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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전의 혼란기 1930년대로 우리는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유지되고 국제협력은 가능해질 것인가?
이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세계사의 분기점, 그 한 가운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국제정치는 권력(power, 힘) 추구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상 명멸해왔던 대국들의 상대적인 권력의 크기는 성장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성장 대국 중국과 기존 대국 미국 간의 긴장과 갈등이 현 국제정치의 핵심 골격이다. 권력의 부침과 함께 변화해온 미중 관계는 2차대전 이후 1950년, 1972년, 2008년, 2018년, 네 번의 큰 변곡점을 거쳤다.

1950년 10월, 마오쩌둥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중국 본토에 공산당 정부를 수립한 지 1년 밖에 안된 혼란 상황에서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한반도가 통일되어, 대미 관계에서 전략적 완충지대인 북한이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전 참전으로 시작된 적대관계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사실상 종결되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이 국제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기 위해 그동안 봉쇄해왔던 중국을 국제무대로 끌어내 소련과 경쟁하게 하고 그 사이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취하려 했다. 동시에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공산당 국가라 하더라도 경제와 사회적인적 교류를 통해 수십 년간 포용하면 민주화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규칙을 지키는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2018년경, 미국 안에서 그러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더 이상 중국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2년 차인 2018년 7월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해 무역전쟁에 불을 붙였다.

국방부 고위직을 지냈던 필자의 오랜 친구는 2019년 말 사적 대화에서 미국인들의 마음이 중국을 완전히 떠난 것은 시진핑 주석이 헌법 개정으로 임기 제한 규정을 철폐한 것을 목도한 후부터라고 말했다. 사실 그전에도 대중국 포용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없지 않았다. 포용 정책을 주도했던 닉슨 대통령마저 1994년 사망하기 전 그의 연설보좌관 윌리엄 사파이어에게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72년 미국이 대중국 포용 정책을 시작하자, 중국의 실용주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더 이상 서방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걱정할 필요 없이 경제발전에만 매진했다. 그 결과 중국 경제는 급성장했다. 1990년 중국의 명목 GDP는 미국의 6%에 지나지 않았는데 2001년 미국의 도움으로 WTO에 가입하고 ‘세계의 공장’이 된 후, 2010년에는 41%, 그리고 2020년에는 70%까지 따라잡았다.

이처럼 경제력이 성장하면 거기서 그치지 않는 것이 역사상 대국들의 행로였다. 성장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했고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그러한 시점에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당시 중국은 1조 수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경제가 중국에서 빌린 빚으로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허약한 미국의 모습을 본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제 미국의 시대는 지나갔고 중국이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2009년경부터 미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예를 들어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15차 당사국총회에서 중국은 개도국들을 규합해 미국이 주도한 선진국그룹에 정면으로 대결했다. 2013년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주석은 조용히 실력을 기르고 때를 기다리라는 덩샤오핑의 전략지침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떨쳐 일어나 할 바를 한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그렇다면 2023년 현재 미중 관계는 어디쯤 와있는가? 미·중은 군사, 외교, 경제, 기술, 이념 5개 분야에서 전면적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만 문제는 화약고이고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 저지를 위해 미국은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의 러시아와 “제한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동맹들과의 국제연대를 형성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미중 대결에서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백만 달러짜리질문이지만, 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양국의 국내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는 감지할 수 있다.

먼저 중국이다. 중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3년간의 엄격한 제로코로나 정책을 풀었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할 것이고 그것이 세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정반대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21%에 달하고 소비 감소와 물가하락의 디플레이션 징후가 보인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5% 아래라는 예측치가 나왔다. 중국도 일본이 20년간 겪었던 장기침체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경기침체는 시진핑 1, 2기에 실시된 세 가지 국가전략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첫째, 시 주석은 시장 메커니즘보다 당과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강조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이다. 특히 하이테크와 금융 분야에서까지 당의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혁신기업가 마윈은 당국에 거슬리는 발언으로 업계에서 축출당했다. 그러한 국가의 경제 개입의 극단적 형태가 제로코로나 정책이었다. 언제라도 불시에 떨어지는 정부의 명령으로 생업 활동을 중단당하는 일들이 3년간 지속됐다. 자연스레 중국의 국민과 기업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소비와 투자를 줄였다. 둘째, 시 주석은 집단지도체제를 약화하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집단지도체제는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을 때 잘못된 정책으로 재앙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그런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든 견제 장치였다. 그런데 그러한 견제 장치가 약화되면서 제로코로나 같은 실패한 정책의 시행을 막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 주석은 도광양회 전략을 버림으로써 미국과의 대결을 초래했다. 바이든 정부가 동맹들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자 서방 기업들이 중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인구감소, 대규모 부채, 높은 실업률 등으로 소진되어가던 중국 경제의 활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중국 경제의 추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실 별다른 해법이 안 보인다. 근본 해법은 시진핑 주석이 앞의 3가지 전략변화에서 유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시 주석이 자신이 버린 도광양회로 유턴하여 대미 관계를 개선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부활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활성화시킬 대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정반대의 극단적인 상황은, 앞으로 중국의 권력이 더욱 약화되어 갈 것을 감지한 시 주석이 조바심에 휩싸여 대만통일을 위한 군사적 행동을 서두를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의 침체로 미국의 승리가 확실해졌는가?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여러 지표들은 미국경제가 중국과 달리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인프라, 반도체, 인플레이션 관련 법안들로 풀린 자금이 미국경제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함정은 내년 말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 요인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바이든과 트럼프 두 후보의 대결을 상정하는 경우, 현재 지지도는 43% 대 43%로 비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중단될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해온 미국 주도의 연합전선도 해체되고 권위주의 중국과 러시아와 지도자들은 기뻐할 것이다. 고립주의 외교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세계는 혼란에 빠지고, 주한 미군 철수도 고려될 것이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독재가 설치고, 이웃의 희생 위에 우리만 잘살자는 보호주의 경쟁이 난무하고, 힘이 곧 정의라는 국제 무질서 속에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세상이 올 것인가? 다시 말해 2차대전 직전의 혼란기 1930년대로 우리는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유지되고 국제협력은 가능해질 것인가? 이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세계사의 분기점, 그 한 가운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 본 글은 8월 21일자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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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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