌓기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노벨평화상을 노리며 핵합의로 포장된 ‘나쁜 거래’를 성사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의 핵문제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유럽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겠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사이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1월 이란의 핵파기 선언 이후 영·불·독 3국은 이란 핵협정 지지와 트럼프식 최대 압박 반대를 밝혔다. 유럽의 입장 발표 직전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경고하며 압박을 가했다. 미국과 유럽은 미군의 시리아 철수, NATO 방위금 분담, 중동평화안을 두고도 오래 갈등해왔다.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 고조는 우리에게도 부정적 여파를 미쳤다. 미국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맞서 호위연합체를 조직한 후 우리에게 동참을 요구했다. 우리는 청해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아덴 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가 유사시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 활동하되 미국 주도의 호위체에는 참여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독자 파병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란 강경파가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이란 관계는 경색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쓴 우리의 결정에 대해 의미있는 역외 기여로서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다. 동맹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판단에 맞선 우리의 레버리지가 여전히 약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이 이란 핵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력 건설의 ‘새로운 길’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솔레이마니 제거작전이야말로 자위적 핵무력의 정당한 근거라며 선전전을 벌일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과의 치킨게임에 몰두하느라 북한 문제를 ‘관리’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다. 솔레이마니 사망과 이란 총선 이후 더욱 악화된 미국과 이란 간의 대립이 한반도 의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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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중동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으로도 활동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