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2019 평가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국제관계의 재편 구도는 다양한 양상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정세전망 시리즈가 발간된 이후 ‘전략적 불신’(2015), ‘뉴노멀’(2016), ‘리셋?’(2017), ‘비자유주의 국제질서’(2018) 등의 키워드로 함축되었던 이러한 양상들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들이었다. 뉴노멀 시대는 각국의 전략적 불신을 증폭시켰으며, 단순한 국제질서의 일부 특징의 변화를 넘어 리셋의 경향을 가속화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비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등장 역시 두드러졌다. 즉, 2015년 이후 제시되었던 개념들은 어느 하나가 완전한 배타적 설명력을 지니기보다는 해당 연도의 두드러진 경향이었으며, 이 퍼즐 조각들이 완전히 짜 맞추어진 전체 그림이 도출될 때까지는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림 1. 지난 5년간의 아산 국제정세 전망(2015~2019)

그림1_지난 5년간의 아산 국제정세 전망(2015~2019)

출처: 아산정책연구원.

2019년의 세계 역시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드러냈는데, 이는 바로 ‘하이브리드 지정학’ 시대로 명명될 수 있다. 19세기를 풍미했던 전통적인 지정학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국제적 레짐의 등장으로 인해 20세기에는 그 의미가 희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21세기는 전통적인 지정학 개념이 다시 의미를 찾는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화가 또 다른 국경선을 창출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2019년에 특히 두드러진 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양자 관계나 소지역 단위의 움직임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지역의 단위에서 조망해 보면 ‘하이브리드 지정학’은 2019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각 지역 단위별로 이 새로운 지정학의 특징이나 발현 양상이 차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유럽 지역에서는 브렉시트(Brexit) 변수로 인해 20세기 후반 형성되었던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중심의 지도가 다시 획정되고 국가별 각개 약진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Donald J. Trump) 시대 미국의 동맹 정책 변화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유럽 대륙과 영미의 대서양 연합이 서로 다른 정책 방향을 취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탈냉전 이후 그 영향력이 상당 부분 축소되었던 러시아가 이 지역과의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다시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는 양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미국 역할의 퇴조로 인해 더욱 두드러졌다. 동북아 지역은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복합적인 특징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곳이었으며, 이는 특히 미중 간의 전략경쟁으로 인해 뚜렷해졌다. 미중 양국의 전략경쟁은 전통적 지정학과 사이버 및 과학기술 영역이라는 새로운 개척지(new frontier)에서 모두 발생하였으며, 2019년의 동북아는 이러한 격랑이 몰아치는 한가운데 위치하였다. 일본은 전통적 미일동맹의 틀 속에서도 중국,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 모색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했으며, 중러는 미중 전략경쟁의 와중에서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서로 다른 계산법을 보였다. 북한은 지역의 새로운 지정학 구도 속에서 운신의 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하노이 회담 합의 불발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문제는 이러한 하이브리드 지정학이 적용되는 세계는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불투명하고 불 안정한 국제/지역 구도가 형성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신안보 영역에서의 협력 필요성이 높아 짐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 간의 전략적 불신 및 경쟁은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한 각 국가 혹은 국가군의 전략적 방정식 역시 더욱 복잡해졌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도-태평양(Indo-Pacific) 전략의 줄 세우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세안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이 공동의 전략을 발전시키려 노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아세안과 같은 집단적 결속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분 단 현실과 주변국과 국력격차라는 다중적 제약에 놓여있는 한국의 선택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2019년은 바로 그러한 고민이 여과 없이 드러났던 한 해라 할 수 있다.

 
동북아: 새 질서 주도권 경쟁과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부상

2019년 동북아 질서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두 키워드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주도권 경쟁 의 서막”, “하이브리드 지정학 · 지전략의 가시화”였다. 이 새로운 질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먼저 지리적 전선에 더해 특정 과학기술의 선점이나 수호를 둘러싼 또 다른 가상의 국경선에 따른 경쟁이 많이 증가했다. 이와 함께 지리적 인접성을 바탕으로 한 국가들 간 연대를 통해 다른 지역에 근거를 둔 경쟁국을 견제하려는 19세기적 양상도 동북아에서 재현되었 다. 국경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의 전달 · 공유와 여론형성을 바탕으로 한 ‘버츄얼 국경의 등장’에까지 이르고 있다.

 
멈춰버린 남북 관계와 비핵화의 시계

2019년은 희망찬 기대와 달리 남북 관계의 시계가 멈춰버린 한 해로 종결되었다. 북미 간의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로 인한 냉기류가 그대로 한반도 상공에 머문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북한 은 한국과 각급 대화 채널을 동결시키고 한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대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간 교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군사적 차원에 도 단거리미사일, 대구경 장사정포, 해안포 사격 등으로 인해 2018년에 체결한 ‘군사분야 부속합 의서’마저 위기에 놓이게 된 한 해였다.

2019년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2018년의 희망을 거의 꺼트린 한 해였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회담은 난항을 겪고 있으며 북한은 2019년 한 해에만 13회에 걸쳐 미사일 등의 시험발사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2018~2019년 비핵화 논의과정을 통해 지난 30년간의 핵무기 정책기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북한은 핵문제가 협상테이블에서 내려졌다고 발언하며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대북 적대 정책을 모두 철회해야 한다고 주 장하고 있다. 세계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평가를 상향 수정하는 분위기이다. 이미 수십기의 핵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안정적 핵물질 확보가 가능한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야누스의 얼굴을 한 미국의 2019년

2019년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적으로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제 개편과 환경 규제 완화로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고, 이로 인해 실업률이 4% 미만까지 감소하면 서 경제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2018년 중간선거로 인해 미국 정치가 여소야대 구도에 직면하게 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동안 러시아 게이트와 뮬러 (Robert Mueller) 특검 조사 그리고 탄핵정국에 시달려왔다.

그림 2. 트럼프 탄핵 공개 청문회

그림2_트럼프 탄핵 공개 청문회

출처: 연합뉴스.

대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해체하겠다고 주장하며 각종 다자무역체제(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북미자유무역협정)와 파리기후변화협약 그리고 유네스코 등의 국제 협정 및 기구로부터 탈퇴를 선언하며 양자주의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듯 했으나 새로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 이 체결되고, 인도-태평양 전략이 추진되면서 다자주의에 대한 희망도 살아났다. 동맹 관계도 재정립되고 있는 모습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국, 일본, 유럽과 같은 동맹국들로부터 미국이 제공하는 리더십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큰 진전은 없었다.

 
대외적 위기 속 국내 리더십 공고화를 추구한 중국

중국에 있어서 2019년은 건국 70주년이었고, 미중수교 4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그러나 건국 70주년 중국지도부가 맞닥뜨린 대내외 정세는 절대로 녹록지 않았다. 미중 무역전쟁의 양 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홍콩 시위사태’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다. 건국 70주년의 빛과 영광 은 순간이었고, 시진핑 지도부가 체감하는 ‘위기’와 ‘도전’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한 해였다. 특히 2019년에 미중 분쟁은 단순한 전략적 경쟁이 아니라 장기적 차원의 패권경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19년의 대내외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1인 지배체제와 리더십은 여전히 공고화되고 있다. 시진핑의 리더십 공고화는 미중 분쟁을 비롯한 대내외 도전에 더욱 강력히 대응하기 위한 부분과 연계되어 있다. 중국은 2019년 7월에 『새로운 시대의 중국국방(新時代的中國國防)』이 라는 제목의 국방백서를 발표했다. 중국지도부는 건국 7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의 꿈을 실현하 기 위한 물리적 토대로서 싸움에서 이기는 강한 인민해방군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다.

그림 3.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는 홍콩 경찰

그림3_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는 홍콩 경찰

출처: 연합뉴스.

 
‘아름다운 조화’를 추구했으나 주변국 마찰만 남긴 일본

2019년 일본의 외교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아름다운 조화 속 주변국과의 마찰로 불협화음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레이와(令和: 질서·규율·평화·조화를 의미) 시대를 맞은 일본은 주도 적이고, 지도자적 역할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규칙과 세계 질서 형성을 위해 선두에 서고자 하 였다. 이에 G20 정상회의(G20 Summit), 아프리카개발회의(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 TICAD) 등 대규모 국제회의 개최를 통해 일본의 리더십을 세계에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일 본에 방위 및 무역협상에서 압박을 가해오고 있으며, 이웃국가인 한국과는 역사 · 경제 · 안보 분야 등에서 유례없는 복합갈등을 겪으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북한 비핵화 논의에서도 일본은 제 목 소리를 내지 못하였으며, 북한과 관계도 진전이 없다. 러시아와 북방영토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 져 있으며, 중국과 관계도 정상화 구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진전은 없다.

 
혼돈에 혼돈이 겹친 유럽의 2019년

2019년 유럽의 정세는 한마디로 ‘혼돈’이었다. 혼돈의 중심에는 단연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 문제가 있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가결된 이후 3년을 훌쩍 넘긴 현재 시점에 이르러서도 브렉시트는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 문제를 둘러싼 영국 정치의 난맥상은 지난 수년간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 특히 극우 포퓰리즘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약진하면서 유럽 정치는 일 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정당 체제가 빠르게 재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극우 정당이 참여한 연립정부 내부의 갈등으로 정국의 불안정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9년은 대내적으로 유럽 정치가 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분담금 문제와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이 유럽 내부의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미국이 퇴각한 자리, 제국의 부활을 노렸던 러시아

부패와 약탈의 체제 전환 혼란기에서 벗어나 국가 정비에 성공하면서부터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러시아는 줄곧 제국의 재림을 노려왔다. 동시에 2019년에는 미국과 갈등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한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시리아 사태가 종결되는 속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직접 군사적으로 맞부딪칠 위험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러시아가 미국 및 EU와 무분별한 갈등을 원 하지 않는다는 점은 2019년 9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포로 맞교환에서 알 수 있었다.

2019년에서 러시아가 제국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과정에서 핵심 환경은 주요 핵심 지역에서 미국의 무분별한 퇴각이다. 최근의 쿠르드 사태가 극적이다. 10월 트럼프 행정부가 시리아 북동부 주둔 병력의 철수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터키군이 시리아 쿠르드계 민병대를 공격한 사건에서 러시아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이 돋보였다. 절대 강자의 위상을 지구적 차원에서 조정 · 축소하려는 미국과 동유럽, 중동에서 제국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구도가 동북아시아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적 안정 속 점증한 외적 위기를 경험한 아세안의 2019년

2019년 동남아 국가들은 정중동의 한 해를 보냈다. 2018년 국내 정치적 변화와 논란에 동남아 국가들이 노출되어 있었다면, 2019년 한 해는 국내 정치적 안정, 연속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관심을 모았던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선거는 모두 크게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결과를 도출했고 정치 권력의 연속성을 담보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전략경쟁과 무역전쟁으로 표출된 지정학의 귀 환 속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동남아 지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가 겹치고, 교차하며,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런 교차 압력 속에 아세안은 일종의 대안으로 아세안 인도-태 평양 관점(ASEAN Outlook on Indo-Pacific, AOIP)을 주창했다. 지정학적 교차 압력을 막기에 충분치는 않지만 당장 급한 비는 피할 수 있는 정도의 장치는 마련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대외적 으로 빠르게 상승하는 압력과 도전에 나름 응전하기 위한 아세안의 대응이 있었다고 2019년 아세안을 평가할 수 있다.

 
중동에서 미국이 떠난 자리를 차고 들어간 터키-러시아 협력

2019년 중동에서는 러시아 · 이란이 주도하고 터키 · 카타르 · 중국이 지원하는 비자유주의 질서가 자리 잡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의 날 선 대립이 이어졌다. 4월부터 미국 매파와 이란 강경파의 맞대응 격화로 중동발 긴장이 시작됐다. 미 동맹 · 우방국 이스라엘 · 사우디 아라비아 · UAE와 이란 프록시 사이의 충돌도 뒤따랐다. 예멘 후티 반군,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와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가자지구 하마스가 개입했다.

올해 10월 미국이 시리아 병력 철수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터키군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계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공격했다.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계 공격은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터키 대통령의 1인 체제,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미국의 틈새를 메우는 푸 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동 진출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터키는 중동을 떠나는 미국 대신 러시아에 기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UN이 아닌 러시아 주도의 시리아 전후 평화협상에 협력해왔다. 올해 7월엔 러시아제 최신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장비를 인도받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확대된 신안보 위협

최근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주요 안보 위협 중, 향후 발생 가능성이 높고 발생 시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이라 보는 위협은 대부분 환경 혹은 기술적 위협으로, 이 모두가 대표적인 신안보 문제들이다. 국제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요소들인 기상이변, 기후변화, 자연 재난 등 환경적 안보 위협은 예년과 다름없이 2019년 한 해에도 인류에게 가장 큰 위기를 가져왔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성 저기압의 발현은 점점 더 일상화되어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사회적 · 경제적 피해도 늘고 있다. 환경적 위기들과 더불어 사이버테러나 정보데이터 사기와 절도 등의 기술적 위기요인들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전기도 마련하지 못한 채 2019년 한 해를 보냈다. 이는 전염병이나 난민 등의 사회적 위기요인들의 해결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019년에는 중국과 동남아에서 발병 중이었던 아프리카돼지열병 (African Swine Fever, ASF) 이 한국에도 전파되어 연말까지도 그 대응이 계속되고 있다.

 
격렬했던 무역전쟁을 경험한 2019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2019년 1년 내내 계속되었다. 다른 한편 미국과 중국의 서로를 향한 공격과 반격 중에도 물밑에서는 지속적인 협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2019년 10월 11일 양국 은 ‘실질적인 1단계 합의’에 이르렀음을 선언했다. 다만 아직까지 양국이 어디서 어떤 내용으로 합의안에 서명할지는 불투명하다. 2019년 한 해 동안 격렬했던 무역전쟁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미국은 여전히 조속한 서명을 통해 레버리지를 놓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2018년 선고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지난 2019년 7월 1일 관련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하여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수출무역관리령도 개정하여 2019년 8월 28일부터 한국을 소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11월 22일 한국이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종료를 조건부 연장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본과 협상 결 과에 따라 3개 품목에 대한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가 철회되고 한국이 백색국가로 복귀한다면 한일 무역전쟁은 조속히 종전에 이를 것이다.

 

2020 전망

 

2019년 중 ‘하이브리드 지정학’에 입각한 국가별 경쟁과 협력을 촉진하였던 동인들은 2020 년에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새로운 지정학적 계산이 적용됨에 따라 세계적 · 지역적 세력구도의 변화 역시 촉진될 것이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경쟁의 지속으로 인해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적용 영역은 더욱 다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은 금융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위 선점을 향한 경쟁으로 확대되어 나갈 것이며, 지리적 원근개념 뿐만 아니라 문화 · 체제적 유사성, 국제적 여론주도력, 안보 공약 능력 등을 무기로 한 이들 간의 줄 세우기 경쟁 역시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2020년이 미중 간 일대결전의 해가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양자 모두 이 경쟁이 장기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경쟁이 격화되어 물리적 충돌로 연결되는 것을 회피해야 할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지속되거나 격화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전략경쟁에 임하는 양자 모두가 이를 물러설 수 없는 싸움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서로 자신들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고 있 기 때문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대외정책의 특징인 ‘공평한 부담’을 강조하면서도 결코 기존 동맹 · 우방국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며, 결국 다중적인 ‘연루(entrapment)’ 를 은근히 강권하는 정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중국 역시 적극적으로 미국과 주도국 이미지 경쟁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구심력 속에 지역/세계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일본 및 러시아 역시 국내적 안정과 국제적 입지 확보의 불투명성이라는 모순된 구도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지정학에 입각한 나름의 전략을 펼칠 것이다. 이로 인해 동북아시아 차원에서는 기존의 국경, 새로운 가상 국경, 미래 이익의 개척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이 펼쳐질 것이며, 국가들 간의 합종연횡과 사안별 연대/대립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지역구도가 형성될 경우,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 전망은 더욱더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전략적 도발’ 재개 역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에도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2020년에도 브렉시트가 실현될 것인지의 여 부는 여전히 확실치 않지만, 브렉시트 변수는 영국-EU뿐만 아니라 영국-북아일랜드 갈등을 촉발하는 판도라의 궤로서의 파괴력을 여전히 지니게 될 것이다. 또한 NATO의 역할 재편을 둘러싼 프랑스와 독일 간의 이견은 브렉시트로 인해 타격 받은 EU의 결속력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중동 지역은 미국의 퇴조와 러시아의 복귀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이것이 지역 안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새로운 지정학적 새판 짜기 속에서 터키, 이란, 사우 디 아라비아 등의 각개 약진은 지역의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아세안의 고민 역시 더욱 가중될 것이다. 비록 2019년 아세안이 나름의 입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는 공동행위자로서의 가능성과 국력격차라는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베트남을 새로운 의장국으로 한 아세안이 어떠한 전략적 계산과 처방을 행할지도 2020년의 주요한 관심거리라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신안보 영역은 국가 간 연대와 협력을 보장할 수있는 연결고리이며, ‘글로벌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외형적인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신안보 영역에서까지도 개별 국가이익의 문턱이 존재했던 2019년의 특성은 2020년에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이는 결국 하이브리드 지정학이 지니는 불투명성의 여파가 신안보 부분에 서도 가감 없이 적용될 것임을 의미한다. 즉, 모든 국가가 이상적인 공공재의 창출과 공동의 대의를 강조하지만, 개별 국가이익과 지리적 위치에 따른 제약성 등이 그 실행력을 저하시키는 양상 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은 2020년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색깔이 분명해지면 질수록 한국의 선택은 더욱 고민스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19년이 다중적 지정학이 지니는 위험성과 우려를 막연히 보여준 수준이었다면, 2020년 한국이 하이브리드 지정학 속에서 당면하게 되는 딜레마는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만약, 기존의 남북 관계 일변도 정책의 탈피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없는 가운데 2020년을 맞이하게 된다면 한국의 지역적 · 국제적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위험이 있다. ‘한국의 선택’이 ‘하이브리드 지정학’과 함께 2020년 정세전망의 또 다른 키워드로 제시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지정학이 심화되는 동북아의 2020년

하이브리드 지정학의 특성은 2020년에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문제는 전통적 · 지리적 국경선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국경, 인터넷과 해외동포 등으로 인한 ‘버츄얼 국경’의 형성으로 인해 각 국가들이 신경 써야 할 전선의 영역은 더욱 다변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주요국 간 경쟁의 전장 이 확대되면서 그 부담은 그대로 나머지 국가들에게 전가될 것이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주요국들은 과거와는 다른 전략적 제휴를 맺기 위해 부심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방공식별구역(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KADIZ) 무단 진입은 이러한 견지에서 2020년에도 재현되거나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이는 해결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둔 주변국들의 한반도 문제 접근과 연결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주요 국가들의 논리적 모순으로 인해 한국의 전략적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세계 질서에 대한 불개입과 미중 전략경쟁에서의 동맹 · 우방국 기여 및 형평성 있는 부담(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트럼프의 정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와중에서 2020년의 한국은 ‘러브콜’ 논리와 같은 모호성의 이점을 상실할 수 있으며, 오히려 다중적 압력에 직면할 우려가 더 커질 것이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경쟁이 동북아로 전이되고, 이것이 한반도에까지 이르는 것이 주요국 간 갈등의 진행양상이었다면, 이제는 한반도 혹은 동북아가 광역에서의 갈등을 촉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도 있으며, 2020년에는 그 가능성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하이브리드 지정학 시대에서 한국이 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 일변도의 외교 · 안보 관행에 변화를 주어야 하며, 북한의 행위에 한국이 분명한 영 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변국에 심어주어야 한다. 이 능력이 없다면 2020 년은 한국에게 더욱 혼란스러운 한 해가 될 수밖에 없다.

 
2020년, 북한 도발 재개 가능성과 함께 멀어지는 비핵화

2020년은 남북 관계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북한은 내년부터 더욱 강도 높은 대미, 대남 비난을 이어가며 독자노선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경제상황의 악화를 방지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 들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대결구도를 형성하며,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한반도 문제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이로 인해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는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북한은 남북 관계를 북미 관계의 하부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선미후남, 통미봉남의 기조는 2020년에도 이어져 북미대화가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경우 남북 관계에도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 정부나 민간 차원의 교류는 단절되고,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도쿄올림픽 단일팀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이다. 북 한의 군사적 도발이 북미대화 공전에 대한 불만표시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차원의 추가 도발이 예상된다. 이를 통해 북한은 북미협상 결렬의 원인 중 하나로 한국 정부의 잘못된 중재 역할을 부각하고,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을 한국에게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 결과 남북 관계의 진전보다는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을 보유 한 북한은 다양한 새로운 전략들을 구상하거나 실행할 것이다. 향후 북한은 비군사적 접근방식으로 사이버전 · 정보전을 복합적으로 구사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한국 내 남남갈등을 조성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0년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각론으로 진입하기는 거부할 것이며 일부 상징적 조치에 상응하는 경제제재 조치 해제를 주장할 것이다. 미사일 발사 시험을 꾸준히 진행하여 딜리버리 능력 확보도 꾀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상당한 기술을 축적해 추가 핵실험의 가능성은 낮다. 북핵 협상 기류는 북한의 의도대로 흘러 비핵화보다는 핵군축의 양상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2020 년은 북한의 비핵화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전방위적 갈등 요소를 품은 미국의 2020년 대외정책

2020년 미국의 외교 · 안보 정책은 큰 변화 없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미중 관계는 대립구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관한 의회의 입장은 초당파적이다. 미러 관계 역시 미중 관계 와 다름없이 대립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미-유럽의 범 대서양 관계는 2020년에도 같은 궤도를 따라 갈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는 대 이란 제재를 복원하고 새로운 협상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미일 관계도 쉽지 않다. 특히 2020년 돌아올 미일 방위비 분담 협상 이 미일 간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다른 시급한 국내 사안으로 인해 북한의 큰 도발이 있지 않은 한 북핵 문제는 시간을 두고 침착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한미 관계는 세 가지 쟁점이 중요하다. 첫 번째는 방위비 분담 협상의 향배다. 두 번 째는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인데, 전환을 위한 조건 충족 여부를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관련해서 한국이 추진하는 미래연합사와 재활성화 논의가 있는 유엔사와의 관 계도 한미 간 간격을 더 크게 할 수 있는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한미동맹의 미래 지향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참여를 계속 기대할 것이다.

그림 4. 파행 속 종료된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그림4_파행 속 종료된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출처: 연합뉴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펼칠 2020년의 중국

2020년에 중국지도부는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내부 통제력을 다지면서 지속 가능한 안정적 경제성장을 주요 대내 목표로 설정할 것이다. 중국지도부는 2020년도 경제성장 목표를 6%대에서 유지하고자 할 것이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대비되는 이미지 경쟁을 강화해 나 갈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을 더 욱 강화함으로써 실질적 동맹의 단계로까지 나가고자 할 것이다. 2020년은 미중 경쟁에서의 장 기전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로 지구전을 준 비하고 있다. 한편 2020년 1월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로 인해 양안 관계 관리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 · 외교적 과제로 등장할 전망이다.

2020년에 한중 관계는 사드(THAAD) 분쟁의 영향을 극복하면서 실질적 관계증진의 가능성이 증대되는 해가 될 것이다. 2020년에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이 높으며, 사드 배치에 따라 이뤄졌던 경제 보복조치들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중 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은 한중 관계에도 원치 않는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2020년 한중 관계의 불안정에 가장 주요 배경이 되는 것은 미중분쟁의 지속이다. 미중 대립구조의 심화는 한중 관계를 미중 관계의 하위 구조로 종속화 시킬 가능성이 크고 한국은 양국으로부터 더 강한 선택의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국내적 · 국제적 유산을 남기려 노력할 일본 아베 정권의 2020년

2020년 일본은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는 도쿄올림픽을 무대로 지정학적 리더십을 확보하고 지역질서 구축에 선두에 서는 최대의 외교성과를 얻고자 할 것이다. 아베 내각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만, 방위비 분담, 무역분쟁 등으로 미일 간의 마찰과 대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일 마찰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안전망 구 축을 위한 노력으로 중일 관계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유산을 남기려는 노력은 ‘전후외교의 총결산’과 ‘헌법개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북일 관계 진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당초 목표인 헌법 9조 개정까지 이르지 못해도 일부 수정이라도 추진, 이를 정치적 유산이자 집권성과로 남길 수 있다.

2019년 가열되어 있던 한일 관계는 2019년 11월 22일 GSOMIA의 조건부 연장으로 갈등 국면이 전환되고,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제징용문제, 수출 규제 및 GSOMIA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 더욱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의 욱일기 사용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 등 다양한 사안이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 다. 무엇보다도,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소송 원고 측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조치가 단 행되면, 잠시 진정국면에 들어선 한일 관계는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 국면에 다시 들어설 경우, 한국의 반일감정과 대립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혼란을 넘어 대혼란이 예상되는 유럽의 2020년

2020년에도 영국의 브렉시트 여부는 불분명하다. 조기총선이 브렉시트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브렉시트가 결행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혼돈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19년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도 2020년의 중요한 변수다. 5월 선거에서 약진한 극우 정당들이 ‘정체성과 민주주의(Identity and Democracy)’라는 명칭의 의견그룹으로 결집하여 향후 유럽의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림 5. NATO군
그림5_NATO군

출처: 연합뉴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가 주장하는 유럽방위군이 NATO를 대체해야 한다는 구상과 독일이 주장하는 유럽 군사안보협력 강화와 NATO 체제 병존론 간의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마크롱 (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반대급부이고, 이런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강화될 가능성이 있어 NATO 문제를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이 단기간에 쉽사리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내적인 문제는 물론 대외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2020년의 유럽은 불가피하게 또 다른 혼돈의 시간을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 안정과 달리 대외적 미래가 불투명한 러시아의 2020년

러시아의 제국적 도약 정책에서 핵심 변수는 푸틴이라는 인물이다. 내년에도 제국을 꿈꾸는 푸틴의 안정적 통치가 지속될 것이다. 헤게모니 정당과 다수의 군소정당의 정당구도가 지속되는 이상 통합러시아당과 푸틴에 대한 반대 세력의 도전은 내년에도 어렵다. 푸틴의 후계자로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총리가 여전히 1순위로 꼽히고 있다는 점은 제국을 꿈꾸는 러시아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헌법 개정의 시도도 후계자 물색 노력도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 국내 정치에 힘입어 2020년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강대국 노선을 이어갈 것이다. 이를 위해 중동 등에서 팽창노선을 취하겠지만, 이를 지지할 국내적 · 물적 기반이 튼튼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 러시아는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경쟁적 파트너로 남으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강대국 행세를 할 충분한 여력은 있다. 2020년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선택에 올라타면서 별다른 성공가능성이 없는 중재자, 조정자로의 역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신북방정책은 말의 성찬임을 내년에도 확인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행 태를 성원하면서 동시에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식으로 한국에 접근할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의 노력에 응하는 식으로 지역 군사 긴장 완화를 노릴 것이다. 그렇지만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공통의 이해는 여기까지 일 것이다.

 
베트남 변수와 미중 지정학 경쟁에 처한 2020년의 동남아

2020년 동남아 국가들은 국내적으로 꽤 안정적 모습을 보일 것이다. 싱가포르와 미얀마의 선거가 예상되지만 크게 놀라운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세안 내에서는 작은 파도가 예상된다. 2020년 의장국을 수임한 베트남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아세안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된다. 아세안은 2020년 아세안공동체(ASEAN Community) 선포 5주년을 맞아 공동체 건설 성과에 대해 평가할 것이다. 대외적 환경은 매우 어렵다.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충돌이라는 변수는 2020년에도 상존한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불확실성도 더해진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 그보다 앞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시도 등 미국 국내정치 변수가 중요하다. 다만, 연말 대선 전까지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동남아 국가, 아세 안의 대미, 대중 정책 기조는 관망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2020년 아세안에 대한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2기 혹은 후반기로 접어든다. 2017년 말 신남방정책을 대외적으로 선언한 후 2년이 지난 시점이며, 문재인 대통령 임기도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이다. 신남방정책 전반기 나름 성과가 있었다. 한국 대통령 최초로 아세안 10개국 모두를 2 년 만에 순방해 한국의 신남방정책 추진 의지를 명확히 했다. 2019년 말 세 번째로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ASEAN-Republic of KOREA Commemorative Summit)도 개최되었다. 정책 추진의 의지, 한국 정부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은 이미 충분히 보였다. 신남방정책 2.0 혹은 신남방정책 2기에는 손에 잡히는 성과가 필요하다.

 
미국발 중동 지정학의 재편과 국내 불안정 지속이 예상되는 2020년

2020년 중동에서는 고립주의 미국의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면서 비자유주의 질서가 공고화 될 것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 대립이 장기 탐색전으로 전환되면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미국의 대선, 이란의 민생고, 미국의 동맹 · 우방국 방기로 인해 모두에 전쟁은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동맹의 가치를 크게 흔들었고 이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그 자리를 러시아 · 이란 · 중국 등이 파고 들어 시리아를 비롯한 역내 후원국을 끝까지 보호할 것이다. 터키 민족주의, 신오스만주의, 유라시아주의 정책을 강조하며 1인 체제, 선거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도 러시아에 더욱 밀착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2019년 말 이라크 · 레바논 · 이집트 · 이란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계속해서 각국 내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이후 중동 시 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자주 쉽게 불만을 조직하게 됐다. 중동 독재 정권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민주주의 안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혁명이나 정권 몰락은 독재자가 한순간 장악력을 놓칠 때 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안정적 민 주주의는 결코 우연히 오지 않기 때문이다.

 
상호 이익에 기반한 신안보 글로벌 거버넌스

21세기 들어 지속적인 위협으로 점점 더 큰 피해를 가져오고 있는 기후변화 관련 기상이변과 자연재난, 미세먼지, 사이버테러,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사태, 암호화폐 시장의 폭등과 폭락,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신안보 위협이 야기하는 위기상 황들이 2020년 또다시 발현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잠재 위협들이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가져오게 될 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대부분의 신안보 위협이 글로벌 거버넌스를 마련하지 못하 고 그 대응과 해결에 있어서 자국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들은 신안보 분야 국제협력의 실효성에 대해서 더욱 큰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신안보 위협들의 특징은 국적과 무관한 개인의 일상생활이라는 미시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안전의 문제들이 특정한 계기를 만나면서 거시적 국가안보의 문제로 증폭된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개별 국가들은 신안보 위협들의 정책적 대처에 있어서 국제협력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정 위협들이 자국에 미치는 영향과 국가자원의 여력을 고려하여 국내적 대책과 대응을 마련하는 것에 우선해야만 한다. 국제협력도 당위가 아닌 상호 이익의 추구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2020년 소강상태로 접어들 미중 무역전쟁과 회복되는 국제통상질서

2020년은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대선의 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미국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재선이 확정되는 2020년 11월이 지나서야 (만약 재선이 된다면) 미중 무역전쟁을 다시 거론할 것이다. 결국 2020년 11월까지는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일정으로 인해 휴전 상태로 진입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간 무역전쟁에서 일본은 WTO 절차 진행이 중지되는 2020년 한 해 동안 선별적으로 한국에 대하여 수출 허가를 내주면서 한국, 더 나아가 세계무역에 별다른 영향이 없음을 강 조하고자 할 것이다. 즉, 한국과 일본 간 수출관리 정책 관련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일 무역전쟁이 확전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서명이 시작될 2020년부터 RCEP은 지난 2018년 12월 30일 발효된 포괄 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 Pacific Partnership, CPTPP)과 함께 세계경제질서에서 양대 메가 FTA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격렬했던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속에서도 RCEP이라는 세계 최대의 메가 FTA가 사실상 완성되었다는 것은 무역전쟁이 휴전 상태로 들어갈 2020년에는 오히려 다자주의에 기초한 국제통상질서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