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습이 어땠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한일정상회담이 지난주 12년 만에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2018년 10월 강제징용 문제 대법원 판결 이후부터 지난 4년여간 극도로 악화되었던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알리는 자리였다.
양 정상은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했고, 한국의 WTO 제소 철회와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GSOMIA(지소미아) 정상화, 한일안보대화 등 중단되었던 협력 채널 복원 등 양국 관계를 가로막는 불안정성을 하나둘 제거했다.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 양 정부는 경제안보대화를 출범하기로 했고, 경제계는 한일 미래파트너십기금 설립에 합의했으며,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조, 한일의 인태전략과 국제사회의 연계, 첨단과학, 금융·외환 분야에서의 협력, 인적 교류 활성화 등도 논의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새로운 시작의 정점에 있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호응은 턱없이 부족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사죄 표명은 역대 정부의 역사인식 계승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 표명도 없었으며, 문제의 당사자인 일본 피고기업들은 침묵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한일의 견해와 사죄와 반성 표명에 대한 인식 차이, 그리고 양국의 속도감과 의사결정 과정의 차이를 이해하면서도 일본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부정적인 국내 여론과 온갖 정치적인 리스크를 안고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한 성의 있는 호응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악화되었던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수 년간 악화돼온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악화로 인해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과학,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수많은 교류·협력 사업이 중단되고, 상호 이해와 인식 차이가 점점 커지는 등 각종 폐단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 노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승-전-한일관계’로 이어지는 한일관계의 뫼비우스의 띠를 못 본 척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이 강경한 반대 목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던 대위변제에 찬성하는 피해자 및 유족들의 의견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일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수 년간 악화돼온 한일관계가 한 번의 만남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무너졌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 문제 외에도, 위안부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고, 이 문제들 하나하나가 도화선이 되어 한일관계를 언제 어떻게 악화시킬지 알 수 없다. 정부의 결단이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 일본은 보다 빠르게 호응해야 한다.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해야 하며, 특히 피고기업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전면적·주도적·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놓치면 애써 쌓은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 본 글은 3월 20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