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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중동 관련 폭탄 선언을 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이스라엘 편향 행보와 두 국가 해법의 부정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주장해오던 바이고 다른 중동 전략들도 좌충우돌 모순적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란 핵 협정 불인증, 무슬림 7개국 대상 반이민 행정명령, 갑작스러운 시리아 정부군 폭격 결정,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군과 휴전 선언, 아프가니스탄 파병 불가 선언 번복, 미국 중부군 사령부가 있는 카타르에 대한 맹비난 등 대통령이 주도하는 일관성 없는 중동 전략 때문에 행정부 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선언의 여파는 이전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유엔과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이다. 1947년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마저 점령했고 같은 해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철수 결의안 242호를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평화와 영토의 맞교환`을 약속해놓고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여전히 짓고 있다. 올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대규모 정착촌 신축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2016년 유엔 안보리 정착촌 건설 중단 결의안 2334호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권위를 무시해왔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면서 국제사회의 노력을 정면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타이밍이 궁금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로 수세에 몰리자 국면 타개용으로 예루살렘 선언을 터뜨렸다는 분석이 회자되고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나 멕시코 장벽 건설 추진도 실패하며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하자 내년 11월 중간선거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었다. 의회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대외정책 분야에서 행정부의 의지를 밀어붙여야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치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다가 예루살렘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현재 중동 정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부추겼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과 시리아 내전이 끝나가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세습 독재 정권을 지원했던 이란 강경파가 최대 승자로 부상해 역내 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헤게모니 장악은 수니파 아랍 국가들에 끔찍한 악몽이다. 시리아 내전은 6년 넘게 버틴 알아사드 정권의 생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이란과 러시아의 역내 영향력 장악,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부상, 터키의 비자유주의 블록 합류, 미국과 서방의 입지 축소, 미국이 지원한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 좌절로 마무리되고 있다. 락까와 모술에서 IS가 축출된 후 시리아와 이라크 내 친이란 강경파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선언을 통해 국내 정치의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는 혜택이 역사적인 외교 실수라는 오명의 대가를 뛰어넘는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현 중동 정세에 비추어 볼 때 아랍 정부들의 집단적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혁명과 두 전쟁을 겪고 난 후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시아파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장악이다. 아직도 예멘에서는 수니파·시아파 갈등 대리전이 진행 중이다. 이를 막기 위해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협력 가능성마저 밝혀왔다. 물론 이스라엘의 최대 위협 역시 이란이다. 예루살렘 선언 이전 사우디의 실세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백악관 선임고문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쿠슈너와 몇 차례나 만났다고 한다. 이미 미국 행정부와 사우디 정부 간에는 조율이 있었다.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달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동예루살렘의 교외 도시 아부디스를 제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 본 글은 12월 1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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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