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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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중동에서 중국은 새로운 행위자이지만 최근 적극적인 경제·외교 활동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3년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을 발표해 중동이 핵심 교두보 지역으로 부상하고 비슷한 시기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선언해 중동 내 미국 공백이 예상되면서 중동과 중국은 빠르게 협력을 다졌다. 중동의 주요국과 중국 간의 협력은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 경제 관계를 넘어 외교와 안보 관계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스라엘,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주요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특히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Joe Biden) 정부 시기에 들어와 미국이 ‘중동 내 역할 축소’를 가속하자 중국은 중동 지역 내 투자를 강화하고 과학기술, 정치,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동반자 관계를 다졌으며 군사협력까지 시도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했다. 미국의 탈중동 움직임에 중국이 빠르게 틈새를 노림에 따라 미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경쟁이 중동에서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중동 국가의 입장에서 대중국 협력 강화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셰일(shale) 에너지 혁명 이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동 산유국에 중요한 에너지 수출국이며, 특히 걸프 산유국이 전례 없는 내용과 속도로 추진하는 최첨단 미래 기술과 디지털 전환, 신재생 에너지 혁신 등과 같은 탈석유 산업 다각화 개혁 정책의 핵심 협력국이다. 둘째, 중동 국가에게 중국은 미국의 중동 이탈 이후를 대비할 외교 안보 협력의 다변화 대상이며 ‘동방 정책’의 핵심 대상 국가 중 하나다. 최근 중국의 활발한 대중동 진출에 대해 중동 시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2023년 ‘아스다 버슨-마스텔러(ASDA’A Burson-Marsteller)’에서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레바논, 알제리, 모로코 등 아랍 18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방국가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중국(80%)은 2위를 기록한 반면, 미국(72%)은 7위에 그쳤다. 이러한 추세는 ‘아랍 바로미터(Arab Barometer)’에서 실시한 강대국 호감도 인식 분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1~22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레바논,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팔레스타인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모로코를 제외한 11개국에서 중국 호감도가 미국과 같거나 높게 나타났다. 2020년 리비아, 요르단, 레바논,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6개국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 1 미만이 미국에 호의적이며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3개국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있어 중동 진출 심화의 핵심 배경은 중동이 일대일로 정책 성공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 지역이란 점이다. 중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항만, 철도, 도로, 화력발전소, 댐 등의 인프라로 연결해 거대 경제권을 구축한다는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해왔고 중동은 일대일로 전략의 성공을 위한 핵심 고리다. 이에 더해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중동 내 권위주의 국가를 상대로 내정 불간섭과 탈정치 입장을 내세웠다. 또 디지털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우는 미국은 여러 중동 국가에 강압적 모습으로 비춰져 협력관계를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중국은 중동 국가에 반정부 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인터넷 통제기술과 최첨단 보안 감시 시스템을 제공했다. 이렇게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UAE, 튀르키예, 이집트 등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 다수와 디지털 실크로드(數字絲綢之路, Digital Silk Road)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정보통신 기술 관련 협력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은 자국의 표준에 따라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고 화웨이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중국과 중동 주요국 간에 무기 거래, 합동 군사 훈련 등과 같은 활발한 군사협력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특히 2023년 초 중국이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 중재자로 나섬에 따라 에너지 안보 확보로 제한하던 기존의 소극적 역할을 넘어 역내 긴장 해소에 참여할 의지를 드러내며, 향후 역내 미국의 공백을 메울 적극적 활동을 예고했다.

향후 중동과 중국 간의 협력 추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중동정책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조율해야 한다. 한국은 그간 중동에서 핵확산 금지,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 자유 시장경제 지지를 핵심으로 삼는 중견국 외교를 강조해왔다. 이는 최근 미국이 민주주의, 인권, 자유, 법질서, 개방성 등을 강조하며 전개하는 ‘가치 외교’와도 부합하는 부분으로,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국제규범과 다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외교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단, 중동의 많은 나라가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 기조를 이러한 가치와 규범에만 제한하기보다 최근 여러 걸프 산유국이 추진하는 파격적인 개혁개방과 혁신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이들 산유국과의 경제 협력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발전모델은 중동 국가가 중요시하는 공동체, 도덕과 윤리, 통합과 같은 전통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시장경제 발전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우호적인 분위기에 편승해 중동 국가의 젊은 세대 교육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첨단과학 분야와 고급 인재 육성 프로그램 개발에 독보적인 역량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을 홍보하며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목차

 
I. 들어가며

II. 중동의 대중국 협력 강화: 배경과 평가
   1. 셰일 혁명 이후 독보적 수출 대상국이자 산업 다각화 정책의 핵심 경제협력국
   2. 미국의 ‘역할 축소론’ 이후 외교 안보 다변화의 주요 대상국
   3. 아랍 세계의 미중 호감도 분석

III. 중국의 중동 진출 심화: 배경과 평가
   1. 일대일로 정책 성공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
   2. 미국의 탈중동 시기 안정적 입지 확보: 디지털 및 군사협력 강화
   3. 중국의 수니파-시아파 갈등 중재와 중동 갈등의 중재자로서의 평가

IV. 나가며: 중동과 중국의 협력 강화가 한국의 중동정책에 주는 함의

참고문헌
 

 

본 보고서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신문경
신문경

오리건 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

신문경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미국 오리건 대학교 정치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하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 관심분야는 미중관계, 중국정치외교 등이다.

김지연
김지연

연구부문

김지연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베이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정치사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외교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연구 관심분야는 미중 관계, 정체성, 종교 및 민족 갈등, 정치폭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