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이민정책은 동화주의
모국문화 인정대신 일방 동화
다양한 문화 공존 장려하는
캐나다 이민정책 참고할만
새해 우리의 인구 절벽 뉴스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이민 수용의 시급성이 또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계 출산율 1명 이하의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이미 2020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 일할 수 있는 연령대가 빠르게 줄고 있다. 청년 인구를 보기 힘든 지방에서는 인구 소멸 위기가 이미 시작됐다. 그곳의 생산직을 외국인 노동자가 메운 지는 한참 됐다.
출산과 육아가 부담스럽지 않고 노동 현장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동시에 합리적 이민정책이 한시바삐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무부는 외국인 정책이 백년대계라며 이민청을 꾸려 우수 인력을 위한 비자 트랙을 유연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금껏 우리 이민정책은 동화주의에 가까웠다. 다문화 가정이라고 불렀지만, 결혼이민자의 모국 문화를 지키는 여유 대신 일방적 동화가 답이었다. 이민자가 개발도상국 출신인 경우엔 예외가 없었다.
‘문명의 충돌’ 저자이자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를 지낸 새뮤얼 헌팅턴은 아웃라이어 이슬람 문명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문명권 내 인구는 폭발하는데 폭력 미화의 문화까지 있으니 이곳의 갈등은 디폴트 값이라고 했다. 책에서 이슬람 문명권이 고유 가치를 버리고 서구보편주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거대한 제국도 결국 쇠퇴하고 정부는 늘 사라지지만 문명은 인류의 격변사에서 살아남은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업화 이후 퍼진 도덕적 방종과 물질주의를 개탄하며 이슬람 문명권은 종교에서 더욱 안식을 찾고자 한다.
‘문명의 충돌’은 미국 국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역대급 베스트셀러다. 과연 헌팅턴은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책의 결론은 다문화 이민 사회에 사는 국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다문화 사회의 다양성을 내부 안정과 협력을 해치는 문제점으로 봤다. 문명충돌론은 나라의 태생적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의제, 법치, 사유재산제, 정교분리 등 서구 문명의 규범을 확고한 국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의 충돌은 국제질서는 물론 나라 안의 원활한 통치에도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헌팅턴에 따르면 동화주의 이민정책인 ‘멜팅 팟’이 다문화주의에 기반한 ‘샐러드 볼’ 정책보다 통합 사회를 이뤄가는 데 효과적이다. 지역사회에 리틀 아라비아, 차이나타운이 생겨나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프티 프랑스, 리틀 이탈리아면 몰라도.
미국처럼 앵글로·색슨 문명에 기반하지만, 캐나다의 이민정책은 철저히 다문화주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는 중국, 인도, 한국, 이란, 필리핀, 일본계가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정부가 나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장려하다 보니 이민자가 서투른 영어로 말한다고 해서 크게 눈치 볼 일은 없다. 한 초등학교 개학맞이 학부모 모임에서 교장 선생님이 학교의 다문화 전통을 내세우며 전체 학생과 교직원 400여 명이 집에서 쓰는 언어가 총 41가지라고 자랑했다. 학교엔 난민 가정의 학생도 많다. 얼마 전 4학년 수업에선 음력 새해는 중국 새해만은 아니니 한국 설은 어떻게 다른지 배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만 이곳에선 미국처럼 주류 문화에 주눅 드는 일이 덜한 대신 공공질서를 향한 사회적 압박이 조금 약하긴 하다.
캐나다 정부는 2025년까지 이민자 150만명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턱없이 부족해 젊고 숙련된 인력을 받아들이되 최대한 중소도시의 제조업, 농업, 어업 분야에 유입되도록 한단다. 우리와 비슷한 배경에 계획도 닮았다. 확연히 다른 점은 캐나다의 정책이 훨씬 개방적이고 능동적이란 것이다. 낯선 곳에 정착할 이민자라면 당연히 환영과 존중받는 곳을 택한다.
* 본 글은 2월 7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