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군대는 강한 훈련으로 유명했다. 훈련 수준이 실전과 차이가 없었기에, 로마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오직 ‘실제로 피를 흘리는가’ 여부만이 전쟁인지 훈련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일 정도였다고 서술했다.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한 로마가 유럽을 제패한 이유다.
오래전 로마군의 훈련이 부러운 까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찬밥 신세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심장과도 같았던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돈이 많이 드는 전쟁연습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 규모가 축소됐는데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동맹에 대한 애정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군사훈련의 의미를 폄훼해도 한마디 시정(是正) 요구가 없다. 오직 북한과의 대화만을 염두에 둔 모습이다. 북한의 억지 주장이 맘에 걸렸는지 상반기에는 훈련 이름을 바꾸더니 하반기엔 이름조차 없앴다. 미국이 훈련을 중단하자 해도 그냥 수용할 태세다.
북한은 미국엔 별다른 위협이 못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남쪽을 겨냥하고 있는 핵과 첨단 재래식 능력은 날로 증강되고 있다. 더구나 한·미 동맹을 보완해주는 한·미·일 안보협력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 협정 파기가 ‘한국 방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주한미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동맹의 위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그의 기준에서 한국은 잘사는 나라다. 한국을 방어해 주는 미국에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주장해 온 미국 제일주의에 부합한다. 반대로, 북한과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버락 오바마 직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를 넘어서는 성과를 자랑하고, 성급했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나 평화체제 구축은 나중의 일이다. 이런 셈법이 친구에겐 압박을 가하고 적(敵)에겐 대화를 촉구하는 모순(矛盾)의 근본 원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모두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북한이 거부해도 흔들림 없이 대화 의지를 피력한다. 김정은을 친구로 치켜세워도 그가 간절히 원하는 제재 완화를 해주지 않는다. 김정은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도 작은 것이라며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북한의 일탈을 막는 능구렁이 같은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무시 발언은 비핵화를 위한 행보이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협상술일 수도 있다.
이처럼 보기에 따라 두 명의 트럼프 대통령이 존재한다. 누구를 어떻게 상대할지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한·미 동맹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먼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의 친구는 미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미국은 한반도를 떠나지 못한다는 생각도 트럼프를 모르는 착각일 수 있다. 다음으로,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연합군사훈련 복원, 방위비 분담, 호르무즈 파병, 한·미·일 안보 협력 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며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끝으로, 미국에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북핵 폐기는 물론이고, 북한 위협 대응을 위한 억제력을 보다 강도 높게 요구해야 한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거래의 기술이 필요하다. 안 하거나 못 해서 문제지 우리에게 대안은 있다.
* 본 글은 8월 27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