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무겁게 한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핵능력 고도화와 한국을 겨냥한 ‘신형 전술핵무기’의 개발을 공언했고, 지난해에만 8건의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임기 말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종전선언이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면서도, 그를 통해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인지 부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문제는, 이러한 모순적인 사고와 정책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안보를 위해서는 위협 인식이 분명해야 하고, 그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이 탄탄해야 하며, 국민이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이 3가지가 모두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2020년 북한이 우리 혈세로 지은 개성의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우리 국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는데도 제대로 된 항의나 배상 요구도 하지 못했다. 잇단 북한의 위협 시위에 대해서도 지난해 9월 25일 김여정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한 이후에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인 탄도미사일 발사에 도발이라는 표현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안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것도 방관하거나 조장해 왔다. 2018년 3월 대북 특사단은 방북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예년 수준의 한·미 훈련이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고, 북한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를 손바닥 뒤집듯 해 버렸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오히려, 2018년 이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대화를 위한 협상 카드쯤으로 다뤄지고 있다. 정전체제와 유엔사의 무력화, 그리고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 훼손용으로 북한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종전선언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1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3%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했다. 또,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 안보에 위협이라는 인식은 82.9%였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89.1%나 됐다. 종전선언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나 인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안보’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큐리티(security)’가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라틴어의 ‘세쿠루스(securus)’에서 나왔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안보정책의 입안과 추진에서도 소그룹 안에서의 집단사고를 국민에게 홍보하거나 설득하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공감대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미덕이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의 안보는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 ‘방 안의 코끼리(elephants in the room)’와 같은 것이 돼 버렸다. 안보의 궁극적 지향점은 평화이고, 평화 역시 안보를 바탕으로 해야 굴종이나 비겁이 아닌 진짜 평화가 된다. 2022년에는 정파적 이해관계나 특정 집단의 선호를 넘어선 제대로 된 안보와 평화의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 본 글은 01월 03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