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 미국이 시리아 병력 철수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터키군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계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공격했다. 미군이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막 떠날 채비를 하던 때였다.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공격은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의 1인 체제, 트럼프(Donald Trump) 미 대통령의 고립주의, 미국의 틈새를 메우는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의 중동 진출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2010년대 들어와 에르도안 대통령은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연합해 쿠르드 소수민족 탄압을 강화했고 신오스만주의와 유라시아주의 정책을 추구해 러시아·중국 관계에 공을 들였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NATO 회원국 터키의 일탈 행보를 부추겼다. 터키는 중동을 떠나는 미국 대신 러시아에 기댔다. 동맹 관계를 거래 행위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더 쉽게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유능한 중재자로 부상 중이다. 이를 통해 후원국 시리아의 영토 확장과 안정화를 돕고 있다. 미국의 쿠르드 배신과 터키의 친러 일탈은 빠르게 재편되는 중동 신지정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흔들리는 동맹 구도는 동북아와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어두운 함의 역시 지닌다.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동맹은 언제든 쉽게 깰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는 대통령 개인의 돌발 결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의 철수 발표 직후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군사작전 감행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후 터키군은 중화기를 앞세워 YPG 거점 도시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 아인을 기습 점령했고 서쪽의 코바니에도 병력을 집중했다. 터키의 대쿠르드 군사작전은 미국의 사실상 승인 하에 이뤄졌다. 터키는 YPG를 자국 내 분리주의 테러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라고 주장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쿠르드계를 쫓아내고 안전지대를 설치한 후 자국 내 정착한 360만여 시리아 난민 가운데 100만명을 이주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림>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군사작전과 안전지대 설치 *출처: “Turkey Syria offensive: Erdogan and Putin strike deal over Kurds,” October 23, 2019,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50138121.
시리아 쿠르드계 YPG는 미국 주도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IS) 격퇴전에서 지상군으로 활약했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Bashar Assad) 독재정권에 맞선 반군 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의 주축이기도 하다. 내전 발발 직후 전국에 흩어져 있던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커스로 집결하자 북동부의 쿠르드계는 민병대를 조직해 자치를 누려왔다. 2014년 ISIS의 급부상 이후 시리아 내전이 정부군-반군-ISIS 간의 3파전으로 변하자 YPG는 반ISIS 국제연합전선의 핵심 전투병으로 싸웠고 1만명 이상 전사자를 냈다. 단일 참여조직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 수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과 여타 30여 국제연합전선 소속 국가는 공습과 무기·훈련 제공만을 맡았고 이들의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터키의 이번 군사작전으로 시리아 쿠르드계 500여 명이 사망했고 30만여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 와중에 YPG가 구금시설에서 관리하던 ISIS 포로 1000여 명이 탈출하기도 했다. YPG는 시리아 북동부에서 ISIS 포로 12000명과 가족 구성원 58000명을 수용 관리해왔다. 친터키 시리아 용병들이 이번 대쿠르드 작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소문도 급속히 퍼졌다. 하지만 미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YPG 사령관은 미국에 다른 대안이나마 허용해줄 것을 요구한 후 러시아와 시리아에 도움을 구했다.
터키의 쿠르드 학살을 방조한 미국과 달리 푸틴 대통령과 아사드 정권은 쿠르드의 요청에 즉각 화답했다. 터키군에 맞선다는 명분 하에 시리아 정부군은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북동부 지역에 다시 들어왔고 러시아군은 미군이 남기고 간 기지들을 접수했다. 러시아는 외교 중재력도 발휘했다.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소치에서 만나 탈 아브야드와 라스 알 아인 사이의 폭 30km, 길이 120km 안전지대에 전격 합의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터키가 원래 제안했던 길이 400km 이상의 규모보다 축소됐다. 러시아와 터키는 안전지대의 양국 공동관리, 나머지 국경지대의 시리아 관리에도 합의했다. YPG는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했고 자치권 포기와 미군이 제공한 무기 반납을 공식화했다. 이어 터키는 러시아와 S-400 미사일 방어 시스템 추가 도입을, YPG는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 정부군으로 흡수·통합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1인 체제와 민족주의·신오스만주의·유라시아주의 공세
17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이라 불린다. 총리 3연임으로 출마길이 막히자 2014년 역사상 처음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해 당선됐다. 2017년에는 대통령 중심제 개헌 국민투표를 통과시켜 대통령의 권한 강화와 장기 집권을 제도화했고 1년 후 재선에 성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1인 체제와 선거 권위주의는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
온건 이슬람 정의개발당(AKP)를 세운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 초기 무슬림 민주주의 구호 아래 쿠르드 소수민족 보호 정책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오스만제국 해체 후 출범한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와 터키 민족주의를 국시로 삼았고 급진 세속주의 세력은 이슬람주의와 쿠르드 민족주의 세력을 국가 통합의 적으로 규정했다. 함께 박해받던 두 세력은 민주화와 다원주의 확산을 주장하며 종종 연합했다.
그러나 집권 10년 차를 넘긴 에르도안 총리는 권력 사유화 행보를 시작했다. 권위주의적 의사 결정과 친인척 비리를 비판한 당내 온건파를 숙청했고 언론인과 시민단체를 탄압했다. 2015년 6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 AKP는 처음으로 단일정부 구성에 실패한 반면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이 제 4당으로 약진했다.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민족주의를 앞세워 극우 민족주의 민족운동당(MHP)과 연합을 맺었다.
2016년 에르도안 대통령을 겨냥한 쿠데타가 실패한 후에는 강도 높은 폭압정치가 이어졌다. 2년의 국가비상사태 기간 동안 현직 군인 1만 7천명 숙청, 공직자 15만명 해임, 언론인과 지식인 5만명 체포가 이뤄졌다. 매년 전세계 200여 나라의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터키의 민주주의 지수는 최근 2년 사이 2단계, 2012년 이후 5단계 하락했다. 친서구 노선과 중견국 외교를 표방한 대외정책도 변했다. ISIS 격퇴전에서 지상군으로 싸운 시리아 쿠르드계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자 쿠르드 탄압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어 신오스만주의와 유라시아주의 입장을 강조했다. 과거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부각하며 팽창 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했고 유럽이 아닌 동쪽 유라시아로의 진출을 역설했다.
이에 러시아·중국과의 협력 관계가 중요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UN이 아닌 러시아 주도의 시리아 전후 평화협상에 협력하고 있다. 올해 7월엔 러시아제 최신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장비를 인도받았다. NATO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를 갖고 있는 터키에는 NATO군이 이용하는 공군·해군 기지, NATO의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미국의 전략 핵무기 50여기가 있다. 미군 2000여 명이 주둔해 있기도 하다. 미국은 터키의 S-400 시스템 인도 이후 자국 F-35 스텔스 전투기 프로그램에서 터키를 배제했다.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 투르크계 무슬림의 통제 관리 관련 중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터키는 자국의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서구와 점차 멀어졌다. 미국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6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종교학자 귤렌(Fethullah Gülen)의 소환을 미국이 거부하면서부터다. 양국 관계는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대터키 무역전쟁을 선포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미국은 쿠데타 배후로 의심받아 억류 중인 자국인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올렸다. 터키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맞서 이란산 천연가스 수입 지속을 선언하며 맞대응 했다. 하지만 리라화 폭락과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졌다. 이때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살해 사건이 터키에서 일어났고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증거를 선점해 미국·사우디와 물밑 거래에 나섰다. 이후 터키는 미국인 목사를 전격 석방했고 대사우디 비판도 중단했다. 미국 역시 대터키 제재를 철회했다.
대외 관계의 고비를 넘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국내발 정치 위기가 찾아왔다. 올해 3월 지방선거에서 AKP가 3대 도시 앙카라, 이스탄불, 이즈미르에서 패했다. AKP는 25년 만에 이스탄불을 잃었고 공화인민당(CHP)는 25년 만에 앙카라를 되찾았다. 대통령 중심제 전환 후 첫 선거였기에 에르도안 장기집권에 대한 신임투표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 시장선거의 부정 개표 의혹을 제기해 석 달 후 재선거가 치러졌으나 야당이 더 큰 표차로 이겼다. 3월 선거에서 CHP의 정치 신인 이맘오울루(Ekrem İmamoğlu) 후보가 AKP의 총리 출신이자 대통령의 최측근 이을드름
(Binali Yıldırım) 후보를 0.3% 표차로 막판 역전했으나 6월 재선에서는 10% 차이로 이겼다.
지방선거의 민심에는 1년 전 미국발 무역위기 이후 불거진 민생고 여파도 작용했다. 민생파탄 책임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터키 내 정착한 360만여 시리아 난민에 대한 여론도 날로 나빠졌다. 터키는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수니파 무슬림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물론 시리아 난민의 유럽행을 막아주는 대가로 유럽의 막대한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1인 체제를 점차 위협했다. 이때 미국이 시리아 철군을 발표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부 위기 돌파를 위한 군사작전을 강행했다. 시리아 쿠르드계를 접경지대에서 몰아낸 후 자국 내 시리아 난민을 이주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가능했다.
고립주의 미국의 퇴장과 유능한 중재자 러시아의 부상
UN, EU, NATO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공격을 강하게 비난했다. EU 회원국은 대터키 무기수출 제한에 합의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는 무기금수 조치를 바로 취했고 영국, 스페인, 벨기에, 오스트리아는 검토에 들어갔다. NATO 역시 회원국인 터키 문제 논의를 위해 대사 및 국방장관 회의를 열었다.
터키 군사작전의 배후가 트럼프 대통령의 암묵적 승인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미국은 뒤늦게 사태수습에 나섰다. 공화당마저 갑작스런 시리아 철군을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터키 신규 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터키 국방·내무·에너지 장관의 미국 내 자산 동결, 터키산 철강 관세 50% 인상, 1000억 달러 규모의 양국 무역협상 중단이 발표됐다. 이어 미 부통령과 국무장관이 터키에 급파됐다. 그러나 대쿠르드 작전은 대부분 마무리 된 후였다. 터키는 YPG의 완전 철수를 조건으로 5일 간 공격을 멈추는 대신 미국은 대터키 제재를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쿠르드는 자치지역에서 쫓겨났고 터키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터키 외무장관은 미국도 대쿠르드 작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YPG 배신은 중동 자유주의 질서의 추락을 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중요도를 지불 능력으로 판단했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ISIS 국제연합전선에서 핵심 지상군으로 싸운 YPG 지원을 중단하고 철군을 결정했다. 터키군의 YPG 공격도 방관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철군 발표 직후 또 다른 동맹국 사우디에 미군 1800명과 첨단무기 추가배치 계획을 밝혔다. 사우디는 미국에게 충분한 비용 지불을 약속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불 능력을 중시하다 보니 계산은 비합리적이고 대안도 없이 행동이 앞섰다. 동맹과 지정학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기도 했다. 미군 1000여 명이 주둔하던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계 자치지역은 시리아 전체 영토의 1/3에 달했다. 이 지역에서 미군은 3만여 YPG 대원을 훈련시켰고 YPG는 ISIS 포로를 구금 관리해왔다. 아사드 정권은 이란과 러시아의 전폭적 지원 덕에 내전의 승자로 정상국가 복귀를 선언했지만 영토의 65%만을 관리하고 있었다. 2017년 말 시리아에서 ISIS 패퇴가 선언된 후부터 터키는 국경을 넘어 쿠르드계 자치지역 공격을 시도했다. 2018년에는 시리아 북서부의 쿠르드계 도시 아프린을 기습 공격해 YPG와 교전을 벌였고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국은 터키와 안전지대 논의를 이어왔으나 규모와 관리 주체를 두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뚜렷한 대안도 없이 철군을 강행했다.
미국이 떠난 후 러시아는 중재자로 틈새를 메웠다. 미국과 터키가 맺은 5일 간의 휴전 합의가 끝나는 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두 정상은 시리아 쿠르드계가 철수한 지역을 양국 공동관리에 두기로 했다. 이어 시리아 전후 평화협상에 대해 논의했다. 러시아는 UN 지원의 제네바·비엔나 협상에 맞서 아스타나·소치 협상을 이끌었고 이란과 터키가 이를 적극 지지했다. 러시아 주도 협상은 2018년 1월 아사드 정권과 반군 진영을 처음으로 한 테이블에 앉게 했다. 이어 10월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배석한 자리에서 반군 거점 지역의 완충지대 전환 합의를 끌어냈고 올해 8월 레바논과 이라크를 옵서버 자격으로 초대했다. 현재 이집트와 UAE 참여를 위한 물밑 교섭이 한창이라고 알려졌다. 10월 말 제네바에서 출범한 시리아 헌법위원회 역시 푸틴 대통령의 중재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평화협상은 후원국 아사드 정권의 안정적 복귀를 목표로 한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발발 이래 화학무기 사용 진상조사를 포함해 시리아 정부 관련 UN 안보리에 상정된 결의안 13건 모두를 반대했고 또 다른 상임이사국 중국은 7건 반대했다. 올해 9월 시리아 이들립 지역의 휴전을 촉구하는 UN 안보리 결의안이 또 상정됐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다시 반대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이 반군의 최후 거점 이들립에서 병원, 학교, 난민수용소를 무차별 공습해 지난 1년 간 1300여 명이 숨지고 100만여 피난민이 발생했다. UN 시리아 인권조사위원회는 시리아 정부에 살해, 고문, 강간과 성폭력, 임의구금, 자유박탈, 강제실종을 포함한 6가지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터키에 이어 또 다른 미 동맹국 사우디와의 협력 관계도 놓치지 않았다. 올해 10월 푸틴 대통령은 12년 만에 사우디를 찾아 경제·안보 협력을 강조한 뒤 사우디-이란 갈등의 중재 의지를 밝혔다. 파격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사우디에게 외교 다변화는 합리적 옵션이다. 역내 입지가 빠르게 약화되는 미국보다는 중재자로 존재감을 부각하는 러시아가 미래 파트너로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이미 2017년 10월 살만(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사우디 국왕은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제 S-400 시스템 구입을 약속한 바 있다.
흔들리는 동맹 구도와 불안정한 역내 질서: 터키와 카타르의 일탈, 쿠르드의 좌절
8년여 간 지속된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독재정권과 러시아·이란의 승리로 굳어가면서 이들 승전국 주도의 전후 역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전 기간 동안 아사드 정권을 위해 러시아는 무차별 공습전을 벌였고 이란은 대규모 전투병을 보냈다. 내전 막바지에 이르러 러시아는 종전 평화협상을 주도해 역량 있는 중재자로 부상했고 이란은 시리아 내 군사기지 10여 곳을 건설해 역내 패권 확장에 돌입했다. 미국과 유럽은 둘 사이의 갈등 때문에 러시아와 이란 주도의 신질서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이란 핵협정 탈퇴와 NATO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이후 미국-유럽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미국의 시리아 철군 역시 맹렬히 비난했다.
친서구 블록에 속하던 터키와 카타르가 새로운 역내 질서에 적극 합류하고 있다. NATO 회원국 터키의 시리아 침공과 러시아 밀착 행보에 전통적 친미국가 카타르는 공식 지지를 발표했다. 카타르에는 미군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미 중부사령부 현지 본부가 있다. 알 싸니(Tamim bin Hamad Al-Thani) 카타르 국왕은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 형제국과 추구해온 친서구 노선을 보류하고 이란·터키와 함께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 무슬림형제단을 후원해왔다. 2017년 사우디와 UAE는 테러조직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하고 국경을 폐쇄했다. 카타르의 일탈은 이어졌다. 2018년 미국의 무역전쟁 선포로 터키가 경제위기에 처하자 카타르는 양국 통화 스와프 협정과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올해 말 카타르에 터키 군사기지가 추가로 세워진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자유주의 질서는 나라 없는 약자에게 부족하나마 외부 충격의 보호막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때 자유주의 질서의 수호자였던 미국이 동맹의 가치를 흔들면서 쿠르드는 토사구팽을 당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이라크 쿠르드계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면당했다. 2005년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자국을 적극 도운 이라크 쿠르드계에게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실질 권한을 허용했다. 2014년 시작된 미국 주도의 ISIS 격퇴전에서 이라크 쿠르드계 민병대 페쉬메르가(Peshmerga)도 시리아 쿠르드계 YPG처럼 핵심 지상군으로 싸웠고 이라크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ISIS를 패퇴시켰다.
ISIS 격퇴전이 끝난 후 2017년 10월 KRG는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했다. 이에 반발한 이라크 중앙정부는 정부군과 시아 민병대를 앞세워 대쿠르드 군사작전을 실시했고 키르쿠크를 점령했다. 키르쿠크는 쿠르드가 ISIS를 몰아내고 장악한 유전지대다. 이라크 중앙정부 내 친이란 강경파는 군사작전을 확대해 KRG의 수도 아르빌까지 진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라크, 이란, 터키 모두 자국 내 쿠르드 소수민족을 의식해 KRG를 맹비난하자 미국은 원만한 해결을 촉구할 뿐이었다. 특히 이란과 터키는 쿠르드의 자치권 확대 불가라는 공동의 목표 하에 어느 때보다 밀착했다.
2017년 말 이라크 쿠르드계는 자치권과 영토 일부를, 2019년 말 시리아 쿠르드계는 자치권과 영토 전체를 잃었다. 한때 쿠르드를 동맹으로 치켜세웠던 미국은 이들의 좌절을 외면했다. ISIS가 격퇴되자 쿠르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강행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쿠르드 공격 감행은 미국의 동맹관 변화에 따른 중동 내 혼란과 뉴노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민주국가는 동맹을 쉽게 버렸지만 러시아·이란·중국은 역내 후원국을 끝까지 보호하고 있다.
동북아의 미 동맹 구도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전략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에 소홀하고 미국의 고마움을 모른다며 비난한다. 동북아에서도 자국의 무역적자와 방위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동맹을 배신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가치를 지불 능력과 거래 비용으로 판단한다. 지정학에 대한 이해도 매우 낮다. 그래서인지 중동 동맹국 터키와 카타르의 일탈을 제어하지도 않는다. 현 미국 정부가 내세운 자국 우선주의는 점차 대통령 개인의 사익 우선주의로 변해가며 미국의 신뢰도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높은 불가측성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트럼프 리스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외교 의제를 다변화하고 다자협의체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 의제의 지나친 강조 대신 국제규범과 원칙에 맞는 다양한 의제를 다자협의체에서 적극 추진한다면 네트워크와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동맹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판단에 맞서 동맹 구도 내 우리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 우발적 외부 충격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