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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에도 중동에서는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도 공식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어서 정부군·반군·ISIS 간의 산발적 전투가 계속돼 작년에만 4300여 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일어난 리비아 내전은 서부 이슬람주의와 동부 세속주의 세력 간의 긴 격전 끝에 2020년 유엔의 중재로 휴전을 맞았으나 거듭된 선거 연기로 지금껏 혼돈 속이다. 2015년에 시작된 예멘 내전 역시 진행형이다.

여러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새해 중동에서는 실용주의에서 비롯된 데탕트 흐름이 부활할 것이다. 긍정적 전망의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튀르키예, 이스라엘 등 중동 주요국이 미국의 탈중동 전략과 역내 질서의 재조정에 대비해 기존의 갈등 관계를 넘어 탐색전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선언한 중동 내 역할 축소 기조를 번복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의 공백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주요국은 불가측성 시기에 서로의 행보를 살피며 겉으로나마 다각적 협력을 시도해 화해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중동에 주둔하는 미군은 2008년의 29만4000여 명에서 2023년 4만5000여 명으로 줄었다. 군의 과학화와 경량화를 고려하더라도 미 우방국엔 불안한 수치다. 이에 2023년 3월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는 숙적인 시아파 맹주 이란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고자 중국에 중재 역할을 부탁했다. 이란 역시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 따른 경제 파탄과 대규모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으로 대내외 여론의 압박에 시달렸기에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디 왕세자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슬람협력기구의 긴급 회의에서 만나 즉각적인 휴전 촉구와 이슬람권의 통합을 논의했다.

둘째, 사우디와 UAE 등 걸프 산유국은 왕실 수호 전략으로 추진 중인 탈석유 산업 다각화 개혁 정책의 성공을 위해 역내 안정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산유 왕정은 청년층의 인식 변화와 요구에 맞춰 이슬람법 적용 완화와 여성 인권 도모, 젊은 인재 등용으로 국가 체질 개선에 집중하면서 최첨단 미래 기술 육성과 디지털전환, 신재생에너지 혁신에 올인하고 있다. 이때 친이란 프록시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고 스타트업 혁신 기술의 도움도 받기 위해선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지만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이 후티 반군을 비롯한 역내 프록시 지원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이란은 사우디의 최대 라이벌이며 이스라엘의 주적이다. 2020년에 이스라엘과 아브라함협정을 선도적으로 체결해 아랍·이스라엘의 데탕트를 이끈 UAE와 바레인은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최대한 아꼈다.

이달 들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작전을 저강도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중동 데탕트를 향한 주요국의 움직임이 조금씩 살아날 것이다. 사우디는 이미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상 행위를 비난했고, 미국과 이스라엘도 이란의 패권 추구에 굴복할 수 없다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을 재가동할 것이다. 이란 강경파는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해 위험 회피 전략을 택할 것이고, 하마스와 후티 반군 등 친이란 프록시 조직은 후원국 이란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 선에서 도발을 제한할 것이다. 물론 가자지구의 끔찍한 인도주의 위기가 하루빨리 수습돼야 실용주의와 데탕트의 회복력도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 본 글은 1월 9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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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