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2013년 신년 메시지가 발표되었다. 특기할 만 한 점은 그 형태가 19년간 지속되던 북한 매체의 ‘신년공동사설’이 아니라, 김정은의 육성 연설이었다는 점이다. 1994년의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이 줄곧 신년공동사설로 신년사를 대체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북한 나름의 어법(語法)으로 볼 수 있다. 이미 하루 전인 2012년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연설이 “기적과 혁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육성 신년사 발표에 대한 예측을 불러온 바 있다.
북한의 신년사는 공식적인 정책선언 문건은 아니고, 새로운 한 해에 대한 북한 내부 결속의 메시지이며, 지도층과 주민이 함께 하는 일종의 다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년사 속에는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북한 지도층의 정세인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해의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2011년과 2012년의 신년공동사설, 그리고 2013년의 신년사를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2011년의 신년공동사설은 김정은이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의 공식 후계자로 대두된 지 약 3개월 만에 발표되었으며, 2012년 공동사설의 경우 김정일의 사망 직후에 나왔다. 공식 후계자로서의 김정은, 새로운 최고지도자로서의 김정은, 그리고 이제는 자기 시대를 열고자 하는 김정은을 둘러싼 북한 지도층의 정세인식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북한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직결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의 자극, 그리고 ‘김정은 스타일’의 선언
2013년의 신년사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발표 형태에서부터 기존과는 다른 파격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을 중심으로 육성 신년사를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외모에서부터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닮은 면이 많고, 계승 기간 중 그러한 이미지를 집중 강조해 온 만큼, 신년사 발표 형식 역시 주민과의 직접 소통이라는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시도는 김일성이라는 특정 개인에 대한 이미지를 차용했다기보다는 1994년 이전이라는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의 경제가 내재적인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이지만, 1996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아직 그 참상이 명확하게는 보이지 않던 시절이다. 또한, 정치적 계승이 마무리된 상태에서 김정일이 ‘인덕정치’, ‘광폭정치’를 외치며, 주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힘쓰겠다고 공언한 시점(1993년)도 1994년 이전이었다. 외부적으로는 이미 그 폐해가 적지 않게 드러난 체제였지만, 주민들에게는 아직 각인되지 않은 시점, 그래서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주민들에게 불러일으킴으로써 김정은은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
신년사에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인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김정은 본인의 구상도 반영된 듯하다.
“평양시를…풍치수려한 도시로 만들며 모든 도ㆍ시ㆍ군들에서…사회주의선경으로 꾸리고 인민들을 위한 현대적인 문화후생시설과 공원∙유원지들을 더 많이 건설하여 우리인민들이 새 시대의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2010년의 김정은 등장을 전후하여 각종 외신에 등장하던 북한 도시 내에서의 유원지 풍경이나, 북한 주민들의 휴대폰 사용 증가와 일맥상통하는 구절이다.
특히, 평양의 도시 현대화나 ‘사회주의 선경’ 건설은 2011년과 2012년의 공동사설에도 등장하지만, 문화후생시설이나 유원지의 건설 등은 2013년의 신년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는 위대한 수령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즉, 과거 김정일이 문화∙예술 등의 진흥을 강조하면서도 은둔형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데 비해 김정은은 주민들의 생활에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주민들의 복리후생과 문화생활을 위해 힘쓰는 지도자라는, 북한 나름으로는 진화된 ‘김정은 스타일’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러한 ‘김정은 스타일’이 북한의 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북한의 문화생활 향상 등 각종 조치들은 여전히 ‘핵심계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정은의 스타일이 계층 간 보상(배급 등)의 차별화를 통한 권력기반의 강화라는 그의 아버지가 사용한 방식의 연장인지, 혹은 더 포괄적인 접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정치적 정통성의 기반으로
그렇다고 해서, 선대 즉 김정일의 시대가 부인된 것은 아니다.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자신의 정통성의 근원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동시에 찾고 있다.
“민족의 어버이이시며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 가장 숭고한 경의와 새해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
“지난해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우리 혁명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당의 령도 밑에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갈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한 력사적인 해였습니다.”
이러한 논리 전개는 2011년 및 2012년의 공동사설과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2011년의 경우 김일성의 유훈과 업적이, 2012년의 경우 김정일의 그것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느낌이 있는데, 이는 공동사설이 발표된 시점의 맥락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김정은의 접근은 북한의 정치 이데올로기상으로도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정권창건 이후 20년간의 권력투쟁을 거치면서 기존의 공산주의 유물론을 뒤엎는 주체사상과 ‘수령론’을 만들어냈다. 철인(哲人)적 혜안을 가진 걸출한 지도자는 능히 인민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혈연계승은 ‘혁명가계론’이라는 또 하나의 독특한 변형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수령론’과 ‘혁명가계론’을 결합할 때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분명해진다. 김일성의 가계여야 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그리고 그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잠재적 경쟁자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이 대안 없는 젊은 수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의 부활과 선군정치 구호의 조심스러운 퇴진?
신년공동사설이든 신년사이든 간에 2013년의 신년 메시지에서 ‘선군’의 구호가 유지될 것인가는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기도 하다. 2012년에 일어난 군부 핵심 실세 이영호의 숙청, 갑작스러운 군 고위층 인사, 인민군 총참모장 현영철 등 군 고위층 인사들의 갑작스러운 계급 강등 등 일련의 조치들은 ‘선군정치’의 기간 중 비대할 정도로 성장한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선군정치’로부터의 성공적인 탈피는 김정일 생전부터 최고지도자에 의한 1인 통치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었다. 1997년 처음 발표된 ‘선군정치’를 통해 북한은 군이 최고지도자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일반적인 공산권의 사례에서 벗어나 최고지도자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군과 동일시하는 체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수령’이 수령답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군을 당과 최고지도자의 도구라는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일 시대 권력의 옹위와 사회적 동원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군을 정치 일선에서 배제시킬 경우, 군의 반발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회통제 메커니즘의 공백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9년 개정헌법에서 ‘선군정치’를 ‘선군사상’으로 변형한 것과 2012년의 헌법 개정에서도 ‘선군’의 구호를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은 이러한 고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채택한 당시의 맥락을 살펴보면 ‘선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대외적인 고립의 심화, ‘고난의 행군’으로 대변되는 극심한 경제난, 주민들의 민심 이반 등 다중적인 문제점들에 봉착해 있었다.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대변하여 주민들을 통제하고 사회를 이끌어갈 보조적 메커니즘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오랜 ‘수령정치’의 기간 중 ‘혁명의 전위대’가 되어야 할 노동당은 더 이상 주민들을 ‘령도’할 구심점이 되지 못했고, 그 역할을 대체할 조직화된 집단은 군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2000년대에 들어 급격히 변화되었다는 징후가 없는 이상 ‘선군’의 구호를 쉽게 포기하기는 힘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힘들다고 하더라도 중ㆍ장기적으로는 ‘선군’으로부터의 탈피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군’을 주도하는 세력을 최고지도자와 당으로 변형시키고, 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상징적∙실질적 기반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년사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한, 김정은은 (어쩌면 이것도 김정일의 유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가닥을 제대로 잡은 듯하다.
2013년 신년사에서도 ‘선군’이란 단어는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자신도 “우리는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 길을 따라 끝까지 곧바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선군의 가치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선군’이란 단어의 등장 횟수는 2011년과 2012년의 신년공동사설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2011년의 공동사설에서는 14차례, 2012년에는 17차례나 등장했던 ‘선군’의 구호는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는 6차례 등장하는 데 그쳤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국방정책에 있어 당의 영도를 강조한 부분이다.
“국방공업부문에서는 ‘당의 군사전략사상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우리 식의 첨단무장장비들을 더 많이 만들어 백두산 혁명 강군의 병기창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야 합니다.”
북한의 신년 메시지에서 군사력 건설에까지 당의 통제가 강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당 사업을 1970년대처럼 화선식으로 전환시키고 김정일 애국주의를 실천 활동에 철저히 구현하도록 하는 데 당사업의 화력을 집중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구절 역시 당의 역할 복원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로동당의 역할이 일정부분 존재하였던 1970년대와 같은 수준으로 당의 활력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 인식의 일단일 것이다. ‘선군’ 구호의 조심스러운 퇴진과 그 기간 동안의 당의 역할의 부활, 2013년 김정은의 신년사는 북한의 내부 정치안정화를 위한 그 나름의 해법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경제적 문제
2011년과 2012년의 공동사설에서도 나타나는 바이지만, 경제 부문은 항상 북한의 신년 메시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이는 1990년대 이후 북한이 당면해 온 경제난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들은 ‘인민생활의 향상’, ‘농업과 경공업 부분의 강조’를 2013년 신년사의 특징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2013년 신년사에서만 특기할 만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그 이전의 메시지에서도 일관되게 강조되어 온 것들이다.
다만, 경제강국의 건설을 위한 기반으로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기간공업부문의 중요생산기지들을 현대과학기술에 기초하여 훌륭히 개건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다지였습니다”라는 표현이라든지,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려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아야 하겠습니다”라는 언급은 모두 북한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중요한 관건이라는 김정은과 북한 지도층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김정은 역시 과거와 같은 인력집약적인 생산성의 향상에는 한계가 있으며, 각종 부분에서의 기술적 역량을 다지는 것이 강성대국의 건설과 경제의 회생에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에 승부수를 띄웠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북한의 2013년 신년사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2012년 12월 12일에 이루어진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이었다. 장거리 로켓 발사는 전체적인 사상적 기조, 경제건설, 국방부문을 가리지 않고 강조되었다.
“우리의 미더운 과학자, 기술자들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과적으로 발사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고 주체조선의 우주과학기술과 종합적 국력을 힘 있게 과시하였습니다…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특대사변이였습니다.”
신년사 앞부분에 등장한 이 구절은 북한이 왜 2012년에 들어 국제적 압력과 중국의 은근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층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중ㆍ장기적인 체제의 사활을 좌우하는 승부수로 보았고, 그 성공을 새로운 김정은 체제의 무엇보다 큰 성과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계승한 지도자, 그리고 선대로부터의 과업을 실현해 낸 의지의 ‘수령’이 아마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이미지였을 것이다.
“주체적인 실용위성을 제작∙발사하여 선군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떨친 그 기세로…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 이것이 올해에 우리 당과 인민이 들고나가야 할 투쟁구호입니다”
이 구절은 장거리 로켓의 발사 성공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북한 강성대국의 상징처럼 내세워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년사를 통해 장거리 로켓이 지니는 군사적 함축성을 은근히 암시하는 일 역시 병행했다.
“우리의 혁명무력은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 경축 열병식을 통하여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고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 수 있는 우리 식의 현대적 무장장비를 갖춘 백두산 혁명강군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이는 2012년 4월 25일의 인민군 창건 기념일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탄도미사일의 진위 논란이 서방의 과학자들 사이에 있었던 것을 의식한 조치인 동시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술이 이미 상당수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2012년 개정 헌법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명기했던 사실에 비하여 신년사에서는 핵 능력과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는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행위를 피하는 한편, 향후의 직거래관계 개설을 위한 협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남북대화, 아직은 유보적인 가능성
언론들이 2013년 김정은 신년사의 특징 중 하나로 남북한 간의 대립구도 해소, 남북 공동 선언 등 기존 합의의 준수 등을 거론한 것을 들고 있는데, 이는 2011년 및 2012년의 공동사설과 비교하면 특기할 만한 것은 아니다. “지나온 북남관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동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입니다.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동족대결정책을 버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ㆍ통일의 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이는 이전과 유사한 수준의 표현이다. 매년 강조하던 반제∙자주의 원론적인 키워드를 다시 한 번 강조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2012년 북한의 대남전략을 고려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2012년에 북한이 보인 대남 행태의 주요 메시지는 한국을 미ㆍ북 직거래 관계의 개설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ㆍ북 관계 개선을 위한 촉진제라면 모를까 남북한관계에 모든 대외적인 역량을 집중할 만한 의지가 북한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2012년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전에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에게는 오바마의 재선이 한국에서의 대통령 선거 결과보다 더 확실한 대외정책의 판단요인이었으며, 한국에서 누가 당선되는가는 큰 고려요소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외적인 공약상 어떤 새로운 한국 정부든 수준의 차이는 있더라도 남북 대화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둔 접근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2013년 신년사에서 남북한 관계를 원론적인 수준으로 취급한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남조선 보수당국’(2011년), ‘남조선 보수집권세력’(2012년) 등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은 등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새로운 정부의 정책방향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구도를 보는 북한의 시각이다. 2011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경애하는 장군님의 두 차례의 중국방문은 전통적인 조중친선관계를 새로운 단계에 올려 세우고 우리 혁명의 유리한 환경을 마련한 력사적인 장정이였다.”라고 평가하는 가하면, 2012년에는 “지난해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진행하신 중국과 로씨야에 대한 력사적 방문은 세계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보장하고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발전시키는데서 중대한 계기로 되었다.”라고 언급하였다. 중ㆍ러와의 관계에서 이상 징후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정치∙경제적 체제 수호에는 큰 이상이 없다는 인식을 반증하는 구절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정은이 2011년 및 2012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친선협조 관계를 확대발전시키며…”라고 언급한 것은 적어도 북한 지도층의 시각에서는 중ㆍ러가 자신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임을 굳게 믿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안착하기에는 아직 머나먼 김정은 체제, 그리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적인 맥락에서 2013년 육성으로 발표된 신년사는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당을 활용한 주민 및 사회 통제, 군의 정치적 영향력의 견제와 궁극적으로는 ‘선군’의 퇴장, 그리고 다른 권력엘리트들이 가지지 못한 정통성 강조를 통한 1인 통치체제의 재강화가 김정은이 신년에 꾼 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다. 단기적인 도전세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김정은의 일천한 국정 운영 경험은 그의 최대의 적이다.
오랜 기간 1인 독재로 인해 김정일 사망 이후 정국 전반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통제할 인물이 북한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중기적으로 북한 정치의 최대 불안요인이다. 김정은이 그 역할을 맡기에는 카리스마나 경험 면에서 부족하며, 결국 그를 정점으로 한 일종의 권력분점 혹은 과두정치(oligarchy)가 불가피하다. 김정일이 즐겨 사용했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로 인해 나머지의 권력엘리트들도 종합적인 통치역량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체도 장기적으로 유지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최고 지도층이 일종의 과두정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통치이데올로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며, 이것이 권위 있는 것으로 인민들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한다. 과거 김정일이 아버지의 사상을 (독창적인 것이든 주변 관변학자들의 작품이건 간에) 끊임없이 재해석했던 것과 비교할 때, 지금 북한에서는 그러한 권위 있는 신탁(神託) 해석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수령 독재가 지속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재 체제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체제의 불안정성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2013년 김정은의 신년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훈을 등에 업고 화려한 비전을 이야기했지만, 곳곳에 불안정 요소를 내포한 미완성 교향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향후 추진해 나가야 할 대북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 자신의 분명한 원칙과 방향성을 가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을 상대할 필요가 있다.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그 이전부터도 추구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많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체제의 단기적 생존력과 중ㆍ장기적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북한 붕괴론에 중심을 둔 접근도, 유화일변도의 정책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 국력격차에 대한 역전 불가능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과 “제2의 선의의 경쟁”을 시작하겠다는 메시지의 전달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한이 중ㆍ장기적인 공존을 전제로 한 대화와 제도적 협력의 틀을 마련하자는 제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 등 일정 임기 동안의 성과에 집착하여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가 설정한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현 시점부터 대화와 교류∙협력의 복원을 시작하되, 북한이 합의의 기본 정신을 다시 훼손할 경우 이전보다 훨씬 단호한 카드를 언제든지 과단성 있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정책조율은 보다 시간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정은과 북한 지도층의 시선은 이미 오바마 2기 행정부를 향하고 있다. 대북정책에 있어 한국과 미국이 설정하고 있는 ‘바람직한 최종상황 (desirable end-state) ’이 일치하는지, 미ㆍ북 관계 발전과 남북관계 발전을 상호 연계할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 중에 성급히 추진하기 보다는 우리의 정책검토와 입안이 완성되고 난 이후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책검토와 관련하여 단기적 관점이나 현안 중심의 접근을 지양하고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문제를 분석하고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을 강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과 추진방향 그리고 전략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역할의 기대를 이제는 거두어들여야 한다. 전체적인 동아시아의 역학구도 상, 중ㆍ러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다. 북한의 믿음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ㆍ러에 대한 무리한 요구는 오히려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힐 수 있다. 중ㆍ러가 누구도 반박하기 힘든 국제적 합의의 과정에 이끌려 들어오도록 단기보다는 중기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