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허를 찔려 막대한 인명 피해를 본 이스라엘은 충격과 분노, 비통에 휩싸여 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판 9·11 공격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일은 꽤 익숙한 얘기다. 2023년 5월, 2022년, 2021년, 2014년에도 수천에서 수백 발, 다른 해에도 수십 발씩 발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마스는 역대급 전력으로 치밀하게 공격했다.
단시간에 로켓 수천 발을 동시 발사해 아이언돔의 요격 역량을 무력화했다. 무엇보다 전례 없던 건 하마스 행동대원을 직접 이스라엘 본토에 침투시켜 초기 방어선을 뚫고 인질 100여 명을 생포한 일이다. 장기간 신중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는 이번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비정한 정치적 계산에 따라 도발을 감행했다. ‘알아크사 홍수’라고 이름 지은 작전의 도발 직후 하마스는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내 알아크사 모스크를 이스라엘로부터 지키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주민 걱정 운운은 진심이 아니다. 하마스는 오랜 경험과 탐색으로 자신의 선제공격이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반격을 불러온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대규모 선제공격은 절대 선택하지 말아야 할 옵션이다.
하마스와 같은 급진 조직에 존재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구호를 최대한 자주 강렬하게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고음이 울렸다.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미국 중재하에 국교 수립 협상을 빠르게 추진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인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대의를 모르는 체할 수 없기에 이스라엘에 대팔레스타인 유화책을 강력히 요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위한 전폭적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이때 수혜자는 하마스가 아닌 하마스의 오랜 숙적이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최대 정파 파타흐다. 미국과 유럽연합, 사우디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하마스의 섬멸을 선포하고 강도 높은 보복전을 시작했다. 왜 군사 강국 이스라엘은 기습공격에 무너졌을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에서 우세를 점해온 이스라엘은 자신감에 충만해 오만했고 미세한 경고를 놓쳤다. 리더십의 명백한 실패이자 나라의 치욕이다.
문제는 국내 정치의 혼란에 있었다.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이스라엘에서는 보수와 중도·진보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총선이 다섯 차례 치러지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보수의 아이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배타적 유대 민족주의와 법치주의로 유권자가 극명히 갈리면서다. 결국 2022년 11월 다섯 번째로 실시된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극우 성향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총리로 복귀하고,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연립정부는 네타냐후 총리를 보호하려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강행해 출범과 함께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이스라엘 건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조직된 시민운동에는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참여했고, 특히 예비군 다수가 포함됐다. 1만여 명의 예비군이 복무 거부에 서명하고, 전직 정보 및 안보기관 고위직이 예비역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면서 군 중추의 이탈에 따른 안보 공백이 우려됐다. 최악의 국론 분열로 이스라엘은 국가 마비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정부의 반민주주의 행태에 저항하는 시민운동 때문에 하마스가 기습공격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오직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포퓰리즘을 선동하고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선 한 정치인의 탐욕으로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우려다. 오랜 시간 국시로 이어온 자강론과 그 결실이 간교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계산에 한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에서 목도하는 중이다.
* 본 글은 10월 10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