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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평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 증가와 다변화된 경쟁의 영역

 
2022년 국제정세의 특징은 주요국을 포함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의 증대, 주요국 간 전략경쟁 영역의 확장과 심화,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 세력 간 대립구도의 강화와 연대세력 확보를 위한 노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경쟁(competition)을 넘어선 투쟁(conflict)”이며 주요국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의 증가이다. 국제관계에서 경쟁은 항상 존재했고 이 속에서 갈등과 협력이 공존했었다. 그러나 2022년의 경쟁은 갈등의 속성을 더 짙게 띠고 진행되었고, 이는 “주요국 간 전쟁의 위험”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고 이는 주요국 간의 직접 전쟁은 아니었지만 침공국인 러시아 對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회원국 간의 대결로 비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긴장이 가장 고조된 상황이 발생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요국들 간의 대립이 외교적인 경쟁이나 무역분쟁,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각축을 넘어 실질적인 군사충돌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를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NATO 회원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 및 군사장비를 대규모로 지원하였고,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지하는 국제여론을 적극 조성했으며, 對러 경제제재를 주도함으로써 러시아를 압박했다. 러시아 역시 9월에 들어 남동부 점령지를 러시아에 합병하는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등 우크라이나와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함으로써 미국과 NATO를 견제하는 교두보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철회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선전(善戰)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는 해결의 전망이 불투명한 채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8월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해공군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대규모 무력시위를 강행하였고, 이를 계기로 조성된 대만해협의 긴장에 대해서도 미국은 중국과의 직접 맞대응은 자제했지만, 우방 및 동맹국들과의 각종 합동 훈련과 함께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 대만해협 인근에 주기적으로 해공군력을 전개하고 자체 훈련을 실시하여 미국의 대응능력을 과시하였다. 더욱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대만문제와 관련하여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우려는 더욱 증가하였다.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이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주요국들 간의 무력시위가 격화된 사례라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는 더 위험한 징후 역시 표출되었는데, 이는 1950년대 핵무기 시대의 개막 이후 자제되었던 핵협박의 현실화였다.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러시아를 방해하려고 시도하는 측들은 역사상 보지 못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핵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는 한편 러시아 핵전력에 대해 높은 수준의 준비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1] 이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교장관 등도 상황에 따라 핵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언급을 내놓았다. 물론, 푸틴 자신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발언들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러시아의 태도는 핵무기는 보유하기만 할 뿐 실제로 사용되어서도, 함부로 사용을 위협해서도 안 된다는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 간 불문율을 깨뜨린 것이었다.

주요국들 간의 군사적 대치와 대결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북한의 무력도발도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었다. 2022년 북한은 총 30여 차례에 걸쳐 60여 개가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였고, 대규모 포사격, 방사포 및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와 공군 훈련을 실시하는 등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을 감행하였다. 북한이 이런 도발을 하는 것에는 북-중-러 3각 연대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도 핵협박 대열에 가세하였다는 점이다. 북한은 3월과 5월, 그리고 11월에 ‘화성-15형’과 ‘화성-17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을 발사함으로써 2018년 4월 그들이 공언했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파기하였다.

 

그림 1. 2022년 군사적 긴장조성 지역: 우크라이나, 대만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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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은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연설을 통해 자신들의 ‘근본이익’이 침해당할 경우 억제 목적을 넘어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으며, 9월 8일의 “핵무력정책” 법령을 통해 핵무기를 재래무기처럼 선제적이고 대량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공언하였다. 또한 북한은 2018년에 폭파하였던 풍계리 핵시험장을 복원하여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무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본 북한으로서는 핵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무역분쟁을 넘어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주도권 경쟁으로 본격화된 미-중 전략경쟁이 경쟁의 영역이 다변화되고 갈등 역시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선,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그동안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러시아가 질서재편 과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적 질서재편과 함께 주요국 간 가치대립이 본격화됨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침공을 통해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국제질서 재편 경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의 선명한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3월 2일(뉴욕 현지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군의 즉각적 철군을 요구하는 UN특별총회 결의안이 통과될 당시의 표결 결과는 이러한 대립구도를 선명히 보여준다. 러시아를 비롯하여 북한, 시리아,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등 이 결의안에 반대한 5개 회원국은 모두 일반적으로 ‘권위주의(authoritarian)’ 체제를 가진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기권을 선택한 32개국 역시 권위주의 혹은 완전하지 못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었다.[2] 물론, 이러한 가치 및 체제대립 구도는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로 보기는 어려운 국가들에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동참을 꺼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기점으로 서로 상이한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 간의 불신과 거부감이 뚜렷이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그림 2. UN특별총회 결의안 표결 결과를 나타내는 총회 회의장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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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경제협력 네트워크의 확대와 공급망의 재편을 본격화했다. 5월 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의 출범과 9월 Chip 4 준비회의를 통해 미래 성장을 선도할 과학기술 및 첨단 소재 분야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가들과의 디커플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IPEF 출범회의가 미국-일본-인도-호주 간 4자안보협의체 ‘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정상회의와 겹치는 시기에 개최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IPEF가 공식적으로 중국 견제나 디커플링을 선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중국 견제 협력네트워크로 해석되어 온 QUAD 회의에 이어 IPEF 출범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IPEF에 QUAD 회원국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우방 및 동맹국들이 참가했다는 사실은 IPEF가 향후 디커플링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 지역에 대한 에너지 공급망 역시 조정하고 재편함으로써 에너지 시장에서의 디커플링도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그림 3. IPEF 출범회의 화상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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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S. Embassy & Consulates in Australia. 화면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주,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뉴질랜드 정상 및 장관과 테이블에는 오른쪽부터 미국, 일본, 인도 정상 및 미국 국무장관이 참석함.
 

복합경쟁에 돌입한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서방의 對러시아 제재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고,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SCO) 회의를 계기로 중-러 정상회담을 가지고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간 결속을 과시하였다. 중국은 IPEF와 Chip 4를 비롯한 세계적 공급망 재편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한편, 각종 양자 및 다자회담을 통해 다른 국가들의 불참을 은근히 압박하였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직접적이고 격렬하게 반응하였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불장난하다가 타 죽을 것”이라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으며,[3] 중국은 대만해협 인근에서의 포사격 및 대만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대만에 대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음을 과시하였다.

주요국들 간의 복합적 경쟁이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국가들의 서로 다른 행보 역시 두드러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싸고 중동 지역에서 대표적인 미국의 협력자였던 이스라엘은 UN의 對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하였고,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 내의 대표적인 對미 안보협력 파트너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역시 미국의 대응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대외정책 및 對중동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QUAD 등을 통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핵심 파트너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인도의 반응 역시 미온적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복합경쟁의 영역이 워낙 다변적이라 매 분야마다 손익이 달라진다는 특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그리는 새로운 질서와 체제가 아직 누구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복합경쟁 전개

 
2022년 중 그 윤곽이 뚜렷해진 주요국 간의 경쟁은 그 이전의 경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주요국 간의 경쟁은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체제 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이었고, 군사적인 대립과 충돌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는 경쟁의 분야가 성장동력(경제), 과학기술 및 표준, 지향하는 가치와 체제 등으로 다양화된 전면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서도 극지를 넘어 우주 영역에 대한 경쟁적 진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이버 영역 등 가상공간을 둘러싼 물밑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과거의 경쟁은 기존의 국제질서와 체제를 유지하되 그 안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탈냉전 시대 이후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나 중국 등의 사회주의 국가 모두가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각종 체제(regime), 즉 비확산, 금융, 무역 체제 등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그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2000년을 전후하여 출범하였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상회의로까지 발전된 G20(Group of Twenty, 주요 20개국)은 이러한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 모두 기존의 체제 내에서 자신의 위상과 영향력을 확장하려 하였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공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주요국, 특히 미국과 중국은 기존 질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모두 자기 주도로 국제질서와 체제들을 새롭게 재편하려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2020년 COVID-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의 모호한 입장이 문제시되고, WHO의 역할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을 벌인 것은 새로운 질서 형성을 위한 경쟁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경쟁하는 주요국들이 모두 기존 질서 및 국제체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자기가 중심이 된 새로운 체제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 위주로 중국이 배제된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 냉전과는 달리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다른 질서와의 병존이 아니라 중국과 그 협력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구축한 기존 질서에서의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의 패자를 꿈꾸면서 미국을 배제하려 한다.

과거, 경쟁의 과열이나 극단적 갈등을 막아주었던 세계적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역시 그 의미가 희석되고 있다. 세계화(globalization)로 인한 상호의존성은 각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고, 주요국가들도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과 같은 상호의존성 메커니즘을 인정하고 때로는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 활용하려 했다.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정은 결국 경쟁이 지나치게 심화될 경우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전제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이는 갈등의 완충장치 혹은 안전밸브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는 주요국들 모두 상호의존성이 상대방에 대한 나의 열세를 불러올 수 있고 상대방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상호의존성 전체를 끊어낼 수는 없지만, 미래의 운명과 판세를 결정할 주요 분야에 있어서는 절연(insulation) 혹은 디커플링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미래 기술 및 소재와 관련된 분야에서 공급망 재편 및 분리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었던 시대를 지나 경제가 안보이고, 안보가 경제인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개념을 통해 잘 나타난다. 과거 무역 등 경제적 경쟁은 어디까지나 정치 및 군사적 역량의 동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하에서는 경제 그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사활의 수단으로 바뀌었으며, 경제 역시 안보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되기 시작하였다.

 

표 1. 변화하고 있는 경쟁의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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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갈등을 회피하려는 주요국가들의 접근은 중간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주요국들 간의 입장 차이가 명확할 경우 이를 중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극단적 갈등이 예방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른바 ‘중견국’들의 독자적인 활동 영역이 어느 정도 존재했었다. 사활적 이익에 대해서는 여전히 양자 간 협상이 주를 이루었지만, 여타의 이익이나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는 다자적 협력이 추구되었으며, 이 공간에서 중간국가들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서 중간국가들의 입지는 현격하게 축소될 수 있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독일 등 유럽의 중간역할을 하던 국가들은 미국이나 러시아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부정적 파급영향을 우려해야 했고 선택을 강요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어 한국, 일본, 호주 등이 당면하는 상황과도 유사하다. 이제 중간국가들은 중재나 조정 역할을 담당하기보다는 진영화된 각 블록의 전위대 역할을 강요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감염병 대처, 자원 고갈 등의 글로벌 이슈들은 주요국들 간의 경쟁 속에서도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분야들 역시 이제는 경쟁과 상호 비난의 통로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저탄소 성장이 추구되지만, 이를 위한 규제나 산업정책 조정 등은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고, COVID-19 팬데믹 국면은 미국과 중국의 발원지 논쟁으로 인해 세계를 단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시켰다.

20세기 국제관계에서 국가는 대체할 수 없는 주요 행위자였으며, 이러한 속성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국제기구의 역할이 지속되고 국제적인 非국가행위자(다국적 기업, 국제비정부기구 등)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국제관계의 핵심은 국가(정부) 간의 상호작용이었다. 새로운 경쟁에서도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안보’ 개념의 등장, 사이버 공간의 각축으로 인해 이제 민간 영역의 역할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뉴테러리즘, ISIS(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와 보코-하람(Boko Haram)의 활동으로 인해 이제 국제 非국가행위자들의 활동 역시 국제관계에 중요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 행위자가 다양해짐으로 인해 국제관계에서 각종 상호작용의 양상 역시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군비경쟁은 과거부터 존재해왔지만, 20세기 말~21세기 초 주요 국가들은 모두 양적인 증가보다는 질적인 군비경쟁을 택하였다. 군의 조직과 전력 구조 전반을 미래형으로 개혁하는 군사혁신(Revolution of Military Affairs, RMA), 지식 및 정보를 바탕으로 전장을 연결하는 개념인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 Centric Warfare, NCW) 등은 모두 질적인 군비경쟁의 양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 제한적 질적 군비경쟁을 넘어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우위를 장악하기 위한 군비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첨단 군사과학기술에 있어 주요국 간 추격(catch-up)이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은 이제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극초음속미사일, 강화된 스텔스 및 무인 전투기, 로봇 전투체계 등 자기 나름의 게임체인저의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제 주요국들은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탄약 비축량 확대, 전시 군수물자 생산 능력의 보강 등 양적 확장 역시 함께 시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최근 수년간 그 양상이 두드러진 새로운 경쟁은 과거와 같이 어느 한 단면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예측하기도 대응하기도 힘든 위협과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경쟁을 ‘복합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전망: 더 치열해지고 위험해진 세계

 
2023년에는 복합경쟁의 특성이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인데, 이는 주요 국가들의 정책노선이 2022년의 추세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22년 그 전조가 보였던 주요국 간의 군사적 충돌 위험성은 2023년에 더 커질 것이다. 적지 않은 점령지를 탈환 당하면서 전쟁수행에 난항을 겪고 있는 러시아는 수세를 거듭하리라는 일부의 전망과는 달리 2022년 말 전열을 재정비하여 2023년 초반 다시 돈바스(Donbass)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전술핵 사용 위협 역시 또 한 번 고개를 들 것이다. 현재의 구도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낸다면 푸틴의 국내적 입지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가 2022년 12월~2023년 1월 사이 축적한 전력을 활용하여 대대적인 재공격을 감행하여 동부와 남부의 전략거점을 다시 장악한 이후 개전 1년이 되는 2023년 2월 24일경에 휴전을 추진하는 대안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국 및 NATO 회원국들에게 추가적인 전쟁 수행이냐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양보의 강권(强勸)이냐에 대한 고민을 유발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이 동계전투가 휴전협상에서의 주도권을 가를 것이라는 점에서 2023년 초반 치열한 전투가 재현될 수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국제적 지위를 높여주려는 미국의 시도를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고, 시진핑 3기를 맞아 대만에 대한 장악력을 확실히 하려 할 것이다. 더욱이 2023년은 대만 총통 선거를 1년 앞둔 해로 대만 내 정치세력들 간에 대만독립 문제에 대한 논쟁이 더욱 가열될 수 있다. 집권당인 민진당(민주진보당)은 경제문제로 인해서 2022년 11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지만 국민당과의 차별성 면에서 대만독립 이슈를 선거 승리를 위한 구호로 다시 부각시킬 것이며, 중국은 이에 대해 ‘무력사용 불사’로 맞설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의 군수지원 능력과 러시아제 무기체계의 한계를 체감한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진다고 해도 대만을 직접 침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대만해협 봉쇄, 대만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 대량 발사, 더 나아가 진먼다오(金門島, 금문도) 등 대만 일부 지역의 점령 시도 등을 선택할 수는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직접적 무력충돌까지를 바라지는 않지만, 가치대결의 시대에 같은 민주주의 체제인 대만을 보호한다는 상징성을 감안하여 대만해협에 대규모 해공군력을 전개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맞대응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대만해협은 더 큰 긴장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대만해협의 문제는 북한의 행보와도 연결될 수 있는데,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위기는 미국 인도-태평양 전력의 대만 인근 배치로 이어질 것이고, 북한은 이를 미국의 對한 안보공약 약화로 보고 도발의 호기로 판단할 것이다. 더욱이, 2022년 중 집중적인 핵 및 탄도 미사일 능력시위를 통해 핵협박 기반을 강화한 북한은 대만해협의 위기가 커질수록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이 아닌 이상 대만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에 대해서는 핵협박을 활용하여 대응의지를 꺾을 수 있거나 최소한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 내 분열을 증폭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대만해협 위기가 조성될 경우 이를 핵실험(7차 핵실험을 감행하지 않았을 경우) 및 ICBM의 발사실험 적기로 인식할 수 있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인근에서의 포격,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 상습 침범과 우리 어선 나포 시도 등 고강도 재래도발을 감행할 동기가 충분하다. 북한이 먼저 핵실험 등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킴에 따라 미국이 전략자산의 한반도 증강 배치를 시행하는 한편 한-미-일 간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할 경우, 중국이 이에 반발하여 조어도(댜오위다오, 센카쿠)와 대만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또한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계속된 국제제재 등으로 북한이 내구력의 위기에 몰리는 불안정 상황이 현실화되면 중국은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사태 해결을 저지하기 위해 대만해협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협상 레버리지를 강화하려 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당초 예상보다 선전을 하였다는 점, 그리고 중국을 다루는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복합경쟁의 큰 틀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10월 미 국방부 고위관계자들과 회의에서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competition)을 추구하고 있으나, 그것이 분쟁(conflict)이나 대결(confrontation)일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고,[4]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경쟁이 …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지도자로서 우리의 책임같다”라고 했다.[5]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 중국을 “국제질서를 변경(reshape)하려는 의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 군사, 기술적 능력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the only competitor)”로 규정하였고, 국방전략서(National Defense Strategy, NDS)에서는 중국을 “미국의 안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심각한 도전(the most comprehensive and serious challenge)”이라고 평가했다.[6]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와 비군사 기능의 원활한 결합과 다양한 충돌 스펙트럼에 대응할 수 있는 영역별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우방 및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개념을 활용하여 중국과의 경쟁을 이어갈 것임을 의미한다.

시진핑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미국은 … 우리 각자의 국내 사정을 잘 처리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책임을 맡아 공동으로 인류평화와 발전의 숭고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 중국과 미국은 마땅히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공영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7] 이는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신장 위구르 인권문제와 대만문제를 매개체로 한 미국의 중국 내정 간섭에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 집권 3기를 맞이한 중국은 미국과의 대립과 경쟁구도 속에서 더욱 공세적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이고, 미-중 간의 경쟁과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은 단순히 미-중 양자관계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反중 연대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에게 강압과 회유를 병행해 나갈 것이며, 이는 특히 미국의 우방이나 동맹국 중 ‘약한 고리’로 인식되는 국가들에게 집중될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汎)안보화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과 8월 한중 외무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외교부장이 밝힌 독립자주, 선린우호, 개방공영, 평등존중, 다자주의라는 “5개 응당(五個應當)”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국내외적 어려움에 접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 연대’에 대항하는 ‘권위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정치적 입지의 약화를 우려해야 하는 푸틴으로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한 돌파구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여전히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 대결구도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인도와의 협력에 집중적인 공을 들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계속된 도발은 2023년 중에도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이슈가 될 것이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에 대해 ‘권위주의 연대’ 속에서 자신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를 부각하면서 국제제재를 상쇄할 수 있는 지원을 이끌어내려 하는 한편, 추가적인 핵실험과 같은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다. 미-북 협상의 재개를 통해 대북제재의 전면 해제 등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할 가능성도 있지만, 가치대립으로 격화된 주요국 간 전략경쟁의 구도, “핵무력정책” 등에서 나타난 김정은을 비롯한 권력엘리트들의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ies)인 “핵국가 지위 인정”은 북한 비핵화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를 감안할 때 이루어지기가 힘들 것이다. 북한이 대북제재 전면 해제의 대가로 비핵화를 선택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역시 “나쁜 거래(bad deal)”라고 지적했던 북한 핵능력의 기정 사실화를 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중 현재 북한이 아직 그 능력을 선보이지 않은 전략무기로는 ‘북극성-4형’ 및 ‘북극성-5형’과 같은 신형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신형 잠수함, 그리고 ICBM의 탄두 재진입 능력과 MIRV(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다탄두 각개기동 재진입체) 등이 있다. 북한은 2023년 중 이러한 능력들의 시위를 통해 자신들이 완전한 핵능력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발신하려 할 것이고, 추가적인 핵실험 역시 선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2022년 하반기 중 북한이 매우 급속한 긴장고조와 잦은 무력시위 행태를 보였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행위는 2023년 초부터 시작될 수 있다.

중동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디커플링, 그리고 다시 확대되어 온 러시아의 영향력 속에서 주요국들에 대해 선별적인 협력과 이탈을 계속할 것이다. 특히, 과도하게 에너지자원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걸프 산유국들의 경우 중국과의 협력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매우 긴요하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이 중근동 지역에서 안보공약을 약화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안보 면에서 중국과 협력하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말 구축해 놓은 이스라엘과 중동 주요국가들의 협력 기반, 즉 “아브라함 협정(The Abraham Accords)”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중동국가들이 미-중 전략경쟁의 틀 안에서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 선택이 아닌 자국의 국가이익 극대화를 위한 실용주의 전략을 선택하는 기조는 2023년에도 유지되고 더 뚜렷해질 수 있다. 기존의 미국-중동 간의 에너지 연대가 약화된 시점에서 중동국가들은 현상유지보다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추세를 만들어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은 미-중 경쟁이란 변수 외에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된 경제 블록화 추세, 글로벌 차원의 경제위기, 지속되는 보건, 식량, 에너지 위기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복합적 위기를 맞을 위험이 크다. 주요국 경쟁에 헤징 전략(hedging strategy)으로 대응했던 동남아 국가들의 대응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위기를 맞아 지역 다자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2023년 아세안 의장국이 된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주요국 경쟁을 비판하면서 “지역 아키텍처 강화”라는 비전을 천명했다.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대한 관심도 이런 방향성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등 아세안 내적 문제로 흔들리는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을 다시 강화하고 지역 국가들을 효과적으로 다자무대로 이끌어 낼지는 미지수다.

2022년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며 결속을 과시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일정한 거리두기를 했던 유럽국가(특히 NATO 회원국)들은 2023년 우크라이나 사태의 출구를 적극적으로 찾으려 할 것이다. 특히, 미국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이 우위를 점한 미 의회(하원)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축소를 선택할 경우 미국과 유럽지역 우방 및 동맹국들 간에도 미묘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신들의 지원 축소를 상쇄하기 위해 NATO 동맹국들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할 것이고, 이미 對러 제재와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로 인해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한 유럽국가들로서는 이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미국에 더 무게를 두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조절했던 유럽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유럽의 이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럽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출구를 찾으면 중국의 시장이 가져다주는 성장동력에 대해서도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주요국 및 여타국가들의 선택으로 인해 2023년의 정세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1. 분쟁의 중심지로 떠오를 인도-태평양
 
2023년이 되면 러시아의 전쟁 지속 능력이 한계에 다다를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원에 피로감을 느낀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권유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떠한 방향으로든 정리의 가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분쟁과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 3기를 맞이하는 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세에 눌리는 모양새가 생기는 것을 극히 경계할 것이고, 특히 자신들의 세력권처럼 생각해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신의 추락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인데,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중국의 일부로 간주해 온 대만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위기 역시 우려된다. 국제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 가중될 것이고, 의료 및 보건체계가 부실하고 자연재해에 취약한 북한의 특성상 감염병 재확산 또는 수해나 홍수가 겹칠 경우 인도적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지속적인 내부 단속을 통해 사회 기강을 확립하려 하지만 경제위기로 인해 불만에 가득 찬 북한 사회를 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때 내부결속을 위한 대외도발은 북한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북한은 2023년 핵 및 미사일 능력 시위라는 도발행위를 일상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의 지원을 유도하는 한편, 미국 내에서 제재무용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오히려 더 큰 규모의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이미 북한은 2022년 푸틴이 길을 닦아 놓은 핵협박의 선례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앞으로 2023년 중에는 이러한 협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미 지적하였듯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이제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의 긴장이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미군의 전력이 이 방면으로 강화될 때 북한이 이를 기회로 삼아 한반도 긴장을 조성할 수 있으며, 그 역(逆)의 경우 역시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2. 흔들릴 국제 비확산체제
 
2022년 중 푸틴과 김정은이 보여준 핵협박이 국제 비확산체제의 동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제한된 국가만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으며, 핵무기 보유국은 핵무기의 실제사용과 핵위협에 신중성을 보인다는 전제는 이미 무너졌으며, 많은 잠재적 핵개발 국가들이 러시아와 북한의 교훈에 주목할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비밀리에 군사지원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의 경우 핵능력 확보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질 수 있으며, 이는 이란 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의 복원에 부정적 변수로 작용될 수 있다. 국제 비확산체제는 또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핵개발의 유혹을 받는 국가들이 늘어날수록 이들과 대치하는 국가들이 가지는 안보상의 우려는 더 커질 것이며, 이들은 국제체제나 미국의 확장억제가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면 자신들도 핵능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확산체제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UN이라는 국제기구의 무기력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여 UN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10번이나 개최된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규탄성명조차도 채택하지 못하였다. 이는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후원세력이 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국제 비확산체제의 기초가 약화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또한 2022년 8월에 종료한 제10차 NPT(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금지조약) 검토회의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Zaporizhzhia) 원자력발전소를 점령하여 방사능 누출 위험성이 발생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최종선언문이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채택되지 못하였는데, 이는 국제 비확산체제의 한계를 보여준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202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3. 가속화될 세 분야의 군비경쟁
 
세계적 복합경쟁은 결국,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확보 욕구와 연결될 것이다. 이에 따라 2023년 중 재래 군비경쟁, 핵 군비경쟁, 군사기술경쟁의 세 가지 분야에서 동시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재래 군비경쟁은 과거 양적 증강에 집중해 왔지만, 최근에는 질적 및 양적 열세를 상쇄하기 위한 비대칭전력의 확보에 각국이 집중하고 있다. 다영역작전이나 지능화전 등의 새로운 전쟁수행론이 등장함에 따라 재래 군비경쟁은 더욱 기술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으로 세계 각국은 첨단 비대칭무기체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로우테크(low-tech) 무기체계나 탄약 및 군수물자의 양적 확보에도 더욱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는 더욱 격심해지는 핵 군비경쟁에 직면할 수 있는데, 이는 국제 비확산체제의 동요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위험한 수준으로 낮추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극초음속미사일에 집중하며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하고자 시도하며, 특히 중국은 핵탄두의 수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여기에 전술핵 능력을 추가하는 북한까지 가세하면서 핵사용의 위험성은 급증하고 있다.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오던 핵전력 현대화를 바이든 정부에서도 꾸준히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기술경쟁은 미래 군비경쟁의 핵심 전장이며,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적 게임체인저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냉전 이후 활용이 증대된 민군 겸용기술(dual-use technology)에 대한 의존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특히 미래 무기체계에서 자율화와 무인화가 키워드로 등장함에 따라 자율무기체계의 개발과 이를 활용하기 위한 유무인 복합체계가 주목받고 있고, 그 핵심에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군비경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상대에 비해 우월한 기술을 확보하고 나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기술보안 경쟁 역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4. 중근동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틈새 공략
 
디커플링의 추세 속에서 자신의 세력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은 꾸준히 중근동을 공략할 것이다. 2023년에도 중동국가들은 에너지자원에 대한 수출시장 확보와 자국의 산업다원화 차원에서 중국을 경제파트너로서 바라보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에 협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역시 ‘내정불간섭’을 포함한 5원칙, 비동맹노선, 갈등회피 전략을 통해 이란-사우디아라비아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있어 어느 한쪽을 편드는 행위를 삼가면서 영향력 확장을 시도할 것이다. 러시아 역시 미국의 안보보장과 에너지 시장 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을 공략하는 한편, 이란, 시리아 등과의 전통적 협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한 근외(近外) 국가들을 다독이려 할 것이며, 인도-태평양 지역 에너지 시장 진출 확대를 통해 자신의 역할 회복을 모색할 것이다.

 
5. 선택의 딜레마가 가중된 중견국들
 
미국과 중국 간,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 간 디커플링이 진행될수록 여타 국가들의 선택의 고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국력상 미국 및 중국과 일정한 관계를 동시에 맺을 수밖에 없는 중견국들에게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올 것이다. 예를 들어, 그동안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한국에 대해 對중국 연대에 기여를 확대할 것을 요구해 왔으며, 중국은 한국과의 협력관계 유지를 희망하면서도 미국의 이러한 對중 견제 움직임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한국에 압력을 가해왔다. 2022년은 디커플링의 밑그림만이 논의되었을 뿐, 구체적인 조치들이 협의되지는 않은 만큼 이러한 압력이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보복성 조치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

압력은 중국으로부터만 가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미-중 전략경쟁하에서 미국은 우방 및 동맹국들이 자신들과 안보협력을 유지하는 한, 여타 분야에 있어 중국 혹은 러시아와 협력을 가지는 것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선택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복합경쟁의 시대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은 이제 안보 이외의 분야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의제에 대한 우방 및 동맹국들의 협력 수준에 따라 동맹국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하고 안보공약을 차별화할 수 있다. 즉, 안보분야에서만 존재했던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딜레마”가 이제 모든 경쟁분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6. 늘어나는 경제 리스크와 격화되는 기술 경쟁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에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디커플링의 분야를 확대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미국은 경제와 군사, 외교 그리고 기술 면에서 여러가지 조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22년 10월에 발표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계기로 기술 디커플링에 대한 추가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공급망 분야에서도 추가적인 구획 짓기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러한 디커플링과 공급망 재편은 결과적으로 각국 정부와 민간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언제까지 지불되어야 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음에 따라 필연적으로 경제적 리스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2023년에도 주요국가들이 모두 정부 주도로 자국 내 첨단기술 역량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첨단기술 분야의 무한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다. 특히 주요국이 자국 내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기술 및 산업 분야인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의 기술 독점이나 폐쇄주의가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7.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를 인권
 
가치대립을 특징으로 하는 복합경쟁 시대를 감안할 때, 인권 분야에 대한 공방 역시 2023년에 격화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정리단계에 들어서면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각종 전쟁범죄와 인권유린을 국제적 이슈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의 비협조 혹은 방해로 인해 대북제재 격상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인권 문제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과 함께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략지점이다. 뿐만 아니라, 가치 전쟁에서 중국의 정당성을 약화하고 국제여론의 지지를 유도할 수 있는 분야 역시 인권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할 때, 권위주의 체제의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문제 제기는 2023년 중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이에 대해 ‘주권’을 외치며 대응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선전전도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의 함축성

 
2023년의 국제정세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공한다. 우선, 기회의 요인으로서는 무엇보다 가치와 체제를 같이 하는 국가들과의 결속 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한미동맹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질 것이다. 과학기술 및 첨단 소재 분야에서의 진영화와 디커플링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우리 자체의 기술 보호와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성 보장에는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를 넘어선 다양한 지역 및 국제이슈들에 있어 우리의 대응방향이 제대로 정립될 수만 있다면 국제적 기여와 한국의 대외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도전 요인 역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더 위험해진 세계 속에서 한반도와 지역 차원의 위기가 연계되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안보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과거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를 둘러싼 중국의 무역보복이나 2022년의 “5개 응당” 요구, 우크라이나 지원 가능성에 대한 러시아의 경고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에 대한 일부 주변국들의 압력성 조치는 더욱 증대될 수 있고, 북-중-러 연대와 같은 반한(反韓) 공동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다. 복합경쟁으로 인해 다영역적인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우리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고, 미국의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경쟁 영역에 따라서는 협력대상으로부터 견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중간국가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우리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우리 자체의 의제 조정력이 발휘될 수 있다면 이는 국격 제고의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주요국들의 경쟁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 역시 농후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우리로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대응방향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치와 체제가 개입되는 지역 및 국제적 쟁점에 대해서는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기하는 것이 유리하다. 발생하는 모든 쟁점과 관련하여 명확한 대응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의 운신폭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인권, 힘에 의한 현상변경의 금지 등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반영하는 쟁점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모호한 입장을 계속하는 것보다 오히려 유리하다. 이러한 전략적 명확성이 특정 국가와의 불편한 관계를 조성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명성의 강화로 인해 상호 간 신뢰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민주주의 연대’와 같은 가치협력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쟁점별로 우리의 대응전략은 다양화되어야 한다.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관련 이익 자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협력대상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분명한 거부의 입장을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 이러한 기준은 향후 IPEF나 Chip 4의 구체적인 규칙이나 행동계획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분야의 배타적 협력 네트워크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과정에 다른 국가들의 진입을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 자체의 밑그림이 제시되어야 하고, 이의 공감대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대응방향은 협력대상국이든 잠재적 경쟁국가이든 간에 이견이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므로, 협력 지속에 못지않게 갈등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갈등을 관리한다고 해서 무조건 갈등이 부각되는 것을 저지하고 예방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수면 위로 부각시켜 이견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핵문제 해결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북한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접근법은 분명히 다르다는 관점에서 최소한의 공통분모(예를 들어 한반도에서의 전쟁, 동북아 전이 방지 등)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우리와 고민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EU 국가들이나 아세안 회원국들 중 우리와 가치와 체제를 같이 하는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에 주목하고, 공통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및 국제 차원에서 다양한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한국의 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한 대외적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강화와 직결된다. 복합경쟁 시대가 기존의 국경 개념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현실의 지정학 못지않게 인터넷 등 국제적 연계망을 통해 창출되는 가상의 국경선을 우리 이익 확장의 개척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복합경쟁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시각을 고정해야 할 기본적인 출발점은 한반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2023년은 북한의 핵협박이 더욱 노골화되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며, 주기적으로 한반도 위기설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핵협박이 일상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 공통의 억제력이 확장되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해야 하고, 이는 확장억제 조치의 구체화로 나타나야 한다. 확장억제 조치의 강화를 위해서는 기존에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되거나 미국이 소극적 반응을 보였던 대안들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한미 핵공유(nuclear sharing) 등이 이제 더 이상 간헐적인 정치 구호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안이 되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납득시키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여론들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 1. “Ukraine invasion: Putin puts Russia’s nuclear forces on ‘special alert’,” BBC News, February 28, 2022.
  • 2. 이 기준은 매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물론, 이 기준 역시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기준에 의하면 미국 역시 ‘결함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정부의 기능과 정치문화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이 지수가 특정 국가가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를 보는 일반적 시각과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Democracy Index 2021: The China Challenge (London: EIU, 2021).
  • 3. “China says U.S. politicians who ‘play with fire’ on Taiwan will pay,” Reuters, August 2, 2022.
  • 4. “Remarks by President Biden in Meeting with Department of Defense Leaders,” The White House, October 26, 2022.
  • 5. “Remarks by President Biden and President Xi Jinp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Before Bilateral Meeting,” The White House, November 14, 2022.
  • 6. The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ctober 2022), p.8; The White House, 2022 National Defense Strategy (October 2022), p.4
  • 6. “President Xi Jinping Meets with U.S. President Joe Biden in Bali,”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November 1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