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2월 26일~30일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이하 8기9차 전원회의)1를 개최하여 2023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한편, 2024년의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2 이로써 북한은 2020년 이래 5년 연속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 없이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의 결과 보고 및 결정문을 중심으로 새해 과제를 제시하는 형태를 취했다.3 8기9차 전원회의의 주요 의제는 ① “2023년도 당·국가 주요 정책 집행정형총화 및 2024년도 투쟁방향”, ② “학생소년들을 위한 사회주의시책집행에서 책임성을 높일 데 대하여”, ③ 당중앙검사위원회의 2023년 사업정형 보고, ④ 2023년도 국가예산집행정형과 2024년도 국가예산안 심의, ⑤ “현시기 당의 영도적 기능 강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에 대하여”, ⑥ 조직 문제 등 6개였지만, 이 중 특기할 만한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의 의제였다.4 첫 번째 의제는 2023년의 결산과 2024년의 지향을 다룬 것이고, 두 번째 의제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북한 정권 차원의 조치에 관한 것이며, 마지막은 북한 권력 엘리트들의 인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8기9차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은 국방과 경제 분야에서의 ‘찬란한 성과’를 과시하는 한편, 2024년의 ‘새로운 투쟁’을 다짐했다. 특히, 대미 정책에서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펼칠 것을 천명하는 한편,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함으로써 2024년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8기9차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은과 노동당이 당면한 문제점도 적지 않게 암시되었다. 북한은 2023년 중 대부분의 경제 목표가 초과 달성되었다고 공언했지만, 식량의 증산에도 불구하고 ‘애국미’를 모집하는 등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었고, 당의 주요 간부 인사에 있어서도 군사분야 최고 실권자 자리를 놓고 박정천과 리병철의 위상이 바뀌는 등 어느 한 명에게 오래 직위를 담당시키지 않고 북한판 회전문 인사를 반복함으로써 2인자 그룹이 취약해지는 문제점이 반복되었다. 8기9차 전원회의 결과는 북러 밀착과 세계 각 지역에서의 분쟁 등 국제정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평양의 판단을 반영하고 있고, 북한은 2024년에도 핵능력 고도화 등 기존의 노선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한편, 각종 대남 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우리로서도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 그리고 우리 자체의 대비태세를 더욱 증강할 필요가 있고, 북한의 핵위협 증대에 상응하여 ‘워싱턴 선언’을 뛰어넘는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의 강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한, 대북 정보유입과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각성 유도 등 북한의 취약점을 적극 공략함으로써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 지도부들이 변화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8기9차 전원회의 결과
1. 전반적 국력의 대폭 성장 선언
김정은은 당 전원회의에서 2023년도 ‘투쟁’을 통해 “나라의 전반적 국력을 크게 증대”시켜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의 시대를 열어 제꼈다(젖혔다)”면서 ‘2023년도 사업성과’를 과거와는 달리 큰 비중을 두어 소개했다. 2022년 연말에는 그해 사업 평가로 “괄목할 만한 성과와 진전을 이룩”했고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면서 개괄적으로 표현5하는 데 그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2024년 투쟁과업”에서 분리해 “2023년도 정책집행정형 총화”결과를 발표하면서 전반적으로 2023년을 “국력제고와 국위선양에서 전환의 해, 변혁의 해”로 규정하고 “8차 당대회 이후 올해처럼 경이적인 승리와 사변으로 충만된 해는 없었다”고 자평했다.
김정은은 2023년도의 ‘불리한 형세’로 “코로나 사태 이후 엄격한 방역 조치 유지, 적대세력들의 제재 압박, 지난해 산생된 심각한 식량난”을 거론하면서, 어려운 여건에도 당 중앙의 올바른 투쟁 방향 제시로 “성공적 수행을 담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고’는 경제사업, 정찰위성발사 등 과학·기술 분야, 교육·보건·체육 부문의 성과, 지방에서 이룩한 경제·문화사업 성과, 헌법에 국가핵무력강화정책 고착 등 법적 담보구축 성과, 대의원 선거 방법의 ‘민주주의적’ 개선, 애국미 헌납 등 사회주의 애국 운동 전개, 3차례의 열병식 등 정치·군사 축전 진행, ‘새시대 5대당건설로선’ 관철 투쟁 전개, 화성포-18형 발사훈련·전술핵 타격 훈련·우주정찰자산 보유 등 국방력 강화 성과, ‘주동적 외교전략 구사’를 2023년도 치적으로 내세웠다.6
이와 같이, 북한은 8기9차 전원회의를 2023년 중 북한 정권이 거둔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였는데, 이는 장기간의 국제제재로 인해 내핍(耐乏)을 강요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고무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도 북한이 건재하다는 인상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자평하면서도 실제 주민생활 향상과 관련된 성과들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2024년의 목표로 제시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2.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대한 긍정적 전망 제시
‘보고’(총리 김덕훈 보고 추정)는 이례적으로 “경제 전반의 발전지표”를 상세히 소개했다. 알곡 103% 성장 등 “12개 중요고지가 모두 점령”되었고, 2023년 경제성장 규모는 산화철·공작기계 등 중요지표 생산량이 크게 늘어 2020년 대비 국내총생산액이 1.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알곡생산목표를 넘쳐 수행한 것이 2023년 경제사업에서 가장 값비싼 성과”라고 했다.7 이어 각종 공장·물길공사·살림집 건설 성과와 기간공업 부문의 성과를 개괄하면서, 특히 룡성기계연합기업소가 대형압축기를 제작하는 등 “전례 없는 혁신으로 경제 부문에 잠복해 있는 패배주의와 기술신비주의8에 된 타격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전반적으로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은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3차년도를 단순히 ‘경과’한 정도가 아니고, “전진속도를 더욱 가속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과 든든한 발판을 구축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쟁취”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 개시 이후 3년 연속 성과 부진 상태에 빠졌던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9
다만,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따져볼 소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GDP 성장에 대한 평가이다. 북한은 2023년 GDP와 관련해 ‘2020년 대비 1.4배 성장’을 주장하고 있으나, 2020년 경제 규모는 수년간의 제재 효과로 이미 크게 위축된 상태라서 큰 의미 부여에 한계가 있고, ‘12개 중요고지 점령’도 수치상의 실적 이상으로 질적인 달성 여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전체 5개년 계획에서 3년간의 부진을 1년 만에 만회할 수 있는 성장을 했다는 것, 그것도 “3년나마 지속된 국제적인 공중보건비상사태가 해제된 이후로도 국가적으로 실시한 엄격한 방역조치로 하여 모든 부문이 많은 제약을 받았고 적대세력, 방해세력들의 극악한 제재압박에도 대처해야 했던” 여건 속에서 이러한 성장을 달성했다는 논리 자체가 무리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량 문제이다. 북한은 8기9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알곡생산 목표’를 초과달성(우리 농촌진흥청은 482만t으로 추정)했다고 자평했으나, 여전히 세계농업기구 등이 추산하는 식량 필요량에는 70만t가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2023년 작황이 상대적으로 좋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주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더욱이 전원회의에서는 주민들이 생산 식량을 ‘애국미’로 헌납한 사실이 보고되기도 했는데, 이는 逆으로 북한이 전반적으로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2024년 말에 가서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5개년 계획 수행의 명백한 실천적 담보가 확보되어야 합니다”라는 보고 내용 역시 목표 대비 실적의 달성 여부를 의심케 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3. 군사 분야 성과의 집중 강조
군사 분야에서의 업적이 집중 강조된 것은 이번 8기9차 전원회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김정은의 시정연설과 사업 보고 등을 통해 북한은 “력대수준을 계속 초월하며 조선인민군창건 75돐,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 공화국창건 75돐을 계기로 세 차례나 성대히 거행된 열병식을 비롯한 대정치군사축전 개최”를 부각했는데, 이는 내세울 업적이 제한된 김정은의 군사 분야 집중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3년 사업 성과 전반을 평가하면서 “총괄적으로 우리 혁명은 당중앙위원회 제8기에 들어와 국방 분야만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모든 분야가 동시에 일어서고” 등의 표현을 쓴 것 역시 북한 정권이 2023년 중 가장 주력한 성장이 군사 분야였음을 반증한다.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화성-17형’, ‘화성-18형’, 그리고 각종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발사 성공을 언급했고, 특히 북한의 대륙간탄도탄(ICBM)과 관련하여 ‘시험발사’와 함께 ‘발사훈련’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들 무기체계가 실전배치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다.
동시에 8기9차 전원회의에서는 북한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와 한-미-일 공조를 매우 껄끄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은 ‘워싱턴선언’과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 협의 등을 언급하고, 미국의 핵잠수함 및 핵추진 항모 입항, 전략폭격기 B-52 착륙, 미국의 UN군 사령부 기능 강화 등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는 확장억제와 관련된 대북 심리적 억제 기능이 제한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함을 의미하며, 더욱 구체적인 확장억제 강화 조치의 시행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4. 호전적인 대남/대외 전략방향 천명
전원회의 연설에서 대외사업 방침과 관련, 김정은은 “사회주의 집권당들과의 관계 발전에 주력”하면서 “미국의 패권 전략에 반기를 드는 반제 자주적 나라들과의 관계 발전, 국제적 규모에서 공동투쟁을 과감히 전개해 나갈 데 대한 과업”을 거론함으로 중러와의 연대와 제3세계 국가들과의 반미투쟁 강화를 예고했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해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 투쟁 원칙”에서 나아가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대응” 공언했다.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할 데 대한 로선이 제시되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로 고착되었다”면서 ”당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 기구들을 정리·개편해 근본적인 (대남)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반부의 전 령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준비를 강구할 데 대한 중요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하여 대남사업을 무력 적화 통일의 보조사업으로 운용할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거나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하는 것이 우리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도 주장해 한국 사회 내 보다 적극적인 ‘친북·반미 투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미가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번 북한의 전원회의는 2023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등의 표현 변경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국내 일부에서는 이러한 표현 변경을 북한이 남북 공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해석했지만,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상호 인정의 의미가 아닌 멸칭(蔑稱)이었음에 다시 확인되었다. 인용부호를 삭제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지만, ‘남조선 놈들’, ‘충견’, ‘특등주구’ 등의 표현이 이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은 한국이 대화나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5. 조직 및 인사 변화
전반적으로 8기9차 전원회의에서의 조직 개편 및 인사는 참신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보다는 북한판 ‘회전문 인사’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박정천의 직위 변동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2인자 그룹에 속하는 인물들도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김정은의 개인 권력 공고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2인자 그룹의 취약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 당 정치국 위원으로 박정천·전현철을 직접 보선하고, 조춘룡을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보선했다. 또 박정천(당 비서 겸 군정지도부장), 전현철(당 비서 겸 경제부장), 조춘룡(당 비서 겸 군수공업부장)을 중앙당 비서로 선거하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위원을 소환 및 보선했다”면서 박정천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보선함으로써 전임자 이병철의 은퇴를 시사했다. 일부 당 부장들을 해임 및 임명했다면서 “김재룡(당비서 겸 간부부장), 전현철(당비서 겸 경제부장), 주창일(선전선동부장), 김철삼(규율조사부장), 주철규(농업부장)를 중앙당 부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리병철(1948년생)이 차지했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는 박정천이, 군수담당 당비서직은 조춘룡이 차지함으로써 리병철은 정치국 상무위원직만 보유하게 되어 은퇴 수순을 밟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천은 2022년 4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원수)에 등용되었다가 그해 12월 ‘훈련 소홀, 지휘통솔 미흡’을 이유(추정)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상무위원, 비서에서 소환되었으며, 2023년 8월 ‘당 군정지도부장’ 직책을 맡은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박정천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비서 겸 군정지도부장으로서 다시 군부 1인자로 부상했다.
당비서 겸 경제부장은 오수용(2021.2~2022.6, 2023.6~12)과 전현철(2022.6~2023.6, 2023.12~)이 번갈아 맡았다가 이번에 전현철이 다시 부장직에 올랐고, 오수용(1947년생)은 다른 직위로 이동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재룡은 당 조직부장에서 당비서 겸 규율조사부장으로, 이번에는 당비서 겸 간부부장으로 보임되어, 당비서 겸 조직비서 조용원의 측근으로 역할이 필요한 부서에 번갈아 배치되어 조용원의 조직 장악을 측면 지원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당 농업부장 리철만과 내각 농업위원장 주철규는 이번에 농정 입안과 집행관리 업무를 맞교대했다. 이밖에 당중앙검사위원회 부위원장에 김철삼(당 규율조사부장)을, 최준호(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와 김철원(중앙검찰소 소장)을 위원으로 보선했고, 김영환을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박성철을 평북도당 책임비서로 임명했다. 정부기관에서는 리철만을 내각 부총리 겸 농업위원장에, 김명훈을 내각 부총리에, 김경준을 국토환경보호상에, 국명호를 철도상으로, 정무림을 보건상으로, 리상도를 채취공업상으로, 리충길을 국가과학기술위원장으로, 김철원을 중앙검찰소 소장으로, 전일호를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총장으로, 고병현을 제2경제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북한의 2024년 정책노선 전망: 경제 실적의 독려와 한반도 긴장 고조
8기9차 전원회의는 2024년도 과제를 전년처럼 경제과제, 문화건설, 국방력 강화, 대외사업 원칙 및 대남사업 방향, 당의 전투력 강화 문제 순서로 제시했다. 비중 면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경제·사회 과제는 개략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군사 및 대미·대남 부문 과업 제시에 비중을 두면서도 이번에는 경제·사회 부문의 2배 이상을 할애하고, 대외환경의 엄중성과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대미 ‘초강경 대응’, 대남 핵전쟁 불사‘ 주장 등 위협 수위를 높인 점이 특징이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외부적으로 표명된 것과는 달리 경제적인 면에서의 해결과제가 여전히 상당하다는 북한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사회 과제와 관련, 경제의 명맥을 살리기 위해 ‘행정경제사업체계 강화 및 내각의 책임성과 역할 제고’를 “선차적으로 주목해야 할 문제”라고 거론함으로써 2024년 봄 1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큰 폭의 국가지도기구 재편 혹은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통한 내각의 역할 독려 역시 예상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당면한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8기9차 전원회의를 통해 ‘획기적 성과’를 자평했지만, 2024년은 북한의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4차년도이며, 현재까지의 추세상 이 계획 역시 1차 계획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수치상의 목표치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지만, 에너지, 광물 생산 등에 있어서의 획기적 개선을 다짐한 바 있는데, 2023년 만의 성과만으로 3년간의 타격을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이 각종 수치를 통해 계획의 달성이 가능함을 포장할 것이지만, 북한 주민들이 체감하는 성장세는 여전히 부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제적 ‘생존’이 아니라, 김정은의 업적 정통성을 강화할 ‘성장’이고, 이는 정권/체제 안정을 위한 핵심요건이다. 이를 고려할 때, 2024년 중 ‘ㅇㅇ일 전투’를 비롯한 실적 달성 독려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사상적으로도 ‘자강력’에 대한 강조가 다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이번 회의에서 2024년 투쟁 과제와는 별도 의제로 “학생·소년들을 위한 사회주의 시책 집행에서 책임성을 높일 데 대하여”를 상정한 것 역시 실적 독려에 따른 주민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학생들의 필수용품 책임 보장은 당의 일관된 정책”이라면서 “경공업성을 비롯한 관련 단위들이 새해에 전당·전국가적 사업으로 학생용 교복, 가방, 신발을 생산·공급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청소년 세대들의 생활 향상을 통해 북한이 추구하는 자강력 강화와 핵보유국 지위 획득이 세대를 이어 계속되어야 할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2024년 중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및 재래도발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여러 주변국에서의 선거 등 주변 정세의 유동성과 북-중-러의 반미연대 강화로 대외 여건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곡물 풍작·국경무역 재개·대러 밀착을 통한 외화벌이 등으로 경제난도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적어도 내부적으로 ‘내외여건 개선’을 선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여건 개선으로 여전히 자신에게 시간과 기회가 있다고 보고 주민들에게 인고(忍苦)를 강요하면서 대미 벼랑 끝 전술로 ‘핵보유국’ 공인과 함께 제재 완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회의에서도 김정은은 “핵전쟁 접경에 이른 조선반도의 안보환경과 적대세력들의 군사적 대결 책동을 분석하고 국가방위력의 급진적 발전을 가속화할 데 대한 중대한 결단을 천명”했고, 북한군에 대해 “압도적인 전쟁대응 능력과 철저한 군사준비 태세를 구비”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2024년의 남북관계는 예전에 비해 더욱 악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실제로, 8기9차 전원회의가 끝난 직후인 2024년 1월 2일, 북한은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의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의 통일 및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했고, 1월 5일~7일에는 3일 연속 서해 북방 한계선 인근에서의 포격훈련을 실시했으며, 1월 7일에는 김여정 담화를 통해 6일의 포사격이 폭발물을 이용한 ‘기만’이었다고 주장했다.10 북한은 향후에도 (1) 북한이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중·저강도 도발로, (2) 한국 사회를 자극하고 국론분열을 유도하며, (3) 갈등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방안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려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202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여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를 높이는 한편 미북 협상에서의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2017년의 데자뷔 효과를 노릴 것으로 판단된다.
연중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발사 역시 계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국방력발전 5대 중점목표 수행에서 미진된 과업을 빠른 기간 안에 집행”할 것을 다짐했는데, 이는 (1) 극초음속 비행체, (2) 사거리 1만 5천Km의 정밀 탄도미사일, (3) 핵어뢰 및 ‘핵잠수함’, (4) 고체연료 ICBM, (5) 초대형 핵탄두 등의 5개 과업을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중 아직 북한이 형식적으로라도 시현하지 못한 것은 ‘초대형 핵탄두’이다. 또한 북한이 최근 ‘전술핵’ 능력을 집중 강조해왔고, 2023년 중 ‘화산-31’ 소형 핵탄두를 선보인 사실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핵탄두는 모두 위력 시위를 위해서는 핵실험을 필요로 한다. 2023년의 북러 밀착을 통해 북한은 핵실험 이후 국제적 대북제재의 격상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판단할 것이고, 이는 그동안 징후만 노출되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 핵실험 동기를 강화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대응방향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로서는 우선 ‘가치외교’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변함없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당분간 기존의 대남정책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고, 북러 밀착을 강화하고, 북-중-러 3자 연대를 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위협의 증강에 상응하여 ‘워싱턴 선언’을 뛰어넘는 확장억제 조치의 획기적 증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일상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단순한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 증가나 NCG 협의의 강화로는 북한에 대해 억제효과를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드러난 만큼, 전술핵 재배치 논의를 비롯한 획기적 조치들이 이제 한미 간의 협의 테이블에 올려져야 한다.
북한의 대남 전술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는 우리 국내의 여론을 분열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 대응도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이 결국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나 도발을 유도했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 북한이 사용하는 ‘강대강’ 용어의 핵심이고, 이를 국내에서 그냥 수용하는 분위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 뿐만 아니라 재래도발 능력을 수시로 과시함으로써 국내의 안보불안감을 유도하는 한편, 대북 타협론이나 ‘평화론’을 강화하는 것 역시 북한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한반도 긴장과 관련하여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려 노력하지만, 우리는 잘 대비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긴요하다. 남북한 간의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이는 북한이 노리는 바라는 점을 부각하고,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안 심리를 증폭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실제적인 면에서 잘 대비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한편, 현재의 남북한 간 긴장이 북한이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체제안전 보장”이 결국은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배격 및 부정이라는 점 역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2체제하의 공존이 아니고, 북한의 주도권에 대한 한국이 수용, 더 나아가 한국이 역사적으로 이루어 온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변질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이 “체제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의 체제 자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 내부가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북한 권력엘리트들과 북한 주민들이 자각하게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김정은으로 인해 내핍을 강요당해야 한다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 김정은 때문에 체제가 궤멸되어 모두가 함께 파멸되는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권력엘리트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심각한 불안정 상황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김정은에게 중요한 부담을 안겨주어 결국 현재와 같은 비타협적 정책을 수정하게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선제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북한의 도발 지속 시 시행할 대북 심리전 증강대책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선별적 재개, 대북 방송 확대 개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의 규정무력화(소극적 단속)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야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당 중앙위원 전체가 참석하는, 당대회나 당대표자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중의 최고 정책결정기구로, 북한의 주요 정책노선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회의체이다. ‘확대회의’에는 당 중앙위원 외에 당의 주요 부서 책임자 및 관계자들까지 참석하는데, 이는 각종 사업의 결산 및 보고를 위해서는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2. 8기9차 전원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2024 위대한 우리 국가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자,” 『로동신문』(2023.12.31.)을 참조할 것.
- 3. 물론 전원회의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은 김정은의 연설이나 발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 4. 의제 ③관련 북한은 중앙검사위원회가 “당 규율 건설로선 집행과 당 재정·물질적 담보 임무를 원만히 수행”했다고 간략히 밝혔고, ④는 국가 예·결산안에 대한 당의 사전심사 절차로서 1월 15일 개최될 최고인민회의에서 그 윤곽이 밝혀질 것이며, ⑤는 “토의·가결했다”고만 밝혔는데 김정은 유일영도 체계 강화 문제인 것으로 추정된다.
- 5. 김정은은 2022년 성과사업으로 ‘새 당 건설이론 제시’, ‘핵무력 정책 법제화’, 국방력 강화, 평양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함남 연포온실농장 건설, 농촌에 본보기 살림집 건설을 열거했다. 특히 미사일 개발과 시험발사·전술핵 운용부대 훈련 등을 “국방력 강화와 대적(對敵) 투쟁에서 달성된 극적인 변화”로 평가했다.
- 6. 김정은은 2023년 12월 1일 정치국 회의에서 2023년에 북한은 “국가경제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장성 추이가 뚜렷해지고 농업과 건설 부문에서 커다란 진전이 이룩되었으며, 특히 국가방위력 강화에서 사변적 변혁들이 일어난 것을 비롯해, 국가사업 전반이 발전 지향성을 띠고 활기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12월 27일 노동신문은 당 전원회의 개막 사실을 보도하면서 2023년 성과로 새시대 5대 당건설 노선 제시, 헌법에 핵무력정책 명기, 전략무기 개발‧우주정찰자산 보유 등 국방력발전 5개년 계획 중점목표들 점령, 관개건설 목표 조기 완수 및 “보기 드문 풍작” 등 농업전선 진흥, 살림집 등 건설공사를 내세웠다.
- 7. 북한은 지난해 가을부터 ‘전례 없는 좋은 작황’을 연일 선전했다. 북한 당국이 ‘긴장한 식량 사정’ 문제 해결을 지난 3년간 전원회의 때마다 강조해 식량 사정이 개선되지 않으면 지도부 리더십이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12월 15일 2023년도 북한 식량작물 생산량을 482만t으로 추정했다. 지난해보다 31만t 증가했지만 연간 수요량(580만t 추정) 대비 여전히 절대량이 부족하다.
- 8. 김정은은 2022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그동안 김일성이 제시한 자립 사상을 구현하며 패배주의와 기술 신비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강하게 투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낡은 사상 경향이 아직도 교묘한 외피를 쓰고 일부 경제 일군들 속에 고질병, 토착병처럼 잠복해 있는데 대해 엄책”했다.
- 9. 북한은 2016~2021년간의 5개년 계획은 ‘국가경제발전5개년 전략’으로, 2021년 시작된 5개년 계획은 ‘국가경제발전5개년 계획’으로 부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두 계획의 비교를 위해 경제발전계획으로 통칭한다.
- 10. 김여정의 두 차례 담화에 대해서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년 메쎄지,” 『로동신문』(2024.01.03); “오판, 억측, 억지, 오기는 만회할 수 없는 화난을 초래할 것이다,” 『조선중앙통신』(2024.01.0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