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민간차원 韓·日 포럼 개최
온도차 있지만 양국관계 개선 공감
현정부 경색국면서 한발짝도 못나가
남은 임기 ‘도전과 변화’ 보여주길
지난 3일, 29번째 ‘한일포럼’이 열렸다. ‘한일포럼’은 정계·재계·학계·언론계 인사가 참여하는 민간회의로, 1993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족됐다. 포럼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센터 주관으로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개최되며, 올해로 29회를 맞이했다.
한·일관계와 관련된 많은 회의 중에 이 회의에 주목하는 이유는 민간 차원의 모임이지만, 양국 정상의 의지로 시작돼 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을 정책실현에 이르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포럼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발언은 당시 한·일관계에 대한 주된 인식을 알아볼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최근 기시다 내각에서 새롭게 취임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도 이 회의에 수차례 참석해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올해 한일포럼은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다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지만 한·일관계에 대한 논의는 변함없이 뜨거웠다.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의 접근법은 여전히 온도차가 있었지만 현재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 양국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만큼은 일치했다. 의견은 달랐지만 30여년 가까이 오랜 시간 쌓아온 우정의 깊이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일포럼은 김영삼정부가 한·일관계에 남겨준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당시 ‘버르장머리’ 발언과 어업협정 파기로 고조되던 한·일갈등 속에서도 한·일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역대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의 부침 속에서도 갈등을 해소하고, 양국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김대중정부에서는 한·일관계사에 기념비적인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 한·일관계를 진일보시켰고, 독도문제 등으로 갈등이 고조되며 일본과 외교전조차 불사하겠다던 노무현정부에서도 일제강점기 피해자 보상을 위한 ‘한일회담문서공개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과거사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12년 대통령 독도 방문, 일왕사죄 발언 등으로 갈등이 심화됐지만,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정상 간 소통을 강조하며 역대 어느 정부보다 활발히 정상교류를 하고, 정상 간 합의에 따라 ‘한일신시대공동연구프로젝트’를 실시하며, 한·일협력과제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2015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며 한·일갈등을 해소하려 한 바 있다.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시도들이 양국갈등 해결과 관계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문재인정부에서는 역대 최악이라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4년여간 무엇을 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며 일본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수차례 표명한 것이 무색하게 실천으로 옮긴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박수도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일본 정부가 줄곧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의 의지만으로 풀기 어려운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시도해 볼 수는 없었을까.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만들겠다던 태스크포스(TF)는 흐지부지됐고, 최근 정부 주도로 개최되기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민관협의회는 이따금 한 번씩 개최될 뿐이다. 결국 뚜렷한 시도와 성과 없이 현재에 이르렀다.
문재인정부는 한·일관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정부로 기억될 것인가.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동안 극적인 변화를 이끌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정부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시도하고 도전했던 정부로 기억되길 바란다.
* 본 글은 12월 09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