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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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하반기 북러 관계는 급속한 밀착의 움직임을 보였다.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러시아 국방장관이 2023년 7월 25일 평양을 방문한 이후 9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을 방문하여 9월 13일 아무르주(Amur oblast) 스보보드니(Svobodny) 인근 보스토치니(Vostochny)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0월에는 러시아 라브로프(Sergey Lavrov) 외교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11월에는 제10차 무역, 경제, 과학, 기술협력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북러관계 회복은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 태세로 들어섬에 따라 북한으로부터의 군사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동북아 지역에서 지분을 확대하는 등 러시아의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하려는 구상에서 비롯된다. 또한, 북중관계에 편승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북러 경제협력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확대하고, 한반도 북단 물류 프로젝트에서 중심적인 위상을 확보할 수도 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에 비해 한-미-일 공조가 자신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파급영향이 크지는 않지만, 북한 및 중국과 연대하여 한-미-일에 대항하는 구도가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다. 북러 밀착을 통해 중국을 간접 견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북한과 연대하여 국제제재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공동전선을 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러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이러한 이익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였고,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 채널을 확보하는 한편, 국제제재에 대한 공동 대응 전선을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북한과 러시아 모두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제한적이지만 우군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사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북한과 포괄적 협력을 지향하고 있는 러시아의 구상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경제협력이 실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양자관계만으로는 부족하며 추가적인 국가들이 협력 프로젝트에 참가해야 한다.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실제 국제 비확산체제를 무력화할 만큼의 군사 지원을 행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북러관계 개선은 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전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러시아가 북러 협력에만 집중할 경우 오히려 아태 지역에서 입지가 좁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아태 지역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더 유리하다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하여 한러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외교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rule-based international order)를 지지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류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농업, 식량, 통신, 디지털화, 첨단기술,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도 협력할 수 있는 의제를 적극 추진하여 러시아가 한국과 협력할 동기를 강화해야 한다.

 

북러관계 밀착의 배경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러 간 밀착은 러시아의 시각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첫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바뀌었고 종전을 위한 협상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전쟁 관련 각종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전쟁 관련 첫 번째 리스크는 전쟁에 필요한 무기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위성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약과 포탄을 대거 조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러시아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국의 생산 시스템이 건재하고 무기 생산에 차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원이 풍부하고 자국 영토가 전쟁터가 되지 않았기에 러시아는 생산력을 유지하고 있어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포격전이 이어지면서 포탄 소비량이 러시아의 연간 생산량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부터 부족한 포탄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1 라브로프 장관은 이를 부인(否認)했지만, 전쟁이 러시아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포탄이 부족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이에 대비하여 포탄을 수입할 수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러시아로서는 필요하다. 전쟁 관련 두 번째 리스크는 전쟁이 크게 번지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친이스라엘 대 친이슬람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중동 전체의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프리카의 니제르, 카프카즈 지역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분쟁 역시 작은 불씨가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로서는 이러한 여러 지역에서의 분쟁이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직접적 개입은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지정학적 갈등 구도가 존재하는 동북아에서 북한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미국을 견제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도, 북한으로 인해 미국과 직접적 군사적 갈등에 직면하는 것은 피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통제력 확보를 위해서도 북러 밀착은 긴요할 수밖에 없다고 러시아는 판단한 것이다.

둘째, 비록 북한 체제의 원형이 舊소련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중국에 비해 약한 상황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관해서는 중국의 입장에 편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2013년 러시아 철도공사가 핫산에서 나진까지 54㎞ 구간의 철로를 개보수하고 이듬해 나진항 3호 부두 터미널 현대화하고 3번 부두 운영권을 49년간 확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철로 연결은 나진항을 통해 한국과 일본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여 남-북-러 3각 협력, 환동해 협력을 강화하면서 극동·동시베리아 개발을 촉진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가 반영된 투자였다. 북한이 2016년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를 감행한 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을 채택하였을 때 러시아가 이에 찬성하면서도 나진항을 통한 외국산 석탄의 반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한 것은 러시아의 전략구상에 비롯된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교통, 물류, 철도, 고속도로를 포함한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고 중국과 삼각지대 협력이 가능할 것이며 교통량이 몇 배 증가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2 이는 러시아가 한반도 북단과 연결된 교통물류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에 러시아 산업통상장관, 천연자원장관이 배석한 것으로 판단할 때 양국 간 경제협력 논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북한 경제 광업 등의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필요성보다는 3국으로의 수출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일 공조 체제로부터 받는 위협은 북한, 중국에 비해 크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한-미-일 협력으로 인해 미국의 역내 영향력이 확대되고, 이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지분을 침해하는 일은 억제해야 한다. 러시아는 북한, 중국과 함께 한-미-일에 대응하는 협력 체제가 당분간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구도를 완성하고자 한다. 평양을 방문한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탕으로 NATO가 동북아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히면서, 한-미-일의 증가하는 군사활동과 핵을 포함한 전략 기반 시설의 일부를 동북아에 배치하려는 미국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저비용 고효율 외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넷째, 러시아는 아태 중시 정책의 관점에서 이 지역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것을 일정 정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지도부는 중국과의 관계가 역사상 최고의 수준을 가지는 현 상황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역사적 긴장관계와 긴 국경선으로 인해 중국을 완전히 신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중-러 관계가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처럼 중국 우위로 형성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아태 중시 전략을 채택하면서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과의 관계에도 많은 공을 들인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한국과 일본이 제재에 참여하였고 러시아는 한국, 일본을 다른 제재 참여국가와 더불어 비우호국가로 분류하였기에 협력이 제약받고 있다. 이런 변화로 아태 전략에도 일정 부분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북한의 효용성이 발생한 것이다.

다섯째, 북한과의 협력은 국제외교 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규탄을 받았다. 또한 UN에서의 위상도 약해졌다. 서방으로부터 사상 최대의 제재도 받고 있다. 러시아는 UN에서의 제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제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UN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서방의 제재가 부당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북한을 추가 제재할 수 없음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결국 러시아의 협력이나 참여 없이는 북한의 태도나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UN 등에서의 입지를 회복한다는 계산도 북러 관계 밀착에 개입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북한이 다양한 측면에서 북러 밀착을 바란 것으로 파악했던 듯하고, 이는 북러 정상회담에서도 상당 부분 암시되었다. 우선, 북러 정상회담이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발사정거장에서 개최되었다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일체의 군사 도발을 “평화적인 항공우주 개발”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올 5월 1일, 8월 24일 두 차례 걸쳐서 군사정찰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려는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3 북한 11월 21일 군사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성공적으로 우주궤도에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4 러시아는 항공우주기술 선진국인데, 푸틴이 9월 13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언급하였다는 점에서 북한은 자국의 위성발사 관련 군사기술에 대해 러시아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북한이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게 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식량 생산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일정량의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흑해가 전쟁의 영향을 받아 식량 수출이 줄어들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량 부족 문제를 겪게 되었는데 러시아가 식량 수출을 늘리면서 식량 문제가 다소 해결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식량 수출을 통해 북한이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이다.5 UN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6 러시아는 2020년 9월부터 중단했던 대북 정제유 수출을 2022년 12월 약 3천 225배럴(404.18톤) 공급과 함께 재개하였으며 2023년 7월까지 7만 9천 906배럴을 북한에 수출하였다. 이는 중국이 수출한 9만 3천 788배럴의 약 85%에 이르는 물량이며, 특히 2023년 6월과 7월 중국이 공급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러시아만이 유일한 대북 정제유 공급국이기도 했다.

북한 체제생존에 있어 중국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북한으로서도 지나친 중국 의존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2022년 북한의 대외교역액 전체 15억 9천만 불 가운데 96.7%에 해당하는 15억 3천 249만 불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하였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의 주요 교통물류 인프라가 중국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미북 정상회담에도 제재를 완화하지 못했고, COVID-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진영 간 협력은 줄고 같은 진영 내 무역과 투자가 늘어나면서 북한은 중국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서 러시아의 중요성을 고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북러 간 교통물류 관련 프로젝트를 언급한 것은 결국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실질적인 협력을 러시아와 찾아보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미-일 공조에 따른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 북한은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를 적극 끌어들이고자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가 강하게 작용하면 할수록 북한은 중국과의 안보적인 협력만으로 체제를 보존하는 것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또한, 러시아로부터 항공우주 분야의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으며 러시아가 개발한 신무기 등을 고려한다면 북-중-러 연대는 한-미-일 공조에 대응하는 협력 구도로 기능할 수 있다.

 

북러 정상회담 및 북러 관계 회복의 평가

 

북러 관계의 회복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2019년 푸틴-김정은 간 첫 번째 정상회담 이후 시작되었다가 COVID-19 팬데믹으로 중단되었던 고위급 전략대화의 부활이라고 할 것이다. 정상회담 이전 러시아 외무부와 국방부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협력을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북러 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복원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2024년에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고위급 전략대화는 정례적으로 개최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략대화의 부활이라는 형식적인 변화는 다음과 같은 북러 간 협력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방위산업 협력이 예상된다. 러시아의 포탄 소비량이 연간 생산량을 넘어선 가운데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공급받고 있다.7 과거 연평도 도발 당시 북한이 쏜 포탄 가운데 상당수가 표적에 도달하지 않았고 낙탄도 많았다. 러시아는 자국이 공급받을 포탄의 성능 향상을 위해 북한의 포탄 생산 현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포탄 제조공장 시설 확대에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 포탄을 넘어 더 많은 무기개발 협력이 가능할지 아닐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러 양국 간 군사적인 협력의 기반과 채널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항공우주발사장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는 점에서 인공위성 발사와 관련한 기술에서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우주항공분야에서 미국과 첨예한 경쟁을 하면서도 상호보완성을 가지는 분야에서 협력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주 협력이 파기되면서 미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우려한다. 실제 최근 미국, 중국에 비해 러시아가 발사한 인공위성의 수는 현저하게 적었다. 우주에서의 지정학적 세력이 미국에 유리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러시아는 북한, 중국 등과 더불어 미국의 우주공간 패권에 대항하는 협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지지하고 일정 수준의 기술협력을 진행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협력을 러시아의 우주기술이 국제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우주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계기로 선전할 수 있고, 향후 ‘글로벌 사우스’의 우주공간 이용 가능성 보장 등을 주장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지지를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둘째, 북러 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많이 제재받고 있는 국가에 포함된다. 러시아는 UN제재 이외 다른 모든 제재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서방의 대러 제재가 부당하다고 판단한다. 대북제재의 경우에도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제재 회피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국가로 의심받고 있지만, 최소한 대북제재 자체를 공식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러시아는 UN이 규정하지 않은 대북제재의 경우 북한과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제재로 인해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제한됨에 따라 현실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자본적 여력은 충분하지 않다. 러시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극동 및 북극 개발 역시 많은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 역시 제약받고 있다. 다른 주요 프로젝트들의 진행이 더디게 되는 현 상황에서 러시아는 과거 대북제재 당시 공을 들여 제재 대상에서 제외시킨 나진-하산 철로 연결과 연계한 나진항 개발 사업이 러시아 아태 지역 진출의 유망한 사업으로서 가치를 가진다고 판단한다. 흑해를 통해 수출되는 물류량이 제한되면서 러시아 극동 항만들의 가동률은 높은 상황이지만, 벌크화물 수출로 포화상태에 도달한 지 오래되었다. 제재로 인해 주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연결된 나진-하산 사업은 많은 추가적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그간 추진해왔던 극동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한반도와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 아태지역과의 협력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서 북한과의 협력은 의미가 있다.

그림. 국제적인 제재 대상국과 제재 규모

그림. 국제적인 제재 대상국과 제재 규모

셋째, 러시아는 미국 중심성을 거부하고 다극주의 추진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 형성을 위해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서방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UN에서 러시아 규탄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러시아는 이에 화답하여 한반도에서의 정세 안정을 위해 미국이 실시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을 포함한 역내 모든 군사 활동을 멈춰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2023년 3월 개최된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을 뜻하는 ‘쌍중단’에 관한 내용이 빠졌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더 포용적인 입장으로 전환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 도발의 원인이 미국과 한국의 연합훈련에 있다고 주장한다.8 이는 러시아가 서방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적 근거로 북한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한층 커질 수 있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을 중동으로 돌린 것과 마찬가지로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증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나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 인식한다. 북한 역시 러시아의 이러한 입장을 간파하고 무력 시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발굴하여 활용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서방과 대립하거나 불편한 관계인 국가들이 러시아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할 것이다.

한편 북러 관계의 회복이 가지는 제약도 존재한다. 첫째, 양국 간 비대칭적 협력의지이다. 북러 정상회담에 배석한 러시아 대표단에 외교, 국방, 우주기술, 산업통상, 교통, 건설, 극동개발 등 다양한 인사가 대거 포함되었다. 이는 러시아 측의 협력 의지가 군사안보 뿐 아니라 경제 분야의 프로젝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 대표단의 구성과 방문지를 고려한다면 군사협력에 좀 더 중점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호 문제와 지도자의 위상이 돋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동방경제포럼이라는 러시아 측의 큰 행사에 김정은 위원장이 방문하지도 않았다. 러시아가 경제협력의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다. 북한에서 추출되는 자원 대부분은 러시아가 부존자원으로 이미 가지고 있다. 결국 북한에서 추출되는 자원을 소비하는 국가가 참여하는 형태의 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 이외 다른 국가가 참여할 가능성이 적은 상황인데,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나 북한 모두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된다.

둘째, 대북 제재가 실효적이지 않도록 북한과 협력할 수 있지만, 러시아가 고수하는 기본원칙을 넘어 대북 제재를 공식적이고 노골적으로 무력화하는 시도는 크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UN의 제재를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는 UN 총회에서 규탄받아 체면을 손상되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자국의 지위를 고려하여 UN의 대북 제재는 준수되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UN에서 러시아에 대한 규탄에 반대하였다는 점, 또 포탄 부족을 해결해 줄 수 실질적인 생산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관계 회복이 중국, 아태 지역 국가, ’글로벌 사우스‘에 나름 전할 메시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제재에 위반되지 않는 협력은 계속할 것이다. 그래서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러 실질 협력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북러 협력 프로젝트의 투자에 따른 자본 조달 방안은 여전히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의 시사점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 회복으로부터 한국 대외정책의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대외정책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러시아는 글로벌 정책이라는 큰 틀을 만든 다음, 나름 자국이 정한 원칙을 바탕으로 지역과 이슈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 회복은 이러한 큰 원칙하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는 유라시아 근외(近外) 국가나 유럽의 경우와는 아시아의 정치, 경제와 깊이 관여한 적이 없었다. 서방과의 관계가 나빠진 이후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졌으며 인도와의 무역 및 경제협력이 급속하게 증가하였지만, 러시아는 아시아를 잘 알지 못한다. 유럽이 EU라는 큰 틀에서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동질성을 가진 것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이해는 획일적이지 않다. 러시아는 이러한 아시아 국가 간 러시아에 대한 인식 차이를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러시아의 아태지역 전략에서 북한은 한-중-일과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적 가치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커졌다.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에 맞서 다극주의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든 아니든 간에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모든 국가 및 세력과 연대하려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 NATO와 같은 집단안보체제가 형성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맞서 다극주의 질서를 추구하는 러시아와 한미동맹을 안보의 핵심 기둥으로 여기는 한국이 이러한 상황에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쉽게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게 협력 의제로 제시하는 기후변화, 운송, 농업, 식량, 통신, 디지털화, 첨단 기술 등 사회경제발전과 관련된 이슈를 중심으로 협력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규칙 기반 세계질서를 지지하는 입장과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대외정책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유연한 외교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국익을 위해 북핵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대응과 경제안보에 많은 외교적 자원을 투입하여야 하겠지만 신흥경제 이슈들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러시아와도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러시아가 아시아 국가들의 대러 인식 차이를 활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외정책이 미국이나 일본과 일정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면 러시아와의 대화 및 협력 가능성도 생겨난다. 현재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조치는 분명 필요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이 격화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따라서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한-미-일 공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하는 한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보조를 맞추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현 상황에서 협력이 불가능한 의제와 장기적으로 협력이 가능한 의제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극동·북극개발 전략은 안보나 전략 측면보다 사회경제적인 동기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협력의 여지는 충분히 생겨날 수 있다. 북극권 생태계 공동연구 등은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연구 프로젝트이며 한국이 주도적으로 의제를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식량 안보 이슈 역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협력의 여지를 만들 수 있는 분야이다. 특히 북러 관계 개선이 러시아가 아태 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전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북러에 편중된 노력이 오히려 아태 지역 협력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는 계산하에 한국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러 협력에만 집중할 경우 오히려 아태 지역에서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아태 지역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더 유리하다고 인식하게 만들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하여 한러 대화와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냉전 후반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한국 정부의 대담한 접근이 이후 30년간 북방외교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지정학적 갈등이 첨예화되는 상황에 한국은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실행 방안들에 대해 적극 고민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반도 안보 문제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AP News, US says North Korea delivered 1,000 containers of equipment and munitions to Russia for Ukraine war, October 14, 2023.
  • 2. https://tass.com/politics/1674385.
  • 3. “북한: 3차 정찰위성 발사도 실패할 경우 김정은의 다음 행보는?,” BBC News 코리아 (2023년 8월 25일). https://www.bbc.com/korean/news-66580323.
  • 4. “북한 정찰위성 발사…일부 효력정지된 9·19 군사합의란?,” BBC News 코리아 (2023년 11월 22일).
  • 5. 러시아 연해주와 사할린에서 작년 1~11월 동안 북한으로 수산물 4,696톤을 수출하였는데 이는 2012년 1,252톤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러 연해주∙사할린 지난해 대북 수산물 수출, 전년 대비 4배 늘어,” 자유아시아방송 (2023.01.24.).
  • 6. https://www.un.org/securitycouncil/sanctions/1718/supply-sale-or-transfer-of-all-refined-petroleum.
  • 7.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5량 화물칸의 러시아 열차가 북한에서 무기를 싣고 러시아로 돌아오는 위성사진 2장을 공개하였는데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이브럼스 전차 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자작낭설”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10월 평양 방문 시 기자들의 질의응답에서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받지 않았다는 의미의 발언을 하였다. “북 [북러 무기거래는 낭설, 재미없는 결과 직면할 것],” 연합뉴스 (2023.1.23.).
  • 8. “북한, 러시아 언론 인용해 한미연합훈련 우회 비난,” 연합뉴스 (2021.08.25); “Russia raises alarm over ‘dangerous’ US-ROK drills, leafleting into North Korea,” NK News (August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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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이상준

국민대학교 유라시아학과 교수

이상준 교수는 러시아 및 유라시아 정치경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러시아 경제 체제와 국제경제협력, 중앙아시아 개발협력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2018)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국민대학교 유러시아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러시아 체제와 경제발전 관련 논문과 저서 80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