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일 양국은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및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에 있어 핵심 파트너임을 재확인했다. 또한, 우주 개발과 기술 혁신, 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위한 비전과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일본의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필러 2(Pillar Ⅱ) 참여를 통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극초음속 미사일 등 8개 첨단 군사 분야에서의 방산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함으로써 양국은 미일동맹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 또한 과시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의 지속 강화를 다짐하는 한편 ‘핵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일본을 방어하겠다고 한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어떻게 협력하고 그를 활용해 나갈 것인지,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 내에서 일본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그 방향성을 보여줬다. 미국에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비교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각하는 3국 협력의 방향, 글로벌/인도·태평양 지역 질서 구축을 위한 한국의 역할과 기여,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 방안 등에 대한 우리의 계획과 구상을 가지고 미국과 협력해 나가야 할 때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대미·대일 협의 방향이 정립돼야 한다. 미·일 양국 정상은 회담 후에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외교 협상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동맹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갖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일본과 북한의 대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북한이 우리를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主敵)’이라고 간주하고 모든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 일본인 납치자 및 북한 핵·미사일은 북·일 정상회담 의제가 아니라는 김여정 담화(3월 25일) 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납치자 문제를 이용해 기시다 정부를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이려고 하거나, 북·일 정상회담을 미 대선 후 미·북 협상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평양 방문 및 ‘조·일 평양 공동선언’ 등 한반도 문제의 주요 변곡점에서 독자 행보를 선보인 적이 있다. 16%대의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는 기시다 내각으로서는 외교적 성과(특히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한 유혹이 생길 수도 있으며, 대북정책과 관련해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관리만 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일 대화를 통한 돌파구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를 북한이 역(逆)이용할 경우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보여주기식 북·일, 미·북 협상만 재현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리의 우려를 미국과 일본 양국에 전달하는 한편,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전략적 도발 억제 등의 의제에 대한 3국 공통의 목표 인식을 견인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 본 글은 4월 1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