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거래 국제사회 인정 못받아
北, 핵무력 시위 강도 더 높인다면
자체 전력·확장억제 조치 강화하고
러에도 우크라 지원 메시지 보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의 가장 큰 동력은 두 체제 모두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푸틴과 김정은 모두 국제사회와 그들의 주민을 향해 자신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핵무기 집착으로 인한 고강도 국제 제재와 3년여의 코로나19 국면 등으로 체제 내구력이 심각하게 고갈됐을 평양으로서는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또 다른 후원자를 내세워 주민들에게 ‘희망 고문’을 강요할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한 북한과 러시아 간의 거래는 우선 포탄·야포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북한산 무기에 대해 러시아가 미그29 등의 부품과 신형 재래 무기 기술을 교환하는 한편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식량 및 에너지를 제공하는 비교적 낮은 수준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대규모 북한산 무기와 러시아 핵무기 기술의 교환과 같은 위험한 거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러시아가 핵무기 기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군사 정찰위성 관련 기술이나 핵잠수함 관련 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다. 다만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이나 고위력 핵탄두 기술 등이 북러 간에 거래되기에는 북한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재래 무기 가치와의 형평성, 운송 수단, 그리고 국제비확산체제 붕괴 책임에 대한 러시아의 부담 등 여러 가지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반적으로 김정은과 푸틴 모두 외교 및 국내 정치적인 메시지 발신에 일차적인 무게중심을 둘 가능성이 있지만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이 회담은 일그러진 만남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국가나 체제 간의 연대나 협력은 지역·국제 차원의 평화·번영에 도움이 될 때 정당성을 인정받고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이 추구하는 핵보유국 지위나 러시아가 지향하는 우크라이나 영토 강점의 기정사실화는 이와는 동떨어진 것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북러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북한의 한반도 긴장 조성 행위가 더 대담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그동안 부정적인 여건들을 애써 무시하고 핵 개발이라는 외통수에 매달리는 경로종속성을 보여왔다. 러시아로부터 받는 경제·군사적 지원의 실제 효용과는 무관하게 북한은 자신들이 상황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자신감에서 핵무력 시위의 도발을 강화하거나 ‘핵 강국’의 착시를 주민들에게 전파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힘에 의한 평화’ 그리고 ‘가치 외교’의 원칙에 따라 세계적인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립 구도하에서 한반도가 가진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을 통해 핵 위협을 더 높이려 한다면 우리 역시 자체적인 대핵(對核) 전력 증강과 미국의 강화된 확장 억제 조치를 택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거래 수준에 따라서는 전술핵 재배치 등 특단의 조치도 한미 간에 논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북한산 무기를 거래할 경우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 본 글은 9월 14일자 서울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