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이란에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 붙잡힌 후 의문사했다. 제대로 쓴 히잡이란 두꺼운 재질의 천으로 머리를 덮어써 머리카락 실루엣이 밖으로 비치지 않고 한 올도 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며 귀와 목 역시 드러나지 않는 상태다. 머리카락이 이성을 유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젊은 여성이 주도하고 수만 명이 동참하는 반정부 시위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강경보수파 지배연합을 전례 없는 강도로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어지는 연대 시위의 열기도 뜨겁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최대 2개월 징역형에 처한다. 2009년 부정선거 논란의 핵심이자 미국과 이스라엘에 막말을 퍼붓던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여대생의 메이크업까지 간섭하는 복장 규정을 만들었고 컴퓨터공학을 비롯한 70여 ‘남성적’ 전공에 여학생 지원을 금지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잠시 자유로운 분위기가 일었다. 2013년 변화를 갈망하는 여성과 청년 및 도시 중산층 유권자의 열렬한 지지로 온건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깜짝 당선되고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개혁파 이란 정부가 핵합의를 극적으로 타결하면서다. 당시 히잡으로 머리의 절반만 아슬하게 가린 채 반항의 패션감각을 뽐내는 여성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여성이 벗은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흔드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나의 은밀한 자유”라는 용감한 릴레이 시위를 이어 나간 때도 이즈음이다.
외국 여성도 이란에 가면 히잡을 써야 한다. 개인의 옷차림을 강제하는 국가가 탐탁지 않고 이에 저항하는 이란 여성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머리카락이 많이 보이도록 삐딱하게 히잡을 쓰곤 했다. 그러다 주변의 아름다운 페르시아 유적을 고개 들어 올려보기라도 하면 히잡은 스르륵 내려오기 일쑤고 함께 있던 이란 남성 몇몇은 행여 종교경찰이 올까 전전긍긍했다.
머리를 덮는 스카프는 작은 움직임에도 자연스레 흘러내린다. 튀르키예의 여성 공중화장실에서 흘러내리는 히잡 방지 비책을 엿본 적이 있다. 거울 앞에 선 무슬림 여성이 곤충 핀 10여 개를 입에 문 채 머리카락과 히잡 사이 여러 곳을 한 땀씩 꼼꼼히 찌르고 있었다. 튀르키예는 2000년대 초반까지 강경 세속주의 체제였고 히잡을 쓴 여성은 국립대학교나 국회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 출입할 수 없었다.
머리, 목, 어깨를 가리는 히잡에 더해 눈 아래 얼굴까지 가리는 복장이 니캅이다. 미국 박사과정 시절 핼러윈 파티에 초대받아 블랙 스카프 2장을 후다닥 이어 만든 수제 니캅을 코스튬으로 입었다. 눈만 빠끔히 내놓은 니캅을 쓰고 있자니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번거로웠고 양옆의 시야가 가려 자꾸 부딪치면서 안전 위협을 느꼈다. 실제로 1990년대 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하던 시기 여성은 온몸을 완전히 덮고 눈마저 망사로 가린 부르카를 강제 착용했고 많은 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함께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다.
이슬람만 여성의 머리에 집착하진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초정통파 유대교는 기혼 여성도 머리 스카프를 쓰고 일부는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린 후 그 위에 스카프나 가발을 쓴다. 유혹 차단이란 비슷한 이유지만 국가가 강제하진 않는다. 이란 여성들이 ‘여성, 생명, 자유’를 절규하자 부패하고 무능한 국가는 유혈 진압에 나섰다. 1979년 팔레비왕정은 분노한 시위대에 유화책을 결정한 후 급작스레 몰락했고 이를 뚜렷이 기억하는 현 정권 수호세력은 무자비한 공권력에 철저히 기대고 있다.
* 본 글은 11월 2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