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올해 들어 북한이 연일 선전하는 지방공업 발전 정책을 평가한다.1 김정은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지방주민들의 생필품 공급 부족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매년 20개의 시·군에 기초식품, 의류, 일용품을 생산하는 경공업 공장을 10년간 지속적으로 건설하는 이른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발제했다. 이 정책은 1월 25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구체화되어, 중앙에서 자금과 자재를 보장하고 군인 건설자들을 동원하여 공장을 건설하며, 완공 후 지방이 책임지고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확정되었다.
이 사업 추진과 관련해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는 자원·자금의 제약으로 이견이 있었으나 김정은이 “내가 직접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2월 28일 평북 성천군을 시작으로 3월 중순까지 20개 시군의 지방공장건설 착공식이 있었고, 4월 말 현재 기초 골조공사를 하는 등 ‘애국 군인들의 열의’로 빠른 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북한은 ‘인민을 하늘로, 삶의 전부로’ 여기는 김정은의 ‘애민정치’에 초점을 맞춰 지방발전 정책을 연일 선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예정에 없던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평양 중심의 시혜 조치로 북한의 지방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이며, 내년 노동당 창건 80돌(2025.10)을 앞두고 치적 거리로 내세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지방공장이 건설되더라도 중앙에서의 지속적인 기계설비 지원이나 지방 자체의 원자재 및 에너지 확보가 어려워 과거 지역별 경제특구 추진 사례처럼 실제 운영이 부실해질 소지가 다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부 관찰자 입장에서는 북한의 지방발전 정책 추진을 보고 자칫 김정은의 主관심사가 핵미사일 고도화에서 민생 문제로 전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병진노선 선포 사례처럼 핵 개발 우선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여러 경제사업 우선순위 조정이 없다는 점에서 지방주민 불만 무마를 위한 시간 벌기 임시방편에 그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실패로 귀결되면 지방의 민심 이반은 더욱 증폭되고 김정은의 지도력 손상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단기적으로 북한이 내부단속을 강화하면서 대남도발과 함께 대미협상의 돌파구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중기적으로는 북한의 정세변동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핵미사일 고도화와 민생부진이라는 양극단 정책에 따른 구조적 모순 심화로 김정은이 선택의 기로(岐路)에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1. 지방발전정책 추진 배경
가. 평양과 지방의 생활 격차
사회주의 국가들이 ‘평등 사회 실현’을 국가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음에도 상당한 수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북한에도 적용된다. 북한 사회의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출신성분에 따른 차별 대우로부터 기인한다. 출신성분이 거주지역을 결정하고, 지역 간 당국의 수혜 불평등은 소득과 재산 수준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2017년 유니세프(UNICEF)와 북한 중앙통계국의 공동 조사 결과 발표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상위(40%)·중위(40%)·하위(20%)로 나눌 때, 평양 주민의 86.2%와 도시 주민의 60%가 상위 생활 수준에 속하고, 농촌 주민의 50%가 중위, 그리고 41.2%가 하위 생활 수준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 평양, 도시, 시골에 사느냐에 따라 주식에서 입쌀, 옥수수밥, 강냉이죽의 비율이 달라지는 셈이다.3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북한 인구는 2020년 기준 2584만 명이다. 그중 평양 인구가 310만 명이고, 평양을 포함한 도시인구가 1611만 명으로 62%이며, 농촌인구는 972만 명으로 38%를 차지한다. 도시와 농촌인구가 6:4 비율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북한의 ‘중앙과 지방의 생활격차’를 지적하면서, “시·군 천 수백만 인민”의 생활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4 따라서 논의 주제인 ‘지방발전’ 문제에서 주장하고 있는 ‘지방’ 주민의 의미는 평양과 신의주·남포·청진 등 도직할시를 제외하고, 소도시와 농촌 주민들을 같은 범주로 묶은 시·군 단위 주민들을 지칭하며, 그 비율이 북한 전체인구의 절반 이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권력층의 부패와 사경제 활동을 통한 축재로 평양과 지방 간 양극화 현상은 심각해졌고, 식량 배급, 병원 진료, 난방과 식수 공급 등 공공 서비스 격차도 극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5 특히 2017년 이후 경제제재·국경밀봉·코로나 발생 등으로 경제 규모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지방주민들의 생활난은 더욱 나빠졌다. ‘자력갱생’의 의미도 1990년대 중반에는 지방주민 각자가 알아서 생존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중앙이 살아야 지방도 살릴 수 있다는 ‘국가 우선 자력갱생론’으로 바뀌어, 한동안 지방주민의 역차별은 확대되었다.
나. 지방공업 발전 추진 역사
북한에서 ‘지방공업 공장’이란 간장·된장, 양말, 비누와 같은 식료품·의류·일용품 등 지방주민들의 필수 소비재인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규모 공장·기업을 의미한다. 북한은 정권 초기부터 중공업 중심 발전전략을 채택하면서, 지방주민들을 위한 필수 소비재 문제는 시군 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 해결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북한의 지방공장 숫자는 1980년대 초반에 약 3,300여 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6 1990년대 중반 경제 위기로 많은 수의 지방공장들이 가동 중단되었다가, 2000년대 초 구조조정 과정에서 1,800여 개의 공장을 정리하고 다시 개건·현대화된 2,900여 개의 중·소규모 공장들을 중심으로 지방경제의 골간은 유지되어왔다.7 그러나 북한의 지방공업은 중앙의 도움 없이 지방 자체 운영 원칙이 유지되어 안정적인 원료 조달과 전력 공급, 경영 효율성 면에서 극히 취약한 실정이었다.
북한은 간헐적으로 지방공업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62년 8월의 ‘창성 연석회의’이다. 그해 김일성은 압록강 인근 오지인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지방당 및 경제일꾼 연석회의를 소집해 ‘지방공업과 농촌경리의 발전’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의 선전에 의하면, 이후 김일성은 100여 차례 창성군을 방문했고, 김정일도 2010년에 ‘창성군을 본보기로 한 지방공업혁명’을 주장했다. 김정은도 2012년 창성 연석회의 50주년 행사에 ‘지방공업 발전’ 과제를 제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추진한 지방발전 정책을 보면, 2013년 3월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과제의 하나로 ‘각 도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 설치’를 주문했다. 그해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이래 20여 개의 경제개발구를 증설했으나 열악한 인프라와 물류체계, 특히 경제제재를 자초해 성과는 미미했다.8
2021년 8차 당 대회에서는 ‘시군 단위로 자체 발전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라’는 시·군 강화 노선을 제시하고, ‘시·군 발전법(2021.9)’, ‘시군 건설 세멘트 보장법(2022.1)’, ‘사회주의 농촌 발전법(2022.8)’을 채택해 지방경제 발전을 도모했다.9 그러나 제재·코로나 등으로 경제 규모가 크게 위축되어 중앙의 자력갱생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실제적인 지방발전 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올해 연초부터 갑자기 ‘지방공업 발전’ 추진 소식이 연일 북한 선전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지방의 생필품 공급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면서 경공업 공장 증설을 약속하고 나서부터다. 김정은은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상 요구마저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고 “수도와 지방의 차이”가 심각하다며 경공업 공장을 매년 20개 시군에 10년간 설치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10 이 문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북한은 당 정치국 회의를 1월 23~24일 묘향산에서 소집했다. 김정은은 정치국 회의에서 “지방 인민들에게 초보적 생필품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은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면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은 과거처럼 말로만 해오던 선전이 아니라 실지 실행을 결단한 변혁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11 지방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 직전에 묘향산에서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 소집한 ‘경제부문일꾼회의’를 연상케 했다.
다.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 배경
‘지방공업 발전’ 정책은 중앙에서 소요 자금·자재·설비를 제공하고, 군대에서 공장건설 인력을 동원하며, 지방에서 운영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김정은은 성천군 공장 착공식 연설(2.28)에서 “공장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노력, 시멘트·강재를 국가에서 전부 보장한다”고 했다. 그리고 “완공 후 운영을 책임지고 주민들이 덕을 보게 해야 하는 당사자는 시·군 일꾼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력갱생 원칙에 따라 원료기지조성과 기술력 강화(기능공 양성) 문제를 담보하라”고 주문했다.12 공장건설을 맡은 군대는 국방성 산하에 ‘지방발전 20×10 비상설국방성지휘조’를 구성하고 지역별로 124연대 등 분담조직을 만들어 4만 명 규모로 추정되는 군인 건설자들을 동원했다.
북한은 3월 초·중순 세 차례 나뉘어 착공식을 진행했다(2.29, 3.7, 3.11 보도). 이어 전국에 신설될 20개의 지방공장 건설 현장에서 ‘군인 건설자들의 애국 열의’로 3월 말에는 기초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기초 콘크리트치기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이처럼 김정은이 직접 지방공업 발전 정책을 내놓고, 당·정·군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방공장 건설을 서두르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평양과의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지방 민심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지방발전 정책추진 배경에는 평양과 지방주민들 간 생활격차 심화, 노동당 창건 80돌을 앞두고 김정은의 치적 거리 만들기, 제재 장기화에 따른 내수 활성화 필요성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지방주민의 불만 확산이다. 도·농 간 생활격차에 대해서는 앞에서 밝혔다. 거의 기아 상태로 방치되었던 지방주민들은 2022년 가을 코로나 통제가 풀리자 생활난에 따른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사태로 곡물 유통이 어려워지면서 개성 주민들마저 굶주릴 정도로 평양 외 지역의 식량 사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김정은이 성천군 공장 착공식(2.28)에서 “이제 시작해서 자괴심이 들고 송구스럽다”는 발언과 “얼마나 고마운지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주민 반응(2.11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짐작된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 대회에서 평양에 5만 세대 살림집 건설(매년 1만 세대씩 건설)과 함남 검덕에 2만5천 세대 광산 도시 건설만을 추진했다. 그러다가 지방주민들의 불만을 고려해 농촌 살림집 건설 지원을 시작했고13 이번에 지방주민들에게 더 긴요한 생필품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공장 건설 지원을 시작했다. 북한은 전국적 판도에서의 농촌살림집건설과 전국적 지방공업공장 건설 병행을 “농촌의 후진성을 결별하기 위한 두 혁명단계 병행”이라고 선전하고 있다(2.4 노동신문).
둘째, 2025년 10월 당 창건 80돌과 2026년 1월 9차 당 대회를 앞둔 주민 시혜 조치의 일환인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지방공장 건설 문제를 제기하면서 “당 창건 80돌이 눈앞에 박두했다”고 했고, 1월 25일 정치국 회의에서는 지방공장 건설 정책을 확정함으로써 “창당 이래 80년간 오직 인민을 위한 투쟁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했다. 9차 당 대회 일정은 아직 밝히지 않았으나 내년이면 ‘8차 당 대회 사업 총화(결산)’를 해야 하는 시점으로 북한 당국으로서는 민생개선에 이바지한 치적 거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지방발전 정책은 10년짜리 중장기 정책으로 시간 벌기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오랜 핵 개발 우선 투자로 민생부진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자 농촌살림집 및 지방공장 건설 외에 유아에 유(젖)제품 공급, 학생들에 교복과 학용품 공급, 중평·련포·강동에 대형 채소농장 건설로 주민들의 불만 무마를 도모하고 있다.
셋째, 제재로 대외경제여건 개선이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내수 활성화를 위해 지방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외교역이 증대되기는 했으나 수출은 90%가 제재로 묶여 여전히 외화 획득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여건에서 지방공업에 대한 투자로 필수 소비재 공급을 통한 내수를 충족시키고 지방공업의 수익 창출로 이어지게 한다는 계산이다.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방공장들이 필수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원자재 투입과 설비확충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14 김정은은 지방공장 운영 책임을 지방에 맡기고 있어 최근 수년간의 중앙 집권화 경제관리 기조와는 어떻게 조화를 도모할지도 주목된다.
2.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과정 평가
가. 지방발전 정책 결정 과정
지방공업발전 정책은 2024년 1월 15일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발제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확인되며, 핵심은 그 정책이 ‘지방 인민들의 세기적 숙망’을 풀어주기 위한 ‘김정은표(表) 정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첫째,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자신이 직접 ‘지방발전 20×10 정책’으로 명명하며 발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둘째,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갑자기 지방발전 필요성을 상당한 비중을 두고 거론된 점이다. 셋째, 이 정책이 권력층 내부에서 논란이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문제임을 시사한 점이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중앙과 지방의 차이를 줄이는” 문제를 “금번(12월) 전원회의에서 정책화되지 못해 책임을 느꼈으나 이번에 정책화를 결심했다”거나 “이것이 가능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자문자답하며 ‘내가 직접 책임지고 추진하겠다’라고 했다.15
김정은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큰 비중(200자 원고지 27장)을 할애하여 ‘지방공업 발전’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지금 수도와 지방, 도시와 농촌의 생활상 격차가 심하”고 “지방에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되는 공장다운 공장이 하나도 없”다면서 “지방의 세기적 낙후성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심중한 문제”라고 했다. 과거에 지방공업 발전 문제와 관련해 “수십 년간 뜨뜻미지근한 말이나 계속”했고 “결정서나 방침문서에 글줄에만 남”겼지 “지방 인민들의 실질적인 생활 수준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룩되지 못했”다면서 “인민 생활에서 지역적 편파성을 줄이”는 문제는 “사회주의 전면적발전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 창건 80돌이 눈앞에 박두”한 시점에서 “더 외면하거나 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16
지방발전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대책은 1월 24일 묘향산에서 소집된 당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공장건설 및 운영은 중앙에서 자금과 자재·설비를 보장하고, 건설 노동력으로는 군인 건설자들을 동원하며, 공장운영 책임은 지방에서 지는 방식이었다. 김정은이 묘향산 회의에서 내린 ‘결론’에 의하면, ‘지방발전20×10비상설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설계로부터 자재와 자금보장, 원료기지조성사업에 이르기까지 지방공업 공장건설과 운영 준비에 관한 모든 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휘”하고, 공장 건설공사는 국방성에서 군대를 동원해 책임지며, 도·시군당 책임비서들은 완공되면 가동될 수 있도록 공장 건설공사 시작과 동시에 “원료기지를 꾸리고 기능공을 양성하는 사업을 시작해 연말 당 전원회의에 보고”하도록 되었다. 이 모든 정책집행 과정은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지방공업건설지도과’를 신설해 감독하도록 결정되었다.17
나. 지방발전 정책 추진 과정
김정은은 2월 8일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공장을 시찰했다. 김화군에는 2022년에 이미 본보기 공장으로 식료공장, 일용품공장, 종이공장이 건설되었다.18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김화군 공장들이 이룩한 성과를 평가하고 그 모범을 따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곳을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는 “공장별로 생산공정설계와 배치를 합리적으로 바로 하지 못한 결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김화군을 기계적으로 모방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방공업공장 건설에 앞서 원료기지조성과 그 조건 및 보장 가능성에 대하여 잘 따져보고 경제적 타산을 바로 하라”며 실제 운영의 실효성을 강조했다.19 김정은의 김화군 방문을 전후하여 지방발전 정책을 주관할 ‘지방발전20×10비상설추진위원회’20가 중앙(1.30) 및 도(2.3)에 각각 설치되었고, 공장건설 시·군이 공개(2.3)되었으며,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내각 당 전원회의(2.10)와 각도 당 전원회의(2.10)도 소집했다.
[표 1] 북한의 2024년 지방공업공장 건설 시군
* 출처 : 2024.2.3. 노동신문. 평북은 3곳, 자강도와 직할시는 각 1곳, 여타 도는 각 2곳씩임.
2월 28일에는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평남 성천군에서 지방공업 공장 첫 착공식을 했다. 김정은은 착공식 연설에서 “이제야 이것을 시작하는가 하는 자괴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주도한 정책을 자화자찬했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이 과거의 지방공업 발전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지방공업혁명”, “대변혁”이라거나 “10년 창조 대전”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지방이 뒤떨어지는 것을 오랫동안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말로만 때우면서 엄두도 못 냈던 사업”을 시작한다면서 “이 땅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수도에서 살든 지방에서 살든 똑같은 사회주의 시책으로 유족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새 정책 목표라고 했다.21
다. 지방발전 정책 선전 동향
북한 관영매체는 1월 말부터 김정은의 지방발전 정책을 집중적으로 선전했다. 1월 25일 당 정치국 회의에서 지방발전 정책이 확정된 이후 두 달간은 노동신문에 하루 1~3건의 기사를 게재했다. 대략 두 달이 지난, 김정은이 강동종합온실 준공식에 참석(3.16)하고 평양 살림집 건설 현장을 방문(4.6)한 무렵부터 2~3일 간격으로 보도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대체로 선전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선전의 초점은 “인민을 하늘로, 삶의 전부로”(2.4 노동신문) 여기는 김정은의 애민정치로 모여졌다. 북한은 지방발전 정책을 경제난 속에서도 지방주민들의 ‘세기적 숙망’ 실현을 위해 모든 지역의 ‘동시적, 균형적, 비약적 발전’을 추구하고 ‘전면적 국가부흥’을 실현하려는 김정은의 ‘사랑의 결정체’라고 선전했다. 노동신문은 “이제 10년이면” 지방 곳곳에서도 “인민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릴 것이라 주장하면서, 심지어는 “원수들의 핵전쟁의 화염이 밀려오는 형세에서 (김정은은) 인민의 복리 증진을 추진하여 대조를 이룬다”며 ‘한·미의 대북위협 상황에서도 북한은 민생을 걱정한다’는 취지로 사태를 왜곡하여 선전하기도 했다.22
노동신문은 북한 지방주민들의 ‘반향’으로 “꿈이 현실로”, “새 시대가 펼쳐진다”고 반응하면서 “노동당 만세”를 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북한 관찰 매체는 접경지역 북한 주민들을 인용해 “(지방에) 공장이 없어서 물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공장도 원재료가 없고 기계설비가 노후화 돼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물자가 없다”면서 “새롭게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는가 하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23 이처럼 북한 내부에는 상반된 여론이 있으나, 일단은 김정은이 ‘빈말공부’가 아니라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 2] 노동신문의 지방발전정책에 대한 ‘인민들 반향’ 보도
* 출처 : 노동신문
라. 지방발전 정책 성과 및 한계
김정은의 관심과 독려로 앞으로 한동안은 지방공업이 다소 활성화되면서 농촌 주민들의 생활 여건도 일정 수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제대로 추진된다면 지방공업 발전 과정에서 생산·소비·무역에서 일부 지방 분권화가 촉진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으나 북한이 “핵전쟁의 화염이 밀려오는 형세에서도 (김정은은) 인민의 복리 증진을 추진하여 대조를 이룬다”고 선전(2.14 노동신문)하였듯이, 실제로 김정은의 관심사가 점진적으로 경제문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정책 의지와는 별개로 북한경제 사정으로 볼 때 당면한 경제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다른 사업을 축소하지 않으면(아래 [그림 1] 참조) 중앙에서의 지속적인 기계설비 지원이나 지방 자체의 원자재 및 에너지 확보 가능성이 크지 않고, 설사 중앙의 지원이나 지방 자체의 능력으로 공장 가동이 가능해도 ‘규모의 경제’ 혹은 소비재 산업의 지역별 배치의 비효율성으로 크게 활성화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우선, 북한의 기계공업은 대북제재로 큰 타격을 입어 다수의 지방에 공급할 만큼의 기계설비를 생산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리고 김정은이 “도·시·군 당 책임비서가 원료기지 조성과 기능공 양성사업을 책임지고 연말 당 전원회의에 보고하라”고 지시(1.25 당 정치국 회의)했으나, 지방 자체로 공장 가동에 필요한 원자재와 에너지 확보도 관건이다. 또 식료 가공과 의류 같은 필수 소비재 생산에는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분야라서 지방의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수입이 여의치 않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근본적으로는 각 시·군마다 중소 공장을 배치해 필수 소비재를 생산하는 정책은 해당 지역의 수요만 충족시키면 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와 어긋나는, 경쟁이 제한적인 정책이다. 통상 경제발전 경로는 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판매를 확대하고 시장 지배력을 넓혀나가며,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출현하고 산업의 지역별 전문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지방에 인위적으로 특정 공장을 배치하는 정책은 비효율적인 정책이 될 소지가 있다.24
[그림 1] 북한의 당면 경제사업
* 출처 : 필자가 정리
3. 결론 및 정책 시사점
결론적으로 북한이 이번에 추진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지도자의 의지와 그 선전 동향으로 볼 때 제한적, 일시적 성과는 거둘 것이다. 공장이 신설 지역 주민들에게는 2~3년 일정한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면한 여러 경제사업에 대한 우선순위 조정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투자재원 확보에 한계가 있고, 주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10년 시간 벌기 성격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지방주민들의 생활난 해소에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또 사업 여건과 전망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김정은의 돌발적이고, 의욕적인 지시로 여타 경제정책 추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도 있다. 과거 김정은은 7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이 경제 간부의 ‘비현실적인 주관적 욕망’ 때문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는 같은 이유로 지방발전 정책이 실패한다면 김정은의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고, 지방주민들의 원성이 증폭될 수 있다. 마식령스키장,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20여 개 경제특구개발, 평양종합병원 건설 등 부실한 김정은표(表) 경제사업들이 허다하지만, 이번 정책은 지방주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하면 내부에 미치는 파장이 자못 클 수가 있다.
다만, 김정은이 별도로 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여 정책을 확정 짓고 김정은 스스로 정책 주도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만약 지방공업 발전의 한계 요인을 개선·보완하면서 경제사업 투자 우선순위를 조정해 나가는 등 앞으로도 김정은의 확고한 지방발전 추진 의지가 지속 확인되면 위에서 밝혔듯이 도·농 생활격차 완화, 지방 분권화 촉진, 나아가 김정은의 관심사 전환 등 의외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이 체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카드를 여러 개 던지고 있다. 남북관계를 두 개의 적대관계로 규정하면서 내부적으로 ‘민족 지우기’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4월 태양절에는 ‘선대 지우기’로 홀로서기를 강화하고 있다. 또 심각한 ‘부족의 경제’ 상황에서 지방공장 증설 카드를 내보이면서 ‘친근한 어버이’라는 애민관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것은 북한 내부에 오랜 핵미사일 고도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김정은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중한 북한정세 판단이 요구된다. 지방발전 정책은 김정은이 핵 고도화를 통한 ‘대미 억지, 대남 억압’ 추진과정에서 내부 민심 무마를 위한 부차적인 정책이다. 김정은이 제기한 지방발전 정책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아 현 상황에서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난 2월 이슈 브리프에서도 밝혔듯이25 김정은이 생필품 공급 부족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한 것은 자신의 발제를 옹호하려는 측면이 다분하며, 그가 지방주민의 생활난을 실제로 심각하게 인식했다면 왜곡된 상황을 이처럼 오랜 기간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방공장 건설사업을 평양 5만 세대 살림집 건설보다 앞 순위 사업으로 끌어 올릴 정도로 김정은의 내부 민심 인식이 심각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내부 단속을 강화하면서 대남도발과 함께 대미협상의 돌파구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중기적으로는 북한의 정세변동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민족 지우기’의 혼란 상황에서 지방발전을 도모한다는 전국적인 야단법석이 무위로 귀결되면 북한 내부의 민심 이반은 증폭될 것이고 지배 연합에서 김정은의 리더십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거꾸로 지방발전 정책에 성과를 거둠으로써 김정은의 호전성이 줄어들고 경제에 대한 관심사가 확대되면서 긍정적인 변화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쨌든 핵미사일 고도화와 민생 부진이라는 양극단 정책에 따른 구조적 모순 심화로 김정은은 선택의 기로(岐路)에 들어설 것이다. 물론 그럭저럭 버텨나갈 수도 있으나, 북한의 과거 발전경로를 볼 때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북한이 개혁·개방하면 모든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야 수령독재의 이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북한 사회의 다원화 길이 열리고, 핵 문제의 해결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북한세습 정권이 저절로 개혁·개방을 할 리는 만무하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 내부에 변화의 동력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과 함께 북한 변화도 끊임없이 유도할 필요가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이 기고문의 일부인 ‘북한의 지방발전정책 추진과정 및 평가’ 부분은 『북한』지 5월호에도 게재되었다.
- 2. 최규빈 외, 『북한의 사회불평등연구: 건강 및 교육 불평등과 인권』(서울: 통일연구원, 2021), p. 86.
- 3. 박영자 외, 『북한 주민의 가정생활: 국가의 기획과 국가로부터 독립』(서울: 통일연구원, 2023), p. 87.
- 4. 김정은의 성천군 지방공업 공장건설 착공식 연설, “《지방발전 20×10 정책》실현을 위한 첫 착공에 즈음하여”, 『노동신문』, 2024.2.29.
- 5.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탈북민 6,351명이 알려준 북한의 실상』, pp. 8~9.
- 6. 최지영, “최근 북한의 경제여건과 경제정책,” 『국가안보전략』, 2023년 03월호, p. 19.
- 7. 한기범, 『북한은 왜 경제개혁에 실패하는가?』(서울: 선인, 2023), p. 102.
- 8. 한기범, 위의 책, pp. 420~421.
- 9. 최은주, “김정은 시대 시·군강화노선의 등장과 함의”, 『KDI북한경제리뷰』, 2023년12월호, pp. 46~57.
- 10. 이 대상지역은 북한의 9개 도에 각 2개 시군, 그리고 남포시 및 개성시 소속 군에 각 1개씩이다.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 『노동신문』, 2023.1.16
- 11. 김정은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밝힌 결론, “당의 <지방발전 20×10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데 대하여”, 『노동신문』, 2024.1.25.
- 12. 김정은의 성천군 공장 착공식 연설, 『노동신문』, 2024.2.29.
- 13. 김정은은 2021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중장기 농촌발전전략’을 밝혔다. “10년 내 식량문제 완전해결”을 목표로 농민들의 사상개조, 과학농사, 알곡생산구조 변경, 간석지 개간, 농촌에 시멘트 우선 공급과 국가대부금 면제 등을 제시했다. 2023년 2월 당 전원회의에서는 앞의 사업을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이라고 명명하고 1년차 사업을 평가했다. ‘농촌발전전략’ 혹은 ‘농촌혁명강령’은 알곡 증산을 위한 농업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농민 생활개선을 목표로 하는 정책과는 구별된다.
- 14. 최지영, “최근 북한의 경제여건과 경제정책”, 『국가안보전략』, 2023년 03월호, pp. 19~20.
- 15.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공화국의 부흥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당면과업에 대하여”, 『노동신문』, 2023.1.16.
- 16. 위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과 상동.
- 17. 김정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밝힌 결론, “당의 <지방발전 20×10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데 대하여”, 『노동신문』, 2024.1.25.
- 18. 김화군은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시골마을로, 면적의 80%가 산지다. 김정은은 2021년 2월 당 전원회의에서 김화군이 ”생활조건이 제일 어렵다“면서 지방공업공장 본보기로 내세워 2022년부터 식료품 공장, 종이공장, 의류 공장이 들어섰다. 조선신보는 ”김화군에서는 주민들의 생활 문제를 자체로 풀고 있다”며 “일본에서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한 물품을 지역에서 소비)라고 불리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라고 추켜 올렸다. 『연합뉴스』, 2024.2.11.
- 19.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김화군 지방공업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노동신문』, 2024.2.8.
- 20. ‘지방발전 20×10 비상설 중앙추진위원회’는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책임자로 하고 박정천·김재룡·전현철 당비서, 부총리(겸 국가계획위원장) 박정근,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히용을 위원으로 구성했다.
- 21. 김정은의 성천군 지방공업 공장건설 착공식 연설 “‘지방발전 20×10 정책’ 실현을 위한 첫 착공에 즈음하여”, 『노동신문』, 2024.2.29.
- 22. 정론 “이제 10년이면!”, 『노동신문』, 2024.2.12.
- 23. “김정은이 주도한 ‘지방발전 20×10 정책’ 시동 건설지 선정해 동원작업 착수 ‘잘 될 리가 없다’, ‘1년 내내 동원에 내몰린다’ 불만의 목소리,” 『아시아프레스 북한보도』, 2024.02.20
- 24. 최지영, 위의 글, p. 19.
- 25. 한기범, “북한의 대남정책 전환 ‘성격’ 평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4.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