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자 노동신문은 ‘사회주의조국을 끝없이 사랑하자’란 사설을 통해 김정은 지도노선에 대한 찬양과 함께 북한식 사회주의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강조했다. 사설에는 ‘김정은강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는데 ‘핵강국’ 북한은 김정은의 작품이며,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노동신문의 논거는 분단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라는 가치와 체제의 차이가 남북한의 오늘날을 갈랐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한 평양의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은강국’을 자처하는 북한은 그 이전의 북한과는 또 다르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허장성세를 계속했지만, 이미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가 북한이 따라잡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90년대부터 북한이 표방하기 시작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그 이후의 제한된 교류·협력은 모두 우리의 우월성에 대한 북한의 묵시적 인정과 흡수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평양은 우리의 경제력으로부터 혜택을 얻되 자신들의 수령제를 유지하기 위한 적당한 수준의 거리를 동시에 원했다.
김정은은 이와는 달리 핵무기가 남북한 간의 국력 격차를 일거에 역전시키고, 남북 관계 주도권을 가져다주며, 세습 수령에 의한 전체주의 체제를 지켜주는 ‘만능의 보검’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고도의 억압과 통제를 특징으로 하고, 이는 주민들의 불만과 좌절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선대(先代)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과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만들어냄으로써 주민 불만을 대외적 증오로 치환하려 했다면, 김정은은 이에 더해 북한 주민들의 대남 우월감을 자극함으로써 자신이 건설한 체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체제안전’의 핵심은 ‘핵강국’의 주인인 수령의 안위다. 이제는 체제안전을 보장하면 북한이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나 북한의 가치와 체제가 한반도 긴장과 북한 핵위협의 근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탈냉전의 전개와 함께 우리는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은 이미 종결됐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또 다른 체제 경쟁에 나서 북한의 변화를 촉발해야 할 때다. 주민 희생을 강요하면서 건설하는 핵무력이 얼마나 덧없고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가를 북한의 ‘수령’과 권력 엘리트들이 절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 다양성과 경제적 풍요, 인권 등을 보장하지 못하는 체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북한 주민들에게 반문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고한 대북 억제를 통해 북한 핵무기가 점점 더 자산이 아니고 부채가 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하고, 한국 사회 내의 인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수많은 눈물과 땀 위에서 만들어졌고, 아직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대외적인 면에서도 ‘가치외교’가 왜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지의 논거를 바탕으로 단순한 참가자가 아닌 의제 창출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경쟁이 왜 불가피하고, 지역과 세계의 번영 및 평화를 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이 왜 중요한가를 가장 잘 웅변하는 사례가 바로 오늘날의 남북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남북한 간의 경쟁은 우리가 ‘글로벌 중추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과정이기도 하다.
* 본 글은 9월 4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