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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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스라엘에서는 보수와 중도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한 해 두 차례 총선이 치러졌다. 내년 3월 세 번째 총선이 실시될 예정이다. 총선정국의 혼란 속에서 11월 검찰이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현직 총리를 부패혐의로 기소했다.

이스라엘 내부의 양극화 심화와 이에 따른 정국 마비는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 사회의 빠른 보수화와 중도·진보 진영의 쇠락,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포퓰리즘 선동, 안보에 밀리는 법질서 가치 때문이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작년과 올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지수는 연이어 떨어졌다. 퇴보의 가장 큰 원인은 2018년 7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통과된 유대민족국가법에 있다. 이 기본법의 통과 이후 유대인 불법 정착촌은 묵인됐고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아랍계 사이에선 패배주의와 선거 무용론이 확산됐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중도·진보 연합은 안보 포퓰리즘 폭주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획기적 대안 제시 없이 양극화의 교착상태를 타개하지 못하고 있다.
 

1년새 세 번의 선거와 네타냐후 총리의 기소

 
올해 이스라엘에서는 총선이 두 번 치러졌다. 4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5선이 예상됐으나 보수 진영의 연립정부 구성이 막판 결렬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13년 이상 총리로 일했다. 4월 총선 후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했다면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벤 구리온(David Ben-Gurion) 초대 총리를 제치고 최장수 총리가 될 예정이었다.

재임 총리에 맞서는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 간츠(Benny Gantz) 청백당(Blue and White) 대표의 활약으로 선거는 초접전 양상을 띠었다. 2월 간츠 대표는 중도 성향의 야권 연합 청백당을 조직해 집권 리쿠드당(Likud)의 대항마로 나섰다. 간츠 대표는 강직한 군인정신을 앞세워 우유부단한 진보의 이미지를 타파했다. 청백당에는 간츠 외에도 2명의 군 장성 출신이 포함되어 있다. 청백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목표로 한 ‘두 국가 해법’을 존중하며 유대인 정착촌의 무분별한 확대에 반대한다. 또한 트럼프(Donald Trump) 미 행정부가 아닌 미국 민주당과의 공감대를 강조한다.

4월 총선에서 리쿠드당과 청백당이 전체 120석 중 35석을 똑같이 얻었다. 두 정당 모두 단독 과반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소수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관전 포인트였다. 리쿠드당은 의회 과반인 61석 이상의 확보를 위해 5개 보수 및 종교 정당과 연립정부 협상을 이어갔다. 각각 8석을 얻은 샤스당(Shas)과 토라유대주의연합(United Torah Judaism), 5석을 얻은 이스라엘 베이테누당(Yisrael Beiteinu)과 우파연대(Union of Right-wing Parties), 4석을 얻은 쿨라누당(Kulanu)이 대상이었다. 협상 초반 네타냐후 총리의 연임이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극우 세속주의 성향의 이스라엘 베이테누당 리베르만(Avigdor Lieberman) 대표가 막판 제동을 걸었다. 국방장관을 역임한 리베르만 대표는 초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자의 병역 면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종교 정당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리베르만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4년간 일한 최측근이었으나 최근 총리의 권력 집중을 비판해왔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5석을 얻지 못한 채 59석 확보에 그쳤다. 이후 간츠 대표에게 연립정부 구성권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총선 실시 50여 일 만에 의회 해산을 주도했다.

9월 2차 총선에서도 단독 과반 정당이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박빙의 승부였지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청백당이 33석을 얻어 32석의 리쿠드당을 누르고 제 1당이 됐다. 그리고 아랍계가 정당 연합 조인트 리스트(Joint List)를 구성해 13석을 얻어 제 3당으로 부상했다. 4월 총선에서 6석을 얻은 하다시-타알당(Hadash–Ta’al), 4석을 얻은 라암-발라드당(Ra’am–Balad)이 참여했다. 2015년 총선에서도 아랍계 조인트 리스트는 13석을 얻은 바 있다. 조인트 리스트의 오데흐(Ayman Odeh) 대표는 간츠 대표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하지만 조인트 리스트 내 발라드당 소속 3명의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이로써 간츠 대표는 노동-게셔르당(Labor-Gesher) 6석과 민주연합(Democratic Union) 5석까지 포함해 54석의 지지를 모았다. 연립정부 구성에 7석이 부족했다. 한편 9월 총선에서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8석을 얻어 선전했다.

간츠 대표는 리베르만 대표에게 연립정부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간츠 대표에게 번갈아 총리를 맡는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중도·진보 연합은 54석, 보수 연합은 55석 확보에 그쳤고 제 1, 2당의 대표 모두 법정 시한까지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형식적이지만 권한은 의회 전체에게 넘어갔다.

보수와 중도 대표가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바로 다음 날인 11월 21일 이스라엘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를 뇌물수수·배임·사기 3건으로 기소했다. 현직 총리의 수뢰 기소는 역사상 처음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최대 판매 부수의 일간지 사주와 우호적 기사를 대가로 막후 공모한 혐의, 이스라엘 최대 통신회사에 규제를 풀고 이권을 챙긴 혐의,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로부터 수년간 수십만 달러 상당의 선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12월 검찰은 독일제 잠수함 구매 계약 비리와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 측근의 기소도 결정했다.

12월 11일 의회도 차기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내년 3월 2일 3차 총선 실시가 결정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부패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당내외 사퇴 요구 역시 거부했다. 대신 3차 총선 재도전의 의지를 밝혔으나 리쿠드당의 사르(Gideon Saar) 의원 주도로 확정된 당대표 경선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이스라엘은 1년새 세 번의 총선 실시와 현직 총리의 기소라는 유례없는 정국 혼란을 겪고 있다. 안보 포퓰리즘과 법질서 수호의 가치가 충돌하며 이스라엘 민주주의 역시 흔들리고 있다.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 사회의 보수화와 중도·진보의 쇠락

 
2018년 7월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민족국가로 한정하는 유대민족국가법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찬성 62표, 반대 55표였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등 시민이 됐다. 히브리어와 함께 공용어였던 아랍어가 특수어로 격하됐고 차별의 공식화가 시작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수의 지지로 정당성
확보를 강조하는 주장은 대의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이다. 민주주의는 다수를 선택하지 않은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이들과 함께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유대민족국가법 통과의 배경에는 진보의 추락과 중도의 약화가 자리한다. 중도·진보 세력은 네타냐후 총리 주도의 극우 민족주의와 안보 포퓰리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유대민족국가법이 7표차로 통과될 때조차 제대로 된 반대 여론을 만들지 못했다. 특히 이스라엘 진보의 상징이자 총리를 5명이나 배출한 시온 사회주의 노동당은 지지세력을 빠르게 잃었다. 그림 1에서 보듯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당의 의석 수는 급락했다. 올해 4월과 9월 총선에서도 6석 밖에 얻지 못해 2015년 대비 13석을 잃었다. 유권자는 진보 정당의 무능을 심판했다.

노동당은 이스라엘 건국 이래 30여 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이었다. 1949년의 최초 총선을 시작으로 노동당의 전신 마파이당(Mapai)은 대표이자 초대 총리인 벤 구리온의 리더십 하에 줄곧 제 1당 자리를 유지했다. 1968년 마파이당은 시온 사회주의 계열 소수 정당들을 모아 노동당으로 통합했다. 메이어(Golda Meir), 라빈(Yitzhak Rabin), 페레스(Shimon Peres) 총리가 모두 통합 노동당 출신이다. 1977년 총선에서야 베긴(Menachem Begin)이 이끄는 리쿠드당이 승리하면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노동당은 1990년대 초까지 경쟁력 있는 정당이었다. 리쿠드당 집권 시기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 본격화되자 이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조직했다. 1980년대에는 리쿠드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가며 정부를 이끌거나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림 1> 이스라엘 노동당의 의석 수 급락 (1969-2019)

그림1_이스라엘 노동당의 의석 수 급락(1969-2019)*출처: Knesset, 1969-2019, Knesset Elections Results.

노동당의 추락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협정의 체결 이후 시작됐다. 1993년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Yasser Arafat)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은 미국의 중재 하에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영토와 평화를 맞바꿔 두 국가로 공존하자`는 합의였다. 합의 주역들은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세기의 협상으로 불린 두 국가 해법의 등장 이후 이스라엘 사회는 빠르게 보수화됐다.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내준 후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는 하락했고 유대인 정착촌 정당화의 목소리가 커졌다. 1995년엔 평화협정의 주역 라빈 총리가 급진 유대교 근본주의자에게 암살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어 1996년 총선에서 네타냐후 리쿠드당 대표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페레스 노동당 대표를 제치고 총리에 당선됐다.

노동당은 서안과 가자지구 땅을 내준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을 상실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이스라엘 시민은 테러와 무력 시위 없는 평화를 갈구했다. 1987년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무장봉기 인티파다(Intifada)가 시작됐고 2년 후 자살테러가 처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군은 무차별 진압으로 맞섰고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하지만 평화가 주는 기쁨은 영토를 내준 박탈감의 고통을 상쇄하지 못했다. 전망이론에 따르면 같은 양이라도 얻었을 때 기쁨보다 잃었을 때 상실감이 더 크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일부나마 내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처음엔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아 국가를 세우고 아랍과 4차례 전쟁을 치르는 사이 영토에 대한 심리적 가치는 빠르게 커졌다.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주관적 준거점도 점차 확고해졌다. 이스라엘 사람의 준거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어기며 정착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겨우 찾은 생존권을 급진 테러조직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안보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결국 2000년 클린턴(Bill Clinton) 미 대통령의 각별한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슬로 협정의 최종 지위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 자살테러가 폭증하자 이스라엘 사회는 더욱 보수화되어 갔다. 악순환이 시작됐다. 2차 인티파다 발발 직후 2001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의 강경파 샤론(Ariel Sharon) 대표가 총리로 선출됐다.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의 자살테러를 막는다며 640km의 분리장벽을 세웠다. 유대인 정착촌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노동당과 중도·진보 진영이 유권자 구성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점도 이들의 쇠락에 일조했다. 유럽 출신의 초기 정착 유대인에게 노동당의 시온 사회주의는 친근했다. 하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유대인이 점차 늘어나고 1980년대 들어와 러시아계 유대인이 급증했으나 이들의 선호도를 읽지 못했다. 결국 중도·진보 세력은 전국민적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인 배출에 실패했다. 이는 유권자의 포스트 평화협정 박탈감과 맞물려 노동당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중도·진보 진영은 평화협정 체결 이후 시민의 한껏 높아진 기대감이 현실과 괴리되면서 거센 상실감과 좌절감으로 이어질 것을 계산하지 못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안보 포퓰리즘 공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급진 이슬람주의 조직 하마스(Hamas)의 위협은 이스라엘 시민에게 일상이 됐다. 올해 5월 가자지구 분리장벽 근처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2명이 폭발물 풍선을 날리다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숨졌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하마스가 로켓 250발을 쏴 이스라엘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곧바로 공습에 나섰고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무장조직원 27명이 사망했다. 2018년 한 해 가자지구발 로켓은 1000발, 이스라엘발 공습은 300회가 넘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과잉 진압을 비난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시위사태 조사위원회는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2018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시위대 유혈 진압이 반인도주의와 전쟁범죄의 요건을 갖춘다고 밝혔다. 어린이, 의료진, 기자를 향한 사격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반박했다. 하마스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시위대가 연과 풍선에 매단 폭발물을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으로 날렸기에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10년여 가자지구 봉쇄 기간 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수천 발의 로켓·미사일·박격포를 쐈으나 이스라엘은 대부분 요격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반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연·풍선 폭탄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국제사회가 친팔레스타인 편향이라고 여겼다. 하마스가 자행한 선제공격, 노약자의 인간 방패화, 민간인 대피 명령의 의도적 회피에 침묵한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에겐 이란발 안보 위협도 크다. 이란의 핵개발은 가자지구발 위협과 달리 통제가 훨씬 어렵다. 게다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IS) 격퇴전과 시리아 내전이 끝나면서 아사드(Bashar Assad)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이란 강경파가 전후 역내 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란 성직자 체제의 핵심 군사조직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의 승리를 발판으로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특히 시리아 내 군사기지 15여 곳을 건설해 역내 패권 확장에 돌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올해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의 군사시설,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와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기고를 드론으로 공격했고 가자지구 하마스의 거점지를 공습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더 나아가 자신의 외교력으로 이스라엘의 국제사회 고립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를 앞세운 지도자와 적극 교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 오르반(Viktor Orbán) 헝가리 총리, 살비니(Matteo Salvini) 이탈리아 전부총리와 돈독한 관계를 키웠다.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해 비민주국가의 리더와도 부쩍 가까워졌다. 모두 폐쇄적 민족주의와 무슬림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을 향한 안보 위협의 증가가 기존 중도·진보 엘리트 때문이라고 시민을 선동했다.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안보 포퓰리즘과 극우 민족주의를 적극 이용했다. 두 국가 해법을 추구하는 중도·진보 계열을 강하게 비난했고 자신의 초강경 정책을 정당화했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에게 애국심이 없고 불법 행동을 일삼는다고 적대감을 표출했다. 유대인 정착촌의 대규모 신축 계획도 연이어 발표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34호의 위반이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의 친분 덕분에 이스라엘 안보의 숙원 과제를 풀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 자국 대사관을 옮겼고 올해 골란고원마저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와 497호의 위반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8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의 지원 중단도 결정했다. 매년 전체 기금의 30%를 지원해왔고 2017년엔 3억 6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어 9월에는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를 폐쇄했다. 올해엔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폐쇄한 후 이스라엘 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부로 강등 이전했다. 또한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 이란 핵협정 탈퇴와 고강도 제재 부활을 강행했다. 올해 4월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고 6월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Ali Khamenei)를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대인 사위 쿠슈너(Jared Kushner)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스라엘 총선이 끝난 후 중동평화안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서안과 가자지구의 경제발전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평화안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팔레스타인측은 물론 유럽 국가들마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 편향으로 공정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올해 4월 유럽의 전직 총리 6명과 외교장관 25명, 전직 NATO 사무총장 2명이 쿠슈너 선임고문의 중동평화안을 거부하는 문서에 공동 서명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제한적 민주주의 고착화와 법치 위기

 
매년 전세계 200여 나라의 민주주의 정도를 측정하는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최근 2년새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지수는 2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 민주주의 수준이 공고화 단계에 들어간 나라 치고 매우 빠른 하락이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 일본, 대만과 함께 2등급 그룹에 속했다. 하지만 그림 2에서 보듯이 2018년 1단계, 2019년 1단계 더 하락했다. 2018년 유대민족국가법 통과가 결정적 이유였다. 프리덤 하우스는 정치권과 이스라엘 사회 전반이 다원주의와 소수 인권 보호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2017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불매·투자철회·제재(BDS) 국제운동에 관여한 시민단체 처벌법의 통과 역시 낮은 평가의 근거였다.

유럽 국가들은 우려를 즉각 표명하며 이스라엘 내 아랍계 차별, 유대인 불법 정착촌 확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내 전통적 민주당 지지세력인 유대계도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민주당은 미국의 이스라엘 강경파 지지가 국익을 해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대민족국가법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즉시 효과를 나타냈다. 2015년 총선에서 아랍계의 투표율은 64%였으나 올해 4월 총선에선 49%로 떨어졌다. 무력감, 패배주의, 선거 무용론 확산의 결과였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유대민족국가법의 통과 이전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아랍계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공식 빈곤 가구층에 해당해 유대계보다 가난하다. 경제적 빈곤과 함께 심리적 차별도 존재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종종 부르며 간츠 대표는 아랍계 정당을 연립정부 파트너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림 2> 이스라엘 민주주의 지수 변화 (2006-2019)

그림2_이스라엘 민주주의 지수 변화(2006-2019)*출처: Freedom House, 2005-2019, Freedom in the World. 최대 값이 7이 되도록 프리덤 하우스의 지수를 변환했다. 지수 7은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정도가 가장 높은 수준을, 지수 1은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낸다.

실제로 아랍계 정당은 한번도 연립정부의 구성원이 된 적이 없으며 아랍계 출신이 고위직을 맡은 적도 없다. 반면 아랍계 정당의 85% 이상이 연립정부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결혼하는 서안과 가자지구 출신 아랍인에게는 이스라엘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 정착민들은 이스라엘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동예루살렘의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시민권 취득 신청에서 대부분 탈락한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주주의는 법치의 위기로 흔들리고 있다. 올해 2월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혐의 기소 계획을 발표했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과 검찰의 수장은 네타냐후 총리가 기용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4월 총선은 네타냐후 총리의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이었으나 유권자 절반 이상이 보수 정당을 택했다. 유권자는 법질서 수호와 안보 민족주의 구호 사이에서 반으로 나뉘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네타냐후 총리를 부패한 정치인이 아닌 안보 위협에서 유대 민족주의를 지켜내는 유능한 국가 재건자로 보고 싶어한다. 이들에게 부패 척결, 공익 수호, 법치주의는 안보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비민주국가 밀착 행보 역시 탁월한 외교력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검찰과 사법부는 독립적이고 투명하기로 유명하다. 올메르트(Ehud Olmert) 전총리(2006년-2009년 재임)는 예루살렘 시장(1993년-2003년 재임) 시절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6년 구속됐다. 샤론 전총리(2001년-2006년 재임)는 외무장관(1998년-1999년 재임) 시절의 뇌물 수수 혐의로 2004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샤론 전총리의 경우 기소는 면했으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내년 3월에 치러질 세 번째 총선이 혼란 정국의 돌파구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국민 여론이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를 두고 양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9월 총선에서 극우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3석 증가는 안보 포퓰리즘의 여전한 강세를 보여준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의 기소가 확실시된 지금 보수층 가운데 온건파의 이탈이 생길 수 있다. 온건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두 국가 해법에 반대하지만 자유 민주주의, 세속주의, 정교분리를 지지한다. 이들 유권자는 네타냐후 총리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여긴다. 따라서 리쿠드당의 당대표 경선이나 지도부의 사퇴 압력을 통해 네타냐후 총리 없는 리쿠드당과 청백당의 연립정부 협상이라는 옵션이 생길 수 있다. 또는 소수 보수 정당들 가운데 몇몇이 더 이상의 정국 혼란을 막고 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청백당과 연립정부 구성에 동의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없이는 세 번째 총선 역시 모두의 연립정부 구성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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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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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