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의 목적은 공포 조성
보여주고 드러내는 속성 있어
北은 체제유지 필요한 만큼만
선택적 관심 끌기에 능해
북한 해킹조직이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에게 악성코드가 담긴 피싱 메일을 살포하는 일은 이제 꽤 익숙하다. 숱한 피해자가 주소록의 모든 지인에게 연락해 계정이 도용됐으니 수상한 메일을 열지 말라고 당부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정보통신망을 교란하고 동향을 수집하며 랜섬웨어까지 유포해 암호화폐를 빼앗기도 한다.
우리 당국은 북한의 해킹, 바이러스 유포, 메일 폭탄, 정보시스템 침입을 사이버테러로 규정한다.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정보를 뺏는 신종 테러라고 덧붙이고 있다. 2013년 3월 20일 테러가 분기점이었다. 당시 주요 방송사와 금융기관 6곳의 전산망이 북한의 사이버테러로 마비됐다. 당국이 북한 정찰총국을 배후로 꼽았지만, 북한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1년 후 미국 소니픽처스가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개봉을 앞두고 해킹당하면서 5만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미국이 북한을 배후로 지목하자 북한은 펄쩍 뛰며 북·미 공동 조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반응은 기존 테러단체의 행태와 꽤 다르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는 자살 폭탄이나 무차별 총격 테러를 벌인 후 재빨리 배후를 선언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인질을 잔혹하게 처형한 후 충격적인 동영상을 유포해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세계의 이목을 끌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영불제국주의가 만든 현재 중동의 국경선을 해체하고 단일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자는 조직의 목표도 잊지 않고 외친다. ISIS의 행동이 테러리즘의 전통 이론에 더 들어맞는다.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다. 테러리즘의 본질은 ‘보여주고 드러내는’ 속성에 있기에 많은 사람의 살상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버스 운전기사 폭행, 테러와 같습니다”의 캠페인 문구는 이론적으론 틀리다. 운전기사 폭행은 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악한 범죄지만 정치적 의도가 없는 우발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힘을 보유한 쪽이 강대국이었다면 냉전 이후에는 테러단체가 강대국을 상대로 힘의 정치를 주도한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약한 국가 출신이 초국가 조직을 꾸려 강대국을 향해 테러와 같은 비전통 수단으로 타격을 주면서 힘의 열세를 극복하려 한다. 역량이 약하지만 그래서 잃을 것도 적은 쪽의 비대칭 틈새 전략이다. 개방적 구조에서 자국민 보호 책임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테러조직의 공격에 태생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을 동시에 보장해야 하는 시스템은 테러리스트의 쉬운 표적이다.
북한도 국력이 월등히 앞서는 우리를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벌이며 비전통 전력으로 허를 찌른다. 하지만 북한의 목적은 ‘보여주는 테러리즘’과 관심 끌기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ISIS가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유도해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면 체제 수호가 최종 목표인 북한 정권은 선택적인 시선 끌기로 현상 유지를 추구한다.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외부 자극과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담스럽다. 이들이 위험 회피에 적격인 자발적 고립과 폐쇄적 주체사상에 집착하는 이유다. 북한이 적화통일의 가능성을 크게 계산하던 시절에는 아웅산 묘역과 대한항공 858편 폭파처럼 극악무도하고 과감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으나 이때도 잡아떼고 우겼다. 북한 정권은 작년 미사일 최다 발사로 역대급 도발을 일으켰고 올해도 무력 과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기괴한 허세를 부리고는 있지만 현상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욕은 체제 수호에 금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본 글은 3월 7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