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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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 해 동안 36여 차례에 걸쳐 7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신들은 결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머릿속에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는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누가 자기의 운명을 강낭떡 따위와 바꾸겠는가”라고 반박한 김여정의 주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권력엘리트들에게 핵무기는 1인 독재체제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자산이기 때문에, 핵보유국 지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지상 목표인 것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를 최대의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는 북한은 핵무기를 손에 쥠으로써 우리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 핵협박으로 우리를 흔들어 궁극적으로 한반도 공산화를 달성하는 것 이외에는 생존의 길이 없다고 보는 듯하다. 북한은 2016년부터 고강도 국제제재에 직면하면서 체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가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핵능력 고도화를 계속하는 데에는 이러한 아집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가 ‘만능의 보검’이 아니라 ‘멸망을 향한 시한폭탄’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는 한미의 빈틈없는 억제태세 구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래 미국 일각에서 북한과의 ‘군축협상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난 10월 보니 젠킨스(Bonnie Jenkins)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미국의 대북관계에서 군축을 논의할 여지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두 나라가 마주 앉아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군축은 언제든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 만약 김정은이 전화기를 들고 ‘군축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면 우리는 ‘안된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여 북한과의 군축회담 가능성을 밝혔다. 다음날 네드 프라이스(Edward Price)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북한을 핵국가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군축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는 점을 볼 때 젠킨스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적 견해가 아닐 수도 있다.

미국 내 일부 비확산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이미 북한이 일정한 핵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 이상 고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단계 합의(interim agreement)인 군축협상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군축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제프리 루이스(Jeffrey Lewis)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워싱턴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the unthinkable), 즉 북한을 핵국가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미국과 군축협상을 하기 위해 더 많은 핵무기를 더 빨리 가지려 할 것이고,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미국은 북한과의 군축협상을 고려할 수도 있다.

미북 군축협상 주장은 한미동맹 해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고, 북한은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지,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해 왔는데 군축협상이 시작되면 바로 이러한 것들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 도발에 대한 억제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고, 적절한 훈련을 통해 단련되지 못한 군사력은 존재와 주둔의 의의가 없어지는데, 북한은 이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을 해체하려 할 것이다. 한편, 미국민들은 북한과 군축협상을 통해 북한 위협이 감소할 것인데 왜 미군을 한국에 계속 주둔시키고 동맹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탈레반이 이제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작스럽게 미군을 철수한 사례가 한반도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군축협상은 미국의 안보이익에도 반하는 주장이다. 북한이 미북 ‘핵군축 협상’을 계속 주장하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관계에 있고 한미동맹 해체를 바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동조하고 나설 것이다. 그동안 북한 핵실험과 한미 연합훈련의 동시 중단,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의 병행 진행을 뜻하는 ‘쌍중단 쌍궤병행(雙中斷 雙軌竝行)’을 주장하면서 북한을 감쌌던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역시 북한의 핵군축 협상 주장을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근래에 들어 모두 권위주의적 1인 지배체제라는 정치적 특성을 공유하게 되었고, 미-중 전략경쟁이 ‘민주주의 對 권위주의’의 구도로 확대되면서 공감대가 확산된 북한, 중국, 러시아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의 와해는 결국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고, 동북아에서 미국을 몰아내어 중국과 러시아에게 중요한 전략적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우방국 및 동맹국들은 한미동맹이라는 최고의 성공사례를 스스로 허문 미국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미북 ‘핵군축 협상’은 1970년대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이후 미국이 일관되게 유지하려 했던 국제적 비확산체제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단 북한과의 ‘핵군축 회담’이 시작되면 북한은 이를 핵보유국 지위 획득이라고 선전할 것이며, 적지 않은 국가들도 그렇게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잠재적 핵보유국들에게는 매우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는데, 국제질서와 규범을 뒤흔든 이후 일정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이를 일단 견디기만 하면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진 핵개발국가들이 북한의 뒤를 따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의 사례를 모델로 삼아 서로 압박과 제재를 견디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공유하려 할 것이므로, 미국은 제2, 제3의 군축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북 군축협상은 미국의 안보공약을 신뢰하지 못하는 일본, 대만과 같은 국가들을 핵개발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비확산체제를 붕괴시킬 것이고, 핵무기 확산이 일상화되는 위험한 세계를 만들 것이다.

미북 군축협상은 북한이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있는데, 이는 결국 미국의 핵위협과 한미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자위적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북한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30년 이상 북한이 보여 온 기만적 행태는 한미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고, 북한 핵개발의 진정한 동기는 김씨 일가의 권력욕과 적화 야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의 선제사용과 자의적 사용 원칙을 규정한 ‘핵무력 정책’ 법령의 서두에 왜 ‘령토완정’이라는 목표를 표방했는지를 생각해보라.

군축협상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을 막을 수 없다. 북한은 미국 내에서 군축협상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 자신들의 책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하여 핵과 미사일 위협을 더욱 강화해 나가려 할 것이고, 군축협상 전에 최대한 빠르게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핵군축 협상’ 주장은 북한의 도발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촉진하는 모순적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문제는 미북 ‘군축협상’이 현재에는 일부 군축 및 비확산 전문가들의 주장이라고 하지만,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ICBM이 완성된다고 하면 워싱턴 내에서 미북 ‘군축협상’ 주장이 다시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제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강한 거부의사를 표명해야 하는데, 이러한 대응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 미북 ‘핵군축협상’과 관련된 분명한 입장의 정립을 요구해야 하고, 민간회의나 학술연구에서도 그 논리적 모순을 적극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과 부담을 계속 증가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한데,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밀착으로 인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더라도 UN 차원에서 추가 대북제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한미 혹은 한미일 차원에서, 그리고 우리와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제재의 수위를 더욱 높여나가야 하며,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방안을 발전시켜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대북제재를 상쇄하거나 무력화할 대북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대북제재 이행 감시망을 강화하고 불법적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만약 미국이 미북 핵군축협상을 추진하려 한다면 우리는 군축협상에 앞서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한국에 대한 확실한 보장(assurance) 조치를 시행하고 ‘공포의 균형’을 맞추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일단 전술핵을 배치하고 난 다음 북한으로부터의 핵위협 감소에 상응하여 전술핵 등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자산 운용 및 배치 수준을 조정하자고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전술핵무기는 한반도상에서 핵 균형을 맞추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와 더불어 만일 있을지도 모르는 핵 군축협상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거나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핵을 통해 북한을 압박함으로써 비핵화를 견인하게 될 것이다. 전술핵무기 배치는 확장억제의 핵심기능인 억제와 보증은 물론 비핵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단이므로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