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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8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피격 사망은 선거전의 모든 이슈를 덮었다. 총기 소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일본에서 선거기간에 일어난 사건이자, 그 대상이 일본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아베 전 총리였다는 점은 시민을 큰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자민당은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했고, 이틀 뒤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예상된 결과지만,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은 자민당의 결속력을 높였고, 그의 유지(遺旨)는 자민당의 지향점이 됐다.

한·일 관계에서 이번 참의원 선거를 특히 주목했던 것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 하의 자민당이 압승할 경우 한·일 관계 개선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이후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는 한 3년간 큰 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이 찾아온다. 한·일 갈등 사안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현저히 작지만, 이 시기 온건파인 기시다 총리가 정권 장악력을 기반으로 적극 나선다면, 한·일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애초 관심은 기시다 내각 하의 자민당이 어느 정도로 승리할 것인지, 그리고 기시다 총리가 어느 정도의 정권 장악력을 획득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일본 정치가 새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무엇보다도, 자민당의 가장 큰 파벌인 아베파의 영수이자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아베 전 총리의 부재로 당분간 당내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앞으로의 일본 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첫 번째 시나리오는, 아베 전 총리 사망을 계기로 보수 세력들이 결집해 자민당의 보수 우익적 성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일 관계 개선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포스트 아베’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심점 없이 보수 세력이 결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는, 기시다 총리가 아베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내각 출범 후 중의원 선거와 참의원 선거를 연이어 승리한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양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신중하고, 안정 지향적인 성향을 보여온 기시다 총리가 현재의 혼란 상황에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자민당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 번째는, 보수 세력의 구심점 공백 상황에서 ‘포스트 아베’가 되기 위한 당내 세력 다툼과 권력 구도 재편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일 관계는 현상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재의 혼란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빠르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이르면 8·9월로 예상되는 내각 개편 및 자민당 간부 인사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일본이 국내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참의원 선거 이후 강제징용 문제 해결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며, 관계 개선을 기대했던 한국 정부로서는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한국 외교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 본 글은 7월 1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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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