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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중동 순방에 나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안의 마무리 작업차였다. 쿠슈너는 지난 2년간 중동 지도자들을 만나 자신이 공언한 야심작 설득에 공을 들였다. 평화안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이 끝난 후 공개될 예정이다.

쿠슈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는 서안과 가자지구 경제 발전에 초점을 뒀다고만 밝혔다. 쿠슈너표 중동평화안에 깜짝쇼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5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 자국 대사관을 옮겼고, 9월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를 폐쇄했다. 지난 3일엔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폐쇄한 후 이스라엘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부로 강등 이전했다. 배후에는 대통령의 사위 유대인 쿠슈너가 있었다. 그의 친이스라엘 행보를 지켜봐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음달 발표될 중동평화안 반대 운동을 이미 조직하고 있다.

유엔도 새로운 중동평화안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작년 8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의 지원 중단을 결정했다. 매년 전체 기금의 30%를 지원해왔고 2017년 3억6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시위사태 조사위원회는 지난달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지난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시위대 유혈 진압이 반인도주의와 전쟁범죄의 요건을 갖춘다고 밝혔다. 어린이, 의료진, 기자를 향한 사격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반박했다. 테러단체 하마스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시위대가 연과 풍선에 매단 폭발물을 이스라엘 민간인 지역으로 날렸기에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10년여 봉쇄 기간 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수천 발의 로켓·미사일·박격포를 쐈으나 이스라엘은 대부분 요격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반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연·풍선 폭탄이었고 새로운 전략은 적중했다. 첨단 요격기술은 쓸모없었고 드론도 역부족이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친팔레스타인 편향이라고 비난했다. 하마스가 자행한 선제공격, 노약자의 인간 방패화, 민간인 대피 명령의 의도적 회피에 침묵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안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풀 거란 기대는 낮다. 피로감만 더할 듯하다. 25년 전 세기의 평화협상으로 불린 오슬로협정이 실패한 후 당사자와 국제사회 모두 무력감에 빠져 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영토와 평화를 맞바꿔 두 국가로 공존하자`고 합의했다. 합의 주역들은 다음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러나 `두 국가 해법`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상실의 무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컸다. 이스라엘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땅을 일부나마 잃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몰랐다. 같은 양이라도 얻었을 때 기쁨보다 잃었을 때 상실감이 크다. 1980년대 말 팔레스타인 급진주의 자살테러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화를 갈구했다. 그런데 테러 없는 기쁨은 영토를 내준 박탈감을 상쇄하지 못했다. 홀로코스트의 광기에서 살아남아 약속의 땅을 `되찾고` 아랍과 4차례 전쟁을 치르며 그 땅을 지키는 동안 영토의 심리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내준 후 이스라엘 사회는 빠르게 보수화됐고 유대인 불법 정착촌이 확대됐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을 점령자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겨우 찾은 권리를 또 뺏길지 모를 위기상황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상실의 고통을 당할 수 없어 안보 강화에 힘쓴다. 지극히 주관적 기준이다. 이러한 인식 앞에 스타트업의 성지, 최강의 정보기관 모사드, 미국 내 유대계의 로비력은 변수가 아니며 국제법 준수의 압박도 부차적 문제다.

최근 미국은 팔레스타인 영사관 폐쇄, 지원금 중단을 단행했다. 상실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결정이다. 힘겹게 얻은 소유권을 뺏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상실의 분노를 조직하고 있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것이다.

 

* 본 글은 3월 12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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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