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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거듭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안이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로 인해 지난 26일 부결됐다. 중·러 양국은 2017년 12월 채택된 결의안 제2397호에서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ICBM 발사가 있을 경우 북한의 유류 수입을 추가 제한하는 ‘트리거 조항’에 동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중·러 양국은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추가 제재를 비토함으로써 자신들의 5년 전 결정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을 저질렀고, 공식 핵보유국으로서 지켜야 할 핵확산금지 책무 또한 저버렸다.

중·러의 이러한 행태는,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서방세계의 강력한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에 직면해 있어 예견된 것이었다. 북한의 ICBM 발사와 핵실험이 미국의 주의를 분산시키길 바라는 중·러에 북한은 제재 대상이 아닌 전략적 우군일 수밖에 없다.

중·러의 노골적인 북한 비호로 인해 유엔을 통한 다자간 제재의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는 미국의 향후 대응 전략은 정교해질 전망이다. 당장 꺼내 든 카드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한 중·러 압박이다.

대북 제재 결의안 부결 다음 날, 미국은 북한 국적인 1명과 고려항공무역회사, 러시아의 극동은행과 스푸트니크은행을 제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사를 둔 극동은행은 러시아 내 자산순위 13위 은행인 러시아지방개발은행(RRDB)의 자회사로, 러시아 극동지방과 동시베리아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비록 지방이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중견 은행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향후 북한 관련 금융 제재의 범위가 확대될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러시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북한이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중국의 은행들이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 미 재무부 제재 대상 지정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상당할 것인 만큼 중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 제재를 통한 북한과의 무역 위축 유도는 코로나 이후 스스로 대외경제 부문을 축소해 온 북한을 압박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여기서 미국이 준비하는 비장의 무기는 역내 해양감시망이다. 미국이 이번 쿼드(Quad) 정상회의를 통해 발표한 ‘해상 영역 파악을 위한 인도·태평양 파트너십’(IPMDA)은 인공위성 등 원격 탐사 기기로 인도·태평양에서 선박 위치추적 장치를 끈 채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을 감시·추적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IPMDA는 위치추적 장치를 끄고 공해상에서 유류를 밀반입하는 북한 선박들을 감시·추적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이는 안보리 결의 제2375·2397호와 이번에 무산된 결의안의 공통 핵심인 대북 유류 수출 제한 조치의 집행이 수월해짐을 의미한다. 북한은 제재로 인해 외화가 고갈됐는데도 석유제품 수입만은 꾸준히 유지했을 정도로 석유는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독자 제재와 IPMDA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 없이도 미국이 북한 경제를 옥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자간 제재의 한계를 확인한 미국은 동맹과의 유기적 공조를 통해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방법을 혁신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5월 30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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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현
고명현

외교안보센터

고명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다. 컬럼비아대학교 (Columbia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통계 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9, 2001), Pardee RAND Graduate School에서 정책분석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0), UCLA의 Neuropsychiatry Institute에서 박사후 연구원 (포닥)으로 재직했다. 최근 저서로는 북한을 돕는 중국기업인 Liaoning Hongxiang 그룹의 실태를 파악한 “In China’s Shadow”와 북한 전거리 교화소 내 사망비율을 추정한 “북한 교화소 내 인권 실태: 전거리 교화소 내 사망과 유병비율을 중심으로”가 있다. 고 명현 박사는 2015년도 뭔헨안보회의 Young Leader이자 독일 아고라 전략연구소 객원 펠로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