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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퇴를 공공연히 압박하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3년 10월 7일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조 바이든 미 정부는 이스라엘의 방어권과 하마스 궤멸을 적극 지지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촉구안에 세 번이나 반대했다.

휴전이 합의되면 하마스가 그 틈을 노려 전력 재정비에 나설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미국이 돌연 2024년 3월에 들어와 즉각 휴전, 가자지구 인도주의 지원 작전,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구체적인 전후 구상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의 태도 변화로 마침내 3월 26일 유엔 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이 전후 처음으로 채택됐다. 또 미국은 인도주의 참사가 빚어지는 가자지구에 중부사령부 수송기로 구호품 공중 투하 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였고 일일 트럭 수백 대 분량의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임시 부두를 가자지구 해안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전후 가자지구의 미래는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달려 있다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재통합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추진을 천명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강한 반발에도 바이든 정부는 압박의 고삐를 더 당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초 이스라엘이 남부 라파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강행하면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은 탄약 수송을 일시 중단했고 정밀폭탄 판매 승인을 보류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인권유린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군 소속 특수부대에 대한 제재 카드도 꺼내들었다.

미국의 압박은 이스라엘 지도부 교체론에서 절정을 이뤘다. 바이든 정부가 3월 말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개혁을 위해 총리와 내각의 전격 교체를 압박해 성공한 직후의 선택이었다. 교체론은 말뿐이 아니었다. 미국은 네타냐후 총리 라이벌인 중도 성향의 베니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을 방해하고 전후 가자지구 직접 통치를 계획하는 네타냐후 총리를 맹비난했다. 대표적 친이스라엘 인사인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네타냐후 총리를 평화의 장애물로 지목해 저격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는 간츠 대표에게 9월 조기 총선을 촉구했다. 미국이 입장을 급선회한 까닭은 가자지구의 민간인 희생이 도를 넘었다는 비난이 높아가면서 국내외 여론이 빠르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에 들어와 가자지구 사망자 수가 3만명을 넘어서고 아사자마저 속출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진보 성향 젊은 유권자가 바이든 정부의 전쟁 대응에 실망해 지지 철회를 표명했고 대학 캠퍼스에서 반전운동이 확산했다.

2023년 11월엔 이미 국무부 직원 100여 명이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책을 우려하는 전문에 집단 서명했다. 아랍의 대미 여론도 심각하게 나빠졌다. 2024년 1월 아랍센터 워싱턴DC가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랍 16개국 시민 94%가 미국의 전쟁 대응 태도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바이든 정부는 휴전 합의를 이뤄내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조속히 맞교환한 후 하마스 지도부를 추방하고 하마스를 무장해제시킨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어 미국과 이웃 아랍국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과정을 돕는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중도 연합과 시민사회는 인질 귀환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연일 조직하며 둘도 없는 우방 미국과 날을 세우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퇴진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에 모든 걸 걸고 휴전을 최대한 미루며 정치적 부활의 도박을 벌이고 있다.

 
 
* 본 글은 5월 28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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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