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위협이 한국·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고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현직 최고위 안보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한·일의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1968년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핵심 목표는 유럽에서는 당시의 서독,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주역이었던 서독과 일본의 핵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일치된 견해였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북한과 대치하던 한국도 비확산 정책을 위반할 수 있는 잠재적 국가로 간주됐다. 맥매스터의 발언은 정상적인 상황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핵심 대외정책의 기본이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트럼프 행정부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북한의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위협에 직면한 백악관의 위기의식과 절박감이 묻어난다. 세계적으로 미 본토를 타격할 핵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뿐이다. 미국이 북한 같은 약소국의 직접적인 핵 위협에 노출된 상황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3대 세습정권의 대미(對美) 적대감, 폭압성과 무모함 등이 트럼프 행정부의 위기의식을 한층 높이고 있다. 대북 제재가 북한의 우군인 중·러의 물타기로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러를 보다 확실하게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한·일의 핵무장 가능성까지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좌절감도 배어 있다. 선제타격에서부터 지도부 참수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완전한 핵 폐기는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전에는 실현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핵을 보유한 북한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방인 한·일이 자체 핵무장의 길로 나설 수도 있다는 백악관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에 입각한 합당한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의 길이 열려 있다는 간접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미·중·러가 양자택일 상황이 된다면 한·일의 핵무장보다는 전술핵 재배치를 선호할 것이다. 강대국의 입장에서 훨씬 위험 부담이 작고, 국제 규범 내에서 안보를 지키려는 한국의 입장도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일의 핵무장 가능성이 거론될수록 국제 여론은 전술핵 재배치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신생 핵국의 출현보다는 미국의 핵을 활용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결국, 전술핵 재배치의 열쇠는 한국 정부와 대통령이 쥐고 있다. 우리의 의지로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한다면 자체 핵무장을 카드로 전술핵 재배치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북한이 미 본토를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2017년은 국가안보의 패러다임이 바뀐 역사적인 해이다. 정부는 북핵 위기가 단임 정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장기적인 문제이며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거듭나야 하며, 여기에는 많은 국력이 소모될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한·미 동맹을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바꿔야 하고, 북한 사회 변혁을 통한 비핵 통일 한국을 실현하기 위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정권을 이어가며 일관되게 추진해야 마땅하다.
* 본 글은 12월 08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