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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와시(根回し)’.

일본에는 ‘네마와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래 나무를 옮겨심기 전에 하는 사전 준비작업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는 ‘사전교섭’ 정도로 해석된다.

이 표현이 업무상에서 사용될 때는 일을 진행하거나, 의사결정 등을 할 때 사전에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배경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네마와시’라고 할 정도로 일본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이러한 사전교섭 과정을 거친다.

한일관계를 연구하는 업무의 특성상 일본인들을 만나거나, 회의를 하는 등 일을 함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측과 협의를 해야 할 경우가 자주 생기는데, 이 ‘네마와시 문화’가 가끔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지나칠 정도의 꼼꼼함과 불필요한 정도의 과도한 우려가 더해질 때, 일이 늦어지거나, 자칫 틀어지기도 한다. 한국이라면 벌써 다 끝났을 일이 일본과 할 때는 2~3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 모든 절차와 과정을 거치려다 보면 1주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과 일을 할 때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곤 한다. 일처리가 늦는 것은 아닌데, 과정과 절차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해진 틀을 벗어나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변경사항이라도 생기면 일은 더 복잡해진다.

변수가 허용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당연한 일련의 과정들이 효율성과 신속함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융통성이 없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신 사전에 충분히 논의되다 보니 실수가 적고, 양측의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져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훨씬 높다.

그럼에도 한국인인 나는 여전히 이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며, 지난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는 달리 해석하면, 원리와 원칙, 과정, 약속을 중시하며, 완벽을 기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을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며 매일 일본을 접하면서도 일본에 대해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고, 적응하기 힘든 일본의 독특한 문화 중의 하나이다.

최근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일관계를 보다 보면, 이 ‘네마와시’ 문화가 떠오르곤 한다. 극적인 타결을 보려는 한국과 점진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일본. 지속적 노력을 통해 합의를 보완해 가려는 한국과 변하지 않는 완벽한 합의를 원하는 일본. 문제를 대하는 양국의 모습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양국이 소통을 한다기보다 벽을 보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최근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추진되다 불발된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방일(訪日)과 정상회담이 거론된 것은 지난 해 11월경이었다. 일본 정부는 즉각 부인했지만, 당시 일본을 방문한 박지원 국정원장이 도쿄올림픽 계기, 남·북·미·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 명확한 설명이나, 배경 없이 나온 한국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본에서는 다양한 추측들이 이어졌고, 결국은 한일관계 개선이나, 도쿄올림픽 개최 축하가 아닌 도쿄올림픽을 이용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이라는 의견으로 여론이 형성되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목적’이 아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며,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고, 잠시나마 불었던 훈풍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한일 양국 ‘접근법’의 차이

이러한 가운데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다시 주목받았다. 6월 G7 계기 한일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된 이후, 정상회담이 개최될 사실상 마지막이자, 최적의 기회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지난 보름여간 양국을 뜨겁게 달군 논의가 무색하게 정상회담은 결국 ‘비개최’로 결론지어졌다. 청와대는 상당한 합의가 있었지만, 성과로 내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했고, 실무협의를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양국이 끝내 접점에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여기에 회담 개최가 결정되기 직전 소마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급격히 악화된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현재 한일간 다양한 갈등 사안은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정상회담으로 성과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끝내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지만, 한일 양국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개최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확실히 ‘실’보다 ‘득’이 많은 회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왜 ‘개최 무산’이라는 선택지를 택했을까.

소마 공사의 발언으로 인한 여론 악화를 제외하고 본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평창올림픽 아베 총리의 참석에 대한 답방을 명목으로 양국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정상간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코로나 확산 속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안고 열리는 올림픽이니만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문제 해결이라는 당장의 실익은 아니더라도, 관계 개선을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일본의 입장에서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각국 정상(급) 인사가 줄줄이 불참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의 방일과 도쿄올림픽 개막 축하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특정한 성과가 없더라도 ‘외교문외한’이라는 스가 총리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일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한국 대통령의 방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이러한 소극적 태도는 한국으로 하여금 더더욱 ‘성과’를 강조하게 하였고, 한국이 ‘성과’를 강조할수록 일본은 더더욱 한국이 원하는 성과를 줄 수 없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한일 양국이 스스로의 벽과 기준을 점점 높게 만들어 그 안에 갇혀 버리는 셈이 된 것이다.

결국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며, 상호간의 반감이 고조되며, 결국 양국정부는 한일관계에 또 하나의 상처만 남긴 채 ‘합의 불발’, ‘회담 무산’이라는 결과를 택했다. 소마 공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촉매제가 되었지만, 결국 해결책을 함께 찾기를 원하는 한국의 접근법과 완벽한 해결책을 원하는 일본의 접근법이 부딪힌 것이고, 양측이 기대하는 ‘성과’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걱정되는 것은 다음이다. 이제 양국 정상이 만나기 위한 기준은 더 높아졌고, 악화된 여론이 개선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갈등 사안을 단번에 해결하기에는 양국의 정치체제와 사회문화의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양국이 안고 있는 갈등 사안은 역사와 민족,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으로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고, 양국의 국민감정과 얽혀 있는데다 그 갈등의 골조차 깊다.

따라서 지금은 성급한 관계 개선과 결과를 얻으려는 노력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가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일본은 한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관계 개선의 시작이다.

 
* 본 글은 08월 15일자 미래한국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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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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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2007),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2009), 박사 학위(2015)를 취득하였다.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미국 미시간대학교(2012-2013)와 일본 와세다대학교(2013-2014)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2015),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2016-2018),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2018-2019)로 재직하였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