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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무슬림 민주주의의 기대를 모았던 터키가 권위주의로 빠르게 퇴행하고 있다. 대표적 민주주의 측정 지수 프리덤하우스인덱스에 따르면 2020년 터키의 민주주의 수준은 역내 왕정 모로코, 요르단은 물론 장기 독재국가 알제리보다 낮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터키의 언론자유를 180개국 중 154번째라고 발표했다. 콩고, 파키스탄보다 낮은 순위다. 민주주의 추락은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9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G20 회원국 터키를 르완다, 탄자니아 등이 속한 투자 `주의` 등급으로 강등하고 `부정적` 전망을 덧붙였다. 지난 2년간 터키 리라화 가치는 45%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15% 선에서 잡히지 않았다.

터키 대외정책은 팽창주의 일색이다. NATO 회원국 터키는 러시아제 지대공미사일 S-400 시스템을 인도받아 10월 시험 발사까지 마쳤다. NATO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군대를 보유한 터키에는 NATO 탄도미사일 방어 레이더 시스템, 미국 핵무기가 있다. 미국과 유럽 회원국이 제재를 경고했으나 터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시리아 쿠르드계 자치지역을 기습 공격한 후 러시아와 함께 안전지대를 설치하더니 올해 1월 장기 내전 중인 리비아에 자국군을 파병해 트리폴리 이슬람주의 정부에 군사지원을 본격화했다. 9월엔 아르메니아와 교전 중인 아제르바이잔을 전폭 지원했고 이후 러시아의 휴전 중재를 적극 밀었다. 지난 2년간 GDP는 줄었는데 국방비는 늘었다.

국제규범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보는 허다하다. 작년 11월 터키는 리비아 이슬람주의 정부와 그리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하는 동지중해 협정을 일방적으로 체결했다. 4년 전 EU가 제공한 시리아 난민 지원금을 국경지대 군사비로 전용하더니 올해 3월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에게 문을 활짝 열겠다며 으름장까지 놨다. 7월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소피아 박물관을 모스크로 전환했다. 10월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정교분리 원칙을 강화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와 싸우겠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터키의 끝 모르는 추락은 17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일인체제 때문이다. 한때 온건 이슬람 정당을 이끌며 보수가치, 시장경제, 세계화를 강조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점차 권력 사유화에 집착했다. 가족 비리가 폭로되자 이를 비판하는 측근을 숙청했다. 2016년 대통령을 겨냥한 쿠데타가 실패한 후 폭압통치를 시작했다. 군·검찰·행정 관료는 물론 교사와 언론인까지 포함해 15만명 이상이 해임되거나 투옥됐고 인력 공백으로 나라 전체가 삐걱댔다. 소신 있는 총리, 장관이 줄지어 경질됐고 대통령의 40대 사위가 에너지부와 재무부의 수장이 됐다. 민심이 동요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오스만제국의 영광이라는 과거를 소환해 시대착오적 포퓰리즘에 기댔다. 이슬람주의자가 뜬금없이 터키 민족주의를 선동하더니 극우 정당과도 연합했다. 터키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 콘다가 올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터키인 38%가 나라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런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와 동맹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시대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터프가이` 친구라며 적극 감쌌다. 미 검찰이 터키 국영은행 할크방크를 이란 당국의 돈세탁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했으나 곧 백악관의 압력으로 보류했다. 지금껏 적발된 이란 제재 회피 건 중 가장 큰 규모였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탓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러시아제 S-400 시스템 도입에 대한 의회의 초당적 제재 요구도 끝내 막았다. 외부 조력자의 상실이 임박한 지금 터키 술탄체제는 흔들리고 있다.

 

* 본 글은 12월 0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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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