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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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10개국 중에서 7개국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세안은 늘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경제 전쟁에서 집단적으로, 개별적으로 중립적 입장 혹은 양쪽 모두에 관여하는 입장을 택해 왔다. 이런 아세안 국가들이 대거 IPEF에 참여한 것을 두고 의외의 결정이라는 반응이 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동남아 7개국의 IPEF 참여는 작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다.1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에서 탈퇴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 바이든(Joe Biden) 행정부가 다시 참여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IPEF를 통해 TPP가 구상했던 미국 주도의 인태 지역 경제질서를 수립하려는 것이 현재 미국의 구상이다.

그러나 외견상 미국의 성공이라고 할 만한 동남아 7개국의 참여가 미국의 궁극적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남아 국가는 IPEF 참여를 IPEF 협상에 관한 참여로 인식하지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수용이라는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동남아 국가들은 IPEF 참여를 통해 전략적으로 미국을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도록 묶어 두려는 전략이다.  IPEF의 경제적 리스크는 향후 협상과정에서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이다. 아직 협상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객관적 상황평가로 볼 때 동남아 국가들은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대해 작지 않은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다. IPEF에 참여하는 동남아 7개국은 저마다 경제규모, 구조, 이익이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협상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마음이 급한 쪽은 2023년 말로 협상의 최종 타결 시점을 이미 정한 미국이지 동남아 국가들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IPEF를 바라보는 동남아 국가들의 인식과 그 이면의 강대국에 대한 인식 및 전략을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IPEF 협상 전략을 예상해 본다. 전략적 이익과 경제적 리스크라는 두 가지 관점이 어떻게 IPEF에 임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인식을 형성하고 전략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향후 협상과정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가질 수 있는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검토하면서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전략이 한국의 IPEF 협상 전략에 대해 가지는 짧은 함의도 검토할 것이다.

 

동남아의 경제적 특성과 강대국 인식

 
동남아 국가들의 IPEF 참여 결정과 그에 따른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적 특성과 이들의 강대국 인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이자 전략인 IPEF 참여는 이를 주도하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대한 인식과 미국에 대한 전략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IPEF의 협상과정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협상 전략이나 입장은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적 특성과 연관되고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적 다양성은 IPEF 협상의 최종 타결에 있어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먼저 동남아 경제의 특성부터 살펴본다. 우선 동남아 국가 경제는 IPEF를 주도하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참여국인 한국, 일본, 호주, 인도와 비교할 때 매우 작은 경제들이다. 일례로 아세안 10개국 중에서 G20에 포함되는 국가는 인구수가 많아 GDP 규모가 큰 인도네시아 한 국가뿐이다. 이런 작은 경제라는 특성으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은 규칙 형성자(rule-maker)라기보다는 규칙 수용자(rule-taker)의 성격을 공유한다. 글로벌 혹은 지역 차원에서 다른 큰 국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경제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찾는 것이 동남아 국가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IPEF를 향후 동남아 국가를 포함한 지역 경제질서를 새로 쓰는 거대한 구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IPEF가 어떤 방향으로 형성되는지 보고 그 안에서 최대한 협상력을 발휘해 개별 국가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이 더 크다.

두 번째로 동남아 국가들은 앞서 언급한 통일성만큼이나 다양성을 보인다. 경제의 성격이나 발전수준에서 큰 편차를 보인다. 이들 국가들이 공통의 경제적 이익을 가지고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IPEF를 주도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다양한 국가들의 이해 관계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이런 다양성이 아세안 차원의 집단행동을 어렵게 하지는 않는다. 동남아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맞는 협상 내용을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IPEF의 타결은 미국의 목표이지 동남아 국가들의 목표는 아니다. 나아가 IPEF 협상이 아세안 참여국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 아세안 내부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집단행동도 가능하다.

 

표 1. 동남아 국가의 경제규모와 산업구조 특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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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강대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인식과 전략도 동남아 국가들의 IPEF 참여와 협상 과정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IPEF 참여는 단순하게 경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고 동남아 국가와 중국 관계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므로 전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동남아 국가들의 강대국에 대한 인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시기를 거쳐 냉전시기, 탈냉전시기를 관통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대외정책의 핵심 기조는 주권의 보호, 간섭의 최소화, 그리고 자율성의 극대화로 요약된다. 동남아 지역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려 하는 냉전기의 미국과 소련, 탈냉전기의 일본과 중국, 그리고 최근 미-중 경쟁 시기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털어 내기 어렵다.3 이런 불신과 동남아 국가의 IPEF 참여 전략을 연결하면 미국 주도의 지역 경제질서 재편에 대한 적극 참여가 아닌 단순한 협상에 대한 참여, 중국의 영향력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전술적 참여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림 1. 동남아 국가의 미국, 중국에 대한 신뢰도, 2021년 (단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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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가 보는 IPEF 의 전략적 가치

 
2022년 5월 23일 미국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14개국의 IPEF 참여를 발표했다.5 14개국에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동남아 7개국이 포함되어 있다.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군정하에 있는 미얀마, 그리고 캄보디아, 라오스 세 국가는 애초 초청되지 않았으니 초청장을 받은 동남아 국가는 모두 수락한 셈이다.6

동남아 국가들의 IPEF 협상 참여에는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고려와 선 참여선언, 후 협상이라는 낮은 초기 진입장벽이 결합되어 IPEF의 경제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의 참여 선언을 이끌어 냈다. 협상 참여 선언만으로는 아직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후 구체 사항은 협상 과정에서 논의한다는 낮은 진입장벽은 동남아 국가의 부담을 크게 낮춘다. 전략적 고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동남아 지역에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동남아 국가들의 고민이다. 동남아 개도국에게 특정 강대국이 지역에서 일방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것은 강대국 경쟁이 펼쳐지는 환경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강대국의 일방적 헤게모니는 동남아 국가들의 대강대국 협상력을 극도로 낮춘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지속적 관여를 확보하는 것은 특정 헤게모니 국가,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일방적 헤게모니를 방지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볼 때 미국의 동남아 관여를 당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가깝게는 지난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이 보였던 동맹에 대한 경시, 동남아에 대한 무시, 그리고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다자협력인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에 대한 외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인태조정관 (Indo-Pacific Coordinator)이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피벗(Pivot) 정책의 최고위 실무자였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의 언급처럼 아시아에서 외교는 참석 혹은 출석(showing up)이 80% 이상이다.7 그러나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EAS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했다가 정작 EAS에는 참여하지 않고 귀국해버렸다.8 2018년 EAS에도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대신 참석했고 2019년 태국에서 열린 EAS에는 정상급보다 크게 낮은 국가안보보좌관인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이 대신 참석했다.9

더 멀게는 탈냉전 직후 미국이 보여준 동남아시아에서 신속한 철수와 그 이후로 1990년부터 피벗 정책이 구체화된 2010년까지 20년간의 미국의 공백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미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60년대 말 닉슨 독트린과 함께 발을 빼기 시작한 미국은 1992년 필리핀 미군 기지 철수를 마지막으로 동남아에서 빠져나갔다. 냉전도 끝난 마당에 지구의 반대편인 동남아 지역에까지 막대한 돈을 들여 군사력을 유지하고 지역 문제에 관여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동남아로 돌아오려는 노력을 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이를 뒤잇는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의 피벗 정책은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미국이 지역에 부재했던 20여 년간 성장한 경제력,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헤게모니 추구에 대해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동남아 국가들이 느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을 놓고 볼 때 미국의 동남아 지역 관여는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동남아 국가에게 있다. IPEF는 이런 미국의 지속적 관여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로 동남아 국가들에게 의미를 가진다.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관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면에는 중국의 위협이 있다. 동남아에게 중국은 안보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협이기도 하다. 일대일로(一带一路)를 통한 중국의 경제적 지원은 동남아 국가에게 도움이 된다. 반면 지나친 경제적 의존은 위험하다. 나아가 경제적 의존에 따른 반대급부, 즉 경제적 영향력에 따른 정치적, 외교적 압력과 영향력도 우려된다. 동남아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6.7%는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대답은 9.8%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4.4%가 우려하고 있다. 반대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68.1%가 찬성 입장이다.10 동남아에서 압도적인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IPEF 등 미국의 경제적 관여를 통해 상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보다 두 강대국의 적절한 경쟁이 늘 동남아 국가에게 유리하다.

 

IPEF 의 경제적 리스크

 
IPEF는 전략적 기회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리스크이기도 하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IPEF 참여가 가져오는 경제적인 리스크는 의무 대비 불확실한 혜택, IPEF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기존 동남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협정과 IPEF의 관계 설정 등으로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IPEF에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현 미국의 대외경제정책과 관련된 리스크도 있다. 먼저 IPEF의 4개 요소인 연결된(Connected), 복원력 있는(Resilient), 청정(Clean), 공정(Fair) 항목별로 동남아 국가 경제가 맞추기 어려운 혹은 맞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항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연결된(Connected) 항목은 노동과 환경 관련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노동 문제와 환경 문제에 있어서 선진국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 이런 조건을 협상과정에서 얼마나 수용하고 이를 맞추기 위해 얼마나 비용을 지출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투명성 문제도 불투명한 회계 기준 등 동남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비용과 고통이 뒤따른다. 기후변화, 탈탄소, 재생에너지 등을 규정하고 있는 항목 역시 개발도상 단계에 있는 동남아 경제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마찬가지다. 공정(Fair) 항목의 공정한 경쟁 보장, 돈세탁 문제, 뇌물 관련 문제 등에 있어서도 동남아 경제가 자국 시장과 기업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부정부패 측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반면 이런 비용과 부담을 협상 과정에서 받아들였을 때 동남아 국가들이 얻게 되는 반대 급부는 불명확하다. 장기적으로 경제적 체질 개선과 글로벌 기준에 자국의 경제를 맞춘다는 점에서는 개혁과 혁신이 요구되지만 갑작스럽게 이를 맞추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PEF가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면 이런 부담을 고려할 만하지만 직접적인 이익 측면에서 IPEF는 매우 불투명하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문제다.11 IPEF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며 따라서 관세를 낮추고 미국 시장에 접근을 수월하게 하는 요소는 빠져 있다. 동남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크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중요한 수출 시장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 관련 내용이 없는 IPEF는 동남아 국가들에게 구체적 이익은 없고 명시적 부담은 큰 경제적 협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시장 접근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개혁 부담이 교환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던 TPP의 협상 과정을 볼 때 동남아 국가들에게 시장 접근의 혜택도 없는 IPEF의 협상 과정은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12

 

표2. 동남아 국가의 미국 수출 의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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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문제는 늘 제기되어왔던 사항이다. 이전에 미국이 추진했던 TPP 혹은 미국이 빠져 나간 이후 추진되었던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 경제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그리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참여 국가의 국내 비준을 거친 국가 간 협정에 기반한 자유무역협정이다. 그에 반해 IPEF는 이런 법적 기반을 결여하고 있다.14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 비준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생략하고 빠른 정책 집행을 위해 택한 이런 방식은 참여 국가들에게 IPEF의 안정성 문제를 제기한다. 즉, 바이든 행정부 이후에도 IPEF가 지속될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더욱이 미국의 지속적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여를 확보하기 위해 참여를 결정한 동남아 국가들 관점에서는 이런 취약한 법적 기반이 우려된다. IPEF가 바이든 행정부를 넘어 지속적인 미국의 지역 경제적 관여의 제도로 살아 남을 것인지,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의 취약한 지지 기반과 의회 기반을 볼 때 바이든 행정부 임기 내에는 적어도 꾸준히 추진될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SEAN Free Trade Area, AFTA)에서 연장되는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 AEC), CPTPP, RCEP까지 복잡하게 중첩되는 다자 경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IPEF까지 더해졌다.15 이런 중첩된 제도는 혼란을 가져온다. IPEF를 제외하고 나머지 AEC, CPTPP, RCEP은 모두 자유무역협정이다. 중첩된 자유무역협정은 흔히 말하는 스파게티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라는 부작용을 수반한다.16 CPTPP와 RCEP은 아세안 역외 국가들까지 포함한다. 자유무역협정은 아니지만 IPEF에 참여한 동남아 국가들이 최종 협상까지 가게 된다면 IPEF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아세안 역내 기준, 그리고 여기에 RCEP, CPTPP가 요구하는 기준들이 달라 생기는 혼란은 피할 수 없다. AEC와 RCEP은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참여하고 있으므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IPEF와 CPTPP는 일부 국가만 포함되는 문제가 있고, 여기에 또 CPTPP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IPEF와 AEC, RCEP에는 참여하는 국가가 복잡하게 얽히면 매듭을 풀고 교통정리를 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림 2. 동남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지역 경제 프레임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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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IPEF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국 중심의 지역 경제질서,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 공급망에서 중국 퇴출 등의 목적과 동남아의 경제적 이익이 일치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중국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 현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경제정책의 방향이 동남아 국가들의 이익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한 “세계 속 미국의 위치(America’s Place in the World)” 연설에서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진다고 전제한 후 “중산층을 위한 대외정책 추진(advancing a foreign policy for the middle class)”을 언급했다.17 여기서 중산층은 물론 미국의 중산층이다.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보좌관은 “IPEF가 미국의 가정과 노동자들을 경제와 외교정책의 핵심에 놓는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중 하나”라고 했다.18 여기에 중국과의 탈동조화,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 그리고 리쇼어링(reshoring) 정책 등이 겹치면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미국 국내 경제 주체의 이익을 위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드러난다.

이런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은 중국이라는 위협 요소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외적으로 합리화되고 미국 중산층과 노동자를 위한 진보적인 정책으로 국내적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이런 미국의 대외정책, 대외경제정책이 보내는 메시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쓴 자유주의적 질서,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유무역과 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를 근본부터 흔드는 글로벌 다자경제질서에 대한 위협이 된다. 아주 좁게 동남아의 시각에서 보면 무역에 크게 의존한 동남아 개발도상국에게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동남아 국가들이 수출할 시장이 매우 좁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동남아의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경제위기의 전조가 보인다. 최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역시 동남아 국가 경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19 장기적으로 볼 때 IPEF는 단순한 경제적 협상은 아니며, 심각하게 경제질서의 근본을 바꾸는 변화가 될 수 있다. 이런 변화 앞에 동남아 경제는 아직은 취약하며 결국 IPEF는 장기적으로 동남아에게는 큰 경제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결론: 동남아의 셈법과 한국에 대한 함의

 
IPEF에 참여한 동남아 국가도 이런 경제적 리스크와 전략적 이익 사이에서 분명한 계산을 하고 IPEF 참여를 선언했을 것이다. 그리고 IPEF의 협상과정에서 동남아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분명한 셈법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 국가 입장에서 IPEF 선언 이후 협상 과정에 임하는데 몇 가지 전략적 고려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동남아 국가의 이익과 규칙 수용자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동남아 국가의 IPEF 참여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 형성에 대한 참여보다 단순한 경제 협상 성격이 크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대강대국 전략, 경제의 규모,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IPEF의 장기적 방향성이 가진 리스크를 고려할 때 IPEF에 참여하는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질서에서 가지는 이익은 뚜렷하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거대한 경제질서 수립에 참여한다기보다는 단순히 미국과의 경제적 협상과정에 참여한다는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팜민찐(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는 IPEF 참여를 선언한 직후 “우리는 이 네 개의 필라(pillar)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미국과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의미가 명확해지면 협상할 무언가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20 즉, 일단 협상 과정에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입장을 정하겠다는 태도다. 말레이시아는 IPEF 협상 과정을 통해 말레이시아 6개 국영기업 관련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 WRO)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21 말레이시아 역시 큰 경제질서보다 자국의 구체적인 이익, 미국에 대한 경제적 요구와 관련된 협상에 관심이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개별 협상의 영역에서 큰 원칙을 위한 양보보다는 구체적인 이익을 얻어 내기 위한 세부협상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 국가의 두 번째 전략은 시간 끌기와 집단행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2023년 미국에서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협상 종료의 시점으로 못 박았다. 2022년 9월 장관들 사이 협상의 목표 등이 정해졌고, 12월 호주에서 첫 협상 라운드가 시작이니 1년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이다. 이제 협상과정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마음이 급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다. 2023년 APEC을 지나면 2024년 대통령 선거도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 리스크와 부담이 큰 만큼 동남아 국가들은 이런 미국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협상에서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아세안 국가의 개별적 혹은 집단적 이탈이란 선택지도 가능하다. 최악의 상황에서 동남아 7개국이 협상에서 집단 이탈한다면 IPEF는 참여 국가의 절반을 잃게 된다. 마음이 급한 미국을 상대로 아세안 차원의 협상력이 매우 클 수 있는 상황이다.22

마지막으로 이런 동남아 국가의 IPEF에 대한 인식과 잠재적 협상 전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한국 정부는 이미 인태 전략을 통해 미국 주도의 지역 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방향을 내비쳤다.23 따라서 IPEF를 포함한 미국의 인태 전략에 포함된 이니셔티브에서 아주 자유롭거나 큰 협상력을 가지기 어렵다. 큰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고 그 안에서 제한적인 자율성만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와 미국 경제는 사정이 다르고 인태지역에서 미국의 경제 이익과 한국의 경제 이익이 완벽히 일치할 수는 없다. IPEF에 참여하는 한국은 큰 방향성에서 미국과 맞추되 구체적인 사항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협상 과정에서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앞서 예상한 동남아 국가들의 협상전략을 보면 동남아 국가들은 자신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협상을 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 나름의 협상력을 가질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미국과 동남아 국가의 구체적 협상과정에서 쟁점을 한국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협상에 임하는 동남아 국가의 이익이 한국의 경제적 이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큰 협상의 판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동남아 국가들과 공조를 모색할 필요도 있다. 한국의 구체적 경제적 이익이 미국의 이익보다 동남아 국가들의 이익에 가까운 지점이 있다면 동남아 국가가 미국과 협상할 때 여기에 힘을 보태 우리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주장이라고 그냥 넘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항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놓고 협력할 사안, 동남아 국가들을 설득할 사안 등을 꼼꼼히 검토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한국도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Shailaja Neelakantan. 2022. “Analysts: US notches win in wooing ASEAN countries to join economic deal.” Radio Free Asia. May 31.; Aidan Arasasingham, Emily Benson, Matthew P. Goodman, William Alan Reinsch. 2022. “Unpacking the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Launch.” CSIS. May 23 (https://www.csis.org/analysis/unpacking-indo-pacific-economic-framework-launch).
    • 2. ASEAN Statistics 웹사이트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 구성 (https://data.aseanstats.org)
    • 3. 이재현. 2022. “아세안 국가 대외정책의 특성과 한국의 아세안 정책에 대한 함의.”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No. 2022-9. 3월 25일.
    • 4. Seah, S. et al. 2022.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2.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te.
    • 5. White House. 2022. “Statement on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May 23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2/05/23/statement-on-indo-pacific-economic-framework-for-prosperity/).
    • 6. Charles Dunst. 2022. “Spotlight – Cambodia and Laos: August 1, 2022.” CSIS. August 1 (https://www.csis.org/blogs/latest-southeast-asia/spotlight-cambodia-and-laos-august-1-2022).
    • 7. Kurt Campbell. 2016. The Pivot: The Future of American Statecraft in Asia. New York: Twelve Books. pp. 326-327.
    • 8. VOA. 2017. “Trump, At Last Minute, Skips East Asia Summit.” November 14.
    • 9. Nyshka Chandran. 2018. “Trump’s absence at the ASEAN summit signals the US is ‘not as committed’ to Asia.” CNBC. November 14.; Ankit Panda. 2019. “US to Downgrade East Asia Summit Participation in 2019.” The Diplomat. October 30.
    • 10. Seah, S. et al. 2022.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2. Singapore: ISEAS-Yusof Ishak Institute.
    • 11. Aidan Arasasingham and Emily Benson. 2022. “The IPEF gains momentum but lacks market access.” East Asia Forum. June 30 (https://www.eastasiaforum.org/2022/06/30/the-ipef-gains-momentum-but-lacks-market-access/).
    • 12. TPP 협상과정에 대해서는 Ian F. Fergusson, Mark A. McMinimy, Brock R. Williams. 2015.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TPP) Negotiations and Issues for Congres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March 20 (https://sgp.fas.org/crs/row/R42694.pdf).
    • 13. 한국무역협회. 2022. 국가별 수출입, 국가간 수출입, IMF 세계통계 (https://stat.kita.net/newMain.screen).
    • 14. Inu Manak. 2022. “Unpacking the IPEF: Biden’s First Big Trade Play.”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June 8 (https://www.cfr.org/article/unpacking-ipef-bidens-first-big-trade-play).
    • 15. 이미 아세안은 1992년부터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SEAN Free Trade Area, AFTA)을 추진했고 이는 사실상 완성 단계로 아세안 역내 관세는 거의 철폐된 상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세안은 2003년에 합의된 아세안 협력선언II(Declaration of ASEAN Concord II)에 근거해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 Community, AEC)를 만들고 있다.
    • 16.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는 무역을 촉진시키기 위해 맺은 다양한 FTA들이 오히려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말하는데, 많은 국가와 FTA를 체결해 서로 다른 원산지 규정, 법 절차, 표준 등이 뒤엉켜 오히려 기업들이 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간, 비용이 더 소요되는 상황을 말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복잡한 FTA가 뒤엉킨 상황을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고 부르기도 한다.
    • 17.White House. 2021. “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America’s Place in the World.” February 4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peeches-remarks/2021/02/04/remarks-by-president-biden-on-americas-place-in-the-world/).
    • 18. White House. 2022. “On-the-Record Press Call on the Launch of the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May 23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press-briefings/2022/05/23/on-the-record-press-call-on-the-launch-of-the-indo-pacific-economic-framework/).
    • 19. Marcus Wong. 2022. “Fed Rate Hikes Paint Bleak Picture for Southeast Asia Currencies.” Bloomberg. September 22.; David J. Lynch. 2022. “Biden’s Asian summit partners hit by U.S. rate hikes, Chinese downturn.” The Washington Post. November 11.
    • 20. David Brunnstrom, Simon Lewis and Rami Ayyub. 2022. “Vietnam leader interested in Biden economic framework, but needs to study details.” Reuters. May 12.
    • 21. Shazni Ong. 2022.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to reduce impact of withhold release orders, says Azmin.” The Edge Markets. July 28. 말레이시아 국영기업 6개가 현재 강제노동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WRO 처분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U.S.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2022. “Withhold Release Orders and Findings List.” September 8 (https://www.cbp.gov/trade/forced-labor/withhold-release-orders-and-findings) 참조.
    • 22. 아태경제협력(APEC)이 출범할 당시 아세안의 협상전략은 IPEF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집단행동에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당시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 중심으로 아태 지역 자유무역을 위해 추진되었던 APEC에 대해서 아세안은 큰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선진국 중심의 지역협력체에 아세안/아세안 국가가 종속될 것을 우려했다. 이에 아세안 국가들은 집단적으로 APEC에는 참여하지만 제도적으로 약한 APEC을 지향했다. 아세안은 1) 아태경제협력이 ‘유연한’ 프레임워크에 기반할 것, 2) 새로운 공식 기구를 설치하지 말 것, 3) 아세안이 제도의 핵심으로 기능할 것 등을 내걸고 강대국과 협상을 벌였다. 결국 아세안의 포함을 원했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아세안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APEC은 서방 국가나 강대국이 선호하는 질서가 아니라 아세안의 방식에 따른 질서를 가지게 되었고, 아세안은 2년에 한 번 APEC회의를 아세안 국가에서 개최하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Alice D. Ba. 2009. [Re]Negotiating East and Southeast Asia: Region, Regionalism and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pp. 140-147.; John Ravenhill. 2007. “From Poster Child to Orphan: The Rise and Demise of APEC” UNISCI Discussion Paper No. 13. 을 볼 것.
    • 23. 정진우. 2022. “尹, 6개월 준비해 한국형 ‘인태 전략’ 내놨다…미·일과 다른 이것.” 중앙일보.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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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