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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역할축소 가시화에
사우디·UAE·이란·이스라엘 등
앙숙들끼리 `새 짝짓기` 가속
중동 주요국 무한 생존경쟁
다른 나라들의 미래도 흔들것
 
새해를 맞은 중동 곳곳에서 숨막히는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우선 친미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긴장 관계에 놓인 나라들과 전방위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이어 중동 내 군 감축 계획을 발표해 ‘역할 축소론’에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들 국가는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선언했고 특히 UAE는 이스라엘과 동맹에 가까운 협력을 다져왔다. 이들 수니파 걸프국은 시아파 맹주 이란과도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작년 사우디와 이란은 이라크 중재로 바그다드에서 네 차례 회동했다. 두 나라는 6년째 단교 상태다. 12월에는 UAE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란을 방문해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났다. UAE의 실질적 지도자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제의 친동생인 타흐눈 빈 자이드 국가안보보좌관은 선글라스를 쓰고 이란 대통령과 면담했는데 포커페이스 유지가 어려워서 그랬나 싶을 정도로 UAE와 이란은 앙숙이었다. 몇 달 전 UAE 국가안보보좌관은 역시 불편한 사이였던 터키와 카타르도 찾았다.

이란도 어제의 적국과 미래의 우호를 태연히 협의했다. 사우디, UAE와 해빙 외교를 펼치며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부각해 빈에서 진행 중인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였다. 터키도 얼마 전까지 독설을 퍼부었던 UAE를 상대로 돌연 협력을 논했다. 추락하는 경제 앞에서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부국 UAE 손님과 찍은 기념사진에서 무표정으로 위장했다.

1월 3일 재개된 8차 핵합의 복원 협상에서도 이란은 미국을 상대로 포커페이스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작년 초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협상은 6월 이란 강경파 대통령의 당선으로 중단됐다. 라이시 대통령은 미 제재에 따른 극심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거부했다. 블러핑을 이어가던 이란은 5개월 만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11월 7차 협상을 재개했고 긍정적 태도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란의 강경파 지배연합이 반미 이슬람혁명 수출과 친이란 프록시 조직 지원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숙적 이스라엘 역시 올 1월 초 협상 지지로 입장을 급선회해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과 레바논, 시리아, 가자지구의 친이란 무장조직에 대한 공격을 이어갈 것이다. 한편 미국은 이란에 대해 제한적으로 원유 수출을 허용하고 동결자산 일부를 해제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는 패를 만지며 ‘중동 떠나기’ 시기를 재고 있을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미·중 경쟁을 둘러싼 눈치 싸움에도 바쁘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을 떠난다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위해 사우디 UAE 이스라엘 이란 터키와 경제협력을 확대했고 미국과 달리 디지털 권위주의에 관대하다. 작년 8월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계기로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이 활성화하자 이란 터키 러시아 중국은 미국의 무책임한 이탈을 비난하며 반미 연대를 굳건히 했다.

중동 주요국의 치열한 탐색전은 내부 혼란을 겪는 여타 나라의 미래도 흔들 것이다. 1월 말 리비아에서는 10년에 걸친 내전 끝에 대선이 실시될 예정이지만 후보 100여 명이 난립하고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간 대립, 터키와 러시아군 및 외국 용병의 주둔으로 인해 민주화 전망은 어둡다. 아랍 세계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 튀니지에서는 대통령이 부패 척결 구호하에 의회를 정지시키고 권위주의 행보를 강행하고 있다. 정국 불안이 고착된 이라크에서는 수니-시아파, 친미-친이란 세력의 갈등 구도가 요동치면서 총리 암살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다. 최악의 국가 실패를 겪는 레바논 상황도 위태롭다. 중동의 속고 속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올해 유독 손에 땀을 쥐게 한다.

 
* 본 글은 1월 12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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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